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 백은별 장편소설
백은별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감'보다는 '극단적'이라는 말이 더 먼저 떠올랐던 소설!"



15살 중학교 2학년인 청소년 저자가 쓴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의 우울과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동급생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라는 소개글에 혹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공감보다는 오히려 막연하고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나 역시 학창 시절을 거쳐오며 여러 감정에 휘말려봤지만,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과 같은 뜬금포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과거와 현재는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뭔가 심하게 극단적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면서 환경, 가치관, 교육, 관계 등 여러 면에서 많이 망가졌다는 느낌이 심하게 들었다. 불균형이 커지다 보니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저자가 이 책에서 서술한 것과 같은 내용이 현실과 동일하다면, 현재 중2의 생활방식과 사고를 고스란히 반영한 내용이라면 학부모나 가정, 학교가 꽤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음은 자명하다 말할 수 있겠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의 우울과 자살에 대한 내용을 그리고 있는 소설로, 저자 역시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중2, 15살이다.


저자가 아직 청소년이라서인지, 솔직히 기대에는 못 미치는 필력과 두서없이 전개되는 문맥으로 다소 혼란스러움과 실망감이 들었다는 점은 미리 밝혀둔다.


더불어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자살이나 자해 등이 너무 일상화된 것처럼 서술되고 있어 좀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만약 이것이 현실을 반영한 내용이라면 청소년들이 많이 병들어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최근에 가까이에서 청소년을 직접 대면할 일이 없어 잘 몰랐는데, 이 책에서 그려지는 청소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거보다 몸만 크고 정신은 더 어려진 아이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어른보다 미성숙한 나이이기에 충동이 심하고 그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걸 우리 사회가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썼는데, 막상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자살과 우울에 더 위험하고 덜 위험한 조건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미성숙한 나이'라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성인보다 더한 행동을 저지르는 아이들을 두고, 그러하니 용서해 줘야 한다거나 봐줘야 한다는 논리가 맞는 걸까 하는 의문도 제기해 본다.


나이가 많거나 적은 것은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 말에 무조건적으로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자해를 하고, 또 그것만을 위한 SNS 계정을 만들어 남들과 공유하고, 자살 날짜를 정해놓고 마치 시한부 인생처럼 살아가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일.


이 모든 게 미성숙한 나이의 청소년이니까, 어른들이 이랬으니까, 사회가 이러니까, 학교가 이러해서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일까?


어쩌면 사회에, 관계에, 그밖에 많은 것들에 면역력이 없어서 벌어진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불어 요즘 아이들은 더 악독해지고 교활해졌으며 순수성이 많이 결여된 느낌을 받았다.



=====

저자 백은별

=====


15살의 저자는 어른들이 모를 뿐, 학생들의 자살 결심은 교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우울감을 철부지 아이들의 투정으로 여기지만 실상 자신들은 꽤 진지하고 심각하게 하루하루 죽음을 생각하며 보내고 있다고 전한다.


대한민국 한 명의 청소년으로서 저자는 자신들이 얼만큼 불안하고 왜 죽음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 책에 담아 전하고 싶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

등장인물 소개

=====


■유수아

-중2 / 주인공

-크리스마스에 단짝 친구의 죽음을 목격함

-평범한 맞벌이 가정(아빠는 한번 일을 나가면 2주에서 길면 한 달까지도 집에 들어오지 않음. 고로 거의 엄마가 케어함)

-윤서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8년 지기 친구

-사림 초등학교 4학년 재학 당시 성인과 사귄다는 더러운 소문에 시달림(실상 당사자는 사촌 오빠였음)

-소문에 더해 가족과의 불화로 인해 우울증, 불면증, 별의별 정신병에 시달림



■황윤서

-중2

-크리스마스에 부모님은 동반자살로 사망, 이후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음.(고로, 크리스마스는 부모님의 기일)

-방송부로 활동 중

-자살 날짜를 정해두고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함

-크리스마스에 학교 옥상에서 자살함.



