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전명원 지음 / 풍백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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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지고, 생각나고, 따뜻해진다"

 

어여쁜 보라색 표지를 보는 순간 왠지 제비꽃이 떠올랐다. 제목에서 전해지는 진한 그리움과도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지만 화려하진 않고, 청초하지만 강인한 매력을 지닌 제비꽃. 그 꽃이 머금고 있는 보라색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감성을 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추억과 그리움이라는 단어와 너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편으론 삶과 가장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은 읽는 내내 잔잔함을 유지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격랑이 이미 수차례 지나간 이후의 느낌과도 닮아있었다. 인생이라는 항해에 숱한 풍랑은 수없이 배를 부서뜨리고 망가뜨렸지만 그때그때 매만지고 수리하면서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의 모습대로 복구할 수는 없었다. 수리할 때마다 배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졌고, 그때마다 인생의 항로도 조금씩 달라졌다. 이 책은 그렇게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맞닥뜨린 '이별'이라는 풍랑을 맞닥뜨리고 그것을 지나온 이후의 삶에 대해 그리고 있었다. 그리움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1부_그리움][2부_일상][3부_꿈][4부_인생] 각 챕터를 거치는 동안 시간은 과거를 그리는 것에서 현재의 일상을 거쳐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마음가짐으로 향한다. 이제는 어릴 적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옛집과 즐거웠던 기억들은 앵두나무와 센베 한 봉지, 그리고 피아노를 떠올리는 것에 머문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나름의 이유로 각자 따로 흩어진 가족들의 부재는 짙은 그리움을 떠올리게 한다. 

 

바쁘게 살아가던 일상에서 이제는 잠시 '멈춤'을 통해 돌아본 저자의 삶을 '추억과 그리움', '일상 속에서의 소소한 감상', '변함없이 꿈꾸며', '앞으로 살아가며 기억할 마음가짐'들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언젠가 인생에서 '멈춤의 순간'이 왔을 때 따뜻한 차 한잔하며 물감이 번지듯 점점이 인생을 돌아봐도 좋겠다. 

 

1부에서는 주로 어릴 적의 추억과 기억들을 기반으로 즐거웠던 기억들이 알알이 담겨있다. 그 추억 속에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일찍이 죽음이라는 이별을 통해 만날 수 없는 막냇동생이 있다. 추억이 서린 물건들을 떠올려보며 그려보는 추억 속에는 세 남매가 함께했던 일상도 포함되어 있다. 전역을 앞두고 갑작스레 떠나버린 동생의 죽음은 세월 속에서 차곡차곡 그리움으로 쌓여있다.

 

2부에서는 일상을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동네를 산책하며 둘러보는 풍경, 어릴 적 좋아하지 않던 팥죽을 좋아하는 현재 자신의 모습, 자신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 빨간 고기라 칭했던 열기라는 생선을 우연히 대구시장에서 다시 발견하면서 그려가는 이야기들은 담담하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3부에서는 다양한 꿈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치열함 속에 그녀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꿈도 있었고, 삶을 다시 꿈꾸게 하는 매개체가 되는 물건들도 엿볼 수 있었다. 조금은 엉뚱하면서도 다채롭게 다가왔던 저자의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고픈 마음과 동시에 나의 꿈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저자 친필사인본을 통해 그려보는 작가로서의 삶, 막연하게 시작하게 된 낚시의 꿈, 게임 세상을 통해 꿈꿔보는 평화로운 세상, 우연히 런던의 거리에서 마주친 피아노 치는 남루한 할아버지를 보며 좋아하는 것을 오랫동안 즐기면서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꾸어본다.

 

4부에서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병실에서 만났던 순분 씨를 통해, 아직도 긴장되는 회전교차로를 통해, 마스크나 온도차로 생기는 김서림을 통해, 타자기에서 컴퓨터로 변화하면서 삶에서 지우는 것이 쉬워진 시대를 통해 삶과 인생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것을 즐겨 했는지 과거가, 추억이 떠올랐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기에 한편으론 먹먹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제는 가슴 저편에 그리움으로 남겨두려 한다. 한편으론 좋아하는 것과  나의 꿈,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를 돌아보는 것, 가까이 있는 것들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 현실에 충실해 보는 것에 집중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도 있었는데 읽으면서, 남기면서, 되새기면서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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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이러한 반환점을 만나는 순간이 분명 있다.
(...)
내 의지로 방향을 바꾸며 반환점으로 삼는 것이다. 그렇게 방향이 바뀐 길에서 우리는 역시 묵묵히 꾸준하게 걸어간다.

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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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간 59분 59초가 되었더라도 아직 하루가 간 건 아니잖아요. 1초가 남았으니까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시작해야죠"
그의 이 마지막 한마디는 어쩌면 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1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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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 그리워지고, 입맛에 맞지 않던 것이 맛있어진다. 늘 손 닿을 곳에 있을 것만 같던 사람들은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지고 곁에 없다. 사는 일이 손아귀에 쥐고 있던 모래가 빠져나가는 일 같기도 하다.

1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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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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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피어난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꽃들이 시들고 저물어가는 것이 삶의 모습이라면, 마지막 남은 한 송이로 남을 때까지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꽃을 보는 눈길, 꽃을 대하는 마음 역시 삶의 모습이었으면 싶다. 활짝 핀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인생도, 조용히 시들어가는 인생도 누구에게나 소중한 시간일 테니 말이다.

1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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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사는 동안 내 마음이라는 공간 정리의 시간은 종종 필요할 듯하다. 정리한 마음은 그만큼 넓어지고 쾌적해질 것이다. 그리운 마음들은 함부로 버려지지 않고 언제든 꺼내어 다시 돌아보며 달랠 수 있다.
비워진 자리엔 새로운 마음들을 다시 들여놓아 넉넉해지고 풍족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남은 공간, 남은 시간, 그 무엇이든 영원하지 않으므로 늘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212~2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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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요즘, 그 마스크를 생각한다. 안경렌즈에 김이 서리는 것은 마스크의 안과 밖의 온도 차이 때문일 것이다.
가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마스크가 있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타인과 나의 어쩔 수 없이 다른 온도를 경험한다. 부딪히거나, 파열음을 낸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서로의 진짜 모습을 명확히 알아보기 힘들다.

2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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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도 그렇다. 모든 것이 빠르고 편해진 시대다. 커서로 밀어버린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수정테이프로 덮을 필요도 없고, 빠르고 편리하지만 되돌릴 사이 없이 사라진 것들은 그렇게 사라진 채로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좀 더 신중해야 하고, 한 번 더 들여야 보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것이 글이든, 다른 그 무엇이든 말이다.

2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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