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 아픈 나와 마주보며 왼손으로 쓴 일기
고영주 지음 / 보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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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은 괜찮은가요? 달콤한 디저트를 만드는 쇼콜라티에가 왼손으로 그려나가는 마음 레시피!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저자의 1년동안의 그림일기를 통해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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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 아픈 나와 마주보며 왼손으로 쓴 일기
고영주 지음 / 보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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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디저트를 만드는 쇼콜라티에가 왼손으로 그려나가는 마음 레시피"

 

슬프거나 우울할 때 달콤한 것을 먹으면 기분이 사르르 풀리는 마법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저 밑바닥 깊고 깊은 어둠 속에 파묻히고 싶은 날, 달콤한 디저트는 누군가의 위로나 위안 없이도 불안과 우울한 마음을 단번에 사라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곤 한다. 그래서 왠지 그런 달콤한 것을 만드는 쇼콜라티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을 전해주는 전도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수제 초콜릿 장인이 없던 시절, 거의 최초 혹은 1호 쇼콜라티에라고 칭하는 저자는 그런 '행복을 전하는' 쇼콜라티에다. 첫아이가 세 살 되던 해 벨기에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취미 삼아 이것저것 배우던 그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고민하던 중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고 먹는 것을 좋아하던 자신의 취향을 한껏 반영해 시작하게 된 것이 벨기에의 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기술은 이혼 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로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고 지금까지 20년간 좋아하는 일로, 직업으로써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무일푼으로 도착한 한국에서 어린아이 둘을 키우며 쇼콜라티에라는 기술자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았다. 실전 경험 없던 그녀가 호텔을 거쳐 자신의 가게 '카카오봄'을 오픈하고,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도움을 요청할 인맥도 없었고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버티고 버티면서 헤쳐나갔다. 감정을 죽였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려고 노력하며 버텨왔다. 그렇게 버텨온 세월이 20년이다.

 

힘겨웠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왔기에 괜찮다고 생각했고 괜찮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덜컥 오른손이 고장 났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오른손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그녀에게 나타난 증상 중 하나였다.

 

이 책의 시발점이자 저자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건 친구들과 함께 한 통영 여행에서였다. 예약한 숙소가 취소되면서 지인의 소개로 급하게 얻게 된 '밥장'님의 집에서 2박 3일을 머물게 되었고, 벽에 붙어있던 <몰스킨 그림일기 레슨>을 모집하는 포스터를 보게 되면서 그림일기를 알게 된다.

 

자꾸만 '그림'에 마음이 갔던 저자는 덜컥 줌으로 강의를 신청하고 망가진 오른손을 대신해 왼손으로 매일 그림일기 쓰기로 마음먹는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던 글씨와 그림을 왼손으로 쓰는 것은 처음엔 쉽지 않았다. 삐뚤빼뚤한 글씨는 마치 초등학생이 쓴 것 같았다. 하지만 설레고 재밌었다. 생각처럼 따라와 주지 않는 왼손이 답답했지만 그래서 더 깊이 생각하고 천천히 그리고 써 내려갔다. 무엇보다 카톡으로 전송한 일기에 정성스레 코멘트를 달아주는 밥장님의 응원과 격려도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왼손 길들이기는 시작되었다.

 

지난 4년은 그녀에게 일적이든, 개인적이든 매우 스펙터클한 시간들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벅참을 넘어 혼란의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었다. 겨우 현실적인 문제들을 수습하고 난 이후에는 코로나가 터져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와 상관없이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여행도, 공부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해 생긴 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을 더 '응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몸도 챙겼다. 그렇게 조금씩 컨디션이 회복되면서 어디 가서 쉴까라고 생각하던 중 '제주 올레 한 달 걷기' 프로그램 신청하게 되었다.