■이주현

-중2 동급생 중 한 명

-수아의 옆자리에 앉게 되면서 친해짐

-9월에 언니를 대신해 자사고로 전학함

-언니를 대신해 부모님의 기대가 주현에게로 넘어옴



■신가연

-중2 동급생 중 한 명

-따돌림과 헛소문을 퍼트리는 주동자



■이정아

-중2 동급생 중 한 명

-2학기 때 친해진 친구

-선우와는 어릴 적부터 친구



■유선우

-중2 동급생 중 한 명

-2학기 때 친해진 친구

-부모님 때문에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안 좋은 일도 당함

-자해를 자주 하며 자해계를 운영

(자해계: 몸에 낸 상처를 찍어서 게시판에 올리는 계정을 말함)



■성민

-새 학기에 전학 온 남학생으로 잘 생긴 것으로 소문남

-전학 첫날부터 수아에게 관심을 표함

-수아를 살고 싶게 만들기 위해 노력함

-아역으로 활동했지만 스토커가 붙으면서 두려움과 공황을 겪게 됨. 이후 소속사에서도 나오고 엄마와는 거리가 멀어짐

-신가연과 사촌지간

-사랑받고 있지만 외로움

-자살시도해 본 적 있음



=====

줄거리 살펴보기

=====


곧 중학교 3학년이 다가오고 있던 시점, 모두가 잠들었을 꼭두새벽에 수아는 깨어 있었다. 잠시 후 문자 알람이 울렸고 윤서로부터 사진 하나가 와있었는데, 빨간 갈색 바닥을 찍은 학교 옥상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본 수아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그대로 뛰쳐나와 학교 옥상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견한 것은 단짝 친구인 윤서가 자신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윤서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수아는 이내 기괴하게 꺾여 죽어버린 친구를 목격하게 된다.


이후 뒷걸음질 치다 수아는 옥상 바닥에서 윤서가 평소 쓰던 수첩을 발견했는데, 수첩의 마지막 장에는 D-Day라는 글자만 적혀있었다.


그리고 다시 D-365, 수아의 비극이 시작된다.


***


수아는 초등학교 때 엄한 소문에 휘말리게 되면서 꽤 큰 고충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소문이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따라다니게 되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새 학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소문에서 벗어나게 되고 마침내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즐기게 된다.


옆자리에 앉은 주현이라는 친구를 비롯해,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친구들 덕분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반면, 동네 친구이자 8년 된 단짝 친구인 윤서는 반 친구들과 여전히 어울리지 못한다. 친구들은 윤서를 꺼림직하게 생각하며 멀리했고 이로써 같은 반에서 윤서와 어울리는 사람은 수아가 유일했다.


수아는 이렇게 행복한 와중에도 이따금씩 또 이상한 소문에 휘말리게 될까 봐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지옥 같던 일상이 어느새 설렘으로 가득 차기 시작할 무렵, 친구 관계가 어그러지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윤서가 있었다.


윤서를 악의적으로 따돌리거나 헛소문을 내어 친구들과 멀어지게 만든 신가연으로 인해 친구관계가 재편되는 일이 발생한다.


새로운 친구들과 가까워지며 한동안 윤서와 관계가 소원해는데, 이 일로 인해 수아는 가연과 멀어지고 다시 윤서와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주현도 포함된다.


그렇게 셋은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며 속에 감춰둔 비밀로 공유하고, 파자마 파티도 하는 등 겉으로는 누구보다 즐거운 여느 중학생처럼 지내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 나름대로 고충을 가지고 있었는데, 수아는 여전히 헛소문으로 인한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고, 윤서는 자신만의 시한부 날짜를 세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주현은 언니의 가출로 인해 전학을 가게 되고, 거기에서 학업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중3을 얼마 앞두지 않은 크리스마스 날 밤, 윤서는 수아에게 사진 하나를 보내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것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수아는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고, 그날로 자신도 또다시 1년 뒤 크리스마스 날 죽을 결심을 하게 된다.


다시 시작된 새 학기, 성민이라는 전학생이 갑작스레 수아에게 다가와 친한 척을 하기 시작한다. 슬픔과 불안에 휩싸여 있던 수아는 거부하지만, 성민은 끈질기게 수아를 향해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수아는 남몰래 윤서가 죽을 때 남몰래 챙긴 옥상 키를 가지고 자주 옥상을 드나들었는데, 그런 수아를 계속 지켜보고 있던 성민이 따라붙으면서 둘은 어느새 옥상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성민에게 털어놓게 된다. 성민 또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수아에게 털어놓게 되면서 어느새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된다.


