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가게 글월
백승연(스토리플러스)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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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문득 오래전에 글로 나누던 학창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창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가득하던 그때, 편지글을 주고받으며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교환일기를 통해 작고 사소한 일상을 나누며 우정을 키웠던 그 시절.


그 묵직했던 편지들을 이사할 때도 빠뜨리지 않고 가지고 다닐 만큼 꽤 소중히 했었는데, 이제는 모두 정리하고 남아있는 건 하나도 없다. 물건으로 남겨두기 보다 이제는 마음속에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에 몇 년 전 모두 정리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즉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져 편지가 많이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한 번씩 집배원 아저씨를 통해 우편물이 날아들 때면 그때의 그 반가운 마음이 떠올라 여전히 설렘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 편지를 통해 조금 느리게 마음을 전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편지가게 '글월'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하는 효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실제 존재하는 '글월'이라는 가게에 소설적 허구 내용을 입혀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인 것 같은 느낌의 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테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펜팔 시스템을 예로 들 수 있는데, 글월에서는 펜팔 시스템을 통해 모르는 사람끼리 펜팔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소설 속에 공개적으로 오픈하기 위해 펜팔 응모글을 모았고 여기에서 선정된 편지글을 소설 속에 녹여내면서 자연스럽게 글월의 시스템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문구를 파는 가게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느껴지는 '편지'를 위한 공간, '글월'에서 쓰는 즐거움과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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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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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 가게 사장 가족>

■강선호: 35세 / 글월의 사장

■은소희: 35세 / 선호 아내 / 대기업 연구원

■강하준: 7세 / 아들

■강하율: 1살 / 딸


<주요 등장인물>

■우효영: 28세 / 글월 아르바이트생

■우효민: 33세 / 효영의 언니


<글월 가게 손님들>

■차영광: 29세 / 웹툰 작가 / 글월의 맞은편 연화 아파트 5층에 산다

■성민재: 39세 / 대기업 회계사 / 소설가를 꿈꿨지만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권은아: 46세 / 연희동 호박 부동산 사장 / 글월 1층 빵집 사장의 아내

■금원철: 58세 / 연희 초등학교 교장 /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내고 종종 글월에 오는 단골손님

■정주혜: 25세 / 연희동 우체국 직원

■문영은: 26세 / 싱어송라이터 / 자기의 이름을 건 라디오 프로그램을 운영 중 / 본가인 연희동에 왔다가 글월을 발견하게 됨

■송은채: 28세 / 효영의 대학 동기로 배우를 꿈꾸며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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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의 의미와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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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의 의미: 편지를 높여 부르는 말!


■글월에서 쓰는 업무일지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온라인으로 공유하며 그때그때 상황을 서로 확인한다. 여기에는 날짜, 날씨, 근무자, 매출, 방문자수, 재고, 필요한 비품, 특이사항 등을 기재하고 있다.


■펜팔 서비스

글월은 일정 금액을 내고 펜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익명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누군가의 편지를 가져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나이, 성별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어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모르는 이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되려 자신이 위로를 받기도 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나만 알 수 있는 펜팔 내용과 그들이 직접 남긴 손글씨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이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기자기한 손글씨를 비롯해, 그림을 그려 넣거나 딱 떨어지는 글씨를 통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펜팔 답장 알림 서비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펜팔의 답장이 도착하면 문자를 통해 알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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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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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희동 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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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창에 담긴 아늑함을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이상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다는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

창밖 풍경만큼이나 효영의 마음에 들어온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잘 익은 살구색 같은 글월 내부의 페인트 색이었다.

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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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영은 봄날 글월의 아침을 사진으로 담았다. 전면의 창을 향해 한번, 측면의 창을 향해 한 번. 초봄의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햇살에도 향이 느껴졌다. 잘 말린 이불에서 나는 보드라운 향, 곱게 빗은 어린아이의 정수리에서 나는 향, 새싹이 돋기 시작하는 보들보들한 흙에서 나는 향. 달콤하거나 상큼하거나 아무튼 그런 향.

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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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수동 글월

현대적 느낌의 성수동 글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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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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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똑똑하고 자랑스러웠던 언니 효민이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의 가세는 급격히 기울게 된다. 학원을 차리자는 동료의 말에 온 가족의 돈을 끌어다 투자했지만, 사기를 당하면서 언니는 엄마에게 전화해 잘 있다는 말만 남긴 채 잠적하게 된다.


때문에 뒤처리는 가족이 온전히 질 수밖에 없었는데, 아빠는 주 6일을 운영하던 세탁소 일을 일요일까지로 늘리고 엄마는 외삼촌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반찬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설상가상으로 엄마는 배달을 하다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고관절을 다쳐 수술까지 하게 된다.


이에 효영은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영화 촬영을 포기하면서 영화감독의 꿈도 접게 된다. 언니의 증발로 효영 역시 자기 작품에 대한 확신이 사라진 것이다.


그때쯤 언니의 편지가 집으로 오기 시작했는데, 봉투에는 언제나 '효영에게'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효민의 편지는 짧게는 2주에 한번, 길게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왔는데, 효영은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세 통의 편지가 쌓이자 아예 효영의 책상 위에 그것을 올려두었고 효영은 봉투를 반으로 접어 휴지통에 버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언니는 계속해서 답장도 받지 못할 편지를 보냈고 다섯 번째 언니의 편지가 왔을 때 효영은 언니의 편지를 피해 스물여덟 살에 첫 가출을 감행하게 된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온 효영은 대학 동문인 선호의 도움으로 그가 운영하는 '글월'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게 된다. 편지라면 지긋지긋했던 효영이 편지 가게인 '글월'에서 일하게 된 데에는 사실 '글월'이 편지를 뜻하는 말이란 걸 몰랐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그렇게 시작된 아르바이트는 예상보다 순조로웠고 글월에서 차곡차곡 시간을 채워갈수록 효영은 그 공간을 좋아하게 된다.


