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 백은별 장편소설
백은별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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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보다는 '극단적'이라는 말이 더 먼저 떠올랐던 소설!"



15살 중학교 2학년인 청소년 저자가 쓴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의 우울과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동급생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라는 소개글에 혹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공감보다는 오히려 막연하고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나 역시 학창 시절을 거쳐오며 여러 감정에 휘말려봤지만,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과 같은 뜬금포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과거와 현재는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뭔가 심하게 극단적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면서 환경, 가치관, 교육, 관계 등 여러 면에서 많이 망가졌다는 느낌이 심하게 들었다. 불균형이 커지다 보니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저자가 이 책에서 서술한 것과 같은 내용이 현실과 동일하다면, 현재 중2의 생활방식과 사고를 고스란히 반영한 내용이라면 학부모나 가정, 학교가 꽤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음은 자명하다 말할 수 있겠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의 우울과 자살에 대한 내용을 그리고 있는 소설로, 저자 역시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중2, 15살이다.


저자가 아직 청소년이라서인지, 솔직히 기대에는 못 미치는 필력과 두서없이 전개되는 문맥으로 다소 혼란스러움과 실망감이 들었다는 점은 미리 밝혀둔다.


더불어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자살이나 자해 등이 너무 일상화된 것처럼 서술되고 있어 좀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했는데, 만약 이것이 현실을 반영한 내용이라면 청소년들이 많이 병들어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최근에 가까이에서 청소년을 직접 대면할 일이 없어 잘 몰랐는데, 이 책에서 그려지는 청소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거보다 몸만 크고 정신은 더 어려진 아이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어른보다 미성숙한 나이이기에 충동이 심하고 그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걸 우리 사회가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썼는데, 막상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자살과 우울에 더 위험하고 덜 위험한 조건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미성숙한 나이'라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성인보다 더한 행동을 저지르는 아이들을 두고, 그러하니 용서해 줘야 한다거나 봐줘야 한다는 논리가 맞는 걸까 하는 의문도 제기해 본다.


나이가 많거나 적은 것은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 말에 무조건적으로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자해를 하고, 또 그것만을 위한 SNS 계정을 만들어 남들과 공유하고, 자살 날짜를 정해놓고 마치 시한부 인생처럼 살아가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일.


이 모든 게 미성숙한 나이의 청소년이니까, 어른들이 이랬으니까, 사회가 이러니까, 학교가 이러해서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일까?


어쩌면 사회에, 관계에, 그밖에 많은 것들에 면역력이 없어서 벌어진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불어 요즘 아이들은 더 악독해지고 교활해졌으며 순수성이 많이 결여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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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백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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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의 저자는 어른들이 모를 뿐, 학생들의 자살 결심은 교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우울감을 철부지 아이들의 투정으로 여기지만 실상 자신들은 꽤 진지하고 심각하게 하루하루 죽음을 생각하며 보내고 있다고 전한다.


대한민국 한 명의 청소년으로서 저자는 자신들이 얼만큼 불안하고 왜 죽음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 책에 담아 전하고 싶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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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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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아

-중2 / 주인공

-크리스마스에 단짝 친구의 죽음을 목격함

-평범한 맞벌이 가정(아빠는 한번 일을 나가면 2주에서 길면 한 달까지도 집에 들어오지 않음. 고로 거의 엄마가 케어함)

-윤서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8년 지기 친구

-사림 초등학교 4학년 재학 당시 성인과 사귄다는 더러운 소문에 시달림(실상 당사자는 사촌 오빠였음)

-소문에 더해 가족과의 불화로 인해 우울증, 불면증, 별의별 정신병에 시달림



■황윤서

-중2

-크리스마스에 부모님은 동반자살로 사망, 이후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음.(고로, 크리스마스는 부모님의 기일)

-방송부로 활동 중

-자살 날짜를 정해두고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함

-크리스마스에 학교 옥상에서 자살함.



■이주현

-중2 동급생 중 한 명

-수아의 옆자리에 앉게 되면서 친해짐

-9월에 언니를 대신해 자사고로 전학함

-언니를 대신해 부모님의 기대가 주현에게로 넘어옴



■신가연

-중2 동급생 중 한 명

-따돌림과 헛소문을 퍼트리는 주동자



■이정아

-중2 동급생 중 한 명

-2학기 때 친해진 친구

-선우와는 어릴 적부터 친구



■유선우

-중2 동급생 중 한 명

-2학기 때 친해진 친구

-부모님 때문에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안 좋은 일도 당함

-자해를 자주 하며 자해계를 운영

(자해계: 몸에 낸 상처를 찍어서 게시판에 올리는 계정을 말함)



■성민

-새 학기에 전학 온 남학생으로 잘 생긴 것으로 소문남

-전학 첫날부터 수아에게 관심을 표함

-수아를 살고 싶게 만들기 위해 노력함

-아역으로 활동했지만 스토커가 붙으면서 두려움과 공황을 겪게 됨. 이후 소속사에서도 나오고 엄마와는 거리가 멀어짐

-신가연과 사촌지간

-사랑받고 있지만 외로움

-자살시도해 본 적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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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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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중학교 3학년이 다가오고 있던 시점, 모두가 잠들었을 꼭두새벽에 수아는 깨어 있었다. 잠시 후 문자 알람이 울렸고 윤서로부터 사진 하나가 와있었는데, 빨간 갈색 바닥을 찍은 학교 옥상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본 수아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그대로 뛰쳐나와 학교 옥상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견한 것은 단짝 친구인 윤서가 자신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윤서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수아는 이내 기괴하게 꺾여 죽어버린 친구를 목격하게 된다.


이후 뒷걸음질 치다 수아는 옥상 바닥에서 윤서가 평소 쓰던 수첩을 발견했는데, 수첩의 마지막 장에는 D-Day라는 글자만 적혀있었다.


그리고 다시 D-365, 수아의 비극이 시작된다.


***


수아는 초등학교 때 엄한 소문에 휘말리게 되면서 꽤 큰 고충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소문이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따라다니게 되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새 학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소문에서 벗어나게 되고 마침내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즐기게 된다.