엄마의 관심, 정신과 상담이나 약 등으로는 도저히 잠재울 수 없었던 불안과 우울을 성민에게 털어놓고 위로받으며 서서히 수아는 조금씩 살 의지를 다지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과 우울은 남아있었고, 그렇게 D-Day는 다가온다. 또다시 찾아온 크리스마스날 밤, 수아는 윤서가 떨어져 죽은 학교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하기 전 윤서처럼 사진 하나를 찍어 성민에게 전송하게 되고, 이에 성민이 옥상으로 달려오게 되면서 수아의 자살시도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렇게 D+1이 다가왔다. 이로써 성민이 주문처럼 읊조리던 "너도 눈치 못 채는 새에 살고 싶게 해줄게."라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수아는 자신이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사실은 살고 싶었음을 깨닫게 된다.



=====

책 속 문장들

=====


-----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사정으로, 고통받고 살아가며 버티는 우리라는 이름의 청춘들은 굽혀질 줄을 모르면서도, 썩어가고 있었다.

35페이지 中

-----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저마다의 사정과 고통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다수는 자해가 기본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심각하고 또 원인은 무엇인지, 반대의 입장과 상황은 어떠한지에 대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오로지 수아의 입장에서만 서술되기 때문이다.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너무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

선유가 우리에게 거는 기대와 내뱉는 우울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아니 어쩌면 오직 나는 이런 생각이 점점 들 수밖에 없었다.


'귀찮다'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 자신에게 놀랐다.

53페이지 中

-----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뜬금없이 계속 '죽고 싶다'와 같은 내용들이 언급되니, 나중에는 '그만 듣고 싶다'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아는 친구들을 보며, 독자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대신해서 서술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정작 타인이 볼 때는 자신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

학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소속감'. 나는 이것을 조금씩 스스로 잃어가고 있었다.

(...)

날 우울로 까 내릴수록 인간관계에서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지긴 어려워졌고, 누군가를 위로할 수도, 진심으로 동정할 수도 없었다. 끝없는 자기혐오는 결코 탈출구가 되어줄 수 없었다.

54페이지 中

-----


이 역시 1인칭으로 서술했을 때의 감각이다. 어쩌면 주변의 친구들이나 사람들은 크게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물론 윤서가 죽기 전보다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남들은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수도 있다.


2학기가 되어도, 새 학기가 되어도 수아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고, 늘 같은 패턴의 생활을 이어나갔다. 설사 그 이유가 엄마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라는 이유였을지라도 말이다.



-----

부모님이 나에게 저지른 것은, 그저 살인이었다. 내 생존에 처음 의문을 품었던 건 슬프게도 7살이었다.

61페이지 中

-----


유일하게 윤서의 입장에서 서술된 챕터의 한 부분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윤서의 말이 맞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동반자살이지만, 7살 된 윤서의 입장에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가 나를 죽이는 살인행위다.


현실 속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현실을 감당 못한 부모가 자신들이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목숨까지 맘대로 거둬가는 것은 엄연한 살인행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다가오는 3학년, 입시에 불안감이 커지기도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 또한 죽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12월에, 365일 뒤에, 그때 떠나면 될 일이다.

84~85페이지 中

-----


3자 입장에서 보면 되게 배부른 소리 하는 철없는 아이처럼 보인다. 심지어 수아의 부모는 불안정한 수아를 위해 병원에 데려가고, 약 처방까지 받아주면서 학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는다.


그 와중에 수아는 죽을 날만 기다리며 공부는 아예 손을 놓아버린다. 부모 입장에서는 가슴 칠 일이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에 멍이 들지 않을까?



-----

"행복해지고 싶어"


눈물을 훔치며 나는 중얼거렸다. 이제서야 약간의 행복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모두 가져가 버렸다. 신이 있다면 당장 멱살을 잡고 싶을 정도로, 아니, 그렇게 죽어버린 윤서를 탓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고, 눈물이 계속 떨어졌다. 어쩌면 행복했을 수 있던 오늘이었기에.

89페이지 中

-----


윤서의 메시지로 인해 자살 현장을 목격한 수아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다. 그런데 결국 1년이 지나도록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건 수아 자신이었다.


공부는 뒷전이고, 교우관계나 슬픔에서 헤어 나오려 노력하지 않는 모습 등은 수아가 선택했기에 벌어진 상황들이다.


