내가 주어인 문장의 힘 - 하루 10분 필사, 당신의 미래가 바뀐다
케이크 팀 지음 / 케이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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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통찰을 내 삶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주체를 '나'로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여러 필사책을 만나봤지만, 한 번도 주어를 나로 바꾸어 필사해 본 적은 없는듯하다. 그저 명사들의 명언이나 긍정 확언을 그대로 따라 써봤을 뿐이다.


하지만, 이 필사책에서는 단순히 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어를 '나'로 바꾸어 내 삶에 직접적으로 대입해 보라 말한다. 그러면 내일, 한 달 뒤, 내년의 내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간혹 '쓴다고 되겠어?'라며 의심 어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떤 것이든 생각에만 그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그러니 일단 쓰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그리고 내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행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해 보자.


직접 쓰는 행위는 목표에 도달하려는 의식을 강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작은 습관을 만들도록 돕는다.


덕분에 생각만 하고 있던 것보다 성공할 확률이 몇 배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체를 '나'로 변경한 긍정 확언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행위는 더 나 자신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부정적 생각보다 긍정적 생각 쪽으로 더 기울어지며 현재와 다른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내일을 만들고 싶다면, 지금 당장 나를 위한 필사를 시작해 보자!



총 5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180개의 명언과 그 명언의 주체를 '나'로 바꾸어 필사할 수 있는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읽으면서 쓰다 보면 어느새 명상하는 시간처럼, 푹 빠져들게 되는데 마음에 새기고 싶은 명언들은 휴대폰이나 메모지에 써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자주 들여다봐도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새해맞이 목표로 하루에 2개씩 긍정 확언들을 필사하는 시간을 3달 동안 가져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길지 않은 단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의지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진행하며 습관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정신없는 아침 시간이 부담스럽다면,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에 읽고 쓰며 마음에 새기고, 아침에는 가볍게 읽어보는 것으로 파이팅을 외쳐보면 어떨까?


그렇게 매일의 시작과 마감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무의식과 습관도 모두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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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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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친절하게 책 활용법에 대한 내용도 함께 담았다. 이를 참고해 나만의 일정과 스타일에 따라 필사를 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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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필사를 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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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가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자신을 주어로 한 긍정적인 문장, 즉 '확언'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필사는 단순히 글을 베껴 쓰는 것이 아니다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은 정보를 단순히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이를 처리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더 깊은 이해를 촉진한다.


■명언과 확언을 필사해야 하는 3가지 이유

①자기 긍정 메시지를 통한 자신감 향상

②명상적 글쓰기를 통한 정서 안정

③목표 의식 강화를 통한 자기 발전


■삶의 주인공이 되는 10분 습관

명언과 확언을 적으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작은 습관은, 나의 잠재의식을 변화시키고 내가 주인인 삶을 살아가는 첫걸음이 된다.



***


간혹 왜 필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 이유도 함께 담아본다. 필사를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람이든 처음 시도해 보는 사람이든 그 이유와 목적을 명확히 알고 진행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최근에는 필사의 긍정적인 면을 알아보고 필사하는 사람의 수가 과거보다 확연히 많아진 것을 느낀다. 아마도 필사하며 오로지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고요히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애정하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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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방식으로 직접 필사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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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에 있는 긍정 확언을 모두 그대로 옮길 필요는 없다. 영어 문장은 제외해도 되고, 나를 주체로 한 '나의 말'만 옮기며 마음에 새겨도 된다.


여기에 더해 나만의 구체적인 목표를 기재해 봐도 좋겠다. 예를 들어 '파울로 코엘료의 말'에서 착안한 긍정 확언을 '나의 말'로 변경해서 필사할 때 '나는 더 이상 필사를 미루지 않고, 오늘 바로 시작한다'라고 기록함으로써 필사에 대한 강한 의지를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는 것이다.


필사는 스스로에게 하는 긍정 확언인 만큼 나에게 더 잘 맞는 글귀와 방식으로 활용해 보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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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새기고 싶은 인상 깊은 명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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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부여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말>


가장 어려운 것은

행동하기로 결정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끈기일 뿐입니다.


The most difficult thing is the decision to act;

the rest is merely tenacity.



<나의 말>


나는 행동하기로 결심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전임을 안다.

행동하기로 결심한 후에는 꾸준히 나아가는 끈기를 발휘한다.

나의 결단은 모든 변화의 시작점이고,

나는 인내를 통해 목표를 쟁취한다.


(86페이지 中)


***


<웨인 그레츠키의 말>


시도하지 않으면 100% 실패합니다.


You miss 100% of the shots you don't take.



<나의 말>


나는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안다.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시도하지 않은 것 그 자체이다.

행동할 때만 100%의 가능성이 열리며,

그 속에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다.

나는 끝없이 도전하며, 기회를 내 손으로 쟁취한다.


(92페이지 中)


***


●자신감


<스티븐 킹의 말>


당신은 할 수 있고, 해내야 합니다.

시작할 만큼 용감하다면,

당신은 해낼 것입니다.


You can, you shoud,

and if you're brave enough to start, you will.



<나의 말>


나는 할 수 있고, 반드시 해낼 것이다.

시작할 용기를 냈다면 이미 절반은 이룬 것이며,

나에게는 끝까지 나아갈 힘이 있다.

나는 반드시 해내고, 나의 가능성을 증명할 것이다.


(100페이지 中)


***


<램 대스의 말>


자신의 길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마세요.

그 길은 당신만의 유일무이한 길입니다.


Don't compare your path with anybody else's.

Your path is unique to you.


<나의 말>


나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길을 걷는다.

나의 길은 내 고유한 경험과 배움으로 가득 찬 소중한 여정이다.

나는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믿으며,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길을 묵묵히 나아간다.


(104페이지 中)


***


<웨인 다이어의 말>


당신의 유일한 한계는

당신이 스스로 설정한 한계뿐입니다.


The only limits you have are the limits you believe.



<나의 말>


나는 내가 믿는 만큼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음을 안다.

나의 한계는 스스로 정한 것에 불과하며,

그 한계로 인해 내 자신을 제약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다고 믿으며 내 가능성을 확장하고,

믿는 것을 현실로 만든다.


(112페이지 中)


***


<데니스 웨이틀리의 말>


이미 잘못된 일에 연연하지 마세요.

대신 다음에 해야 할 일에 집중하세요.

답을 찾기 위해 나아가는 데

에너지를 쏟으세요.


Don't dwell on what went wrong.

Instead, focus on what to do next.

Spend your energies on moving forward

toward finding the answer.



<나의 말>


나는 이미 지나간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

나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나는 바꿀 수 없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나의 에너지를 쓴다.


(136페이지 中)


***


<존 우든의 말>


당신이 할 수 없는 것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Do not let what you cannot do interfere with what you can do.



<나의 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할 수 없는 일에 얽매이는 것은 내가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기만 할 뿐이다.

나는 내 한계를 인정하되, 그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는 나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최고의 성취를 이룬다.


(148페이지 中)



●자존감&위로


스스로를 부드럽게 대하세요.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Be kind to yourself.

You're doing your best.



<나의 말>


나는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안다.

나는 작은 실수로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고,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나는 나를 존중하며,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성장한다.


(184페이지 中)


***


<파울로 코엘료의 말>


당신의 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됩니다.

어차피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니까요.


Some people around you will not understand your journey.

They don't need to; it's not for them.



