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 한정원의 8월 시의적절 8
한정원 지음 / 난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담스럽지 않게 8월을 만나볼 수 있는 책!"



우연히 읽게 된 책인데, 살펴보니 8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일기 쓰듯 써 내려간 기록물이다. 형식도 다양했는데, 에세이, 시, 사진 3가지 형태로 담았다.


짤막하지만, 8월에 대한 시인의 시선과 마음, 생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색다른 기분이었다. 일 년 중 가장 무더울 여름 그 한가운데에서 시인이 그리고 있는 8월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상상하며 읽고, 또 보면 어떨까 한다.



이 책은 시인이 8월 한 달간 빠짐없이 에세이, 시, 사진으로 써 내려간 기록물로, 일종에 8월의 일상을 담은 일기 같은 글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생각하는 여름이라는 계절에 대한 생각, 그때 그 시점에 보이던 풍경들, 여기에 더해 냄새, 습기, 온도 등 오감으로 느껴지는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여름을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고 표현했는데, 한껏 사랑할 수 없어 조금만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다.


'싫어하는 계절'이라는 표현을 쓸 법도 한데, 끝까지 사랑을 놓지 않겠다는 듯이 시인은 조금만 사랑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 책에 시인이 남긴 여름의 흔적들을 살펴보며, 우리가 미처 캐치하지 못했거나 놓쳐버린 것들은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

여름은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다. 세 번을 거쳐온 마음은 미약하다. 그래도 싫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


한껏 사랑할 수 없다면 조금 사랑하면 되지.


나는 여름의 하늘을 조금 사랑한다. 당당하고 등등한 푸름을, 푸름을 가벼이 저버리고 소나기를 내리는 패기를, 패기를 무효하는 천진한 무지개를.


나는 여름의 밤을 조금 사랑한다. 흙과 풀과 낮의 끈기가 뒤섞인 냄새를, 짝을 찾는 맹꽁이의 전심전력의 소리를, 한바탕 꿈을 꾸기에 알맞은 짧음을.


나는 여름의 물기 많은 과일을, 헐거운 옷 속으로 들어오는 낮은 바람을, 오수에 빠진 사람과 동물의 방심한 얼굴을 조금 사랑한다.

(...)

여름의 빛이 매미 소리로 변신했다고 상상한 그날로부터, 그 소리가 환호성으로 들리고 있다. 반짝이는 소리, 여름을 호위하는 소리.

42~43페이지 中

=====


여름을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고 말하는 시인. 그래서 조금만 사랑하기로 했다는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정말 조금만 사랑하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한편, 최고로 사랑하는 첫 번째 계절은 과연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청량함과 푸르름, 헐거움, 물기 많음, 환호성으로 대표되는 한여름의 풍경은 이토록 다채롭고 현란하다. 지난여름 나는 과연 이 중에서 몇 가지나 누려봤을까?



=====

알고 보니 슬픈 이야기였다. 냄새로 알아본다는 말. 냄새가 없으면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이어서, 냄새가 없으면 기꺼이 잃을 수 있다는 뜻이어서.


가까이에서 더러 보아왔다. 기억을 잃어가는 것.

(...)

순간순간 그들의 눈 속에서 빛이 꺼지고 눈동자가 멈추는 것을 목도했다. 그럴 때 그들은 아주 먼 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시선을 나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기억을 잃으면, 사랑했다는 기억을 잃으면, 끝내 사랑을 잃는 것이라는 사실을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64페이지 中

=====


시인은 지난 코로나 시절 심하게 앓으며 후각을 잃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뭔가를 잃는다는 것의 감각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보통 맛은 미각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후각을 통해 '맛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후각을 잃으면 '짜고, 달고, 시고, 씁쓸한 맛'을 제외하면 다른 맛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이로써 후각의 상실은 과거 좋아했던 음식, 음식에 대한 애정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후각뿐만이 아니다. 기억을 잃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가까이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의 눈 속의 빛이 꺼지고 눈동자가 멈추는 것을 목도했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서 끝내 사랑도 함께 소멸했음을 감각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그것과 연관된 또 다른 무엇까지 모두 잃어버린다는 말과 같은 말이 아닐까 한다.



*****



이 책에 실린 8월의 매일매일을 살펴보며, 유난히 길고 힘겨웠던 지난여름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이내 습하고 더운 기운에 너무 여름을 몰아세우기만 한 것은 아니었나 반성하게 된다.


모난 곳만 있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왜 그때는 그토록 얄미운 마음만 한가득 안고 왜 빨리 왔냐며, 왜 빨리 가지 않느냐며 채찍질을 했는지 모르겠다. 더 큰마음으로 안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늦게 온 겨울은 너무나 반갑고 열렬히 맞아주었던 것 같다. 왜 이제 왔냐며 더 차갑고 시린 겨울은 언제 오냐며 오히려 재촉했던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단순히 여름이 싫고 겨울이 좋아서 이토록 냉대와 환대를 오갔던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그 저변에 깔려있는, 피부로 느껴지는 이상기후의 위기를 감지해서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싱그러움이라는 말은 어디 가고 메말라 타죽었다거나 습기에 질식당할 것 같다는 말이 더 많이 오갔던 지난여름은 이제 저 뒤에 두고, 다가오는 한여름 팔팔한 8월에는 부디 여름다운 쨍~함과 당당한 푸르름, 패기를 머금은 소나기, 흙과 풀 내음, 물기 많은 과일, 헐렁한 옷 속에 스며드는 바람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