그 외에 학교나, 가정, 부모, 기관, 정신과 의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어떤 케어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냥 방치한 건지, 수아의 고집에 두 손 두 발 놓은 건지 모를 일이다. 그냥 마냥 억울하고, 분하고, 슬프고, 우울하고, 죽고 싶은 내용만 계속 서술된다.



-----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이상한 오기일지라도 버티기로 했다.


나는, 내년 12월 25일에 죽을 거다.


윤서가 죽었을 때부터, 직접 산 안개꽃을 책상 위에 올려놨을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쭉 생각해온 것이다. 나는 내년 크리스마스에 떠날 거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버틸 것이다.

94페이지 中

-----


진짜 죽으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이런 유예기간을 가지지 않는다. 이미 이런 유예기간을 가진 것부터 살고 싶다는 소망이 깔린 것이다.


미성숙한 청소년인 수아는 윤서의 죽음을 통해 자기만의 극단적 생각에 빠졌다. 그래서 자신의 삶은 포기하고, 그저 1년 뒤 죽겠다는 생각만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이런 생각을 가지며 버티던 와중에 성민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정말 12월 25일, 수아는 윤서처럼 생을 마감하게 되었을까?


대답은 글쎄, 어쩌면 옥상에서 하염없이 울다가 그냥 내려왔을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아는 밤을 보내고 말이다.



-----

가끔씩 미칠 것만 같을 때 들리는 윤서의 목소리와 날 야유하는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내 손목의 상처들을 만들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하지만 결코 부모님이 알아서는 안 되니, 학원을 꼬박꼬박 다니고 출석했다. 수업은 전부 어디론가 흘리고 있었지만.

95페이지 中

-----


수아는 아무도 없을 때만 자해를 하고, 소리를 지른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결코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원도 가고, 학교도 간다. 속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왜 수아는 죽고 싶다면서, 불안하고 괴롭다고 외치면서 정작 언제든 손 내밀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까?


중간에 엄마가 억지로 약을 복용하게 하는데 심하게 거부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 사유가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나, 왜 스스로 그 어둠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지는 좀 미스터리다.



-----

나는 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하찮은 마음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엄마가 알게 되는 건 더더욱 싫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는

겨우 나 때문에 힘들면 안 되는 거다.

96페이지 中

-----


이 문장은 오히려 반대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을 공유하고 싶고, 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로 말이다.


겨우 나 때문에 힘들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면서 왜 죽을 생각을 하는가.


사랑하는 내 딸이 아무 이유 없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면, 엄마는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나 역시 경험해 봤지만, 청소년 때 할법한 생각과 행동이다. 그래서 청소년기에는 비밀도 많고, 굴곡도 많다. 하지만 생각에만 그치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

"몇 개는 가위로 잘라냈고, 칼로 가죽 벗긴 것도 있고."

(...)

"방에서 혼자 긋고 자르고 있다가 누가 알아주고 위로해 준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행복하지 않아?"

(...)

"넌 자해를 왜 하는 거야? 죽고 싶어?"

"살고 싶어서."

나와 똑같은 이유였다.

116~117페이지 中

-----


끔찍하게 다가오는 자해에 대한 묘사다. 누군가의 위로를 받기 위해 자해를 일삼고 그것을 위해 SNS에 공유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난다.


내가 나인 걸로는 충분하지 않은 걸까? 내가 나를 해하는 건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왜 이들은 자해를 하며 타인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걸까?


요즘의 청소년들은 관종인가? 왜 이토록 관심에 목말라있는 걸까? 이들의 가정과 부모는 어떤 사람들일까? 수많은 물음이 머릿속을 떠돈다.



-----

"너도 눈치 못 채는 새에 살고 싶게 해줄게."

174페이지 中

-----


꽤나 로맨틱하게 들려오는 말이지만, 실상 성민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갸우뚱하게 된다. 성민은 위태로워 보이는 수아에게 영웅심리로 접근한다. 그리고 수아를 살리면 자신이 빛나 보이지 않을까, 회의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호기심이 관심으로 바뀌면서 이 말은 진심이 된다. 성민은 그렇게 수아의 옆에서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옆자리를 온기로 데워준다.


