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낀 이야기 스페이드의 여왕 - 뿌쉬낀 명작 단편선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백준현 옮김 / 작가와비평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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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작품을 주로 읽어오다가 오랜만에 고전문학을 읽게 되었는데, 러시아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뿌쉬낀의 소설 '벨낀 이야기 스페이드의 여왕'이다. 현대시와 소설, 에세이 등을 접하다 고전문학을 읽어보니 고전문학만이 주는 묵직함과 그 시대의 맛이 느껴진다. 사실 뿌쉬낀(푸시킨)은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생각보다 유명한 작가이자 시인이며, 익히 알고 있는 시의 저자인 것을 알게 되어 반갑고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나처럼 뿌쉬낀이 누구인지 도통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시를 읊어준다면 바로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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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르 뿌쉬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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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의 소설을 많이 봐서인지, 처음에 러시아 작가라는 말에 낯설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푸시킨 외에도 생각보다 유명한 러시아 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새삼 놀라웠다. 익히 우리도 많이 알고 있는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을 꼽을 있는데 이미 이들의 작품들은 연극, 영화, 뮤지컬, 문학작품 등에서 많이 접해봤을 것이다.

 

러시아에서 국민 시인이자 소설가로 꼽히는 뿌쉬낀. 이 책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뿌쉬낀이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들을 새롭게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단편집 후미에 실려있는 <뿌쉬낀의 삶과 문학 세계>, <개별 작품 해설>, <뿌쉬낀 연보>에서 뿌쉬낀의 삶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구체적 설명, 그리고 앞선 6개의 단편집들에 대한 해설이 실려있어 여러모로 뿌쉬낀이라는 작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단편집을 읽는 것인지 뿌쉬낀의 전기를 읽는 것인지 애매모호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는 아마 이야기의 첫 시작부터 이야기 속 또 다른 이야기를 삽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뿌쉬낀이 녹아들어가 있어 그렇게 느껴지는 듯하다. 책의 처음은 모호함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어갔고 책의 마지막은 그의 일대기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객관적으로 서술함으로써 현실적 맥락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이와 같은 형태는 그의 각 단편들에서도 나타나는데 당시의 러시아 문화와 사회적 배경, 그리고 낭만주의를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전반적으로 이 책을 살펴보면, 이야기의 구성은 크게 2개의 제목으로 나누어 전개되고 있는데 <벨낀 이야기>와 <스페이드의 여왕>이 그것이다. <벨낀 이야기>는 벨낀이라는 사람이 남긴 이야기들을 발행인이 엮어 세상에 발표된다는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여기서 벨낀은 사실 가상의 인물이다. 실상은 뿌쉬낀이 발행인이며 '발행인의 말'을 통해 5편의 단편을 어떻게 이해하면 되는지 간접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형태로 이해하면 된다. <벨낀 이야기>에는 각기 다른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스페이드의 여왕>은 하나의 단편만이 수록되어 있다.

 

각 단편들은 그 시대 러시아의 낭만주의적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이야기의 끝은 항상 현실적인 맺음으로 끝난다는 게 특징이다. 문학사적으로는 그의 작품들 속에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요소를 담고 있어 예술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들이라는 소견이 지배적이다.

 

러시아식 이름이라 발음하거나 읽기가 조금 까다롭지만, 스토리의 흐름은 그다지 어렵지 않아 러시아 문학이 처음이거나 뿌쉬낀의 작품이 처음인 이들이 읽기엔 적당한 소설인듯하다. 개인적으로 뿌쉬낀의 작품들은 예상의 범주를 넘어선 결말이라 허무함 혹은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그 시대 낭만주의적 감성에서 결론은 늘 현실적이며 사실주의적으로 끝맺었다는 게 가장 적합한 표현일듯하다.

