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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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



사람들은 때때로 무언가 대단하고 비싼 것을 소유해야만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며, 진짜 행복은 그런 것에서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 마음이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야말로 진짜 행복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는 어느 날 허름한 산동네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생활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동네에 녹아들게 되면서 마침내 진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산다는 행위를 몸소 체험하며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된다.


계절의 변화, 세월이 지남에 따라 마모되는 자연의 섭리 등을 오감으로 느끼며 비로소 그 속에 자리한 추억과 기억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365일 항상 행복할 수는 없다. 때때로 화가 나거나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날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현듯 반짝이며 다가오는 행복한 감각 덕분에 우리는 내 안에 사랑이 있구나 느끼며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저자 내면을 촘촘히 채워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어느 날 서울의 한 오래된 산동네로 이사한 이후 그곳에서 다채로운 일상을 쌓아온 저자의 기록들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사랑과 애정의 마음을 피어오르게 한다.


이제는 많이 사라진 이웃의 정이라던가, 공간을 함께 나눠쓰는 것과 같은 빚 바랜 개념들이 이 산동네에서만큼은 여전히 ing 중이라는 것에 어쩐지 안심이 되는 느낌이다.


비록 낡고 헤진 느낌이 물씬 드는 동네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 자리한 사람들의 따뜻한 정과 마음만큼은 온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는듯하다.


읽는 내내 나 역시 이 동네의 주민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포근함이 느껴졌던 그곳에서의 기록들을 지금부터 고요히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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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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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친구인 M 이모를 통해 알게 된 산동네로 어느 날 이사를 가게 된 저자. 이 동네는 한국전쟁 이후 서울로 모여든 가난한 사람들이 성곽 아래에 무허가 주택을 지으면서 형성된 곳이다.


중간에 여러 번의 사라질 위기가 있었지만 모두 극복하고, 현재는 서울시의 정책이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대안적 개발 모델로 부상한 동네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길게 늘어진 하오의 별을 하염없이 쬐는 이 동네를 무척 좋아하는데, 물론 처음부터 이 동네에서의 생활에 쉽게 적응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동네의 밤이 친숙한 도시의 소음 대신 놀랄 만큼 두꺼운 적막으로 가득 찬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그래서 며칠 밤 동안은 그 적막이 무서워 잠을 설쳤다.


또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어떤 형태로든 공동주택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이 동네에서의 생활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하나 둘 쌓이다 보니 이제는 행복과 마음을 두는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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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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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산다는 행위가 관념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것들, 물질성이랄지 육체성을 가진 것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

이 동네에서 집은 삶의 공간이다. 동네에서의 하루하루는 집이든 인간이든 간에 만물이 시간과 함께 서서히 마모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육체적인 노동과 시간 그리고 정성을 쏟는 돌봄을 통해서만 우리가 모든 종류의 소멸을 가까스로 지연할 수 있을 뿐이라는 진실을 내게 알려준다. 그리고 어떤 공간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오감으로 각인되는 기억들의 중첩 때문이라는 사실도.

13~1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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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경제적 관념이나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을 넘어선 삶의 공간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온전히 내 삶이 된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는 오감으로 각인된 기억과 추억들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정성을 다해 돌보며 가꾸는 공간은 그래서 더 누군가에게 소중할 수밖에 없다.


산다는 행위는 물질적으로 무언가를 채우고, 육체적으로 노력을 기울여 가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행위들이 지속되었을 때 그 공간은 통상의 시간보다 느리게 마모되며 소멸이 지연된다.


삶이 머무르는 공간은 그렇게 사는 사람과 함께 추억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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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이곳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이루어진 본연의 질서가 있고 주민들은 그것을 대체로 존중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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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먼저 이 동네에 살았던 이가 다른 주민들과 더불어 살면서 만들어온 질서와 생태계를 존중하며 천천히 변화를 만드는 것. 이 동네에 살기 시작한 이래 나는 그런 일들에 관심이 생겼다.

16, 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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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동네의 생활방식에 익숙하지 않아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었다. 계절별 변화, 생활의 변화와 같은 것들로 인해 당황스러운 상황이 많이 연출됐다.