그렇게 계절을 하나씩 하나씩 보낼쯤 부모님을 통해 언니 효민의 소식을 조금씩 듣게 되는데, 그녀가 현재는 강원도 쪽에서 학원 강사로 일한다는 것과 그곳의 주소까지 어느새 알게 된다.


답장 생각이 없던 효영이지만, 어릴 적 둘이 함께 했던 순간의 사진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 사진을 웹툰 작가 영광에게 부탁해 그림으로 그려 언니에게 보내는 것으로 답장을 대신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술을 먹고 내친김에 속마음을 솔직하게 내려 적은 편지가 언니에게 발송된 것을 알게 되면서 편지를 회수하기 위해 다급하게 언니가 있는 속초로 영광과 함께 가게 된다.


그곳에서 이미 편지를 개봉해 읽고 있던 언니를 발견하게 되고 이 만남을 계기로 둘은 묵혔던 앙금을 풀게 된다. 이후 속초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영광으로부터 그들의 가족사와 동생 상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렇게 효영과 영광은 가까운 사이가 된다.



***

이 소설에는 효영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펜팔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남모를 사연과 글월에 방문하는 단골손님들의 이야기도 함께 만나볼 수 있는데, 편지가 주는 따뜻함과 감동도 함께 느낄 수 있다.


모르는 익명의 누군가에게 전하는 오늘, 이 순간의 진심과 나의 기분들이 편지에 담겨 전해지면서, 그것이 또 다른 이에게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편지가 주는 매력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가까운 이에게는 전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속마음을 모르는 이에게 털어놓는다는 관점에서는 속 시원함과 대나무숲의 역할도 하는듯하다.


지금은 많이 잊힌,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글월'이라는 공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



처음에는 과연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오래 지속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던 '글월'은 점차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와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효영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매거진 <HIM>이라는 군인 잡지 에디터 이지상의 눈에 띄면서 선호는 잡지 인터뷰를 하게 된다. 또 본가인 연희동에 들렸다가 글월을 방문하게 된 싱어송라이터 문영은의 라디오에 펜팔의 사연이 소개되면서 더 큰 이목을 끌게 된다.


여기에 더해 꾸준히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통했던 것이 소소하게 입소문을 타면서 젊은 세대들도 이곳에 들려 편지지를 사거나 펜팔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방문객은 물론 매출도 늘게 된다.


그렇게 글월은 동쪽 성수동에 다른 컨셉의 2호점을 내게 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하루 앞도 짐작할 수 없었던 효영은 정직원이 되고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면서 팝업스토어를 성공시키는 것은 물론, 성수동 글월에서 근무하면서 이제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자신의 일을 즐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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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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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영은 문득 누군가의 옆에 무해하게 남는다는 것이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옆에 있어도 괜찮은 것들은 결국 나를 바꾸려는 의지가 없는 것들이었다.

1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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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흘러도 오래도록 내 옆에 남아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받아들여주는 것이 대다수다.


그렇기에 그것들은 귀하고 무해한데,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서글픈 한편, 가지고 있는 것들만이라도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기를, 하고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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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하늘로 보내고 나니까 혼잣말이 많아지더라고요. 근데, 혼잣말은 너무 공허해서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거예요. 애써 나온 말이니까 정착한 곳이 있으면 했거든요. 편지에라도요."

1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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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을 잃고 난 뒤의 공허함은 무엇으로도 붙잡기 어렵다. 이에 원철은 그 마음을 편지에 고이 담아 당사자가 아닌 익명의 누구에게라도 닿기를 고대한다.


그렇게 '진심'이 담긴 어떤 울림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며, 그 파문은 생각보다 널리 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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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글이라는 건 과거라는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 한 동이라는 재료가 필요했다. 서툴고 부끄러워도 물 한 동이를 퍼내야 다음 할 말이 차올랐다. 그렇게 과거라는 우물을 정화한 사람은 현실에서도 자기 마음을 투명하게 볼 줄 알았다.

20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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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라는 건 무에서 무언가를 창조하기 참 어려운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서툴고 부끄러워도 추억하고 경험한 과거의 무언가를 떠올려야만 결국 다음 할 말이 이어진다는 점에 있어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자, 또 다른 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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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편지가 화답을 받는 건 아니었다. 펜팔 편지를 집어 가서 답장하지 않는 경우도 흔했다. 모르는 사람과 반복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게 피로한 현대인들이 여전히 많았다. 익명인 사람과 편지를 나눈다는 건 조금쯤 설레고 조금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안개를 걷는 것과 비슷했다. 나와 결이 맞는가, 나의 고민이 진심으로 전해지는가. 이렇게 각자의 기준으로 안개를 걷어 가며 인연을 만드는 것이었다.

2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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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익명의 누군가와 펜팔을 주고받는다는 건, 과거 펜팔을 하며 느꼈던 감정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고 느낀다. 특히 반복적인 관계를 맺으며 피로함을 느낀다는 점에 있어 귀찮음과 부담스러움이라는 감정이 왠지 추가된 기분이다.


과거 내가 느꼈던 것처럼, 펜팔이 다시금 약간의 설렘과 조금쯤 걱정스러운 마음이 버무려져 안갯속을 걷는 미스터리한 스릴과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도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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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 담긴 아름다움은 종종 무언가에 가려지기 마련이잖아요. 피곤함과 권태, 염세적인 마음 같은 걸로요. 영광 씨가 만드는 창작물은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풀어 줘서, 사람들이 다시 주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도와줄 거예요."