<나의 말>


나는 내가 가는 길이 나만의 것임을 안다.

나의 선택은 오직 나를 위한 것이므로,

모두가 그것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믿는 길을 당당히 걸어간다.


(192페이지 中)


***


<로버트 튜의 말>


부정적이고 해로운 사람들에게

머릿속 공간을 내어 주지 마세요.

임대료를 올리고 쫓아내세요.


Don't let negative and toxic people rent space in your head.

Raise the rent and kick them out.



<나의 말>


나는 나에게 해로운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부정적인 사람들이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단호하게 차단한다.

나는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나를 위한 건강한 관계만을 선택한다.


(224페이지 中)


***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을

포기하고 타협하는 순간,

타협한 수준의 대우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The moment you settle for less than what you deserve,

you risk receiving even less than you compromised for.



<나의 말>


나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나의 가치를 존중할 때 세상도 나를 존중하며,

적절하지 않은 타협은 나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는 것이다.

나는 내 권리를 지키며, 당당하게 나의 자리를 만들어 간다.


(234페이지 中)



●인간관계


<메릴 스트립의 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재능입니다.


The great gift of human beings is that

we have the power of empathy.



<나의 말>


나는 공감을 통해 세상과 더 깊이 소통한다.

공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 주는 가장 큰 힘이며,

나는 이 재능을 소중히 여긴다.

타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함께 느낄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


(274페이지 中)


***


<G.K 체스터턴의 말>


무언가를 사랑하는 방법은

그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The way to love anything is to realize that it may be lost.



<나의 말>


나는 소중한 것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안다.

내 주변의 것들은 언젠가 사라질 수 있으며,

나는 그것을 깨닫고 현재의 관계에 더 집중하고 최선을 다한다.

나는 지금 그 순간과,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290페이지 中)


***


<마하트마 간디의 말>


세상이 변하길 원한다면,

직접 그 변화를 실천하세요.


Be the change that you wish to see in the world.



<나의 말>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부터 변화시킨다.

변화의 시작은 나로부터 오는 것이며,

작고 사소한 행동들도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는 직접 그 변화를 실천함으로써,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


(320페이지 中)



●지혜


<게리 베이너척의 말>


긍정은 언제나 승리합니다.

늘 그렇듯이요.


Positivity always wins. Always.



<나의 말>


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성공의 열쇠임을 안다.

마음이 밝으면 기회가 생기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나는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맞이하며,

나의 긍정적인 태도는 언제나 승리를 불러올 것이다.


(326페이지 中)


***


<석가모니의 말>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끌어당깁니다.

사람은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창조합니다.


What you think, you become.

What you feel, you attract.

What you imagine, you create.



<나의 말>


나는 나의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것임을 안다.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은 현실이 될 것이며,

긍정적인 생각은 나를 더 큰 성취로 이끌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것이며,

나의 생각과 감정으로 미래를 창조한다.


(348페이지 中)


***


지혜로운 사람은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라,

많이 경험한 사람입니다.


A wise person is not someone who has a lot of knowledge,

but someone who has a lot of experience.



<나의 말>


나는 경험을 통해 진정한 지혜를 쌓아 간다.

배움보다 중요한 것은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며,

많이 경험할수록 나의 시야는 더 넓어진다.

경험은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을 주기에,

나는 무엇이든 시도함으로써 더 나은 나로 거듭난다.


(366페이지 中)


***


<토니 로빈스의 말>


성공한 사람들은 더 좋은 질문을 하고,

그로 인해 더 좋은 답을 얻습니다.


Successful people ask better questions,

and as a result, they get better answers.



<나의 말>


나는 더 좋은 질문을 통해 새로운 길을 발견한다.

나의 성장은 내가 던지는 질문에서 시작되며,

질문하는 과정에서 나는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낸다.

나는 스스로를 향한 더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더 큰 성취에 도달한다.


(378페이지 中)


***


<찰스 디더릭의 말>


오늘은 남은 삶의 첫 번째 날입니다.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



<나의 말>


나는 오늘이 남의 삶의 첫날임을 명심한다.

모든 순간은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지는 출발선이므로,

나는 모든 것을 신중히 선택한다.

오늘 나의 결단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이므로,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나의 첫 번째 날을 시작한다.


(388페이지 中)



=====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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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명언들이 가득해 읽는 내내 행복했다. 살면서 한 번씩 미끄러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때를 대비해 틈틈이 읽고 필사하며 마음을 다잡으면 어떨까 한다.


특히 요즘 같은 시국에는 마음 둘 곳이 없어 막막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럴 때 엉뚱한 곳에 마음 주지 말고 나를 다잡을 수 있는 긍정 확언들을 통해 잘 버텨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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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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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졌던 소설!"



노벨문학상 수상 때문인지, 도서관 전체 보유 권수가 늘었음에도 한참을 기다려서야 받을 수 있었던 <소년이 온다>는 읽고 난 후 다시 더 꼼꼼히 읽어보고 싶을 정도의 긴 여운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었다.


특히 마지막 6장에 서술된 내용은 소중한 자식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엄마의 절절한 마음을 담고 있어 유독 더 마음이 쓰이는 장면이기도 했다.


또 과거 어느 영상에서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에필로그를 통해 그 내막 또한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열흘간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그리고 있는 소설로, 저자 자신이 실제로 광주에서 살 당시 인연이 있던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시작은 아버지가 감춰둔 사진첩을 보게 되면서부터다. 열두 살 저자는 그 사진첩에서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그것을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고 살다가 후에 취재와 고증을 통해 세상에 내놓게 된다.


특히 <소년이 온다>의 '소년'이자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소년 '동호'의 경우 저자와도 인연이 깊은데, 저자의 아버지가 가르쳤던 제자이자,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동호의 집이 실제 저자가 살았던 옛집이기 때문이다.


이 인연으로 후에 광주를 찾은 저자는 5.18에 관련된 정보를 모으는 한편, 수소문하여 동호의 친형을 찾게 되고 그를 인터뷰하면서 마침내 동호를 제대로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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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21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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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년이 왔고, 저자는 앞서 나가는 소년을 따라 그날의 처참하고 어두웠던 이야기를 써 내려가게 된다. 그때에 그 자리에 있었던 그들 덕분에 현재의 우리는 아마도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영원히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다시는 그때의 그 악몽이 반복되지 않으리라 굳게 믿었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믿음에 찬물을 끼얹듯, 2024년 비상계엄이 갑작스레 선포되었다.


한밤중 날아든 그 사건으로 2025년 새해가 밝은 지금까지도 우리는 혼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 거리를 메운, 민주화를 부르짖고 있는 거리의 시민들과 그때 광주의 시민들이 오버랩되며 다시금 끔찍한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다.


권력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속적으로 반복, 자행되는 이런 상황을 과연 언제까지 두고 봐야만 하는가 문득 그런 의문이 든다.


현장에 있었던 다섯 명의 이야기에 더해, 어린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의 가슴 아픈 이야기까지 읽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 현장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더불어 이것이 단 열흘 동안의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아무 죄 없는 이들이 도처에서 폭력과 희롱을 당하고,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상황은 끔찍함을 넘어 인간이길 포기한 이들의 만행처럼 느껴진다.


들어는 봤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때 그 현장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생생히 만나보며, 어떤 것을 기억하고 지켜나가야 할지 가슴에 새기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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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및 배경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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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관

처음에는 시신을 도청 민원봉사실 복도에 안치했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상무관으로 옮겨 시신을 관리하게 된다.



