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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도 이뤄냈으니까
허우령 지음 / 부크럼 / 2024년 5월
평점 :
이 책은 시각장애를 앓고 있지만, 끝내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며 전진 또 전진하고 있는 KBS 아나운서 허우령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세이 책이다.
간략하게 내용을 살펴보면 처음 시력을 잃었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속에는 거침없이 꿈을 향해 질주했던 열정 어린 그녀의 노력과 장애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남모를 흉터가 담겨 있다. 또 시각 장애인의 입장에서 전하고픈 목소리를 가감 없이 담고 있는데,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총 3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각 꼭지별 주제를 통해 처음 시력을 잃게 된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파트 1에서는 처음 시력을 잃게 된 시점부터 병명을 알게 되고, 시술 후 회복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파트 2에서는 본격적으로 홀로서는 준비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지막 파트 3에서는 안내견을 만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면서 마침내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한 사람의 성장 이야기를 넘어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문제, 사회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가 얽혀있어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였는데 그렇기에 더 솔직하게 이 책을 읽고 느낀 바를 풀어보려 한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먼저 좋았던 점은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찾아온 실명을 겪고서도 꿋꿋이 자신의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쾌활한 면모로 끝까지 전진하는 모습에서 강한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져 덩달아 힘이 났다. 포기하지 말고 방법을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다음으로 아쉬웠던 점은, 정확한 눈 상태에 대한 언급이 생략되면서 헷갈리는 구간이 종종 발생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약간 보이는 듯도 하고 아예 뿌연 안개처럼 안 보이는 듯도 하고 애매 보호한 상태로 혼자 짐작하며 읽을 수밖에 없어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여러 차례 시술까지 했는데 결국 아예 보이지 않게 된 건지 아니면 약간 보이는 상태로 쭉 이어진 건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은 추후 더 자세히 언급할 예정인데, 안내견에 대한 부분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것에 대한 내용으로 3자 입장에서는 너무 장애인의 입장에 치우쳐 서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자기 입장에서 이야기하기 마련임을 충분히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안을 사회 시스템의 변화와 확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서로 이권 다툼하느라 나라는 나 몰라라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며 한숨도 나왔다.
좀 되었지만,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이 처우개선을 위한 시위 장면도 떠오르며 복잡한 감정으로 읽게 된 이 책을 이제부터 소개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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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허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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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에 '시신경염'이라는 자가 면역 질환으로 하루아침에 시각 장애 판정을 받으면서 시력을 잃은 그녀는 어느 순간 '잃어버린 걸 채워야 해' 라는 생각으로 이미 사라진 시력 대신 그 빈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이뤄내게' 된다.
특유의 따스함과 밝은 에너지를 잃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망설임 없이 잡으면서 2023년 KBS 7기 장애인 앵커로 선발된다. 27살이 된 지금은 현재 자신의 이름을 건 <허우령의 생활 뉴스>를 진행하고 있으며,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강연자로서 폭넓게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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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령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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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 단 하룻밤 사이에 저자는 시각 장애인이 된다. 그 어떤 이유도 영문도 몰랐다. 하루아침에 가족들의 얼굴도, 심지어 자신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허무하면서도 당혹스러웠던 그녀는 그렇게 14살, 갑작스러운 병원 생활이 시작된다.
눈앞은 회색빛 안개로 희뿌옇게 물들어 있었고 무언가를 보려고 하면 그 안개는 더욱 짙게 내려앉았다. 시각 장애를 갖게 된 후, 그녀는 1년 가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눈앞을 가로막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 때가 있는데, 바로 장애에 익숙해지고,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하나씩 터득해 나가면서부터다. 시각 장애가 생겼다고 인생 전체가 암울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12살 때 오른쪽 눈을 실명하고 남은 왼쪽 시력까지 떨어질 즈음, 저자의 엄마는 그 이유를 찾으려 서울에 있는 모든 병원을 돌아다니며 병원 전부를 두드렸지만 병명을 아는 곳은 없었다. 어린 저자는 이때 처음 병원에 대한 불신을 품었다고 전한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찾아간 서울대 병원에서는 조금 다른 말을 듣게 되는데, 아무래도 시신경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일산에 신경 전문으로 파견된 교수님에게 한번 가보라는 이야기였다.