2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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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예술 하는 사람들이 느낄 감정을 대변하는 말이자, 이들을 잘 다독여주고 위로해 주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라는 생각에 가져와봤다.


과학의 발달로 어느 무엇보다 완벽하게 창조될 것들을 두고 내가 왜 필요한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효영의 말에서 존재의 이유를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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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영아, 인간관계는 이 정물하고 똑같아. 자기가 서있는 위치에서 보이는 면이 다라고. 인간한테 투시 같은 능력은 없어. 그러니까 그런 걸 초능력이라고 부르는 거지."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건데."

"그러니까, 말 안 하면 모른다고."

3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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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말 안 해도 다 알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라 말하고 싶다. 관계는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한다. 내 속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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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하고 싶은지만 잊어버리지 않으면 돼. 그럼 좀 더디고 쩔룩대도 다 제 갈 길 가더라고."

3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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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을 헤매는 이유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다면, 조금 늦더라도 결국 끝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먼저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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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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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만이 주는 따뜻함이 있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며 마음을 전하는 글에서, 위트가, 사랑이, 웃음이, 슬픔이 배어있다.


메일이나 메시지, 톡으로 전하지 못하는 감성이 편지를 통하면 배가 된다. 그래서 손글씨로 전하는 편지는 귀하고 또 낯설면서 새롭다.


쓰는 펜의 종류에 따라, 컬러에 따라, 종이의 재질에 따라 달라지는 멋은 어떤 것도 흉내 낼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수많은 편지들을 소중히 간직했었나 보다.


이제는 손글씨를 직접 쓸 일이 거의 없어 필체마저 사라졌지만, 이 책을 계기로 다시 손글씨를 연습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진심과 감상을 붙잡아두기 위해, 나를 되돌아보기 위해 나쁘지 않은 선택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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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어 원더풀 월드
정진영 지음 / 북레시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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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 6일간 자전거길 위에서 만난 행복!"


자전거를 타고 바람 따라 씽씽 자전거 길을 달리노라면 어쩐지 홀가분한 기분이 들곤 한다. 계절 따라, 장소 따라 피고 지는 꽃과 나무들이 계속 바뀌는 풍경을 보는 것도 즐겁고, 달리며 맞는 바람도 시원하다.

몇 시간을 달리다 보면 엉덩이나 다리 근육이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탁 트인 시야를 오롯이 느끼며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는 몇 없는 방법이기에 라이딩은 매력적인 운동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이 책은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향해 왕복 4시간을 질주하며 즐기던 때를 떠올리게 했는데, 여기에 욕심을 더해 국토종주까지 욕심내게 만든다. 의도치 않게 시작된 자전거 종주 여행을 따라가며 떠오르는 풍광들은 무감각한 일상을 깨우게 만든다.


이 책은 다소 생뚱맞지만, 직장인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로, 5박 6일의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앞서 퇴사한 한 사람을 찾겠다는 목표 하나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그와의 만남이 계속 어그러지면서 이 여행은 차즘 길어지게 된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국토종주 자전거 길을 따라 여행하듯 길을 떠나게 된다.

친하지 않은 직장동료 4명이 함께 자전거를 통해 국토 종주를 하며 펼쳐지는 웃음과 감동, 추격과 반전의 이야기는 삶과 일상을 다시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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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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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여산정공'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오제일 사장
-여산정공 악덕 사장

▶우희철 대리
▶박상익(화자)
▶이재유 주임
▶김용범 주임
▶심준호 대리

▶임정연
-경리팀 직원

▶문희주 과장
-퇴사자

▶노혜림 부사장
-사장 와이프


회식때 로또 복권을 받은 사람은 우희철, 박상익, 이재유, 김용범, 심준호 그리고 마지막으로 퇴사한 문희주 과장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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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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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7년을 일한 문희주 과장의 환송 회식 때 참여했던 직원 다섯 명은 출근하자마자 사장실로 호출당하게 된다. 그때 사장이 나눠준 로또 복권 중 하나가 1등에 당첨되었는데 이것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호출당한 다섯 명 모두 당첨되지 않은 것을 확인한 사장은 퇴사자인 문희주 과장이 당첨자인 것을 알고 분노하게 되고, 이로 인해 문희주를 데려오면 연봉 천만 원을 올려준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항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장을 알고 있던 직원들은 입바른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동영상과 각서를 쓰게 하면서 일주일의 유급휴가 기간 동안 문희주를 찾아 나서게 된다.

사장실을 나와 모이게 된 이들은 이후의 방법에 대해 논의하게 되고, 심준호와 김용범은 일주일간 휴가를 즐기겠다는 말로 빠지고, 나머지 사람과 경리팀 임정연은 이 일에 합류하게 된다.