옆자리에 앉은 주현이라는 친구를 비롯해,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친구들 덕분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반면, 동네 친구이자 8년 된 단짝 친구인 윤서는 반 친구들과 여전히 어울리지 못한다. 친구들은 윤서를 꺼림직하게 생각하며 멀리했고 이로써 같은 반에서 윤서와 어울리는 사람은 수아가 유일했다.


수아는 이렇게 행복한 와중에도 이따금씩 또 이상한 소문에 휘말리게 될까 봐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지옥 같던 일상이 어느새 설렘으로 가득 차기 시작할 무렵, 친구 관계가 어그러지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윤서가 있었다.


윤서를 악의적으로 따돌리거나 헛소문을 내어 친구들과 멀어지게 만든 신가연으로 인해 친구관계가 재편되는 일이 발생한다.


새로운 친구들과 가까워지며 한동안 윤서와 관계가 소원해는데, 이 일로 인해 수아는 가연과 멀어지고 다시 윤서와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주현도 포함된다.


그렇게 셋은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며 속에 감춰둔 비밀로 공유하고, 파자마 파티도 하는 등 겉으로는 누구보다 즐거운 여느 중학생처럼 지내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각자 나름대로 고충을 가지고 있었는데, 수아는 여전히 헛소문으로 인한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고, 윤서는 자신만의 시한부 날짜를 세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주현은 언니의 가출로 인해 전학을 가게 되고, 거기에서 학업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중3을 얼마 앞두지 않은 크리스마스 날 밤, 윤서는 수아에게 사진 하나를 보내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것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수아는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고, 그날로 자신도 또다시 1년 뒤 크리스마스 날 죽을 결심을 하게 된다.


다시 시작된 새 학기, 성민이라는 전학생이 갑작스레 수아에게 다가와 친한 척을 하기 시작한다. 슬픔과 불안에 휩싸여 있던 수아는 거부하지만, 성민은 끈질기게 수아를 향해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수아는 남몰래 윤서가 죽을 때 남몰래 챙긴 옥상 키를 가지고 자주 옥상을 드나들었는데, 그런 수아를 계속 지켜보고 있던 성민이 따라붙으면서 둘은 어느새 옥상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성민에게 털어놓게 된다. 성민 또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수아에게 털어놓게 되면서 어느새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된다.


엄마의 관심, 정신과 상담이나 약 등으로는 도저히 잠재울 수 없었던 불안과 우울을 성민에게 털어놓고 위로받으며 서서히 수아는 조금씩 살 의지를 다지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과 우울은 남아있었고, 그렇게 D-Day는 다가온다. 또다시 찾아온 크리스마스날 밤, 수아는 윤서가 떨어져 죽은 학교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하기 전 윤서처럼 사진 하나를 찍어 성민에게 전송하게 되고, 이에 성민이 옥상으로 달려오게 되면서 수아의 자살시도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렇게 D+1이 다가왔다. 이로써 성민이 주문처럼 읊조리던 "너도 눈치 못 채는 새에 살고 싶게 해줄게."라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수아는 자신이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사실은 살고 싶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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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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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사정으로, 고통받고 살아가며 버티는 우리라는 이름의 청춘들은 굽혀질 줄을 모르면서도, 썩어가고 있었다.

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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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저마다의 사정과 고통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다수는 자해가 기본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심각하고 또 원인은 무엇인지, 반대의 입장과 상황은 어떠한지에 대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오로지 수아의 입장에서만 서술되기 때문이다.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너무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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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가 우리에게 거는 기대와 내뱉는 우울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아니 어쩌면 오직 나는 이런 생각이 점점 들 수밖에 없었다.


'귀찮다'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 자신에게 놀랐다.

5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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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뜬금없이 계속 '죽고 싶다'와 같은 내용들이 언급되니, 나중에는 '그만 듣고 싶다'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아는 친구들을 보며, 독자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대신해서 서술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정작 타인이 볼 때는 자신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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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소속감'. 나는 이것을 조금씩 스스로 잃어가고 있었다.

(...)

날 우울로 까 내릴수록 인간관계에서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지긴 어려워졌고, 누군가를 위로할 수도, 진심으로 동정할 수도 없었다. 끝없는 자기혐오는 결코 탈출구가 되어줄 수 없었다.

5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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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 1인칭으로 서술했을 때의 감각이다. 어쩌면 주변의 친구들이나 사람들은 크게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물론 윤서가 죽기 전보다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남들은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수도 있다.


2학기가 되어도, 새 학기가 되어도 수아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고, 늘 같은 패턴의 생활을 이어나갔다. 설사 그 이유가 엄마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라는 이유였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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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나에게 저지른 것은, 그저 살인이었다. 내 생존에 처음 의문을 품었던 건 슬프게도 7살이었다.

6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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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윤서의 입장에서 서술된 챕터의 한 부분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윤서의 말이 맞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동반자살이지만, 7살 된 윤서의 입장에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가 나를 죽이는 살인행위다.


현실 속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현실을 감당 못한 부모가 자신들이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목숨까지 맘대로 거둬가는 것은 엄연한 살인행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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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3학년, 입시에 불안감이 커지기도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 또한 죽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12월에, 365일 뒤에, 그때 떠나면 될 일이다.

84~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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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 입장에서 보면 되게 배부른 소리 하는 철없는 아이처럼 보인다. 심지어 수아의 부모는 불안정한 수아를 위해 병원에 데려가고, 약 처방까지 받아주면서 학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는다.


그 와중에 수아는 죽을 날만 기다리며 공부는 아예 손을 놓아버린다. 부모 입장에서는 가슴 칠 일이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에 멍이 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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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고 싶어"


눈물을 훔치며 나는 중얼거렸다. 이제서야 약간의 행복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모두 가져가 버렸다. 신이 있다면 당장 멱살을 잡고 싶을 정도로, 아니, 그렇게 죽어버린 윤서를 탓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고, 눈물이 계속 떨어졌다. 어쩌면 행복했을 수 있던 오늘이었기에.

8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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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의 메시지로 인해 자살 현장을 목격한 수아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다. 그런데 결국 1년이 지나도록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건 수아 자신이었다.