■동호

-중학교 3학년으로 만 15살

-부모님, 두 명의 형

-큰형은 서울에서 9급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음

-작은형은 늘 1등을 하는 수재지만 대학 시험에서 거푸 실수를 해 삼수 중


※취재에 응해줬던 형은 작은형임. 당시 큰형은 서울에 따로 살고 있었음



■박정대

-동호와 동갑내기 친구

-동호네 사랑채에서 누나와 함께 세 들어 살고 있음

-아버지는 대전에서 일하고 있어 따로 살고 있음



■박정미

-스무 살

-정대의 친누나

-방직공장에서 근무

-혼자 검정고시 공부를 하며 의사가 될 꿈을 가지고 있었음

-일요일에 행방불명 된 이후 계엄군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측됨



■김진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휴교령 때문에 광주로 내려왔음

-예쁘장한 외모를 가지고 있음

-희생자 파악과 시신 관리를 총괄, 필요한 물품 조달업무

-수감 후 외모 때문에 변칙적인 고문을 더 당함



■은숙

-수피아여고 3학년

-대학 생활을 하다 여러 이유로 포기하고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함

-담당 원고 검열 문제로 서대문 경찰서에 끌려가 일곱 대의 뺨을 맞음

-상무관에서 시신을 관리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음



■임선주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당시 노조활동을 하다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뒤 직업을 바꿔 충장로에 있는 양장점 미싱사로 근무

-상무관에서 은숙과 함께 시신을 관리하는 자원봉사를 함

-추후 경찰에 연행되면서 끔찍한 성 고문을 받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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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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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어린 새 "동호의 이야기"


정대는 동호네 집 상하방에서 누나와 함께 자취하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로, 둘은 함께 시위대의 행진 도중 인파에 몰려 정대와 떨어지게 되고 잠시 후 동호는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져 죽은 정대를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계엄군이 지나간 뒤 정대를 찾기 위해 상무관으로 오지만 정대의 시신은 찾지 못한다. 그러다가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에 그곳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시신들 위에 천을 덮어주거나, 가족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씩 걷어서 얼굴을 보여주거나, 시신에 대한 기록(장부에 날짜와 시간을 적고 죽은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기록)을 하는 업무였다.



2장. 검은 숨 "죽은 정대의 이야기"


시위대의 행진 도중 총에 맞아 사망한 정대는 어딘가로 실려가게 된다. 그곳은 정대와 같은 시신들을 쌓아두는 검은 숲으로,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다.


이미 사망한 후 혼의 형상으로만 남아있던 정대는 영혼이 몸에 묶여 자신의 몸에 피가 흐르고, 살이 문드러지고 썩어가는 과정을 낱낱이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나를 왜 죽였고, 누나는 왜 죽였는지, 또 어떻게 죽였는지.


-----

나를 죽인 사람과 누나를 죽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을까. 아직 죽지 않았다 해도 그들에게도 혼이 있을 테니, 생각하고 생각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내 몸을 버리고 싶었어. 죽은 몸뚱이로부터 얇고 팽팽한 거미줄같이 뻗어 나와 끌어당기는 힘을 잘라내고 싶었어. 그들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어.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52페이지 中

-----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을 급기야 탑처럼 쌓아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는 것도 직접 확인하게 되는데, 그렇게 몸이 사라지면서 정대는 자신의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

우리들의 몸에 달라붙어 썩어가던 피 묻은 옷들이 가장 먼저 타서 재가 되었어. 다음으로 머리카락과 잔털들이, 살갗이, 근육이, 내장이 타들어갔어. 숲을 집어삼킬 듯 불길이 치솟았어. 대낮같이 공터가 밝아졌어.


그때 알았어. 우리들을 여기 머물게 했던 게 바로 저 살갗과 머리털과 근육과 내장이었다는걸.

(...)

우리들의 몸은 계속 불꽃을 뿜으며 타들어갔어. 장기들이 끓으며 오그라들었어. 간헐적으로 쉭쉭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는 우리들의 썩은 몸이 내쉬는 숨 같았어. 그 거친 숨이 잦아든 자리에 희끗한 뼈들이 드러났어. 뼈가 드러난 몸들의 혼은 어느샌가 멀어져, 더 이상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았어. 그러니까 마침내 자유였어. 이제 우린 어디든 갈 수 있었어.


어디로 갈까, 나는 자신에게 물었어.

누나한테 가자.

하지만 누나가 어디 있을까.

(...)

나를 죽인 그들에게 가자.

하지만 그들이 어디 있을까.

(...)

너에게 가자.

그러자 모든 게 분명해졌어.

61~6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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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이내, 너마저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게 어디인지 모르지만, 동호가 죽는 순간을 느끼게 된 것이다.



3장. 일곱 개의 뺨 "은숙의 이야기"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다니던 그녀는 아버지가 뇌출혈로 오른쪽 몸을 못쓰게 되면서 엄마는 약국 보조원 자리를 얻어 생계를 꾸리기 시작했고, 은숙은 휴학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안 일과 두 동생을 돌보게 된다.


그러다 아버지가 스스로 거동을 할 수 있게 될 무렵 복학했으나, 한 학기 만에 다시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하게 된다. 그렇게 2학년까지 마친 뒤 결국 졸업을 포기했고 교수의 추천으로 작은 출판사에 입사하게 된다.


당시에는 출판사가 책을 출판하기 전에 당국의 원고 검열을 받은 후 출판할 수 있었는데, 담당하던 원고의 검열 문제로 서대문 경찰서에 끌려간 은숙은 그곳에서 치욕적인 '일곱 대의 뺨'을 맞게 된다.


한대 한 대를 잊으려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 은숙의 이야기 속에는 살아있음에 대한 치욕, 그리고 죽어서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동호에 대한 애도의 마음이 절절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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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 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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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102~10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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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쇠와 피 "진수의 이야기"


윤은 진수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사람을 찾아 진수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다. 진수의 죽음을 심리적으로 부검하며 그때 그 사건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면서.


아무개는 진수와 함께 생활했던 수감생활과 이후 그와 함께 나들에 대해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하는데, 그 속에는 무자비함과 지나친 폭력성이 가득했다.


아무개는 감옥에 투옥된 후 진수와 한조로 생활했던 사람으로, 가까이에서 진수의 생활을 목격하게 된다. 진수는 여성적인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수감된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히 더 변칙적인 고문을 당했는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성 고문이었다.


이후 재판을 통해 판결이 내려지지만 곧 성탄절 특사로 석방되면서 이들은 각자 흩어져 자신만의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러다 간혹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었는데, 무력감과 회의감으로 점점 피폐해지는 진수를 목격했다고 진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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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 해 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다는 걸 증명한 거야.

1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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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겨울날 진수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서 화장장까지 갔다가 돌아온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전한다.


윤은 진수가 유서와 함께 남긴 사진을 건네며 그 속에 있는 직선으로 나란히 쓰러져 죽어 있는 아이들에 대해 묻는데, 그 아이들은 바로 도청에 끝까지 남아있던 다섯 명의 아이들이었다.


바로 자신들이 캐비닛에 숨어있다가 조용해지면 나와서 항복하라고 일러두었던 바로 그 아이들. 아이들은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계엄군은 자비 없이 어린 학생들을 빨갱이 치부하며 망설임 없이 총을 발사해 그 자리에서 사망케 한다.