연락 두절에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어 추리를 이어나가던 중 과거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흘려 이야기한 것을 기억해 내고 그의 카톡 프로필을 통해 추적해 나가면서 마침내 그가 자전거 국토종주 여행을 갔을 거라 추정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 만든 SNS 계정에 올라온 사진을 통해 확신하게 되면서 이들은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앞서 도착해 기다리며 그를 만나 설득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이런 결정 뒤에 바로 둘씩 나눠 문희주 찾기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유는 과거 회식자리에서 우희철과 이재유가 임정연씨를 두고 치열한 심리전을 하게 되면서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시작은 우희철과 박상익(화자), 그리고 임정연씨와 이재유씨가 한 조가 되어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이동하던 중 이재유의 차가 퍼지면서 임정연조는 차를 버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팔당댐에서 박상익조에 합류하게 된다. 그렇게 넷은 자전거 종주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아주 가볍게 생각했다. 문희주보다 먼저 도착한 뒤에 대기하고 있다가 문희주를 발견하게 되면 사정을 설명하고 사장 앞에 데려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설사 문희주를 데려가지 못해도 손해 볼 건 없으니 그저 시도나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만날 듯 자꾸 어긋나는 일정으로 인해 이들의 자전거 여행은 점차 길어진다. 해가 저물면 숙소에서 하루 머물며 잠시 휴식을 취했고, 해가 뜨면 자전거길을 따라 길을 떠나며 어느새 여정 그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그러면서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절대 못 먹는 맛집도 방문하게 되고, 드라마 촬영을 많이 했던 비내섬 등을 마주하게 되면서 어느새 꽉 닫혀있던 이들의 마음도 활짝 열리게 된다.

상익 또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을 마주하며 어느새 이 여행이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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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업무가 아닌 목적으로 이렇게 먼 곳까지 와본 게 처음이었다. 언제 다시 이런 풍경을 눈에 담을 날이 올까.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눈앞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1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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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쯤 이들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겠다고 한 사람 중 심준호가 연락을 취해 온다. 편의점 기프티콘까지 쏘면서 수시로 연락해 안부를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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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철과 이재유가 입씨름을 벌이는 사이에 내가 느낀 감정은 어이없게도 즐거움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오늘만큼 극적인 하루가 없었다. 높고 푸른 하늘, 자전거길을 따라 늘어선 풀과 나무, 열차 대신 자전거가 오가는 폐철도 터널, 능내역에서 인증수첩에 찍은 도장, 바람에 흔들리며 물결치던 비내섬의 드넓은 갈대밭, 갑자기 나타나 애를 먹은 비포장도로, 사람 비명보다 끔찍했던 고라니 울음소리, 그 소리보다 더 무서웠던 화물차 경적, 생전 처음 와본 충주 ···. 이 모든 걸 단 하루 사이에 경험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웃음이 새어 나왔다.
1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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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는 하루를 보낸 첫날, 상익은 문득 이 상황이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없었던 버라이어티 한 하루가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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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고생스럽긴 한데 재미있는 하루였어요. 이런 경험은 살면서 처음이거든요."
10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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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비단 상익에게만 적용되는 사항은 아니었다. 함께 여정을 이어가게 된 임정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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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수첩에 도장을 찍는 일은 마치 게임에서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퀘스트를 완료한 뒤 일정량의 경험치를 획득해 레벨 업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몸은 고돼도 성취감이 있었다.
1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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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증센터 부스로 들어가 인증수첩에 마지막 도장을 찍었다. 탄금대, 수안보, 이화령, 불정역, 상풍교까지 모두 도장을 찍은 세재 자전거길 페이지를 보니 두려움을 잊을 만큼 뿌듯했다.
1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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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 이들 중 상익에게 있어 이 여행은 남다르게 다가왔는데 그래서였는지 국토종주 인증수첩도 별도로 구매해 인증센터에 방문할 때마다 도장을 찍는 것으로 성취감도 얻는다.

이렇게 4박 5일을 함께 하며 이들은 어느새 의도치 않은 추격전을 이어가는 한편, 저마다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면서 삶과 일상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추격전은 어느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면서, 국토종주길 끝에는 상익만 남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상익은 SNS를 통해 마침내 문희주와 연락이 닿게 되고 그가 이끄는 곳에서 만남을 가지게 된다.

문희주를 만난 상익은 마침내 알쏭달쏭했던 이 모든 일정의 비밀을 알게 되고, 더불어 진짜 로또 당첨자도 함께 밝혀진다.

이후 문희주는 상익과 함께 사장을 찾아가게 되고 약속했던 연봉 천만 원에 대한 계약을 작성하는 것과 동시에 로또 당첨자에 대한 진실도 밝히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그리고 그 이후의 버라이어티 한 이야기는 에필로그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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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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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미련을 버릴 방법은 직접 그곳을 찾는 일뿐이었다.
(...)
어쩌면 내 상상 속 부산 앞바다의 실체 역시 '선골부락'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확인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다시 여기까지 올 기회를 만들긴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여기까지 왔으니 끝을 보고 싶었다. 이번 기회에 끝을 보면 앞으로 다른 일을 할 때도 끝까지 몰아붙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1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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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인 상익은 오랫동안 포기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안될 거라 생각하며 중도 포기했던 일들이 이상하게 항상 마음 한편에 미련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번 자전거 여행을 통해 그는 그것을 깨고 용기를 얻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모두가 떠난 후에도 홀로 바다 끝까지 자전거길을 따라 여행을 지속하게 된다. 덕분에 끝까지 완주한 그는 모든 미련을 깨부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된다.

상익을 통해 살면서 포기한 것들과 그로 인해 지금까지 남아있는 미련과 아쉬움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어떤 일들은 너무 쉽게 중도 포기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자기반성도 하게 된다.

모든 일에 끝을 볼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끝까지 가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과 그리고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끝을 보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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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참 좋은 거구나 ···."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양쪽 관자놀이를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하늘 곳곳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 울었다.
20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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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굴러가듯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던 상익은 자전거 여행을 통해 비로소 삶과 일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던 일상, 내 삶이지만 내가 없는 삶을 거닐던 그가 이제서야 비로소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자전거 길을 따라 마주하는 모든 풍경과 순간들은 그에게 '처음'을 선물했는데, 덕분에 이 모든 것을 누리고 즐길 수 있음에,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상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매일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 역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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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장례를 치르면서 깨달은 건데, 판단하기 어려울 때 죽음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많은 고민이 줄어든다는 거였어."
(...)
"어린애들은 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 그냥 하루하루가 놀이야. 그런 마음으로 살면 굳이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심각한 질문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게 내 개똥철학이야."
227~2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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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느라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고는 한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느라 그저 시간만 흘려보낸다.