공부는 뒷전이고, 교우관계나 슬픔에서 헤어 나오려 노력하지 않는 모습 등은 수아가 선택했기에 벌어진 상황들이다.


그 외에 학교나, 가정, 부모, 기관, 정신과 의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어떤 케어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냥 방치한 건지, 수아의 고집에 두 손 두 발 놓은 건지 모를 일이다. 그냥 마냥 억울하고, 분하고, 슬프고, 우울하고, 죽고 싶은 내용만 계속 서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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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이상한 오기일지라도 버티기로 했다.


나는, 내년 12월 25일에 죽을 거다.


윤서가 죽었을 때부터, 직접 산 안개꽃을 책상 위에 올려놨을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쭉 생각해온 것이다. 나는 내년 크리스마스에 떠날 거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버틸 것이다.

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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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죽으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이런 유예기간을 가지지 않는다. 이미 이런 유예기간을 가진 것부터 살고 싶다는 소망이 깔린 것이다.


미성숙한 청소년인 수아는 윤서의 죽음을 통해 자기만의 극단적 생각에 빠졌다. 그래서 자신의 삶은 포기하고, 그저 1년 뒤 죽겠다는 생각만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이런 생각을 가지며 버티던 와중에 성민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정말 12월 25일, 수아는 윤서처럼 생을 마감하게 되었을까?


대답은 글쎄, 어쩌면 옥상에서 하염없이 울다가 그냥 내려왔을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아는 밤을 보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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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미칠 것만 같을 때 들리는 윤서의 목소리와 날 야유하는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내 손목의 상처들을 만들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하지만 결코 부모님이 알아서는 안 되니, 학원을 꼬박꼬박 다니고 출석했다. 수업은 전부 어디론가 흘리고 있었지만.

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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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는 아무도 없을 때만 자해를 하고, 소리를 지른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결코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원도 가고, 학교도 간다. 속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왜 수아는 죽고 싶다면서, 불안하고 괴롭다고 외치면서 정작 언제든 손 내밀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까?


중간에 엄마가 억지로 약을 복용하게 하는데 심하게 거부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 사유가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나, 왜 스스로 그 어둠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지는 좀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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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하찮은 마음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엄마가 알게 되는 건 더더욱 싫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는

겨우 나 때문에 힘들면 안 되는 거다.

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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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오히려 반대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을 공유하고 싶고, 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로 말이다.


겨우 나 때문에 힘들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면서 왜 죽을 생각을 하는가.


사랑하는 내 딸이 아무 이유 없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면, 엄마는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나 역시 경험해 봤지만, 청소년 때 할법한 생각과 행동이다. 그래서 청소년기에는 비밀도 많고, 굴곡도 많다. 하지만 생각에만 그치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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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는 가위로 잘라냈고, 칼로 가죽 벗긴 것도 있고."

(...)

"방에서 혼자 긋고 자르고 있다가 누가 알아주고 위로해 준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행복하지 않아?"

(...)

"넌 자해를 왜 하는 거야? 죽고 싶어?"

"살고 싶어서."

나와 똑같은 이유였다.

116~1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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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하게 다가오는 자해에 대한 묘사다. 누군가의 위로를 받기 위해 자해를 일삼고 그것을 위해 SNS에 공유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난다.


내가 나인 걸로는 충분하지 않은 걸까? 내가 나를 해하는 건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왜 이들은 자해를 하며 타인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걸까?


요즘의 청소년들은 관종인가? 왜 이토록 관심에 목말라있는 걸까? 이들의 가정과 부모는 어떤 사람들일까? 수많은 물음이 머릿속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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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눈치 못 채는 새에 살고 싶게 해줄게."

1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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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로맨틱하게 들려오는 말이지만, 실상 성민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갸우뚱하게 된다. 성민은 위태로워 보이는 수아에게 영웅심리로 접근한다. 그리고 수아를 살리면 자신이 빛나 보이지 않을까, 회의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호기심이 관심으로 바뀌면서 이 말은 진심이 된다. 성민은 그렇게 수아의 옆에서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옆자리를 온기로 데워준다.


이 덕분에 수아는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어쩌면 수아와 같은 청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온기와 관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학교나 가정에서 그런 온기와 관심을 찾을 수 없다는 말처럼 느껴져 직장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이 많이 메말라 있구나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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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년짜리 시한부가 되기로 결심한 건, 죽음에 절망하며 비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남은 1년이라도 가치 있게 살아보자고, 그 1년이 다 가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죽지 말자고 정한 나만의 위로 방식이었구나.

30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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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통해 어쩌면 성민이 아니었더라도, 수아는 그날 그 자리에서 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그런데 돌이켜 봤을 때, 수아는 남은 1년을 정말 가치있게 살았나 하는 의문은 남는다.


윤서에 대입해 보면, 윤서는 가치있게 살았다고 본다. 목표한 대로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쓸데없는 관계에 집착하기보다 오히려 오늘의 내 삶에 더 충실히 살았다.


공부도 성실하고 열심히 했고, 방송부 일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우울해져 다짐이 허물어질 때면 수첩에 넣어둔 부모님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은 마지막 날 할머니에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 점, 거친 말만 내뱉고 나온 점이다)


그런데 수아에게 1년이 그러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저 절대 죽지 말자는 유예기간에만 충실했다. 오히려 중간중간 자해와 안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은 멈추지 않으면서 실수로 죽을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수면제 먹기, 방안을 밀실로 만들기)


보통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면 최소 1년간의 애도 기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에는 충분히 슬퍼하고, 고인을 추모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수아는 1년간 누구를 위한 애도 기간을 가진 걸까? 그것이 윤서에 대한 애도였을까? 아니면 윤서를 잃어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애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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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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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많이 안타까웠고 또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다. 특히 수아의 1인칭 시점에서만 상황이 전개되어 더 그렇다. 요즘의 청소년은 모두 다 이런 건지, 아니면 저자의 마음이 그런 건지 도통 모를 일이다.