 

20년 근속기념 제주여행에서도 왼손으로 쓰고 그리는 그림일기는 계속되었다.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익숙지 않은 왼손을 꾹꾹 눌러가며 쓰고 그렸다. 오른손만큼 능숙하지 않았기에 생각한 것을 모두 다 쓸 수 없었고, 그릴 수 없었다. 지우거나 수정도 쉽지 않았기에 더 깊이 생각하고 하루를 돌아본 후 그림일기를 썼다. 점차 설렘과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더 스스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일기의 내용은 단조롭다. 본 것과 느낀 그대로가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심오하거나 어렵지 않아 그 당시의 저자의 상황이 쉽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림은 왼손으로 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세심하고 디테일하다. 초등학생이 쓴 것 같은 글씨체는 뒤로 갈수록 정리되고 다듬어진다. 그림은 일상 속 풍경부터 먹었던 음식, 레시피, 식재료, 상상 속 내용까지 다양하다. 펜으로, 선으로만 그렸던 그림에 색깔이 덧입혀진다. 그녀의 세상이 풍요로워지는 게 느껴진다. 

 

쉼 없이 달려온 20년. 코로나를 겪으며 그녀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1년 동안 왼손으로 그림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마주 보았고, 아픈 자신을 다독였다. 묻어두었던 감정도 꺼내보고 때론 정신과 상담을 통해 도움도 구했다. '쉼'이 빠져있던 일과 일상에서 천천히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남에게 다정하고 나에겐 가혹했던 자신을 가만히 안아주면서 화해를 청했다.

 

익숙해서 그냥 지나쳐갔던 일들을 반성하고 제대로! 자세히! 봐주는 연습을 하면서 이제는 몸과 마음에 근육이 생기는 것 같다는 저자. 그녀가 쓴 그림일기는 그녀 내면의 성장통인 동시에 마음 레시피인지도 모르겠다.

 

1년 동안 왼손으로 쓴 그녀의 마음 레시피를 엿보며 '나는, 우리는' 괜찮은지 돌아보게 된다. 살아가는 것에 버거워 나를 방치해두고 있었던 건 아닌지 혹은 익숙함에 젖어 낯섦이 필요할 때는 아닌지. 세상을 넓고 멀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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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위한 고민과 조사는 깊게 하고, 끌리는 길에는 주저하지 말고 들어서 보자. 끌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헤매고 길을 잃어도 큰 지도 속에서 보면 사실 별것 아니다.

1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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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던, 사랑하는 사람이던 각자의 고독한 경계로 침범하지 않고도 서로 잘 봐주는 거 하고 싶다. 자세히 봐주고 싶다.

2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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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지면 집중, 정성 그런 거 자꾸 깜빡하게 되나 보다. 모든 익숙함에 대해 한 번씩 낯설게 바라봐야겠다.

왼손 일기 8개월째 모든 익숙함을 낯설게 바라보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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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전명원 지음 / 풍백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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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순간 되돌아보면 강하게 끌리는 그리운것들이 있다. 그건 사람일수도 있고, 물건이 될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문득문득 느껴지는 그리운것들을 통해 삶을 깊숙히 들여다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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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전명원 지음 / 풍백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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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지고, 생각나고, 따뜻해진다"

 

어여쁜 보라색 표지를 보는 순간 왠지 제비꽃이 떠올랐다. 제목에서 전해지는 진한 그리움과도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지만 화려하진 않고, 청초하지만 강인한 매력을 지닌 제비꽃. 그 꽃이 머금고 있는 보라색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감성을 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추억과 그리움이라는 단어와 너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편으론 삶과 가장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은 읽는 내내 잔잔함을 유지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격랑이 이미 수차례 지나간 이후의 느낌과도 닮아있었다. 인생이라는 항해에 숱한 풍랑은 수없이 배를 부서뜨리고 망가뜨렸지만 그때그때 매만지고 수리하면서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의 모습대로 복구할 수는 없었다. 수리할 때마다 배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졌고, 그때마다 인생의 항로도 조금씩 달라졌다. 이 책은 그렇게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맞닥뜨린 '이별'이라는 풍랑을 맞닥뜨리고 그것을 지나온 이후의 삶에 대해 그리고 있었다. 그리움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1부_그리움][2부_일상][3부_꿈][4부_인생] 각 챕터를 거치는 동안 시간은 과거를 그리는 것에서 현재의 일상을 거쳐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마음가짐으로 향한다. 이제는 어릴 적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옛집과 즐거웠던 기억들은 앵두나무와 센베 한 봉지, 그리고 피아노를 떠올리는 것에 머문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나름의 이유로 각자 따로 흩어진 가족들의 부재는 짙은 그리움을 떠올리게 한다. 