이럴 때 명확한 해결책을 주자면 첫째, 죽음을 기준으로 판단해 보라는 것이다. 둘째 어린아이들처럼 하루하루를 놀이처럼 생각하며 살아보라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즐기면서 사는 현명한 방법임을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배운 문희주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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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리셋하거나 과거로 회기 할 수 없다. 좋든 싫든 주어진 환경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삶이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아름다움은 그 삶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문득 차장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세상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였다.
238~23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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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은 어쨌든 전진하며 나아간다. 그렇기에 이것을 번복하거나 거슬러 올라가려는 행동은 그저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이럴 때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은 인생이라는 파도를 잘 타는 것으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과정을 통해 익숙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 후에는 우리가 디디고 선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적응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삶이, 인생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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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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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기 다른 꿈을 가지고 있는 네 사람이 국토종주 길을 함께 달린다. 시작은 같았다. 하지만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각자의 길로 들어서며 이들은 헤어진다. 어떤 이는 꿈을 향해, 어떤 이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또 어떤 이는 휴식을 위해 다른 길로 향한다.

이들이 갈라서는 인생의 갈림길을 통해 각기 추구하는 이상향과 꿈, 삶을 엿본다. 덕분에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들은 울퉁불퉁한 험한 길, 낭떠러지 같은 높은 고개, 편안한 평길, 컴컴해서 어딘가 불안한 길을 건너며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앞서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때 중요한 건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나아가기를 그만둔다면 결국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멈췄을 때 남는 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오랜 미련뿐, 결국 끝까지 도달해야만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부수적으로 성취와 즐거움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는 건 보너스다.

나아갈 때는 종종 앞만 보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잊지 말자. 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허상에 갇혀 있지는 않는지를 알아차리려면 앞만 보아서는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길 위에서 보낸 5박 6일간의 행복한 여행을 통해 잊고 살았던 내 모습을 찾는 동시에 세상을 살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에 더해 미처 알지 못했던 자전거로 만나볼 수 있는 국토종주 길의 아름다운 풍경과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맛집 정보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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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아이슬란드 - 2024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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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겨울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아이슬란드로 떠나보자! 넓고 광활하게 펼쳐진 얼음과 눈, 여기에 더해 솟아오르는 온천과 밤하늘에 펼쳐지는 오로라는 가히 환상적이다. 장기간 여행을 하게 된다면 캠핑을 통해 아이슬란드 그 자체를 즐겨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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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스페인 소도시 여행 - 2024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유럽 여행의 묘미는 소도시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스페인 소도시 여행을 떠나보자. 이색적인 볼거리, 맛있는 먹거리, 종교적인 색다름을 경험하며 방방곡곡을 누비다 보면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매력에 푹 빠져들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것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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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도 이뤄냈으니까
허우령 지음 / 부크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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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각장애를 앓고 있지만, 끝내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며 전진 또 전진하고 있는 KBS 아나운서 허우령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세이 책이다.


간략하게 내용을 살펴보면 처음 시력을 잃었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속에는 거침없이 꿈을 향해 질주했던 열정 어린 그녀의 노력과 장애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남모를 흉터가 담겨 있다. 또 시각 장애인의 입장에서 전하고픈 목소리를 가감 없이 담고 있는데,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총 3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각 꼭지별 주제를 통해 처음 시력을 잃게 된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파트 1에서는 처음 시력을 잃게 된 시점부터 병명을 알게 되고, 시술 후 회복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파트 2에서는 본격적으로 홀로서는 준비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지막 파트 3에서는 안내견을 만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면서 마침내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한 사람의 성장 이야기를 넘어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문제, 사회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가 얽혀있어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였는데 그렇기에 더 솔직하게 이 책을 읽고 느낀 바를 풀어보려 한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먼저 좋았던 점은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찾아온 실명을 겪고서도 꿋꿋이 자신의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쾌활한 면모로 끝까지 전진하는 모습에서 강한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져 덩달아 힘이 났다. 포기하지 말고 방법을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다음으로 아쉬웠던 점은, 정확한 눈 상태에 대한 언급이 생략되면서 헷갈리는 구간이 종종 발생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약간 보이는 듯도 하고 아예 뿌연 안개처럼 안 보이는 듯도 하고 애매 보호한 상태로 혼자 짐작하며 읽을 수밖에 없어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여러 차례 시술까지 했는데 결국 아예 보이지 않게 된 건지 아니면 약간 보이는 상태로 쭉 이어진 건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은 추후 더 자세히 언급할 예정인데, 안내견에 대한 부분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것에 대한 내용으로 3자 입장에서는 너무 장애인의 입장에 치우쳐 서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자기 입장에서 이야기하기 마련임을 충분히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안을 사회 시스템의 변화와 확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서로 이권 다툼하느라 나라는 나 몰라라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며 한숨도 나왔다.


좀 되었지만,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이 처우개선을 위한 시위 장면도 떠오르며 복잡한 감정으로 읽게 된 이 책을 이제부터 소개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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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허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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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에 '시신경염'이라는 자가 면역 질환으로 하루아침에 시각 장애 판정을 받으면서 시력을 잃은 그녀는 어느 순간 '잃어버린 걸 채워야 해' 라는 생각으로 이미 사라진 시력 대신 그 빈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이뤄내게' 된다.