이 소설에는 저자의 경험도 투영되어 있다고 하는데, 어떤 부분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한쪽으로 기울여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의 온기나 관심이 확연히 줄어들어 가까이 있는 부모를 비롯해, 전문가(의사), 학교 선생님 등 어디에서도 제대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임은 익히 알고 있다. (아마 독자적으로 무언가를 헤쳐나가기엔 버거운 청소년은 더 할 것이다)


그렇지만, 본인만, 혼자만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사회가, 현실이 그래서 너 나 할 것 없이 여유 없이 버티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해 주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상황이 그러하다고 해서, 자해가, 자살이 당연하다는 듯 행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그리고 그것을 자랑하듯 SNS에 올리는 짓은 더욱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울하다고 모두 안 좋은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타인을 통해서 상황을 탈피하려고 하기보다 나 스스로 나를 지켜내겠다는 생각에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어른들의 세상에 일찍 물들어 초등학생 때부터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고, 따돌림하고, 누군가를 매도하는 행위를 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리고 거울처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에 치가 떨린다. 바로잡아야 할 것들을 바로잡지는 못하고, 정작 가르치지 말아야 할 온갖 나쁜 것들만 너무 이르게 확산시켜 아이들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잠깐 언급된 초등학생 시절 수아가 겪은 헛소문에 관련된 내용과 이에 대한 대처가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진다.


학교와 교육청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처분을 제대로 내려줬을까? 엄마는 매번 참으라고만 이야기하던데, 이때도 참으라고만 이야기했을까? 그때 수아의 편은 한 명도 없었던 걸까? (당시 윤서마저 학교에서는 방관하는 자세로 지냈다고 한다)


이런 내면의 상처와 아픔들에 대해 더 주목해서 다뤄주었다면 조금 더 공감대 형성이 되었을 텐데, 우울과 자살에만 포커스를 맞춰 많이 아쉽다.


같은 중2, 청소년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보았을까? 청소년의 시절을 이미 떠나보낸, 어른이 된 나는 적어도 소설에 등장하는 수아나 윤서보다는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당시의 그 기분과 선택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중2 정도의 나이면 적어도 옳고 그름에 대해서 만큼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나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 몸에 해를 가하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만큼은 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사 친구가 같이 하자고 꼬드겨도 말이다. 아무리 친구가 중요한 시기여도 아닌 건 아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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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발트3국 - 2024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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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3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일컫는 말이다. 특히 숲과 호수 등 자연으로 둘러싸인 면적이 꽤 넓은 나라들로,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은근히 볼만한 것이 많다. 특히 소도시의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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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몰타 한 달 살기 - 2025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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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적인 휴양지를 찾고 있다면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를 찾아가 보자. 새파란 하늘과 드넓은 바다를 마주하다보면 어느새 잃어버린 여유도 되찾을 수 있을것이다. 또 곳곳에 숨겨진 보물같은 섬들을 여행하다보면 시선을 뗄 수 없는 매력들을 많이 만나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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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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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



사람들은 때때로 무언가 대단하고 비싼 것을 소유해야만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며, 진짜 행복은 그런 것에서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 마음이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야말로 진짜 행복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는 어느 날 허름한 산동네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생활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동네에 녹아들게 되면서 마침내 진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산다는 행위를 몸소 체험하며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된다.


계절의 변화, 세월이 지남에 따라 마모되는 자연의 섭리 등을 오감으로 느끼며 비로소 그 속에 자리한 추억과 기억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365일 항상 행복할 수는 없다. 때때로 화가 나거나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날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현듯 반짝이며 다가오는 행복한 감각 덕분에 우리는 내 안에 사랑이 있구나 느끼며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저자 내면을 촘촘히 채워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어느 날 서울의 한 오래된 산동네로 이사한 이후 그곳에서 다채로운 일상을 쌓아온 저자의 기록들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사랑과 애정의 마음을 피어오르게 한다.


이제는 많이 사라진 이웃의 정이라던가, 공간을 함께 나눠쓰는 것과 같은 빚 바랜 개념들이 이 산동네에서만큼은 여전히 ing 중이라는 것에 어쩐지 안심이 되는 느낌이다.


비록 낡고 헤진 느낌이 물씬 드는 동네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 자리한 사람들의 따뜻한 정과 마음만큼은 온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는듯하다.


읽는 내내 나 역시 이 동네의 주민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포근함이 느껴졌던 그곳에서의 기록들을 지금부터 고요히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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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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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친구인 M 이모를 통해 알게 된 산동네로 어느 날 이사를 가게 된 저자. 이 동네는 한국전쟁 이후 서울로 모여든 가난한 사람들이 성곽 아래에 무허가 주택을 지으면서 형성된 곳이다.


중간에 여러 번의 사라질 위기가 있었지만 모두 극복하고, 현재는 서울시의 정책이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대안적 개발 모델로 부상한 동네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길게 늘어진 하오의 별을 하염없이 쬐는 이 동네를 무척 좋아하는데, 물론 처음부터 이 동네에서의 생활에 쉽게 적응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동네의 밤이 친숙한 도시의 소음 대신 놀랄 만큼 두꺼운 적막으로 가득 찬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그래서 며칠 밤 동안은 그 적막이 무서워 잠을 설쳤다.


또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어떤 형태로든 공동주택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이 동네에서의 생활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하나 둘 쌓이다 보니 이제는 행복과 마음을 두는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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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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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산다는 행위가 관념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것들, 물질성이랄지 육체성을 가진 것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

이 동네에서 집은 삶의 공간이다. 동네에서의 하루하루는 집이든 인간이든 간에 만물이 시간과 함께 서서히 마모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육체적인 노동과 시간 그리고 정성을 쏟는 돌봄을 통해서만 우리가 모든 종류의 소멸을 가까스로 지연할 수 있을 뿐이라는 진실을 내게 알려준다. 그리고 어떤 공간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오감으로 각인되는 기억들의 중첩 때문이라는 사실도.

13~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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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경제적 관념이나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을 넘어선 삶의 공간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온전히 내 삶이 된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는 오감으로 각인된 기억과 추억들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정성을 다해 돌보며 가꾸는 공간은 그래서 더 누군가에게 소중할 수밖에 없다.


산다는 행위는 물질적으로 무언가를 채우고, 육체적으로 노력을 기울여 가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행위들이 지속되었을 때 그 공간은 통상의 시간보다 느리게 마모되며 소멸이 지연된다.