 

단편들 중 특히 인상에 남았던 작품은 <남겨둔 한 발>, <눈보라>, <역참지기>, <스페이드의 여왕>이다. 이 네 개의 단편들은 특히 더 낭만적인 감성의 흐름에서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로 끝맺음으로써 그 간격이 확 와닿는 소설들이었는데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남겨둔 한 발>은 실비오가 복수를 위해 훗날을 위해 남겨둔 한 발의 총알과 결투에 대한 이야기인데 예상했던 기대와 달리 자신의 만족감만 채우고 떠난다. 이런 실비오의 모습과 그의 허무한 죽음을 단 몇 줄로 정리하는 글을 통해 낭만주의적 감성이 급격하게 건조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눈보라>는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이 부모의 반대로 난관에 부딪히면서 둘이 떠나기로 결심을 한다. 그런데 하필 디데이에 눈보라가 심하게 치면서 연인인 블라지미르는 결국 길을 헤매다 약속 장소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고, 우연찮게 지나가던 한 장교는 장난기가 발동해 신랑인 척한다. 결국 결혼식 도중 신랑이 아님을 알게 된 신부는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고 여성의 집에서는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시간이 흐른다. 연인이었던 블라지미르는 그 이후로 연인도 만나지 못하고 그대로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후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장교와 사랑에 빠지면서 신부 마리야와 장교 부르민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결말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짤막한 한 줄로 마무리되는 이 단편소설은 어찌 보면 허무하고 당황스럽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결론이라는 생각도 든다.

 

<역참지기>는 가난한 역참지기와 함께 살던 딸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귀족 청년 장교에게 납치되듯 실종된 그의 딸. 역참지기는 딸을 되찾기 위해 장교를 어렵사리 찾아가지만 결국 역참지기는 혼자 되돌아오고 이후 딸의 걱정으로 술로 지새우던 그는 몸과 마음이 망가져 죽고 만다. 이후 시간이 흘러 역참지기와 친분이 있던 화자를 통해 그 후의 이야기가 서술되는데, 유린당하고 불행한 삶을 살 거라 짐작했던 그녀의 딸은 유복한 모습으로 아이 셋을 데리고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초반에 가난과 부유함이라는 대조되는 배경을 깔아두어 흔히 생각하는 패턴대로 전개될 거라 예상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끝맺음을 한다. 막연하게 딸이 불행할 거라 생각하여 애끓는 마음에 술독에 빠져 서글픈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하지만 실제 딸은 아이 셋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뭔가 배신당한 느낌이 드는 한편, 너무 한쪽으로만 무게가 실려 혼자 낙담하고 걱정하느라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역참지기의 삶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감상적이고 흔한 전개가 아닌 현실적이면서 비트는 스토리가 새롭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카드 석장에 얽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로, 여러 장르가 혼합되어 있다. 오묘하고 우울함 분위기가 자잘하게 깔려있어 전반적으로 침체된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번잡스러운 느낌이 드는 때는 오직 치매에 걸린 백작부인의 요청에 따라 피후견인인 리자가 급박하게 지시를 따를 때뿐이다. 평소 검약 생활을 하던 게르만은 우연히 듣게 된 카드 세 장의 비밀에 얽힌 일화를 듣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리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마침내 디데이, 카드의 비밀을 추궁하던 중 백작부인이 죽고, 이후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나 카드 세 개를 순서대로 알려준다. 유령이 알려준 순서에 따라 카드게임에서 연승하던 중 마지막 게임에서 실수를 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정신 이상 상태가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너무 허무맹랑한 것을 바래서였을까? 초자연적인 현상을 목도하고 그것을 맹신하듯 믿었던 그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반면 그 주변에 있던 인물들은 오히려 이후 좋은 결말을 맺게 된다.

 

에피그라프에서 전하는 '찌푸린 날씨면 카드게임을 했다'라는 글귀, 젊은 노름꾼들이 카드게임을 하며 파이프에서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 게르만이 리자의 편지를 따라 백작 부인의 침실을 향해 가는 동선의 묘사를 통해 그려지는 모습들은 어딘가 휑하고 침체된 분위기를 형성한다. 항상 검소한 생활을 했지만 한순간의 잘못된 유혹에 휩쓸려 나락으로 떨어진 게르만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꾼 자의 말로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이 단편집들은 초반에 낭만주의적 감성들을 향해 나아가지만 종내엔 허무함과 씁쓸함이 남는다. 꿈은 꾸었지만 현실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더 그렇게 느껴진다. 마치 우리네 인생을 담아낸 듯도 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붕 떠 있던 불완전한 마음을 안전하게 현실로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는 단편집외에 그의 문학과 삶을 연도와 시간 순서대로 잘 정리해두어 뿌쉬낀의 전기로써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세계와 뿌쉬낀 이라는 인물이 궁금하다면 한번쯤 읽어보는것도 좋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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