특유의 따스함과 밝은 에너지를 잃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망설임 없이 잡으면서 2023년 KBS 7기 장애인 앵커로 선발된다. 27살이 된 지금은 현재 자신의 이름을 건 <허우령의 생활 뉴스>를 진행하고 있으며,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강연자로서 폭넓게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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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령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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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 단 하룻밤 사이에 저자는 시각 장애인이 된다. 그 어떤 이유도 영문도 몰랐다. 하루아침에 가족들의 얼굴도, 심지어 자신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허무하면서도 당혹스러웠던 그녀는 그렇게 14살, 갑작스러운 병원 생활이 시작된다.


눈앞은 회색빛 안개로 희뿌옇게 물들어 있었고 무언가를 보려고 하면 그 안개는 더욱 짙게 내려앉았다. 시각 장애를 갖게 된 후, 그녀는 1년 가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눈앞을 가로막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 때가 있는데, 바로 장애에 익숙해지고,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하나씩 터득해 나가면서부터다. 시각 장애가 생겼다고 인생 전체가 암울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12살 때 오른쪽 눈을 실명하고 남은 왼쪽 시력까지 떨어질 즈음, 저자의 엄마는 그 이유를 찾으려 서울에 있는 모든 병원을 돌아다니며 병원 전부를 두드렸지만 병명을 아는 곳은 없었다. 어린 저자는 이때 처음 병원에 대한 불신을 품었다고 전한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찾아간 서울대 병원에서는 조금 다른 말을 듣게 되는데, 아무래도 시신경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일산에 신경 전문으로 파견된 교수님에게 한번 가보라는 이야기였다.


희망인지, 아니면 또 다른 헛걸음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찾아간 이 병원이 다른 곳과 조금 달랐던 건 한 가지 검사를 더 했다는 점이다.


새우등 자세로 척추에 엄청 두꺼운 주삿바늘을 꽂아서 검사를 했고, 이후 모든 검사를 마친 후 일산 국립암센터의 의사는 모녀에게 처음으로 실명 원인을 말해 주게 된다.


그리고 입원을 권유받으면서 2011년 겨울, 불확실 속에서 유일하게 저자의 병을 아는 듯한 의사에게 약간 애매한 희망을 품게 된다.


초반에는 매번 수십 알 정도의 스테로이드제를 꾸역꾸역 삼켜 가며 시력을 회복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한 지 2주째에 접어들어도 앞은 여전히 뿌연 연기에 뒤덮여 있게 된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그 다음 단계의 치료법을 제시했는데 바로 '혈장 교환술'이라고 불리는 치료다.


저자의 혈장에 존재하는 질병 유발 항체를 정화하거나 결핍된 물질을 보충하는 치료법인데, 저자는 그 어떤 방법보다 이 방법을 가장 싫어했다고 한다. 혈장을 교환하기 위해 오른쪽 가슴 위에 통로 같은 관을 꽂아야 했는데 이때 가슴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말 자체가 두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무슨 치료든 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고 이 모든 게 낯설고 어려웠던 저자는 어른들의 판단에 맡겨져 할 수 있는건 씩씩하게 웃는것뿐이었다고 한다.


시술 당일, 10~20분이면 끝날 거라던 시술이 길어졌다. 소독을 하고 모든 준비를 끝냈는데, 몸에 꽂아야 하는 관이 잘못된 것을 시술실이 들어온 의사가 발견하면서 시간이 지체된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불안감도 커졌고 그래서였는지 마취 주사를 맞는 순간부터 저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고 한다.


부분 마취만 했기에 칼이 닿는 고통이 느껴졌고 현장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가 저자를 연약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용감한 척했던 가면이 벗겨졌고, 시술대 위의 자신은 무력했고 보잘것없이 느껴졌다고 한다.


이후로 저자는 총 4번 정도의 시술을 더 받으면서 서서히 관에 꽂힌 불편한 몸에 익숙해지는 방법을 찾았으며 덜 아플 용기를 되찾게 된다. 그렇게 가장 보잘것 없으면서도 용감한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알게 된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저자는 언제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도움아래 살기는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 나가기 시작한다.


첫번째는 밥 먹기로 반찬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두번째는 혼자서 병원 복도 맨 끝의 큰 창문까지 가는 일로 흐릿한 무언가에 의지해 창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공간은 답답한 병원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공간으로 그곳에 홀로 도착할때면 왠지 모를 벅참이 몸을 감쌌다고 한다.


이 모든 일이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저자에게는 이 작은 행동 하나가 자신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갈 노하우를 하나씩 찾게 된다.


이후에는 이런 작은 시도를 기점으로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데, 실명후 집과 병원뿐인 동선을 넘어 집 앞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 슈퍼만이라도 혼자 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으로 홀로 마당 문을 열어 도로변으로 나왔을 때는 심장이 뚫리는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기억속에 남아 있는 집 주변 도로 모습을 회상하며 앞으로 한 발짝씩 조심히 나아가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때는 순간 길을 잃었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이후 동생을 호출했고 또다시 바깥세상과 단절됐다.


그렇게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찾아온 씁쓸함과 답답함은 강렬히 자유를 원하게 되면서 그녀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 다시 문을 열게 된다. 혼자서 해내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일단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찾기로 한다.


그래서 두 번째 외출은 동생과 함께 하게 된다. 앞으로 먼저 걸어가면 동생에게 뒤를 봐달라고 부탁했는데, 잘 가고 있는지, 장애들은 없는지, 어디서 꺾으면 되는지 등을 살펴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새로운 지도를 그려가면서 그 후로는 자유를 위해 여러 방법을 찾게 된다. 흰 지팡이를 이용해 독립 보행을 익혔고 시간이 흘러서는 안내견 하얀이를 만나게 된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의 고립과 격리없이 자신만의 길을 밝히는 중이다.