삶이 머무르는 공간은 그렇게 사는 사람과 함께 추억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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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이곳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이루어진 본연의 질서가 있고 주민들은 그것을 대체로 존중하며 산다.

(...)

나보다 먼저 이 동네에 살았던 이가 다른 주민들과 더불어 살면서 만들어온 질서와 생태계를 존중하며 천천히 변화를 만드는 것. 이 동네에 살기 시작한 이래 나는 그런 일들에 관심이 생겼다.

16, 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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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동네의 생활방식에 익숙하지 않아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었다. 계절별 변화, 생활의 변화와 같은 것들로 인해 당황스러운 상황이 많이 연출됐다.


이를테면, 겨울에는 눈이 오면 집 앞의 눈을 쓸어야 한다는 것도, 기온이 떨어지면 동파 위험이 있어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몰랐다.


밤이나 낮이나 늘 문밖의 소음에 익숙해져 있던 저자에게 있어 이 동네의 한밤은 두터운 적막 속에 둘러싸여 두려우리만치 고요하다는 것을 처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서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이 동네만의 질서와 생태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

"사는 건 자기 집을 찾는 여정 같아."

(...)

"타인의 말이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과 평화롭게 있을 수 있는 상태를 찾아가는 여정 말이야."

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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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머물던 시절 알고 지낸 E 언니는 수녀를 그만두고 한국에 들어와 이 산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저자는 자신의 집과 고작 3분 거리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깜짝 놀란다.


이후 둘은 어느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공간을 셰어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다. 필요할 때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한 동네에서 좋은 이웃으로 살아간다.


어쩌면 둘 모두에게 편안하게 자리 잡은 공간 덕분에 둘은 이토록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공간, 나에게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주는 공간을 지녔기에 타인에게 내어줄 공간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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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그토록 서투른 말들을 건네는 이유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르빌뢰르의 문장을 읽으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 앞에서 제대로 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죽음은 너무나도 커다란 상실이자 슬픔이고, 그것을 담기에 언어라는 그릇은 언제나 너무나도 작다.

(...)

상대의 슬픔에 공감하는 일에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기쁨과 달리 슬픔은 개별적이고 섬세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겪어낼 수밖에 없는데, 그건 슬픔에 잠긴 사람의 마음이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쉽게 긁히는 얇은 동판을 닮아서다. 


슬픔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감정과 타인의 감정이 끝내 포개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없이 예민해지고, 슬픔이 단 한 사람씩만 통과할 수 있는 좁고 긴 터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슬픔에서 빠져나온 이후엔 그 사실을 잊은 채 자신이 겪은 슬픔의 경험을 참조하여 타인의 슬픔을 재단하고, 슬픔 간의 경중을 따지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와 크기로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고 쉽게 말한다.

130~1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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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오래 함께 한 반려견 봉봉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한없는 슬픔에 젖어든 저자에게 있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말을 건넸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오히려 그 말들 때문에 더 상처를 받았던 저자는 그에 대해 오르빌뢰르의 문장과 깊은 사유를 통해 타인에게서는 절대 위로받을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죽음을 담기에 언어라는 그릇은 언제나 너무 작다.

●슬픔은 지극히 개별적이고 섬세한 감정이기에 타인에게 공감받기 어렵다.

●슬픔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그때의 감정은 잊은 채, 자신만의 경험에 비추어 슬픔을 재단하고, 경중을 따짐으로써 너무 쉽게 결론지어 버린다.


이러한 이유로, 죽음에 대해 위로받고자 한다면 타인보다는 스스로 위로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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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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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둘러싼 아주 가까이에 있는 존재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엿보며,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살펴보면 새삼스레 별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끼고 보듬어 온 세월 때문에 낡고 헤졌을지 모르지만, 그런 물건과 기억 덕분에 우리는 아픔과 슬픔의 기억을 잠시나마 잊고 살아간다.


대단치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문득문득 나를 피식피식 웃음 짓게 만드는 행복, 그거 하나면 된다.


삶은 고난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일이 쉽지 않다. 한 고개를 넘었다 싶으면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와 우리를 넘어뜨리고 무너뜨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짝 스쳐 지나가는 행복의 기억 덕분에 우리는 또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다.


그러니, 삶 가까이에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그런 공간과 시간을 많이 잡아두자. 내가 마음 주고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경험과 기억들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또 우리를 살아가게 할 것이다.


(+) 일상 속 애틋함을 주는 시간과 공간들

동네 산책길, 책을 읽는 공간, 반려 식물 존, 차곡차곡 쌓아놓은 추억상자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먹는 음식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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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
황민구.이도연 지음 / 부크럼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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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 소설!"



범죄나 사건사고와 관련된 영상물을 자주 보는 나이기에,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어쩌면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실제 사건에 픽션을 더해 만들어진 소설이라서인지, 디테일이 남다르게 다가왔는데 덕분에 읽는 내내 흠뻑 빠져들어 읽을 수 있었다.


여기에 개인적인 이유를 더 추가해 보자면, 사진과 영상물과 관련된 내용들을 여러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정밀하게 분석한다는 점 때문에 더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실제 사건에 허구적 요소를 가미한 소설로 그래서 더 현실성 있게 다가온다. 황민구 저자의 지인인 선희라는 인물과 그녀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앞뒤의 내용을 책임지고 있는 민사재판 내용 등 탄탄하게 다져진 팩트 위에 저자의 마음이 더해져 만들어진 죽음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과정은 어쩐지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거짓의 탑으로 만연한 사회에서 아직도 정의 구현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구나 느끼게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대아 역시 저자처럼 법 영상 분석가로 활동하는데, 이 때문에 갖가지 프로그램을 활용한 사진, 영상, 블랙박스, CCTV 등을 샅샅이 파헤쳐 보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덕분에 책을 읽는 독자 역시 또 한 명의 분석가가 되어 사건의 개요를 파악하기 위해 두 눈 빠지도록 책을 살펴보게 만든다.


