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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2월 29일
송경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3월
평점 :
"4년에 한번, 진실의 모자이크 조각을 받았다."
기묘한 제목을 품고 있는 고즈넉이엔티의 이번 소설은 우리의 일상과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질문을 하나 해보겠다. 여러분은 2월 29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많은 날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흘리는 일상인가? 아니면, 그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하루인가?
사람마다 특별하게 여기는 날이 모두 하루쯤은 있겠지만, 유난히 2월 29일을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날은 특별함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2월 29일은 윤년으로, 4년에 딱 1번만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섯 번째 2월 29일'이라는 제목이 유난히 더 기묘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여섯 번째가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면, 매년 돌아오는 동일한 날로만 생각하면 6년, 윤년으로 따지면 24년의 시간을 의미한다. 여섯 번째가 가지는 의미가 이렇게나 크게 차이가 나는 게 윤년이 의미하는 바고, 이 시간은 수많은 것들을 바꿔놓을 수 있는 아주 긴 시간이다.
어딘가 사막의 신기루 같이 기묘하고 신비롭게 느껴지는 2월 29일. 그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의 시간 속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정통 하드보일드 장르 형태를 빌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흔한 일상의 소재가 더해지면서 더 끔찍하고 소름 끼치게 다가온 그날들. 지금부터 하나하나 단서를 짚어나가면서 살펴보자.
목차에서부터 주어지는 단서들을 살펴보면 첫 번째는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을 의미하는 숫자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4/8/12/16/20/24 즉 24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두 번째 단서는 '수현의 시간'과 '현채의 시간'에서 얻을 수 있는데 이 이야기들에서는 미묘한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를 죽였고,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리는 일련의 일들을 통해서 추후 급격하게 변화하는 심리적 변화와 그 이후 벌어지는 일들은 가히 짐작하기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다. 세 번째 단서는 자동차 이미지와 주차를 의미하는 P 표시를 꼽을 수 있다. 이야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자동차이며, 자동차 안의 공간과 각기 다른 자동차가 주는 의미와 변화는 어쩌면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목차에서 주는 세 가지 단서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수현은 세상을 사는 것에 별다른 목적이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특별한 직업도 없고,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병원비를 대기에 급급한 갓 전역한 젊은 청년일 뿐이다. 전역 후 우연히 불법 콜택시를 타게 되면서 양무배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무허가 택시를 운전하는 일을 하게 된다.
또 다른 핵심 인물인 현채는 수현이 즐겨 하는 온라인 포커 사이트에서 우연히 생일이 같다는 메시지를 주고받게 되면서 급만남을 통해 알게 된 사람 중 하나다. 남자같이 짧은 머리에 어딘가 알 수 없는 그녀. 별다른 의미 없이 수원에서 이루어진 그 만남은 이후 수현에게 있어 남다른 2월 29일의 첫 시작이 된다.
그들의 첫 만남에서 우연히 한 경찰관의 권총을 소유하게 된 현채의 경위를 듣고 돈이 절실했던 수현은 그녀와 청주은행의 현금수송 차량에서 현금을 탈취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은행원 한 명이 총에 맞아 죽게 되고 매 2월 29일에 다시 보자는 현채의 말을 뒤로하고 그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한편 무배를 통해 시작하게 된 콜때기(=불법 콜택시를 이르는 말)는 그에게 작지만 소중한 인연들을 만들어주는데, 수현의 차를 좋아했던 그녀, 콜때기 인연으로 꾸준히 수현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무배, 그리고 현금 탈취 사건 이후 새로운 사업의 직원으로 만나게 된 영호까지 그의 삶은 점차 안정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시간이 지나도 공허하고 건조함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4년마다 찾아오는 윤년과 현채와의 만남은 어느새 서서히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환경이 변하고 가정을 이루고 나서도 삶에 대한 가치를 가지지 못했던 수현. 한편 어딘가 모르게 의미심장한 미스터리를 품고 있는 현채는 마치 죽은 사람인 듯 홀연히 사라졌다가 4년마다 돌아오는 2월 29일에는 어김없이 그와 만나기로 한 롯데리아에 나타나는데, 그 만남이 지속될수록 기묘한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큰 감정의 변화를 갖지 못하던 수현도 4년, 8년, 12년, 16년.. 점점 시간이 갈수록 폭발하듯 사건을 따라 심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관망하듯 덤덤하고 건조하게 서술되던 수현의 감정과 변화는 후반부에 다다라 폭발하듯 터져 나오지만 그의 외침은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다.
뉴스에서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일상 범죄에 대해 혹시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가해자는 떳떳하고, 피해자는 오히려 꼭꼭 숨어지내며 남들로부터 멸시와 눈초리를 받으며 마지못해 살아가는 그들. 이 책은 그런 우리의 일상 속에 흔하게 녹아들어 있는 일상 범죄와 그것의 단죄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극명한 대조로 이루어지는 정황과 담담하게 담아내는 서술을 통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여러 일상 범죄의 항목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 복수하기 위해 삶을 이어가는 자와 삶의 의미를 잃어 초연한 자, 여성과 남성, 나이를 먹어가는 자와 나이를 알 수 없는 자 이외에도 수없이 대비되는 요소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일상 범죄들 역시도 소설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불법 택시, P2P를 통한 불법 파일 공유, 불법 촬영, 신분 도용, 스토킹 등이 그것이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일상 범죄는 점차 그 방법과 규모가 커지고 있다. 총을 쏜 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잊고 지내지만, 총을 맞은 자는 괴로워하며 평생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는 불특정 다수의 이런 행태는 평범하게 살아가던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사건이 되기도 하는데 정작 제대로 된 수사나 처벌은 행해지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러한 무심히 넘겼던 사소한 일상 속 작은 범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형태로 다가올 수 있는지 경고한다. 온라인상에서 쉽게 벌어지는 디지털 범죄의 양산과 이를 행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행태에 대해 관조하듯 담담하게 서술하지만 종내엔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고 마는 이야기를 통해 한 번쯤 일상 범죄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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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이 끝나고 두 달 후에 수현의 차는 다시 멈췄다. 엔진을 뜯어 피스톤을 바꾸고 유사 휘발유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다시 고장 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10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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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망가진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이미 망가져 너덜너덜 해진 형태로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이 몸이든 마음이든. 당신은 범죄를 저지른 자로써 망가진 자인가 아니면 불특정 다수의 이름 모를 검은 손에 의해 망가진 피해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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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말 안 하면 몇 살인지 모르겠다"
수현이 현채를 보고 말했다.
1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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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살아있는 사람이 맞는 걸까?'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위 대화 외에도 수현이 현채를 찾아다니는 에피소드 중에 언급된 몇몇 단서들은 그러한 의문점에 더 무게를 실어주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이후에 문득 소름이 돋았다.
'나는 아닐 거야' '내 일은 아닐 거야'라고 무심코 넘기고 있는 당신에게도 분명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벌어지는 일상 범죄는 온오프라인 속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하철에서, 집주변에서, 직장에서, 무심코 지나친 길거리에서 언제, 어떻게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보이스피싱, N번방사건, 신림동 강간미수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지하철 불법 촬영, 스토킹 등 이 모든 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어쩌면 사소하게 넘겼던 작은 일이 잠재되어 있다가 한순간에 불길이 타올라 수면 위로 드러난 일일지도 모른다. 마치 수현이 저지른 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