희망인지, 아니면 또 다른 헛걸음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찾아간 이 병원이 다른 곳과 조금 달랐던 건 한 가지 검사를 더 했다는 점이다.
새우등 자세로 척추에 엄청 두꺼운 주삿바늘을 꽂아서 검사를 했고, 이후 모든 검사를 마친 후 일산 국립암센터의 의사는 모녀에게 처음으로 실명 원인을 말해 주게 된다.
그리고 입원을 권유받으면서 2011년 겨울, 불확실 속에서 유일하게 저자의 병을 아는 듯한 의사에게 약간 애매한 희망을 품게 된다.
초반에는 매번 수십 알 정도의 스테로이드제를 꾸역꾸역 삼켜 가며 시력을 회복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한 지 2주째에 접어들어도 앞은 여전히 뿌연 연기에 뒤덮여 있게 된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그 다음 단계의 치료법을 제시했는데 바로 '혈장 교환술'이라고 불리는 치료다.
저자의 혈장에 존재하는 질병 유발 항체를 정화하거나 결핍된 물질을 보충하는 치료법인데, 저자는 그 어떤 방법보다 이 방법을 가장 싫어했다고 한다. 혈장을 교환하기 위해 오른쪽 가슴 위에 통로 같은 관을 꽂아야 했는데 이때 가슴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말 자체가 두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무슨 치료든 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고 이 모든 게 낯설고 어려웠던 저자는 어른들의 판단에 맡겨져 할 수 있는건 씩씩하게 웃는것뿐이었다고 한다.
시술 당일, 10~20분이면 끝날 거라던 시술이 길어졌다. 소독을 하고 모든 준비를 끝냈는데, 몸에 꽂아야 하는 관이 잘못된 것을 시술실이 들어온 의사가 발견하면서 시간이 지체된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불안감도 커졌고 그래서였는지 마취 주사를 맞는 순간부터 저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고 한다.
부분 마취만 했기에 칼이 닿는 고통이 느껴졌고 현장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가 저자를 연약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용감한 척했던 가면이 벗겨졌고, 시술대 위의 자신은 무력했고 보잘것없이 느껴졌다고 한다.
이후로 저자는 총 4번 정도의 시술을 더 받으면서 서서히 관에 꽂힌 불편한 몸에 익숙해지는 방법을 찾았으며 덜 아플 용기를 되찾게 된다. 그렇게 가장 보잘것 없으면서도 용감한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알게 된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저자는 언제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도움아래 살기는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 나가기 시작한다.
첫번째는 밥 먹기로 반찬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두번째는 혼자서 병원 복도 맨 끝의 큰 창문까지 가는 일로 흐릿한 무언가에 의지해 창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공간은 답답한 병원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공간으로 그곳에 홀로 도착할때면 왠지 모를 벅참이 몸을 감쌌다고 한다.
이 모든 일이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저자에게는 이 작은 행동 하나가 자신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갈 노하우를 하나씩 찾게 된다.
이후에는 이런 작은 시도를 기점으로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데, 실명후 집과 병원뿐인 동선을 넘어 집 앞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 슈퍼만이라도 혼자 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으로 홀로 마당 문을 열어 도로변으로 나왔을 때는 심장이 뚫리는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기억속에 남아 있는 집 주변 도로 모습을 회상하며 앞으로 한 발짝씩 조심히 나아가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때는 순간 길을 잃었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이후 동생을 호출했고 또다시 바깥세상과 단절됐다.