그리고 한 줄로 걸어오고 있던 아이들은 그렇게 나란히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되는데, 그 사진 속 모습이 바로 그 장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동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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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1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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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밤의 눈동자 "선주의 이야기"


선주의 이야기는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앞서 진수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 아무개를 찾아갔던 윤이 이번에는 성희에게 선주의 연락처를 물어 연락해 왔다.


윤은 자신이 쓰고 있는 논문 주제와 심리 부검의 초점으로 삼았다는 시민 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인터뷰를 요청한다. 하지만 선주는 그대로 거절한다.


그리고 십 년 만에 그는 다시 연락해 꼭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며, 끈질기게 설득을 이어나간다. 인터뷰가 어려우면 녹음을 해달라며 녹음기까지 소포로 보낸다.


선주는 올해로 만 사십 삼세가 되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때의 그 일은 여전히 선주의 발목을 잡고 있다. 때문에 선주는 짧은 결혼생활을 끝으로 더 이상 남자와는 얽히지 않으며,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서조차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지내고 있다.



***


선주는 중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일을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보낸 일 년여의 시간을 제외하면 한 번도 노동을 멈춘 적이 없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열다섯 시간을 일했고, 한 달에 이틀을 쉬었다. 봉급은 남자 공원의 절반을 받았으며, 잔업수당은 없었다. 하루 두 알씩 타이밍을 먹어도 잠을 매번 쏟아졌지만, 꾹꾹 참아가며 일해야 했다.


여기에 더해 퇴근하는 여공들을 몸수색하던 경비들은 브래지어 언저리를 더듬어 갖은 치욕을 맞보게 했다. 여공으로 일하는 동안은 치욕, 기침, 잦은 코피, 두통, 가래를 뱉으면 뭉쳐져 나오던 거무스레한 실밥 덩어리는 기본이었다.


그렇게 인간 같지 않은 대접을 받으며 지내던 중 노조 활동을 하다 잡혀가게 되면서 여기저기 맞아 장 파열로 입원하게 되고 이후 해고 통보를 받게 된다.


이후 고향 집으로 내려가지만 블랙리스트에 올라 더 이상 방직공장에서는 일할 수 없게 되면서 선주는 친척의 주선으로 광주 충장로의 양장점에서 미싱사 시다로 취직하게 된다.


그리고 어렵게 배운 기술로 삼 년 만에 미싱사로 일하게 되었을 때가 스물한 살이었다. 그러다가 양장점 주인이 대학생 아들을 데리고 영암의 동생 네로 내려가 버리게 되면서 낮에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선주는 그렇게 상무관으로 가게 된다.


***



윤은 계속해서 기억해달라고, 직면하고 증언해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선주에게 있어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여성으로써 너무나 끔찍한 성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일로 이년 동안 하혈을 하고, 현재까지도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그 일을 어떻게 증언할 수 있겠는가.


-----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 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166~16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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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는 총기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다른 여대생들과 따로 수감되었고 거기에서 빨갱이 년으로 불리며, 하혈 끝에 의식을 잃을 때까지 고문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석방 후 정미(정대의 누나)가 그 봄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나중에 카톨릭센터 외벽에 붙어있는 사진을 통해 도청 안마당에 처참한 모습으로 모로 누워있는 정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 선주는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



6장. 꽃 핀 쪽으로 "동호 엄마의 이야기"


이 장에서는 삼십 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어린 아들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애끓는 모성에 더해 후회와 자책에 시달리는 엄마의 모습에 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엄마는 늦둥이로 태어난 아이의 사랑스러움부터, 문간방에 세 들인 남매에 대한 원망과 미안함, 여기에 더해 다른 아들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로 둘러댄 상황까지 떠올리며 막내아들을 잃고 시린 겨울 속을 살아온 날들을 회상한다.


장례까지 치르고, 아들들이 장성한 뒤에도 여전히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막내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엄마는 가만히 아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찾아갔을 적에, 네가 그리 순하게 저녁에 들어갈라요, 말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으까이. 나는 안심을 하고 집에 가서 느이 아부지한테 그랬어야.


여섯시에 문 잠그고 집에 온다요. 다 같이 저녁 묵자고 약속했소. 그란디 일곱시가 되도록 네가 안 들어온게, 느이 작은형하고 나하고 둘이서 집을 나섰다이. 계엄이라 일곱시가 통금인디.

(...)

꼬박 사십분을 걸어서 가본게 상무관에는 불이 꺼지고 아무도 없어야. 도청 앞으로 간게 총 든 시민군들이 지키고 섰드라마는, 우리 막내아들을 만나봐야겄다고 사정한게, 어리디어린 그 시민군들은 파랗게 얼굴이 굳어갖고 안된다고, 아무도 들여보내면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더라이.

(...)

제발 들어가게 해주소, 하고 나는 빌었어야.

(...)

지금 들어가면 못 나옵니다. 저 안에는 죽을 각오가 된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느이 작은형이 알겄다고, 일단 들어가게만 해달라고 언성을 높일 적에 내가 말을 막았다이. 그 아그가 기회를 봐서 제 발로 나올라는 것이여... 분명히 나한테 한속을 했단게.

(...)

이라다가 남은 아들까장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렇게 말을 했다이.

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버렸다이.

184~1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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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아쉬움으로 통탄하게 되는 그날 그 시점에 대해 회상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때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하는 후회와 자책이 짙게 베어나 더 마음이 아픈 부분이다.


그날 그냥 손을 붙잡고 데리고 왔다면, 동호가 그렇게 순순히 집에 온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둘째 형을 말리지 않았다면 등등.


엄마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얼마나 스스로에게 되물으며 가슴을 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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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말이다이, 내가 뭣한다고 문간채에다 사람을 들였을까.... 생각한다이. 그까짓 사글세 몇푼 받겄다고... 정대가 이집으로 안 들어왔으면 네가 정대 찾는다고 그리 애를 쓰지 않았을것인디...

(...)

내가 그 불쌍한 남매를 원망하면 큰 죄를 받제.

187페이지 中

-----


엄마는 더 거슬러 올라가 아들을 죽게 된 원인에 대해 곱씹는다. 문간채에 들인 남매를 괜히 들였다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면 아들이 죽지는 않았을 거라고 자책하면서도 이내 좋은 친구가 되어준 정대와 남매에게 이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내심 원망마저도 갈 곳을 잃는다.



-----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19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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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다 이렇지 않을까? 잘못한 것도 없이 한순간에 어린 자식이 총살당해 죽었다. 그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

어쩌끄나, 내가 서른 살에 막둥이 너를 낳았는디.

(..)

너는 달랐는디. 왼쪽젖을 물리면 물리는 대로, 이상하게 생긴 젖꼭지를 순하디 순하게 빨아주었는디. 그래서 두 젖이 똑같이 보드랍게 늘어졌는디.

어쩌끄나, 젖먹이 적에 너는 유난히 방긋 웃기를 잘했는디.

(...)

어쩌끄나, 젖을 뗄 적에 너는 손톱이 종이맨이로 얇아질 때까지 엄지손가락을 빨았는디, 온나, 이리 온나, 손뼉 치는 내 앞으로 한발 두발 걸음마를 떼었는디. 웃음을 물고 일곱걸음을 걸어 나헌테 안겼는디.