이를테면, 겨울에는 눈이 오면 집 앞의 눈을 쓸어야 한다는 것도, 기온이 떨어지면 동파 위험이 있어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몰랐다.


밤이나 낮이나 늘 문밖의 소음에 익숙해져 있던 저자에게 있어 이 동네의 한밤은 두터운 적막 속에 둘러싸여 두려우리만치 고요하다는 것을 처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서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이 동네만의 질서와 생태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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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건 자기 집을 찾는 여정 같아."

(...)

"타인의 말이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과 평화롭게 있을 수 있는 상태를 찾아가는 여정 말이야."

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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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머물던 시절 알고 지낸 E 언니는 수녀를 그만두고 한국에 들어와 이 산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저자는 자신의 집과 고작 3분 거리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깜짝 놀란다.


이후 둘은 어느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공간을 셰어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다. 필요할 때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한 동네에서 좋은 이웃으로 살아간다.


어쩌면 둘 모두에게 편안하게 자리 잡은 공간 덕분에 둘은 이토록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공간, 나에게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주는 공간을 지녔기에 타인에게 내어줄 공간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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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그토록 서투른 말들을 건네는 이유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르빌뢰르의 문장을 읽으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 앞에서 제대로 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죽음은 너무나도 커다란 상실이자 슬픔이고, 그것을 담기에 언어라는 그릇은 언제나 너무나도 작다.

(...)

상대의 슬픔에 공감하는 일에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기쁨과 달리 슬픔은 개별적이고 섬세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겪어낼 수밖에 없는데, 그건 슬픔에 잠긴 사람의 마음이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쉽게 긁히는 얇은 동판을 닮아서다. 


슬픔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감정과 타인의 감정이 끝내 포개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없이 예민해지고, 슬픔이 단 한 사람씩만 통과할 수 있는 좁고 긴 터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슬픔에서 빠져나온 이후엔 그 사실을 잊은 채 자신이 겪은 슬픔의 경험을 참조하여 타인의 슬픔을 재단하고, 슬픔 간의 경중을 따지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와 크기로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고 쉽게 말한다.

130~13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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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오래 함께 한 반려견 봉봉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한없는 슬픔에 젖어든 저자에게 있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말을 건넸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오히려 그 말들 때문에 더 상처를 받았던 저자는 그에 대해 오르빌뢰르의 문장과 깊은 사유를 통해 타인에게서는 절대 위로받을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죽음을 담기에 언어라는 그릇은 언제나 너무 작다.

●슬픔은 지극히 개별적이고 섬세한 감정이기에 타인에게 공감받기 어렵다.

●슬픔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그때의 감정은 잊은 채, 자신만의 경험에 비추어 슬픔을 재단하고, 경중을 따짐으로써 너무 쉽게 결론지어 버린다.


이러한 이유로, 죽음에 대해 위로받고자 한다면 타인보다는 스스로 위로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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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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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둘러싼 아주 가까이에 있는 존재와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엿보며, 지금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살펴보면 새삼스레 별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끼고 보듬어 온 세월 때문에 낡고 헤졌을지 모르지만, 그런 물건과 기억 덕분에 우리는 아픔과 슬픔의 기억을 잠시나마 잊고 살아간다.


대단치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문득문득 나를 피식피식 웃음 짓게 만드는 행복, 그거 하나면 된다.


삶은 고난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일이 쉽지 않다. 한 고개를 넘었다 싶으면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와 우리를 넘어뜨리고 무너뜨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짝 스쳐 지나가는 행복의 기억 덕분에 우리는 또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다.


그러니, 삶 가까이에 나를 살게 할 수 있는 그런 공간과 시간을 많이 잡아두자. 내가 마음 주고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경험과 기억들은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또 우리를 살아가게 할 것이다.


(+) 일상 속 애틋함을 주는 시간과 공간들

동네 산책길, 책을 읽는 공간, 반려 식물 존, 차곡차곡 쌓아놓은 추억상자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먹는 음식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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