선희는 과연 어떤 사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또 그녀의 죽음을 파헤쳐 가는 대아는 어떤 방법을 통해 진실에 가까워질지 알아가는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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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탄생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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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영상 분석가 황민구 저자의 대학 후배 이야기가 모티브가 된 이 내용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으나 일부 내용은 허구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황민구 저자는 몇 년 전 제주도 출장 중 문자 한 통을 받게 된다. 부고 문자였다. 부고 문자에는 '선희'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바쁜 나머지 문자를 흘겨보고 선희의 가족 중 한 분이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하고 넘기게 된다.


그것이 설마 선희의 부고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계좌로 부의금을 입금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나중에 따로 만나서 위로를 건네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까마득히 잊게 된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후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문득 선희는 뭐 하냐는 안부를 묻게 된다. 이에 술자리의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이어서 선희가 죽었다는 후배의 말을 듣게 된다.


사인도 모르고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다며 사고사는 아니고 자살이라는 말도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내 죽은이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다른 희생자를 찾으려고 하는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되면서 이 소설을 떠올리게 된다.


소설로나마 그날의 진실을 상상으로 찾음으로써 저자 스스로 선희를 편히 보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에 품었던 소설의 시놉시스를 어느 날 중국집에서 만난 편집장님께 털어놓음으로써 이 책이 시작된다.


그리고 추진력 있는 편집장과 필력과 속도가 남다른 이도연 작가와 함께 이 책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이도연 작가는 황민구 작가가 하는 일을 옆에서 관찰하기 위해 직접 재판에까지 찾아가 그날 목격한 내용을 소설로 담아냈는데, 그 내용이 바로 첫 부분과 마지막 이야기로 다뤄진 정 씨의 민사재판 소송 관련 이야기다.


스토리로 보자면 선희의 죽음을 찾아가는 과정과 죽음의 실체에 대한 내용만 빼면, 대부분은 팩트에 기반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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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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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아

-법 영상 분석가

-대학 때 취미로 사진 동아리에서 사진을 배운 것을 계기로 법 영상 분석의 전문가가 됨



■혜인

-대아가 운영하는 연구소 사무직 직원

-연구소를 열 때 처음 뽑은 직원으로 살뜰히 챙기는 성실한 직원



■선희

-대아의 대학 동아리 후배로 밝고 쾌활한 성격

-10년 전 결혼한 이후 가족과 왕래가 끊김



■선영

-선희의 동생

-언니가 죽고 3년 뒤 대아에게 언니의 살아생전 마지막 여정을 알아봐 달라는 의뢰를 하게 됨



■조동연

-애처가로 소문난 선희의 남편

-변호사

-삐뚤어진 심성으로 주변 동료들에게도 외면당하는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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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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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영상 분석가인 대아는 TV 방송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매일을 바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런 자신의 일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던 중이다.


그러던 중 최근 시야가 캄캄해지고 두통을 겪는 일이 잦아지며 루테인과 타이레놀을 먹는 횟수가 늘어난다. 이를 보다 못한 연구소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던 혜인의 호들갑으로 대학 병원까지 와서 검사를 받게 된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게 되는데, 실상 이 병은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발생하는 유전성 망막 질환으로 수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병이었다. 그런데 대아는 가족력 없이 후천성으로 걸린 것이다. 


이 병에 걸리면 아주 오랫동안 서서히 병이 진행되며 나중에는 사물을 인식하는 것도 힘들어질 거라는 의사의 말에 대아는 눈을 많이 써야 하는 직업을 그만둬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참석한 민사재판이 끝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원고 측 변호사로 자리한 동연이 시비를 걸어온다. 한 번에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 대아는 짤막한 인사말만 남긴 채 그 자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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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재판 사건 파일(금은방 절도 사건)


6개월 전 대낮에 은평구의 낡은 금은방에서 절도 사건이 일어난다. 주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천만 원가량의 귀금속을 도난당한 것이다.


내부 CCTV에는 6-70대로 추정되는 신원 불명의 마스크를 낀 남자가 찍혔는데, 이를 본 사장은 동네에 살던 독거노인 정 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며칠 뒤 정 씨가 체포되었는데, 정 씨는 억울하다며 범행을 부인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 절도 전과가 있던 그는 형사 재판에서 징역형을 받고 구속되게 된다.


그는 청각 장애 4급의 상태로, 오른쪽 귀는 80% 이상 들리지 않고, 왼쪽 귀는 40% 정도 들린다. 폐지나 고철 따위를 모아 겨우 생계를 이어 가는 기초 생활 수급자인 그는 영문도 모르고 수감 생활을 이어가며 누구라도 도와주리라 믿고 기다린다.


하지만 천만 원을 손해 배상하라는 민사 소송까지 걸리자 살던 집의 보증금을 빼서 백경준 변호사를 선임하게 되고 백 변호사가 대아의 연구소에 사건을 의뢰하면서 CCTV 분석을 맡게 되었고 이로 인해 민사재판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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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영상 분석 기술은 국내에 도입된 지 몇 년 되지 않아 관련 기관으로는 대아의 연구소가 국내 유일무이하다. 그로 인해 진위 여부를 가리거나 자격을 검증하는 기관도 아직 없기 때문에 분석자의 양심이나 사명감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대아는 관련 논문을 수십 편 썼고, 모든 논문은 해외 기관에서 검증받았으며 해외 CSI와 경찰청에서도 자문을 요청할 정도로 대아의 실력은 국내외 공적인 검증 절차를 마쳤다.


몇 년 전, 대아의 영상 분석이 결정적 증거가 되어 16년간 해결되지 못했던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히면서 이 일이 언론에 알려졌고, 이로 인해 대아는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부작용도 함께 발생했는데, 영상 분석을 한다면서 사진만 확대해서 범인을 마구잡이로 추측하는 유튜버가 생겨났고, 종국에는 짝퉁 연구소까지 생겨나서 의뢰가 줄게 된 것이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대아는 이런 이들과 같은 법정에서 사실 관계를 따져야 한다는 현실이 진력이 났고 지긋지긋해진 상황에 눈까지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자,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영상 분석을 하는 대아에게는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는 일이라 여러모로 답답한 마음이 일게 된다.


그렇게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수원에서 서울 사무실로 돌아온 후 떼를 쓰는 의뢰인을 겨우 돌려보내고 찾아온 또 다른 의뢰인은 바로 사진 동아리 후배였던 선희의 동생 선영이었다.