1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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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기쁨을 선사한 어린 막둥이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태어날 때부터 순하디 순한 아이가 방긋 웃던 순간, 엄지손가락을 빨던 습관, 한발 두발 걸음마를 떼며 안기던 순간.


이 모든 순간이 눈에 아른거리며 평생 가슴에 남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런 기억 때문에 엄마는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1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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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유일하게 당시의 아들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은 아마도 증명사진이 아니었을까? 중3, 졸업하지 못한 채 생을 다한 동호는 졸업앨범에서조차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그래서 학생증의 사진을 오려 지갑 속에 고이 넣어두고,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가만히 이름을 불렀다.


'동호야' 하고.



-----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1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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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적부터 밝은 곳을 좋아했던 동호. 그늘이 지는 곳이 싫어 반짝 해가 뜬 곳을 찾아 걸음을 옮기던 동호.


어쩌면 그런 동호였기에, 어둠을 몰고 오는 계엄군에 용감하게 맞섰는지도 모르겠다.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나아가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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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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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1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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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고에 휘말렸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바로 위와 같은 말이다. 매일같이 악몽을 꾸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죄책감에 죽지 못해 살아간다 말한다.


이 책에 언급된 생존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렸다. 학살과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어 피폐하고 고립된 상태로 살아간다.


날마다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며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에 몸서리치며 살아간다.


그래서 어쩌면 이 문장은 이 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희생자와 생존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문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유독 더 인상 깊게 다가왔던 문장이다.



=====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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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마치 1980년 5월 광주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었다. 직접 겪은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히 되살아 났다.


특히 엄마와 주변 사람들에 의해 서술되는 만 15살의 어린 동호에 대한 이야기는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왜 시위 현장에, 끔찍한 몰골로 누워있는 시체가 가득한 상무관에, 또 굳이 없어도 됐었던 그 자리에 있어야만 했을까? 그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들조차 참여하지 않았던 현장에 말이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엄마는 늦둥이 막내아들을 떠올리며, 나무 그들이 햇빛을 가리는 것조차 싫어했던 아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를 통해 어쩌면 본능적으로 어둠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느껴서는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또 생생한 증언을 통해 서술되는 여러 고문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사람이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 그들은 어쩌면 사람이 아니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화나 다큐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이 자행한 무자비한 폭력과 고문들을 텍스트를 통해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면 읽다 보니 그저 악마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사람을 난도질하듯 고문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총으로 사람을 쏘아대는 모습에는 그 어떤 도덕적 양심이나 부끄러움, 죄책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보여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달까?


상황이 이쯤 되니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인터뷰를 요청한다고 해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선뜻 증언을 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선주처럼 과거 큰일을 겪고 그 일로 현재까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증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생각에 나 역시 동의하는 바다.


시간이 많이 흘러도 우리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토록 잔혹했던 지난 1980년의 5월을, 온몸을 다 바쳐 민주주의를 지켜낸 그 도시의 열흘을.


앞선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언제든 평온한 우리의 일상이 무너질 수 있음을, 누군가 또 권력을 무기로 삼아 총칼을 들이댄다면 당장이라도 지옥 같은 날들이 펼쳐질 수 있음을 말이다.


어쩐지 오늘만큼은 마음으로나마 희생된 이들의 혼을 위로하는 초를 밝혀두고 싶다. 동호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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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베트남 북부 - 2025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김경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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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다양해 더 자주, 쉽게 찾게 되는 베트남 북부! 이 책에 실린 여러 정보를 취합해 나만의 여행계획을 짜보면 어떨까? 특히 북부는 휴양, 관광, 전통마을탐험 등 내 스타일에 맞는 테마여행을 할 수 있어 더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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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 한정원의 8월 시의적절 8
한정원 지음 / 난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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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럽지 않게 8월을 만나볼 수 있는 책!"



우연히 읽게 된 책인데, 살펴보니 8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일기 쓰듯 써 내려간 기록물이다. 형식도 다양했는데, 에세이, 시, 사진 3가지 형태로 담았다.


짤막하지만, 8월에 대한 시인의 시선과 마음, 생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색다른 기분이었다. 일 년 중 가장 무더울 여름 그 한가운데에서 시인이 그리고 있는 8월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상상하며 읽고, 또 보면 어떨까 한다.



이 책은 시인이 8월 한 달간 빠짐없이 에세이, 시, 사진으로 써 내려간 기록물로, 일종에 8월의 일상을 담은 일기 같은 글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생각하는 여름이라는 계절에 대한 생각, 그때 그 시점에 보이던 풍경들, 여기에 더해 냄새, 습기, 온도 등 오감으로 느껴지는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여름을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고 표현했는데, 한껏 사랑할 수 없어 조금만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다.


'싫어하는 계절'이라는 표현을 쓸 법도 한데, 끝까지 사랑을 놓지 않겠다는 듯이 시인은 조금만 사랑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 책에 시인이 남긴 여름의 흔적들을 살펴보며, 우리가 미처 캐치하지 못했거나 놓쳐버린 것들은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

여름은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다. 세 번을 거쳐온 마음은 미약하다. 그래도 싫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


한껏 사랑할 수 없다면 조금 사랑하면 되지.


나는 여름의 하늘을 조금 사랑한다. 당당하고 등등한 푸름을, 푸름을 가벼이 저버리고 소나기를 내리는 패기를, 패기를 무효하는 천진한 무지개를.


나는 여름의 밤을 조금 사랑한다. 흙과 풀과 낮의 끈기가 뒤섞인 냄새를, 짝을 찾는 맹꽁이의 전심전력의 소리를, 한바탕 꿈을 꾸기에 알맞은 짧음을.


나는 여름의 물기 많은 과일을, 헐거운 옷 속으로 들어오는 낮은 바람을, 오수에 빠진 사람과 동물의 방심한 얼굴을 조금 사랑한다.

(...)

여름의 빛이 매미 소리로 변신했다고 상상한 그날로부터, 그 소리가 환호성으로 들리고 있다. 반짝이는 소리, 여름을 호위하는 소리.

42~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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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고 말하는 시인. 그래서 조금만 사랑하기로 했다는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정말 조금만 사랑하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한편, 최고로 사랑하는 첫 번째 계절은 과연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청량함과 푸르름, 헐거움, 물기 많음, 환호성으로 대표되는 한여름의 풍경은 이토록 다채롭고 현란하다. 지난여름 나는 과연 이 중에서 몇 가지나 누려봤을까?



=====

알고 보니 슬픈 이야기였다. 냄새로 알아본다는 말. 냄새가 없으면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이어서, 냄새가 없으면 기꺼이 잃을 수 있다는 뜻이어서.


가까이에서 더러 보아왔다. 기억을 잃어가는 것.

(...)

순간순간 그들의 눈 속에서 빛이 꺼지고 눈동자가 멈추는 것을 목도했다. 그럴 때 그들은 아주 먼 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시선을 나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기억을 잃으면, 사랑했다는 기억을 잃으면, 끝내 사랑을 잃는 것이라는 사실을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64페이지 中

=====


시인은 지난 코로나 시절 심하게 앓으며 후각을 잃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뭔가를 잃는다는 것의 감각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보통 맛은 미각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후각을 통해 '맛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후각을 잃으면 '짜고, 달고, 시고, 씁쓸한 맛'을 제외하면 다른 맛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이로써 후각의 상실은 과거 좋아했던 음식, 음식에 대한 애정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후각뿐만이 아니다. 기억을 잃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가까이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의 눈 속의 빛이 꺼지고 눈동자가 멈추는 것을 목도했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서 끝내 사랑도 함께 소멸했음을 감각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그것과 연관된 또 다른 무엇까지 모두 잃어버린다는 말과 같은 말이 아닐까 한다.