 

바쁘게 살아가던 일상에서 이제는 잠시 '멈춤'을 통해 돌아본 저자의 삶을 '추억과 그리움', '일상 속에서의 소소한 감상', '변함없이 꿈꾸며', '앞으로 살아가며 기억할 마음가짐'들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언젠가 인생에서 '멈춤의 순간'이 왔을 때 따뜻한 차 한잔하며 물감이 번지듯 점점이 인생을 돌아봐도 좋겠다. 

 

1부에서는 주로 어릴 적의 추억과 기억들을 기반으로 즐거웠던 기억들이 알알이 담겨있다. 그 추억 속에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일찍이 죽음이라는 이별을 통해 만날 수 없는 막냇동생이 있다. 추억이 서린 물건들을 떠올려보며 그려보는 추억 속에는 세 남매가 함께했던 일상도 포함되어 있다. 전역을 앞두고 갑작스레 떠나버린 동생의 죽음은 세월 속에서 차곡차곡 그리움으로 쌓여있다.

 

2부에서는 일상을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동네를 산책하며 둘러보는 풍경, 어릴 적 좋아하지 않던 팥죽을 좋아하는 현재 자신의 모습, 자신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 빨간 고기라 칭했던 열기라는 생선을 우연히 대구시장에서 다시 발견하면서 그려가는 이야기들은 담담하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3부에서는 다양한 꿈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치열함 속에 그녀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꿈도 있었고, 삶을 다시 꿈꾸게 하는 매개체가 되는 물건들도 엿볼 수 있었다. 조금은 엉뚱하면서도 다채롭게 다가왔던 저자의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고픈 마음과 동시에 나의 꿈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저자 친필사인본을 통해 그려보는 작가로서의 삶, 막연하게 시작하게 된 낚시의 꿈, 게임 세상을 통해 꿈꿔보는 평화로운 세상, 우연히 런던의 거리에서 마주친 피아노 치는 남루한 할아버지를 보며 좋아하는 것을 오랫동안 즐기면서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꾸어본다.

 

4부에서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병실에서 만났던 순분 씨를 통해, 아직도 긴장되는 회전교차로를 통해, 마스크나 온도차로 생기는 김서림을 통해, 타자기에서 컴퓨터로 변화하면서 삶에서 지우는 것이 쉬워진 시대를 통해 삶과 인생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것을 즐겨 했는지 과거가, 추억이 떠올랐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기에 한편으론 먹먹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제는 가슴 저편에 그리움으로 남겨두려 한다. 한편으론 좋아하는 것과  나의 꿈,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를 돌아보는 것, 가까이 있는 것들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 현실에 충실해 보는 것에 집중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도 있었는데 읽으면서, 남기면서, 되새기면서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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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이러한 반환점을 만나는 순간이 분명 있다.
(...)
내 의지로 방향을 바꾸며 반환점으로 삼는 것이다. 그렇게 방향이 바뀐 길에서 우리는 역시 묵묵히 꾸준하게 걸어간다.

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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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간 59분 59초가 되었더라도 아직 하루가 간 건 아니잖아요. 1초가 남았으니까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시작해야죠"
그의 이 마지막 한마디는 어쩌면 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1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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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 그리워지고, 입맛에 맞지 않던 것이 맛있어진다. 늘 손 닿을 곳에 있을 것만 같던 사람들은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지고 곁에 없다. 사는 일이 손아귀에 쥐고 있던 모래가 빠져나가는 일 같기도 하다.