그렇게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찾아온 씁쓸함과 답답함은 강렬히 자유를 원하게 되면서 그녀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 다시 문을 열게 된다. 혼자서 해내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일단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찾기로 한다.
그래서 두 번째 외출은 동생과 함께 하게 된다. 앞으로 먼저 걸어가면 동생에게 뒤를 봐달라고 부탁했는데, 잘 가고 있는지, 장애들은 없는지, 어디서 꺾으면 되는지 등을 살펴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새로운 지도를 그려가면서 그 후로는 자유를 위해 여러 방법을 찾게 된다. 흰 지팡이를 이용해 독립 보행을 익혔고 시간이 흘러서는 안내견 하얀이를 만나게 된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의 고립과 격리없이 자신만의 길을 밝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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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그 과정을 겪어내며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점자를 처음 경험하고 배우게 된 에피소드
>사람들과 '처음' 어울리게 된 계기를 담고 있는 에피소드
>방송부에서 처음 아나운서를 맡게 되면서 아나운서의 꿈을 키우게 된 에피소드
>색소폰을 배우게 되면서 밴드부를 통해 '어우러짐'을 배우게 된 에피소드
>어릴적 꿈이었던 화가의 꿈을 다른 방법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에피소드
>첫 해외여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된 에피소드
>새내기 대학생활의 적응기를 담고 있는 에피소드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아나운서 꿈을 이루게 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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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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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색다른 경험의 기회를 얻게 됐다. 그러면서 명확히 알게 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장애는 '극복'이 아닌 '인정'이라는 것. 그 안에서 나에게 맞는 방법을 모색하면 된다는 것이다.
1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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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언가 시련이 닥치면 '극복'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과연 극복만이 정답일까? 때로는 개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들도 일어난다. 그럴때는 '극복'이 아닌 '인정'을 해보면 어떨까?
저자는 만약 자신이 이때 '극복'하려고 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없었을것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시력의 상실은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녀는 '인정'하는것으로 다른 방법을 찾았고 이내 자신의 꿈에도 닿을 수 있었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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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후 알게 된 것이 있다면 한 번 아픔을 겪어 봤던 사람이 나중에 덜 아플 방법을 안다는 거예요. 넘어졌던 곳에서 또 넘어지고, 약해진 곳에 상처가 덧나고, 원치 않는 고통이 수시로 찾아오겠죠.
그러니 우리는 아픔의 시간을 견디며 넘어져도 약하게 다치는 법을 터득해야 해요. 당신이 갖고 있을 흉터가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믿음을 가져요.
6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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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도 시련을 경험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큰 시련을 경험하게 되면 그 고통은 상상이상으로 크다고 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고통을 겪어보는것이 어쩌면 삶에 더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수십번 넘어지면서 걸음마를 배우듯, 우리는 수없이 고통을 겪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운다. 강도가 다른 아픔과 고통에서 덜 아플 나만의 노하우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넘어졌다고, 남들보다 더 많은 시련을 겪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 그 고통과 시련만큼 당신은 더 단단해져 있을것임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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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붓이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그꿈을 부풀렸다. 내게 찾아온 장애는 꿈을 빼앗은 게 아닌 다른 그림을 그릴 새 도화지가 되었다. 그 도화지 위에 나는 생소한 걸 담아내는 중이다. 꿈에 스크래치를 긋는다는 건 내 안에 있는 무수한 가능성을 확인할 기회니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꿈에 스크래치를 긋는다. 내가 품고 있을 또 다른 색을 찾기 위해서.
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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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을 겪으면 보통은 쓰러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과 주저앉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것은 긍정적 마인드를 지녔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구분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화가의 꿈을 접지 않았다. 또다른 방법을 찾아 자신만의 가능성을 펼쳐보였다. 이것은 현재도 진행중으로 추후 어떤 독특한 발상과 방법으로 깜짝 놀래켜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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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는 단순히 새로운 언어를 넘어 내 인생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이기도 했다. 점자를 알고 나서는 나의 세계도 넓어지고 한층 더 늘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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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자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알게 됐다.