*****


이외에도 그 과정을 겪어내며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점자를 처음 경험하고 배우게 된 에피소드

>사람들과 '처음' 어울리게 된 계기를 담고 있는 에피소드

>방송부에서 처음 아나운서를 맡게 되면서 아나운서의 꿈을 키우게 된 에피소드

>색소폰을 배우게 되면서 밴드부를 통해 '어우러짐'을 배우게 된 에피소드

>어릴적 꿈이었던 화가의 꿈을 다른 방법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에피소드

>첫 해외여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된 에피소드

>새내기 대학생활의 적응기를 담고 있는 에피소드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아나운서 꿈을 이루게 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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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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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색다른 경험의 기회를 얻게 됐다. 그러면서 명확히 알게 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장애는 '극복'이 아닌 '인정'이라는 것. 그 안에서 나에게 맞는 방법을 모색하면 된다는 것이다.

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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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언가 시련이 닥치면 '극복'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과연 극복만이 정답일까? 때로는 개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들도 일어난다. 그럴때는 '극복'이 아닌 '인정'을 해보면 어떨까?


저자는 만약 자신이 이때 '극복'하려고 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없었을것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시력의 상실은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녀는 '인정'하는것으로 다른 방법을 찾았고 이내 자신의 꿈에도 닿을 수 있었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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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후 알게 된 것이 있다면 한 번 아픔을 겪어 봤던 사람이 나중에 덜 아플 방법을 안다는 거예요. 넘어졌던 곳에서 또 넘어지고, 약해진 곳에 상처가 덧나고, 원치 않는 고통이 수시로 찾아오겠죠.


그러니 우리는 아픔의 시간을 견디며 넘어져도 약하게 다치는 법을 터득해야 해요. 당신이 갖고 있을 흉터가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믿음을 가져요.

6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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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도 시련을 경험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큰 시련을 경험하게 되면 그 고통은 상상이상으로 크다고 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고통을 겪어보는것이 어쩌면 삶에 더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수십번 넘어지면서 걸음마를 배우듯, 우리는 수없이 고통을 겪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운다. 강도가 다른 아픔과 고통에서 덜 아플 나만의 노하우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넘어졌다고, 남들보다 더 많은 시련을 겪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 그 고통과 시련만큼 당신은 더 단단해져 있을것임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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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붓이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그꿈을 부풀렸다. 내게 찾아온 장애는 꿈을 빼앗은 게 아닌 다른 그림을 그릴 새 도화지가 되었다. 그 도화지 위에 나는 생소한 걸 담아내는 중이다. 꿈에 스크래치를 긋는다는 건 내 안에 있는 무수한 가능성을 확인할 기회니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꿈에 스크래치를 긋는다. 내가 품고 있을 또 다른 색을 찾기 위해서.

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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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을 겪으면 보통은 쓰러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과 주저앉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것은 긍정적 마인드를 지녔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구분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화가의 꿈을 접지 않았다. 또다른 방법을 찾아 자신만의 가능성을 펼쳐보였다. 이것은 현재도 진행중으로 추후 어떤 독특한 발상과 방법으로 깜짝 놀래켜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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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는 단순히 새로운 언어를 넘어 내 인생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이기도 했다. 점자를 알고 나서는 나의 세계도 넓어지고 한층 더 늘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

나는 점자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알게 됐다.

1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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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으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외국어는 물론 점자, 수화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새로운 언어를 배워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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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국 경험을 토대로 알게 된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색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편견에 갇히지 않을 나만의 색을. 그 누구도 흉내 내거나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것.

1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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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외형을 가졌고 어떤 모습이건 상관없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자신을 각인시키고 싶다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나만의 매력을 가지면 된다.


나만이 가진 색, 나만이 가진 독특한 그 어떤 것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을 통해 사람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나를 마주하게 될것이다. 저자 역시 자신만이 가진 매력을 통해 아나운서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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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걸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해요. 결핍의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해 보세요. 틈을 메운 사람은 더 단단해질 수 있거든요.

2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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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 가장 우선해야 할 점은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것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부족한지, 어려워하는지를 알아야 그다음의 방법을 논할 수 있다.


저자는 시력을 잃고 좌절하며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며 받아들였고 이후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주목했다.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할 수 있는것, 눈이 보이지 않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덕분에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림도 그리고, 아나운서도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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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 문제 1 : 안내견에 얽힌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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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들어가려는 나를 진상 손님 취급하는 직원에게 오히려 "얘네는 들어갈 수 있어요. 시각 장애인 안내견입니다."라고 똑바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일은 다반사였다.

(...)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한 발 한 발 세상과 가까워질수록 사회는 이런 나의 자유를 막아섰다. '개는 안 돼요.'라는 말을 들을 적에는 코앞에서 문전박대당한 기분을 지우기 어려웠다.

1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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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손님도 몇 없었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손님들의 알레르기를 걱정하며 나를 식당 밖으로 이끌었다. 하얀이와 3년을 함께하면서 안내견 거부를 엄청나게 겪었다.

(...)

이런 상황에서 '정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해?'라는 물음을 받기도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자리를 피할 수 있다. 혹은 그 사람과 떨어져 멀리 앉으면 된다. 이걸 거짓으로 말하는 게 문제다.