*****



이 책에 실린 8월의 매일매일을 살펴보며, 유난히 길고 힘겨웠던 지난여름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이내 습하고 더운 기운에 너무 여름을 몰아세우기만 한 것은 아니었나 반성하게 된다.


모난 곳만 있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왜 그때는 그토록 얄미운 마음만 한가득 안고 왜 빨리 왔냐며, 왜 빨리 가지 않느냐며 채찍질을 했는지 모르겠다. 더 큰마음으로 안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늦게 온 겨울은 너무나 반갑고 열렬히 맞아주었던 것 같다. 왜 이제 왔냐며 더 차갑고 시린 겨울은 언제 오냐며 오히려 재촉했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단순히 여름이 싫고 겨울이 좋아서 이토록 냉대와 환대를 오갔던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그 저변에 깔려있는, 피부로 느껴지는 이상기후의 위기를 감지해서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싱그러움이라는 말은 어디 가고 메말라 타죽었다거나 습기에 질식당할 것 같다는 말이 더 많이 오갔던 지난여름은 이제 저 뒤에 두고, 다가오는 한여름 팔팔한 8월에는 부디 여름다운 쨍~함과 당당한 푸르름, 패기를 머금은 소나기, 흙과 풀 내음, 물기 많은 과일, 헐렁한 옷 속에 스며드는 바람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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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 백은별 장편소설
백은별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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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보다는 '극단적'이라는 말이 더 먼저 떠올랐던 소설!"



15살 중학교 2학년인 청소년 저자가 쓴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의 우울과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동급생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라는 소개글에 혹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공감보다는 오히려 막연하고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나 역시 학창 시절을 거쳐오며 여러 감정에 휘말려봤지만,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과 같은 뜬금포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과거와 현재는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뭔가 심하게 극단적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면서 환경, 가치관, 교육, 관계 등 여러 면에서 많이 망가졌다는 느낌이 심하게 들었다. 불균형이 커지다 보니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저자가 이 책에서 서술한 것과 같은 내용이 현실과 동일하다면, 현재 중2의 생활방식과 사고를 고스란히 반영한 내용이라면 학부모나 가정, 학교가 꽤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음은 자명하다 말할 수 있겠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의 우울과 자살에 대한 내용을 그리고 있는 소설로, 저자 역시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중2, 15살이다.


저자가 아직 청소년이라서인지, 솔직히 기대에는 못 미치는 필력과 두서없이 전개되는 문맥으로 다소 혼란스러움과 실망감이 들었다는 점은 미리 밝혀둔다.


더불어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자살이나 자해 등이 너무 일상화된 것처럼 서술되고 있어 좀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만약 이것이 현실을 반영한 내용이라면 청소년들이 많이 병들어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최근에 가까이에서 청소년을 직접 대면할 일이 없어 잘 몰랐는데, 이 책에서 그려지는 청소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거보다 몸만 크고 정신은 더 어려진 아이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어른보다 미성숙한 나이이기에 충동이 심하고 그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걸 우리 사회가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썼는데, 막상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자살과 우울에 더 위험하고 덜 위험한 조건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미성숙한 나이'라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성인보다 더한 행동을 저지르는 아이들을 두고, 그러하니 용서해 줘야 한다거나 봐줘야 한다는 논리가 맞는 걸까 하는 의문도 제기해 본다.


나이가 많거나 적은 것은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 말에 무조건적으로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자해를 하고, 또 그것만을 위한 SNS 계정을 만들어 남들과 공유하고, 자살 날짜를 정해놓고 마치 시한부 인생처럼 살아가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일.


이 모든 게 미성숙한 나이의 청소년이니까, 어른들이 이랬으니까, 사회가 이러니까, 학교가 이러해서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일까?


어쩌면 사회에, 관계에, 그밖에 많은 것들에 면역력이 없어서 벌어진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불어 요즘 아이들은 더 악독해지고 교활해졌으며 순수성이 많이 결여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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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백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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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의 저자는 어른들이 모를 뿐, 학생들의 자살 결심은 교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우울감을 철부지 아이들의 투정으로 여기지만 실상 자신들은 꽤 진지하고 심각하게 하루하루 죽음을 생각하며 보내고 있다고 전한다.


대한민국 한 명의 청소년으로서 저자는 자신들이 얼만큼 불안하고 왜 죽음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 책에 담아 전하고 싶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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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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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아

-중2 / 주인공

-크리스마스에 단짝 친구의 죽음을 목격함

-평범한 맞벌이 가정(아빠는 한번 일을 나가면 2주에서 길면 한 달까지도 집에 들어오지 않음. 고로 거의 엄마가 케어함)

-윤서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8년 지기 친구

-사림 초등학교 4학년 재학 당시 성인과 사귄다는 더러운 소문에 시달림(실상 당사자는 사촌 오빠였음)

-소문에 더해 가족과의 불화로 인해 우울증, 불면증, 별의별 정신병에 시달림



■황윤서

-중2

-크리스마스에 부모님은 동반자살로 사망, 이후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음.(고로, 크리스마스는 부모님의 기일)

-방송부로 활동 중

-자살 날짜를 정해두고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함

-크리스마스에 학교 옥상에서 자살함.



■이주현

-중2 동급생 중 한 명

-수아의 옆자리에 앉게 되면서 친해짐

-9월에 언니를 대신해 자사고로 전학함

-언니를 대신해 부모님의 기대가 주현에게로 넘어옴



■신가연

-중2 동급생 중 한 명

-따돌림과 헛소문을 퍼트리는 주동자



■이정아

-중2 동급생 중 한 명

-2학기 때 친해진 친구

-선우와는 어릴 적부터 친구



■유선우

-중2 동급생 중 한 명

-2학기 때 친해진 친구

-부모님 때문에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안 좋은 일도 당함

-자해를 자주 하며 자해계를 운영

(자해계: 몸에 낸 상처를 찍어서 게시판에 올리는 계정을 말함)



■성민

-새 학기에 전학 온 남학생으로 잘 생긴 것으로 소문남

-전학 첫날부터 수아에게 관심을 표함

-수아를 살고 싶게 만들기 위해 노력함

-아역으로 활동했지만 스토커가 붙으면서 두려움과 공황을 겪게 됨. 이후 소속사에서도 나오고 엄마와는 거리가 멀어짐

-신가연과 사촌지간

-사랑받고 있지만 외로움

-자살시도해 본 적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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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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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중학교 3학년이 다가오고 있던 시점, 모두가 잠들었을 꼭두새벽에 수아는 깨어 있었다. 잠시 후 문자 알람이 울렸고 윤서로부터 사진 하나가 와있었는데, 빨간 갈색 바닥을 찍은 학교 옥상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본 수아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그대로 뛰쳐나와 학교 옥상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견한 것은 단짝 친구인 윤서가 자신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윤서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수아는 이내 기괴하게 꺾여 죽어버린 친구를 목격하게 된다.