1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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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으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외국어는 물론 점자, 수화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새로운 언어를 배워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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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국 경험을 토대로 알게 된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색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편견에 갇히지 않을 나만의 색을. 그 누구도 흉내 내거나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것.
1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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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외형을 가졌고 어떤 모습이건 상관없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자신을 각인시키고 싶다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나만의 매력을 가지면 된다.
나만이 가진 색, 나만이 가진 독특한 그 어떤 것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을 통해 사람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나를 마주하게 될것이다. 저자 역시 자신만이 가진 매력을 통해 아나운서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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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걸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해요. 결핍의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해 보세요. 틈을 메운 사람은 더 단단해질 수 있거든요.
20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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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 가장 우선해야 할 점은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것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부족한지, 어려워하는지를 알아야 그다음의 방법을 논할 수 있다.
저자는 시력을 잃고 좌절하며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며 받아들였고 이후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주목했다.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할 수 있는것, 눈이 보이지 않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덕분에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림도 그리고, 아나운서도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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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볼 문제 1 : 안내견에 얽힌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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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들어가려는 나를 진상 손님 취급하는 직원에게 오히려 "얘네는 들어갈 수 있어요. 시각 장애인 안내견입니다."라고 똑바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일은 다반사였다.
(...)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한 발 한 발 세상과 가까워질수록 사회는 이런 나의 자유를 막아섰다. '개는 안 돼요.'라는 말을 들을 적에는 코앞에서 문전박대당한 기분을 지우기 어려웠다.
1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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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손님도 몇 없었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손님들의 알레르기를 걱정하며 나를 식당 밖으로 이끌었다. 하얀이와 3년을 함께하면서 안내견 거부를 엄청나게 겪었다.
(...)
이런 상황에서 '정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해?'라는 물음을 받기도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자리를 피할 수 있다. 혹은 그 사람과 떨어져 멀리 앉으면 된다. 이걸 거짓으로 말하는 게 문제다.
20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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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건 안내견이 법적으로 어디든 시각 장애인과 출입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20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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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견에 얽힌 일화를 듣고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더불어 안내견에 대해 몰랐던 점도 알게 되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선을 넘어 그냥 여러 관점을 종합해 이야기해보자면, 저자가 말하는 안내견에 대한 내용은 좀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일단 안내견을 맘대로 만지면 안된다는것, 먹이를 주면 안된다는 것, 말을 걸면 안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또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부분이라 여러 방면으로 홍보가 되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위에 언급된 내용들은 솔직히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만 서술된 한쪽 입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식당에서 진상손님 대접 받는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아이들이나 특정 노인층도 거부당하는 세상이다.
식당 주인의 입장에서는 한명의 손님 때문에 다수의 손님이 불편을 겪는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막을 수 있다. 물론 안내견에 대한 지식이 있거나 혹은 센스있는 사장님들의 경우 큰 목소리로 다른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말을 먼저 할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세상과 가까워질수록 사회는 저자의 자유를 막았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비단 저자뿐만이 아니다. 장애인 비장애인 할것 없이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식당을 맘대로 출입할 수 없는 자유를 뺏겼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돈을 벌 자유, 직장을 얻을 자유, 결혼할 자유, 아이를 낳을 자유, 꿈을 이룰 자유, 집을 살 자유 등을 잃었다. 반면 저자는 적어도 꿈과 경제력 등은 얻었다고 생각한다. 각자 저마다의 자유를 빼앗기며 살고 있는 것이 현 시대다.
여기에 더해 만약 계속해서 안내견으로 인해 거부를 당한다면 앞서 저자가 행했던것처럼 다른 방법을 고안해 볼수는 없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리고 꼭 안내견이 필요할까? 하는 의문도 든다. 다른 방법을 활용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확히 이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검색을 통해 확인해본 바로는 안내견과 함께 다니는 시각 장애인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정확한 그 이유에 대해서는 확인되는 바가 없어 그저 의문으로만 남겨본다.