선희는 항상 화사한 빛이 나는 사람이자 대아에게는 항상 든든한 조력자였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선영은 선희의 안부를 묻는 대아에게 3년 전에 죽었다는 말을 전한다.


그러면서 언니의 장례식에 조의금을 보내지 않았냐고 묻게 되는데, 순간 대아는 3년 전 선희 아버지의 부고 메시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정확한 날짜를 되짚어 보면서 비로소 어떤 사건으로 인해 한참 정신없는 시기라 부고 메시지를 잘못 해석한 모양임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선영은 그런 대아에게 생전 선희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선희는 결혼 10주년을 맞아 남편과 함께 제주 살이를 가게 되었고, 한 달이 채 안 돼서 제주 바다에서 사라졌고, 시신은 찾지 못했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전하며 실족사로 종결되어 경찰과 보험사까지 처리가 마무리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시의 내사 종결 자료를 전달해 주는데, 이를 읽는 대아는 비통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다.


선영은 고인이 된 언니의 인스타그램 계정과 스마트폰 클라우드 서버에서 다운받은 원본 사진을 담은 USB를 건네며 선희의 마지막 이야기를 추적해 그 흔적을 들려달라는 의뢰를 하게 된다.


선희가 떠나기 전 10년 동안 선희의 삶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며 그 공백의 시간을 너무 듣고 싶다며 말이다. 선영은 선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알고 싶다며 간절히 호소한다.


이후 모든 일정을 취소한 대아는 선희의 인스타그램과 선영이 남기고 간 USB 사진들을 살펴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든다. 그리고 불현듯 휴가를 내고 훌쩍 제주로 떠나게 된다.


대아는 '제주 소랑 스테이'라는 작은 현판이 걸린 주택에 홀로 머무르며 한동안 쉬어볼 마음을 먹지만 실상 마음 한구석에는 선희의 이야기를 찾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모든 걸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알게 된 선희의 죽음은 도망치지 말고 직면해야 할 시간이라 말하는 듯해서 더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3년간 부고를 모르고 살아온 부채감과 미안함에 더해 선희가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라는 직감을 하게 된 그는 결심을 하고 선영에게 메시지를 남겨 의뢰를 수락한다. 그렇게 선희의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대아는 선희를 자료를 보기 전 남편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조동연의 인스타그램부터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USB의 자료들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직접 사진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직접 방문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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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의 첫 번째 흔적: 물방울 속눈물


두 개의 맥주 캔이 찍힌 사진에는 입구가 개봉된 캔 하나와 개봉하지 않은 맥주가 찍혀있었다. 그리고 따지 않은 맥주 캔의 바닥은 표면에 맺혀 흐른 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이 물방울에 비친 희미한 피사체를 확인해 보기로 마음먹고 화질 개선과 보간 처리(픽셀을 채우는 과정) 등을 통해 선희의 얼굴이 선명해진다.


AI 안면 인식 알고리즘으로 표정을 분석하자 선희가 울고 있었다는 결과가 나온다.


●선희의 두 번째 흔적: 산책


산책을 나가는 동영상을 살펴보던 중 선희가 동네 어귀에서 양손에 짐을 든 노파를 만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영상 속에서 노파가 선희의 아래쪽으로 시선을 두고 주춤거리며 지나가는 모습을 포착한다.


이로 인해 선희의 다리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 대아는 영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여기에서 규칙적인 떨림을 추가로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다른 영상들과 비교 분석을 통해 보행 비대칭을 발견하게 된다. 선희의 걸음에 특정 패턴이 있음을 추출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특정 날짜 사이 선희의 신변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게 된 대아는 다른 사진과 자료를 통해 당시 선희가 있던 위치를 추적해 나가고 한 카페에 방문했음을 알게 되면서 직접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몰랐던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것은 물론 눈도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대아는 계속 사진과 영상을 파고들었고, 추후에는 병원 진료기록을 통해 마침내 남편인 동연을 의심하기에 이른다.


●선희의 세 번째 흔적: 프레임 밖의 용의자


제주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의 도움 요청으로 사건 하나를 해결해 준 대아는 그 대가로 카페 근처를 비추던 CCTV를 확보하게 되고, 프레임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선희의 네 번째 흔적: 페르소나


앞선 CCTV 화면을 통해 조동연과 선희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한 대아는 조동연에 대한 주변인들의 정보를 모으며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기에 이른다.


애처가로 소문났다는 그의 모습과 화면에 잡힌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가 수상해진 대아는 선희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향수 제조 공방에서 찍힌 사진을 발견하게 되면서 화장 속에 가려진 멍 자국을 제대로 파악하게 된다.


●선희의 다섯 번째 흔적: 다빈치 코드


앞선 여러 정황 증거들이 속속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조동연과 선희의 상처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는 찾지 못한다.


다만, 선희가 불행했다는 사실이 점점 선명해지자 대아는 점점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선희의 불행을 제 손으로 밝혀내야 한다니 자신이 상상한 최악의 현실이 될까 봐 두려워진 것이다.


며칠간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던 그는 선희가 올랐던 별세 오름에 올라보기로 하고 그곳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배 넌 할 수 있어'라는 어디선가 선희의 육성이 들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로써 대아는 의지를 다잡게 된다.


다시 파일을 살펴보던 중 대아는 중간에 한 장이 비어있는 일련번호를 포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19일 날짜의 파일 하나가 빈다는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삭제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선영을 통해 파일에 대해 묻게 된다.


마침내 이 파일들이 조동연을 통해 전달된 것임을 알게 된다. 결국 조동연에 의해 자체 검열되어 전달된 파일임을 알게 된 대아는 데이터 복구 업체를 통해 삭제된 파일을 복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초짜리 동영상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파일을 통해 당시 어떤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를 알게 된다.