이후 뒷걸음질 치다 수아는 옥상 바닥에서 윤서가 평소 쓰던 수첩을 발견했는데, 수첩의 마지막 장에는 D-Day라는 글자만 적혀있었다.


그리고 다시 D-365, 수아의 비극이 시작된다.


***


수아는 초등학교 때 엄한 소문에 휘말리게 되면서 꽤 큰 고충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소문이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따라다니게 되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새 학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소문에서 벗어나게 되고 마침내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즐기게 된다.


옆자리에 앉은 주현이라는 친구를 비롯해,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친구들 덕분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반면, 동네 친구이자 8년 된 단짝 친구인 윤서는 반 친구들과 여전히 어울리지 못한다. 친구들은 윤서를 꺼림직하게 생각하며 멀리했고 이로써 같은 반에서 윤서와 어울리는 사람은 수아가 유일했다.


수아는 이렇게 행복한 와중에도 이따금씩 또 이상한 소문에 휘말리게 될까 봐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지옥 같던 일상이 어느새 설렘으로 가득 차기 시작할 무렵, 친구 관계가 어그러지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윤서가 있었다.


윤서를 악의적으로 따돌리거나 헛소문을 내어 친구들과 멀어지게 만든 신가연으로 인해 친구관계가 재편되는 일이 발생한다.


새로운 친구들과 가까워지며 한동안 윤서와 관계가 소원해는데, 이 일로 인해 수아는 가연과 멀어지고 다시 윤서와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주현도 포함된다.


그렇게 셋은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며 속에 감춰둔 비밀로 공유하고, 파자마 파티도 하는 등 겉으로는 누구보다 즐거운 여느 중학생처럼 지내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 나름대로 고충을 가지고 있었는데, 수아는 여전히 헛소문으로 인한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고, 윤서는 자신만의 시한부 날짜를 세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주현은 언니의 가출로 인해 전학을 가게 되고, 거기에서 학업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중3을 얼마 앞두지 않은 크리스마스 날 밤, 윤서는 수아에게 사진 하나를 보내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것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수아는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고, 그날로 자신도 또다시 1년 뒤 크리스마스 날 죽을 결심을 하게 된다.


다시 시작된 새 학기, 성민이라는 전학생이 갑작스레 수아에게 다가와 친한 척을 하기 시작한다. 슬픔과 불안에 휩싸여 있던 수아는 거부하지만, 성민은 끈질기게 수아를 향해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수아는 남몰래 윤서가 죽을 때 남몰래 챙긴 옥상 키를 가지고 자주 옥상을 드나들었는데, 그런 수아를 계속 지켜보고 있던 성민이 따라붙으면서 둘은 어느새 옥상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성민에게 털어놓게 된다. 성민 또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수아에게 털어놓게 되면서 어느새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된다.


엄마의 관심, 정신과 상담이나 약 등으로는 도저히 잠재울 수 없었던 불안과 우울을 성민에게 털어놓고 위로받으며 서서히 수아는 조금씩 살 의지를 다지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과 우울은 남아있었고, 그렇게 D-Day는 다가온다. 또다시 찾아온 크리스마스날 밤, 수아는 윤서가 떨어져 죽은 학교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하기 전 윤서처럼 사진 하나를 찍어 성민에게 전송하게 되고, 이에 성민이 옥상으로 달려오게 되면서 수아의 자살시도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렇게 D+1이 다가왔다. 이로써 성민이 주문처럼 읊조리던 "너도 눈치 못 채는 새에 살고 싶게 해줄게."라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수아는 자신이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사실은 살고 싶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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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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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사정으로, 고통받고 살아가며 버티는 우리라는 이름의 청춘들은 굽혀질 줄을 모르면서도, 썩어가고 있었다.

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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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저마다의 사정과 고통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다수는 자해가 기본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심각하고 또 원인은 무엇인지, 반대의 입장과 상황은 어떠한지에 대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오로지 수아의 입장에서만 서술되기 때문이다.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너무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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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가 우리에게 거는 기대와 내뱉는 우울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아니 어쩌면 오직 나는 이런 생각이 점점 들 수밖에 없었다.


'귀찮다'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 자신에게 놀랐다.

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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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뜬금없이 계속 '죽고 싶다'와 같은 내용들이 언급되니, 나중에는 '그만 듣고 싶다'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아는 친구들을 보며, 독자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대신해서 서술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정작 타인이 볼 때는 자신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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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소속감'. 나는 이것을 조금씩 스스로 잃어가고 있었다.

(...)

날 우울로 까 내릴수록 인간관계에서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지긴 어려워졌고, 누군가를 위로할 수도, 진심으로 동정할 수도 없었다. 끝없는 자기혐오는 결코 탈출구가 되어줄 수 없었다.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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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 1인칭으로 서술했을 때의 감각이다. 어쩌면 주변의 친구들이나 사람들은 크게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물론 윤서가 죽기 전보다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남들은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수도 있다.


2학기가 되어도, 새 학기가 되어도 수아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고, 늘 같은 패턴의 생활을 이어나갔다. 설사 그 이유가 엄마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라는 이유였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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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나에게 저지른 것은, 그저 살인이었다. 내 생존에 처음 의문을 품었던 건 슬프게도 7살이었다.

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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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윤서의 입장에서 서술된 챕터의 한 부분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윤서의 말이 맞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동반자살이지만, 7살 된 윤서의 입장에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가 나를 죽이는 살인행위다.


현실 속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현실을 감당 못한 부모가 자신들이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목숨까지 맘대로 거둬가는 것은 엄연한 살인행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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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3학년, 입시에 불안감이 커지기도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 또한 죽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12월에, 365일 뒤에, 그때 떠나면 될 일이다.

84~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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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 입장에서 보면 되게 배부른 소리 하는 철없는 아이처럼 보인다. 심지어 수아의 부모는 불안정한 수아를 위해 병원에 데려가고, 약 처방까지 받아주면서 학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는다.


그 와중에 수아는 죽을 날만 기다리며 공부는 아예 손을 놓아버린다. 부모 입장에서는 가슴 칠 일이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에 멍이 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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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고 싶어"


눈물을 훔치며 나는 중얼거렸다. 이제서야 약간의 행복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모두 가져가 버렸다. 신이 있다면 당장 멱살을 잡고 싶을 정도로, 아니, 그렇게 죽어버린 윤서를 탓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고, 눈물이 계속 떨어졌다. 어쩌면 행복했을 수 있던 오늘이었기에.

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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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의 메시지로 인해 자살 현장을 목격한 수아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다. 그런데 결국 1년이 지나도록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건 수아 자신이었다.


공부는 뒷전이고, 교우관계나 슬픔에서 헤어 나오려 노력하지 않는 모습 등은 수아가 선택했기에 벌어진 상황들이다.


그 외에 학교나, 가정, 부모, 기관, 정신과 의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어떤 케어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냥 방치한 건지, 수아의 고집에 두 손 두 발 놓은 건지 모를 일이다. 그냥 마냥 억울하고, 분하고, 슬프고, 우울하고, 죽고 싶은 내용만 계속 서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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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이상한 오기일지라도 버티기로 했다.


나는, 내년 12월 25일에 죽을 거다.


윤서가 죽었을 때부터, 직접 산 안개꽃을 책상 위에 올려놨을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쭉 생각해온 것이다. 나는 내년 크리스마스에 떠날 거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버틸 것이다.

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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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죽으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이런 유예기간을 가지지 않는다. 이미 이런 유예기간을 가진 것부터 살고 싶다는 소망이 깔린 것이다.