셋째, 안내견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수 있는 여지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러지를 심하게 앓는 사람들은 목숨이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시력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지, 내부를 어느정도 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손님이 한명이든 두명이든 숫자가 중요한게 아니다.
더불어 병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식당에 동물이 들어올거라 예상하지도 못할뿐더러 굳이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병명을 굳이 밝히며 나가라고 하지도 못한다. 상황은 이미 벌어지고 난 후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안내견일지라도 타인의 눈엔 그냥 '개'다. 그냥 나가면 된다, 멀리 떨어져 앉으면 된다는 말은 본인의 입장에서 가볍게 말하는 대처방안일뿐이다. 안내견들은 보통 덩치가 크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위협당한다고 느끼거나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주인입장에서 훈련을 잘 시키고 못시키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 존재만으로도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넷째, 거짓으로 말하는 게 문제라고 하는데 그걸 문제삼기에는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누구나 싫은 상황이나 회피하고 싶은 상황에서는 애둘러 말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 역시 그럴것이다. 또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진짜 그런 확률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법적인 것을 운운하며 합법적인 상황이다 라고 말하면 싸우자는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적 합의와 협의가 필요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법적으로 정해진 것이 현 사회에 모두 다 맞는것도 아닐뿐더러 법은 계속 개정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법보다 앞서 감정적인 부분과 불편함을 많은 사람들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여러부분에서 안내견을 무조건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인다.
누군가가 평등을 외치며 부르짖는 내용이 또 다른 이들에게는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음도 생각해 봐야 한다. 또다른 애견인들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얘는 내 가족이에요.'라며 왜 어떤 개는 되고 어떤 개는 안되냐고 말하는 이들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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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문제 2 : 장애인 vs 비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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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시작했을 당시 그렇게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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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겠다, 더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겠다는 거대한 포부는 없었다. 하지만 스며들고는 싶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똑같은 일상에서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그 안에 우리가 서로에게 녹아들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208~20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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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유튜브를 통해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책에 담긴 몇몇 이야기는 보는 관점에 따라 오히려 역차별로 느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장애인이기에 어떤 면에서는 저자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다고. 물론 장애인이라는 프레임으로 차별을 가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확률적으로 봤을 때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차별과 무시를 당하는 일들이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또 그저 비장애인, 장애인 모두 불편하다 느끼지만 체감했을 때 장애인 쪽이 더 크게 느껴지기에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더불어 사회시스템의 변화가 시급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매번 싸우느라 제대로 된 안건조차 매듭 지어지지 않는 정치인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다.
혈세로 해외여행 가고, 자기 자리 지키겠다고 주먹질 하기보다 흉흉한 세상을 안전한 세상으로, 필요한 공공시설의 확충으로 정치인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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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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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흉흉한 우리네 세상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누구를 믿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졌다.
요즘은 도움의 손길이 의심이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오히려 모른척해주는 것이 미덕일 때가 있다. 이런 시국이기에 장애인 비장애인의 구분은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각자도생이기 때문에 서로 멀리하고 관심을 안 가져주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몸이 불편하기에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회안전망이나 시스템에 변화가 없는 것이 불만으로 다가올 수 있다. 왜 장애인을 차별하느냐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 모두가 그렇게 느낀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정부가, 기관이 움직이지 않는다 느낀다.
우리는 많은 붕괴를 겪고 있다. 병원 시스템의 붕괴, 교권의 붕괴, 건설의 붕괴, 자연의 붕괴 등등을 겪으며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살고 있다.
어쩌면 저자가 말하는 식당 출입에 관한 어려움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여태껏 그래왔던 다른 방법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 저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에,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저자가 말한 '긍정의 힘'이 아닐까 싶다. AI 시대에 맞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새로운 관점으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