1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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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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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피어난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꽃들이 시들고 저물어가는 것이 삶의 모습이라면, 마지막 남은 한 송이로 남을 때까지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꽃을 보는 눈길, 꽃을 대하는 마음 역시 삶의 모습이었으면 싶다. 활짝 핀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인생도, 조용히 시들어가는 인생도 누구에게나 소중한 시간일 테니 말이다.

1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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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사는 동안 내 마음이라는 공간 정리의 시간은 종종 필요할 듯하다. 정리한 마음은 그만큼 넓어지고 쾌적해질 것이다. 그리운 마음들은 함부로 버려지지 않고 언제든 꺼내어 다시 돌아보며 달랠 수 있다.
비워진 자리엔 새로운 마음들을 다시 들여놓아 넉넉해지고 풍족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남은 공간, 남은 시간, 그 무엇이든 영원하지 않으므로 늘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212~2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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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요즘, 그 마스크를 생각한다. 안경렌즈에 김이 서리는 것은 마스크의 안과 밖의 온도 차이 때문일 것이다.
가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마스크가 있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타인과 나의 어쩔 수 없이 다른 온도를 경험한다. 부딪히거나, 파열음을 낸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서로의 진짜 모습을 명확히 알아보기 힘들다.

2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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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도 그렇다. 모든 것이 빠르고 편해진 시대다. 커서로 밀어버린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수정테이프로 덮을 필요도 없고, 빠르고 편리하지만 되돌릴 사이 없이 사라진 것들은 그렇게 사라진 채로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좀 더 신중해야 하고, 한 번 더 들여야 보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것이 글이든, 다른 그 무엇이든 말이다.

2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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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10주년 한정특별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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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0주년 특별판으로 만난 '시간을 파는 상점'은 연한 분홍빛이 감도는 봄꽃을 연상시키는 책이었는데 표지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모자 일러스트는 어딘가 신비스럽고 궁금증을 자아냈다. 왠지 모자 형태의 집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을 따라가면 어느 동화 속으로 빠져버릴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이와 더불어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제목 또한 왠지 모를 호기심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흔히들 유한하다고 말하는 시간. 그 시간을 파는 상점에 대해서는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지만 왠지 어딘가는 존재할 것 같은,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은 마음 한편에 누구나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후회되는 시간, 기다리던 시간, 멈췄으면 하는 시간, 되돌아가고 싶은 시간 등등 누구나 자신이 마음에 품고 있는 '간직하고 싶은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온조는 소방관이었던 아빠를 하늘나라로 보낸지 이제 5주기를 맞은 고등학교 2학년의 학생이다. 처음엔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상실감에 많이 힘들어했던 적도 있는데, 이제는 그런 아빠를 떠올리며 웃을 정도의 여유는 찾게 되었다. 씩씩하고 밝게 자란 온조는 2개의 아르바이트를 경험해 본 뒤 시간에 따라 시급을 계산해 주는 것을 보고 문득 '시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인터넷 카페에 모의실험하듯 '시간을 파는 상점'을 계획하게 되고 반신반의 상태로 오픈하게 된다.

 

여러 가지 구상 끝에 오픈한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 그녀는 시간의 경계를 나누고 관장하는 신-크로노스의 이름을 따와 '크로노스'라는 닉네임으로 카페를 오픈한다. 무엇보다 온조가 생각했던 물질과 환치될 수 있는 진정한 시간의 신이자, 생산적인 결과물을 낳아야 하는 이 시대에 딱 맞는 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페 운영에는 몇 가지 조항도 만들었는데 그 조항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능력 이상은 거절할 것
◆옳지 않은 일은 절대 접수하지 않을 것
◆의뢰인에게 마음이든 뭐든 조금의 위로라도 줄 수 있는 일을 선택할 것
◆무엇보다 시간이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줄 것

 

그리고 그런 크로노스의 사진 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깔아두었다.

 

=====
세상에서
가장 길면서도 가장 짧은 것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느린 것
가장 작게 나눌 수 있으면서도 가장 길게 늘일 수 있는 것
가장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가장 회한을 많이 남기는 것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소한 것은 모두 집어삼키고
위대한 것에서는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는 그것,
그것은 무엇일까요?