미성숙한 청소년인 수아는 윤서의 죽음을 통해 자기만의 극단적 생각에 빠졌다. 그래서 자신의 삶은 포기하고, 그저 1년 뒤 죽겠다는 생각만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이런 생각을 가지며 버티던 와중에 성민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정말 12월 25일, 수아는 윤서처럼 생을 마감하게 되었을까?


대답은 글쎄, 어쩌면 옥상에서 하염없이 울다가 그냥 내려왔을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아는 밤을 보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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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미칠 것만 같을 때 들리는 윤서의 목소리와 날 야유하는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내 손목의 상처들을 만들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하지만 결코 부모님이 알아서는 안 되니, 학원을 꼬박꼬박 다니고 출석했다. 수업은 전부 어디론가 흘리고 있었지만.

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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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는 아무도 없을 때만 자해를 하고, 소리를 지른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결코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원도 가고, 학교도 간다. 속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왜 수아는 죽고 싶다면서, 불안하고 괴롭다고 외치면서 정작 언제든 손 내밀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까?


중간에 엄마가 억지로 약을 복용하게 하는데 심하게 거부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 사유가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나, 왜 스스로 그 어둠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지는 좀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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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하찮은 마음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엄마가 알게 되는 건 더더욱 싫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는

겨우 나 때문에 힘들면 안 되는 거다.

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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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오히려 반대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을 공유하고 싶고, 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로 말이다.


겨우 나 때문에 힘들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면서 왜 죽을 생각을 하는가.


사랑하는 내 딸이 아무 이유 없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면, 엄마는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나 역시 경험해 봤지만, 청소년 때 할법한 생각과 행동이다. 그래서 청소년기에는 비밀도 많고, 굴곡도 많다. 하지만 생각에만 그치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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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는 가위로 잘라냈고, 칼로 가죽 벗긴 것도 있고."

(...)

"방에서 혼자 긋고 자르고 있다가 누가 알아주고 위로해 준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행복하지 않아?"

(...)

"넌 자해를 왜 하는 거야? 죽고 싶어?"

"살고 싶어서."

나와 똑같은 이유였다.

116~1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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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하게 다가오는 자해에 대한 묘사다. 누군가의 위로를 받기 위해 자해를 일삼고 그것을 위해 SNS에 공유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난다.


내가 나인 걸로는 충분하지 않은 걸까? 내가 나를 해하는 건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왜 이들은 자해를 하며 타인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걸까?


요즘의 청소년들은 관종인가? 왜 이토록 관심에 목말라있는 걸까? 이들의 가정과 부모는 어떤 사람들일까? 수많은 물음이 머릿속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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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눈치 못 채는 새에 살고 싶게 해줄게."

1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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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로맨틱하게 들려오는 말이지만, 실상 성민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갸우뚱하게 된다. 성민은 위태로워 보이는 수아에게 영웅심리로 접근한다. 그리고 수아를 살리면 자신이 빛나 보이지 않을까, 회의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호기심이 관심으로 바뀌면서 이 말은 진심이 된다. 성민은 그렇게 수아의 옆에서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옆자리를 온기로 데워준다.


이 덕분에 수아는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어쩌면 수아와 같은 청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온기와 관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학교나 가정에서 그런 온기와 관심을 찾을 수 없다는 말처럼 느껴져 직장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이 많이 메말라 있구나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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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년짜리 시한부가 되기로 결심한 건, 죽음에 절망하며 비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남은 1년이라도 가치 있게 살아보자고, 그 1년이 다 가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죽지 말자고 정한 나만의 위로 방식이었구나.

30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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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통해 어쩌면 성민이 아니었더라도, 수아는 그날 그 자리에서 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그런데 돌이켜 봤을 때, 수아는 남은 1년을 정말 가치있게 살았나 하는 의문은 남는다.


윤서에 대입해 보면, 윤서는 가치있게 살았다고 본다. 목표한 대로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쓸데없는 관계에 집착하기보다 오히려 오늘의 내 삶에 더 충실히 살았다.


공부도 성실하고 열심히 했고, 방송부 일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우울해져 다짐이 허물어질 때면 수첩에 넣어둔 부모님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은 마지막 날 할머니에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 점, 거친 말만 내뱉고 나온 점이다)


그런데 수아에게 1년이 그러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저 절대 죽지 말자는 유예기간에만 충실했다. 오히려 중간중간 자해와 안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은 멈추지 않으면서 실수로 죽을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수면제 먹기, 방안을 밀실로 만들기)


보통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면 최소 1년간의 애도 기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에는 충분히 슬퍼하고, 고인을 추모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수아는 1년간 누구를 위한 애도 기간을 가진 걸까? 그것이 윤서에 대한 애도였을까? 아니면 윤서를 잃어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애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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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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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많이 안타까웠고 또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다. 특히 수아의 1인칭 시점에서만 상황이 전개되어 더 그렇다. 요즘의 청소년은 모두 다 이런 건지, 아니면 저자의 마음이 그런 건지 도통 모를 일이다.


이 소설에는 저자의 경험도 투영되어 있다고 하는데, 어떤 부분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한쪽으로 기울여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의 온기나 관심이 확연히 줄어들어 가까이 있는 부모를 비롯해, 전문가(의사), 학교 선생님 등 어디에서도 제대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임은 익히 알고 있다. (아마 독자적으로 무언가를 헤쳐나가기엔 버거운 청소년은 더 할 것이다)


그렇지만, 본인만, 혼자만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사회가, 현실이 그래서 너 나 할 것 없이 여유 없이 버티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해 주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상황이 그러하다고 해서, 자해가, 자살이 당연하다는 듯 행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그리고 그것을 자랑하듯 SNS에 올리는 짓은 더욱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울하다고 모두 안 좋은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타인을 통해서 상황을 탈피하려고 하기보다 나 스스로 나를 지켜내겠다는 생각에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어른들의 세상에 일찍 물들어 초등학생 때부터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고, 따돌림하고, 누군가를 매도하는 행위를 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리고 거울처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에 치가 떨린다. 바로잡아야 할 것들을 바로잡지는 못하고, 정작 가르치지 말아야 할 온갖 나쁜 것들만 너무 이르게 확산시켜 아이들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잠깐 언급된 초등학생 시절 수아가 겪은 헛소문에 관련된 내용과 이에 대한 대처가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진다.


학교와 교육청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처분을 제대로 내려줬을까? 엄마는 매번 참으라고만 이야기하던데, 이때도 참으라고만 이야기했을까? 그때 수아의 편은 한 명도 없었던 걸까? (당시 윤서마저 학교에서는 방관하는 자세로 지냈다고 한다)


이런 내면의 상처와 아픔들에 대해 더 주목해서 다뤄주었다면 조금 더 공감대 형성이 되었을 텐데, 우울과 자살에만 포커스를 맞춰 많이 아쉽다.


같은 중2, 청소년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보았을까? 청소년의 시절을 이미 떠나보낸, 어른이 된 나는 적어도 소설에 등장하는 수아나 윤서보다는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당시의 그 기분과 선택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중2 정도의 나이면 적어도 옳고 그름에 대해서 만큼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나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 몸에 해를 가하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만큼은 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사 친구가 같이 하자고 꼬드겨도 말이다. 아무리 친구가 중요한 시기여도 아닌 건 아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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