이 덕분에 수아는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어쩌면 수아와 같은 청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온기와 관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학교나 가정에서 그런 온기와 관심을 찾을 수 없다는 말처럼 느껴져 직장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이 많이 메말라 있구나 깨닫게 된다.



-----

내가 1년짜리 시한부가 되기로 결심한 건, 죽음에 절망하며 비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남은 1년이라도 가치 있게 살아보자고, 그 1년이 다 가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죽지 말자고 정한 나만의 위로 방식이었구나.

308페이지 中

-----


이 말을 통해 어쩌면 성민이 아니었더라도, 수아는 그날 그 자리에서 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그런데 돌이켜 봤을 때, 수아는 남은 1년을 정말 가치있게 살았나 하는 의문은 남는다.


윤서에 대입해 보면, 윤서는 가치있게 살았다고 본다. 목표한 대로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쓸데없는 관계에 집착하기보다 오히려 오늘의 내 삶에 더 충실히 살았다.


공부도 성실하고 열심히 했고, 방송부 일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우울해져 다짐이 허물어질 때면 수첩에 넣어둔 부모님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은 마지막 날 할머니에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 점, 거친 말만 내뱉고 나온 점이다)


그런데 수아에게 1년이 그러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저 절대 죽지 말자는 유예기간에만 충실했다. 오히려 중간중간 자해와 안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은 멈추지 않으면서 실수로 죽을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수면제 먹기, 방안을 밀실로 만들기)


보통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면 최소 1년간의 애도 기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에는 충분히 슬퍼하고, 고인을 추모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수아는 1년간 누구를 위한 애도 기간을 가진 걸까? 그것이 윤서에 대한 애도였을까? 아니면 윤서를 잃어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애도였을까?



=====

마무리

=====


읽으면서 많이 안타까웠고 또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다. 특히 수아의 1인칭 시점에서만 상황이 전개되어 더 그렇다. 요즘의 청소년은 모두 다 이런 건지, 아니면 저자의 마음이 그런 건지 도통 모를 일이다.


이 소설에는 저자의 경험도 투영되어 있다고 하는데, 어떤 부분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한쪽으로 기울여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의 온기나 관심이 확연히 줄어들어 가까이 있는 부모를 비롯해, 전문가(의사), 학교 선생님 등 어디에서도 제대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임은 익히 알고 있다. (아마 독자적으로 무언가를 헤쳐나가기엔 버거운 청소년은 더 할 것이다)


그렇지만, 본인만, 혼자만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사회가, 현실이 그래서 너 나 할 것 없이 여유 없이 버티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해 주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상황이 그러하다고 해서, 자해가, 자살이 당연하다는 듯 행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그리고 그것을 자랑하듯 SNS에 올리는 짓은 더욱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울하다고 모두 안 좋은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타인을 통해서 상황을 탈피하려고 하기보다 나 스스로 나를 지켜내겠다는 생각에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어른들의 세상에 일찍 물들어 초등학생 때부터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고, 따돌림하고, 누군가를 매도하는 행위를 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리고 거울처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에 치가 떨린다. 바로잡아야 할 것들을 바로잡지는 못하고, 정작 가르치지 말아야 할 온갖 나쁜 것들만 너무 이르게 확산시켜 아이들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잠깐 언급된 초등학생 시절 수아가 겪은 헛소문에 관련된 내용과 이에 대한 대처가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진다.


학교와 교육청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처분을 제대로 내려줬을까? 엄마는 매번 참으라고만 이야기하던데, 이때도 참으라고만 이야기했을까? 그때 수아의 편은 한 명도 없었던 걸까? (당시 윤서마저 학교에서는 방관하는 자세로 지냈다고 한다)


이런 내면의 상처와 아픔들에 대해 더 주목해서 다뤄주었다면 조금 더 공감대 형성이 되었을 텐데, 우울과 자살에만 포커스를 맞춰 많이 아쉽다.


같은 중2, 청소년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보았을까? 청소년의 시절을 이미 떠나보낸, 어른이 된 나는 적어도 소설에 등장하는 수아나 윤서보다는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당시의 그 기분과 선택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중2 정도의 나이면 적어도 옳고 그름에 대해서 만큼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나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 몸에 해를 가하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만큼은 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사 친구가 같이 하자고 꼬드겨도 말이다. 아무리 친구가 중요한 시기여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