●선희의 여섯 번째 흔적: 검은 그림자


이제 마지막으로 선희가 추락하는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할 차례다. 영상을 보는 동시에 기시감을 느낀 대아는 3년 전 의뢰를 떠올리게 되고 그때 자신이 맡은 의뢰 중 하나와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엔 선희임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사실 선희의 실족 감정 소견서를 쓴 것은 자신이었던 것이다. 대아는 3년이 지났음에도 같은 방법으로는 같은 결과만 도출될 것임을 파악하고,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이번에는 인물이 아닌 지면에 포커스를 맞춰 프로그램을 실행해 다시 살펴보게 되면서,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영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로써 진실을 제대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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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대아는 자신에게 좋은 기억만 주었던 장소인 인천 차이나타운의 중국집 '가화만사성'에서 조동연을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분석을 통해 확인한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그들이 제주 한 달 살기를 하기로 한 시작점부터 선희가 죽게 된 시점까지를 말이다. 그리고 이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대아는 조동연이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망상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남들은 몰랐던, 부부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조동연의 입으로 듣게 된다. 이로써 선희가 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게 된다.


조동연은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수록 흥분을 감추지 못했는데, 나중이 되어서는 결국 완전히 무너져 멍한 상태에 이른다. 모든 것이 종료된 이후 대아는 처음부터 찍고 있던 조동연의 폰을 들어 영상을 종료한 후 이 파일을 그대로 선영에게 전송한다.


그리고 끝까지 모든 것을 대아의 탓으로 돌리던 조동연은 대아의 신고로 찾아온 경찰들에게 인계된다


앞서 원고 쪽 변호사로 있던 조동연과 영상 분석자로 참여한 대아가 함께 했던 민사재판은 원고 측 변호사의 교체와 대아의 또 다른 분석 자료 덕분에 피고인 정 씨가 승리하게 되면서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오는 길 법률 신문에서 대아는 조동연의 부고 소식을 보게 된다. 그리고 선희의 추모 공원에 들려 인사를 나누던 대아는 납골당 안에 있던 사진 뒷면에서 우연히 선희의 메시지를 확인하게 된다.


이로써 대아는 다시금 선희의 파이팅에 힘입어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한때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인해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했던 대아는 다시 힘을 내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 할 때까진 하자.'


그래서 그는 눈이 멀 나중을 위해 하나씩 준비를 해나간다. 후학을 양성하는 동시에 자신의 노하우를 정리해 집필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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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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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해야 할 재판에서 반대쪽을 이기는 데만 몰두하고, 거짓 증거들을 그들만의 당위로 때우는 현실. 법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에게만 유난히 법이 제 기능을 하지 않는 현실. 대아는 이런 현실들에 환멸이 차올랐다.


숨김과 보탬 없이? 위증의 벌? 맹세? 하, 지랄들을 하고 있네.

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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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관, 변호사, 검사, 각종 분석가, 형사 등 법과 아주 가까이에 있는 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법과 재판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법 자체가 공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것을 판단하고 이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제로 이런 일을 겪어본 사람들은 법이 약자에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돈과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사람들로 인해 피해는 항상 고스란히 약자가 진다는 사실을.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던 대아는 그래서 더 증인 선서문의 내용이 역겹게 느껴진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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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일이니까, 부부 사이의 일은 둘만 아는 거니까, 한쪽이 저렇게 된 건 분명 한쪽에서 원인 제공을 했을 거라는 인식들. 가정이란 울타리가 얼마나 폐쇄적인지, 편견이란 철옹성에 가둬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

1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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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는 이렇게 시작된다. 가족의 일이니까, 부부의 일이니까 하는 폐쇄성과 나 몰라라 하는 무관심 속에 점차 더 확대된다.


여기에 더해 다른 쪽의 잘못도 반드시 있을 거라는 잘못된 인식 속에, 피해자는 자꾸만 더 숨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최근 들어 하나 둘 언론을 통해 밝혀지는 아동학대, 가정폭력, 가족 내 성추행 등이 과거에는 바로 이렇게 이루어지고 묻혔다.


선희의 일도 마찬가지다. 가족이라는 이름에 가둔 잘못된 편견과 망상 때문에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다른 가족들은 이유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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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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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우리는 사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죽어야만 했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들의 마지막 모습만 확인하게 된다.


그런 죽음을 볼 때면, 때론 먹먹함으로 또 어떨 때는 답답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데, 이 소설을 통해 조금은 해소된 기분이다.


특히 주인공인 대아를 비롯해, 제주 서부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범수 분석관, 그리고 실제 이 책을 집필한 두 명의 저자 같은 사람들이 있어 아직 정의는 살아있구나 느끼게 된다.


또 이 소설에서 언급된 속 시원한 이야기들(선희 사건/정씨의 민사재판/시장의 성추행사건) 덕분에 세상은 아직 살아볼 만하다 느끼게 된다.


몇몇 사건사고를 다룬 프로그램들을 보면 장기 미제로 남아있던 사건들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해결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게 되는데, 결국 여기에서 핵심은 초기 대응과 증거 수집이 핵심이다.


과거에는 CCTV와 같은 영상매체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으니 범인이 남긴 족적, 분비액 등 증거품이나 DNA만이 유일하게 범인을 찾을 수 있는 도구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곳곳에 설치된 CCTV와 동영상, 음성, GPS 등이 범인을 색출하는데 추가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황민구 저자와 같은 법 영상 분석가를 비롯한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있었다. 기술의 발달과 집요한 사람들의 연구로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존재한다. 진실에는 관심 없고 돈만 좇거나 권력의 맛에 취해 절대적 강자에게 몸 사리기 바쁜 사람들 때문이다.


특히 힘 있고 권력을 가진 집단일수록 이런 현상이 심한데, 그래서 더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죽음 앞에서 그것을 저버리는 사람들로 인해, 누군가의 죽음은 어느새 난도질당하고 왜곡되는 시선으로 결론지어져, 세상 속에서 잊힌다는 점이 그렇다.


이런 현실 때문인지, 이 소설이 내린 결론과 진실을 파헤쳐 가는 과정은 따스한 빛처럼 다가온다. 냉혹하고 차가운 법정 앞에서도 정의는 살아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아 내심 희망을 갖게 된다.


현실 속 어딘가에도 이처럼 누군가를 위해 열정적으로 진실을 파헤쳐 주는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소망의 마음과 함께 앞서 암담한 현실 속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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