어서 오세요.
여기는 '시간을 파는 상점'입니다.
당신의 특별한 부탁을 들어드립니다.
=====

 

 

카페 오픈 후 첫 의뢰는 PMP 도난 사건이었는데, 가볍게 시작했던 의뢰가 생각보다 큰 사건으로 번져 마음을 졸이기도 한다. 이후 천국의 우편배달부 역할을 해달라는 의뢰, 할아버지와 식사를 함께 해달라는 의뢰,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의뢰 등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며 '시간'을 물질적 가치로만 생각했던 은조가 점차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시간을 파는 상점'을 통해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만나고, 의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과 '오늘'의 가치를 배우게 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쑥쑥 성장하는 온조를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생산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에 온통 마음이 쏠려 진짜 중요한 가치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중에', '언젠가는'이라는 핑계로 미루고 있는 일들이 어쩌면 이후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삶에 있어 주어진 매 순간은 '오늘, 이 순간' 밖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더 나은 오늘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현재 어떠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래는 책을 읽으면서 유달리 기억에 남았던 문장들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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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 우리의 시간은 현실 속에서 시계로만 재단할 수 있는 것 외에 그것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면 상상 같은 거 말이에요. 아니면 추억도 현실 속의 시계로 재단할 수 없지만 우린 분명 그때의 시간을 불러올 수 있잖아요.

(...)

상상, 추억, 기억 이런 것들은 지금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아니지만 분명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것이 분명해요.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있기에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는 거거든요.

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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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 도마뱀은 잡히면 꼬리를 끊고 도망가잖아요. 어느 순간 바위틈으로 몸을 숨겨 손바닥 위에는 꼬리만 남을 때가 있어요. 시간도 그런 것 같아요. 우리가 맞닥뜨린 사건은 도마뱀 몸뚱이가 되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도마뱀 꼬리 같은 기억과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현재의 우리에게 영향을 주거든요.

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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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속도가 너무 빨라. 왜 이리 빠른지 모르겠어. 빠르다고 해서 더 행복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오히려 속도 때문에 사고가 나는데도 말이야. 기계든 사람의 관계든 지나치게 빠르면 꼭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어. 온조 양도 명심하게"

6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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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도 내버리고 컴퓨터고 텔레비전도 다 없애 버렸네. (...) 불편해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아. 은근히 매력 있어. 그런 것이 없으니 사람에 대한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 같아. 기계 대신에 사람이 들어오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미덕들이 살아나. 시간이 나를 위해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시간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 뒤로 물러나 있는 듯한 느낌 같은 거야. 한결 부드럽고 친절한 시간이 되는 거지

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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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그렇게 안타깝기도 잔인하기도 슬프기도 한 것인가. 삶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 사이의 전쟁 같기도 했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는 그렇게 애달파하고, 싫은 사람과는 일 초도 마주 보고 싶지 않은 그 치열함의 무늬가 결국 삶이 아닐까?

115~1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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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그랬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사람들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해결 못할 일은 없다고 했다. 그들로 인해 생긴 문제는 그들과 또 다른 그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1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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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의 '시간을 파는 상점'을 통해 각각의 '내'가 '우리'가 되고, 너와 내가 맺는 '관계'를 통해 삶을 함께 살아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온조를 통해 그려진 이야기 속 곳곳에 건강한 성장담이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더 마음에 남았다. 편모 가정, 이혼가정, 재혼가정 등 제각각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그리고 있는 것은 물론, 서로 각자만의 형태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를 건강하게 보여주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배다른 동생을 챙기는 난주, 친아빠 이상으로 관계가 좋은 새아빠, 엄마의 새 애인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혼란과 이후 그 감정을 잘 다스리며 풀어가는 과정, 물건을 훔친 아이를 보듬는 친구, 불화를 겪는 가족이 다시 화해하는 과정 등을 통해 사회라는 조직 안에서 어떻게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때론 뾰족하게 모난 구석도 불쑥불쑥 튀어나오지만, 둥글게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위로와 위안을 얻는 감동의 시간도 값진 찬란함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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