2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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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건 안내견이 법적으로 어디든 시각 장애인과 출입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2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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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견에 얽힌 일화를 듣고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더불어 안내견에 대해 몰랐던 점도 알게 되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선을 넘어 그냥 여러 관점을 종합해 이야기해보자면, 저자가 말하는 안내견에 대한 내용은 좀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일단 안내견을 맘대로 만지면 안된다는것, 먹이를 주면 안된다는 것, 말을 걸면 안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또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부분이라 여러 방면으로 홍보가 되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위에 언급된 내용들은 솔직히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만 서술된 한쪽 입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식당에서 진상손님 대접 받는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아이들이나 특정 노인층도 거부당하는 세상이다.


식당 주인의 입장에서는 한명의 손님 때문에 다수의 손님이 불편을 겪는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막을 수 있다. 물론 안내견에 대한 지식이 있거나 혹은 센스있는 사장님들의 경우 큰 목소리로 다른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말을 먼저 할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세상과 가까워질수록 사회는 저자의 자유를 막았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비단 저자뿐만이 아니다. 장애인 비장애인 할것 없이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식당을 맘대로 출입할 수 없는 자유를 뺏겼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돈을 벌 자유, 직장을 얻을 자유, 결혼할 자유, 아이를 낳을 자유, 꿈을 이룰 자유, 집을 살 자유 등을 잃었다. 반면 저자는 적어도 꿈과 경제력 등은 얻었다고 생각한다. 각자 저마다의 자유를 빼앗기며 살고 있는 것이 현 시대다.


여기에 더해 만약 계속해서 안내견으로 인해 거부를 당한다면 앞서 저자가 행했던것처럼 다른 방법을 고안해 볼수는 없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리고 꼭 안내견이 필요할까? 하는 의문도 든다. 다른 방법을 활용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확히 이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검색을 통해 확인해본 바로는 안내견과 함께 다니는 시각 장애인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정확한 그 이유에 대해서는 확인되는 바가 없어 그저 의문으로만 남겨본다.


셋째, 안내견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수 있는 여지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러지를 심하게 앓는 사람들은 목숨이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시력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지, 내부를 어느정도 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손님이 한명이든 두명이든 숫자가 중요한게 아니다.


더불어 병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식당에 동물이 들어올거라 예상하지도 못할뿐더러 굳이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병명을 굳이 밝히며 나가라고 하지도 못한다. 상황은 이미 벌어지고 난 후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안내견일지라도 타인의 눈엔 그냥 '개'다. 그냥 나가면 된다, 멀리 떨어져 앉으면 된다는 말은 본인의 입장에서 가볍게 말하는 대처방안일뿐이다. 안내견들은 보통 덩치가 크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위협당한다고 느끼거나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주인입장에서 훈련을 잘 시키고 못시키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 존재만으로도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넷째, 거짓으로 말하는 게 문제라고 하는데 그걸 문제삼기에는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누구나 싫은 상황이나 회피하고 싶은 상황에서는 애둘러 말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 역시 그럴것이다. 또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진짜 그런 확률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법적인 것을 운운하며 합법적인 상황이다 라고 말하면 싸우자는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적 합의와 협의가 필요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법적으로 정해진 것이 현 사회에 모두 다 맞는것도 아닐뿐더러 법은 계속 개정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법보다 앞서 감정적인 부분과 불편함을 많은 사람들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여러부분에서 안내견을 무조건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인다.


누군가가 평등을 외치며 부르짖는 내용이 또 다른 이들에게는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음도 생각해 봐야 한다. 또다른 애견인들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얘는 내 가족이에요.'라며 왜 어떤 개는 되고 어떤 개는 안되냐고 말하는 이들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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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문제 2 : 장애인 vs 비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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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시작했을 당시 그렇게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

세상을 바꾸겠다, 더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겠다는 거대한 포부는 없었다. 하지만 스며들고는 싶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똑같은 일상에서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그 안에 우리가 서로에게 녹아들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208~2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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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유튜브를 통해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책에 담긴 몇몇 이야기는 보는 관점에 따라 오히려 역차별로 느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장애인이기에 어떤 면에서는 저자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다고. 물론 장애인이라는 프레임으로 차별을 가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확률적으로 봤을 때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차별과 무시를 당하는 일들이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또 그저 비장애인, 장애인 모두 불편하다 느끼지만 체감했을 때 장애인 쪽이 더 크게 느껴지기에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더불어 사회시스템의 변화가 시급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매번 싸우느라 제대로 된 안건조차 매듭 지어지지 않는 정치인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다.


혈세로 해외여행 가고, 자기 자리 지키겠다고 주먹질 하기보다 흉흉한 세상을 안전한 세상으로, 필요한 공공시설의 확충으로 정치인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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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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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흉흉한 우리네 세상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누구를 믿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졌다.


요즘은 도움의 손길이 의심이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오히려 모른척해주는 것이 미덕일 때가 있다. 이런 시국이기에 장애인 비장애인의 구분은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각자도생이기 때문에 서로 멀리하고 관심을 안 가져주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몸이 불편하기에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회안전망이나 시스템에 변화가 없는 것이 불만으로 다가올 수 있다. 왜 장애인을 차별하느냐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 모두가 그렇게 느낀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정부가, 기관이 움직이지 않는다 느낀다.


우리는 많은 붕괴를 겪고 있다. 병원 시스템의 붕괴, 교권의 붕괴, 건설의 붕괴, 자연의 붕괴 등등을 겪으며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살고 있다.


어쩌면 저자가 말하는 식당 출입에 관한 어려움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여태껏 그래왔던 다른 방법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 저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에,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저자가 말한 '긍정의 힘'이 아닐까 싶다. AI 시대에 맞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새로운 관점으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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