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 (평행우주 에디션)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어 그저 막연히 궁금하던 책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완독을 하면서 그 명성과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가슴에 콱 박히는 문장들을 통해 어쩌면 그동안 너무 부정적 관점과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새삼 반성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여러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이를테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님에도 섣부르게 포기한 것은 아닐까, 너무 서두르는 마음에 조금 더 기다려 볼 것을 너무 조급했던 것은 아닐까, 삶의 부산물에 갇혀 하나의 감정에만 너무 몰입했던 것은 아닐까, 내 안에 나와 다른 말을 하면서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와 같은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후회 속에 가려진 진실과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결핍된 것, 사소한 것의 중요성 등 여러 면에서 나를 돌아보고 알아가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살아가다 보면 무수히 많은 후회들이 찝찝한 죄책감과 무게감으로 마음 한구석에 남아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꾸만 제동을 걸곤 하는데, 이 책을 통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후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리할 수 있었다.

 

만약 살아보지 않은 삶 혹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후회와 자책에 늘 마음 졸이고 미련이 강하게 남아있다면 이 책의 주인공인 '노라'의 또 다른 삶을 살아보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허점을 확인해 보기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살면서 한 번쯤 하게 되는 후회와 그 후회를 되돌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빚어낸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자정의 도서관)'는 어쩌면 우리가 가장 바라지만 다시는 가질 수 없는 두 번째 기회이기에 더 특별하고 소중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쉽게 포기하고, 쉽게 무너지는 마음 덕에 우울과 불안 속에 살면서 마침내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고야 마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소설 속 '노라'와 많이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자신만의 판타지 세계 속에 이러한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투영시켜 후회를 되돌릴 수 있는 기회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탄생시킨다. 이 도서관을 통해 후회를 되돌릴 수 있는 무한정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킨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에는 단 한 명의 의미 있는 가이드가 존재하는데, 그녀는 선택의 기로에서 헤맬 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노라는 서른다섯 살의 나이에 죽기로 결심한다. 온통 후회로 얼룩진 삶에서 더 이상 자신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후회로 뒤범벅이 된 채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선 그녀는 마침내 밤 12시, 죽기 바로 전에만 열리는 마법의 도서관에 입장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없을 인생의 두 번째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 기회들은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데, 이를 지켜보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또 무엇을 되돌리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만약 후회하는 일을 되돌릴 기회가 생긴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쌓였던 불안과 우울, 공포, 그리고 자괴감. 여기에 더해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낮은 자존감은 어느새부턴가 노라 자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오빠가 있었지만 어느새부턴가 사이가 서먹해졌고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 노라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다.

 

이 도시를 떠나는 것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없다며 자신을 그저 내리누르기만 했던 그녀에게 서른다섯 살의 그날, 연달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가왔던 불행들은 더 이상 삶을 버텨낼 수 없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어머니의 죽음, 파혼에 더해 악기점에서의 해고, 반려 고양이 볼츠의 죽음, 외면하는 오빠, 단짝 친구 이지와의 연락 두절, 피아노 강습 중단, 옆집사는 배너지 씨에게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자신의 모습 등을 발견하며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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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는 삶의 목적을,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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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끝이었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우주에서 불필요한 존재였다.
(...)
죽기로 결심하기 세 시간 전, 노라의 온몸이 후회로 욱신거렸다.

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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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세상에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그녀가 둔 모든 수는 실수였고, 모든 결정은 재앙이었으며, 매일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에서 한 걸음씩 멀어져 가는 것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마지막 결정을 내리고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그동안 포기했던, 혹은 선택하지 못했던 삶에 대한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오게 된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떠서 본 손목의 디지털시계는 00:00:00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자신이 서 있는 곳은 온통 초록색의 책들로 가득 찬 처음 보는 도서관 안이었다.

 

그곳은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에 자리한 자정의 도서관으로, 한때 자신과 체스를 두곤 했던 엘름 부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가이드 역할을 하며 노라가 후회되는 삶을 다시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수행했는데, 노라가 부정적 생각을 하며 죽음 쪽으로 추가 기울어질 때마다 뼈 있는 조언으로 다시금 일깨워주는 역할도 도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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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자정의 도서관)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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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들은 네가 살았을 수도 있는 모든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야.
(...)
너에겐 선택의 경우만큼 많은 삶이 있어. 그리고 그 선택은 다른 결과로 이어져. 하나만 달라져도 인생사가 달라진단다. 자정의 도서관에는 그런 인생들이 모두 존재해. 너의 이번 삶만큼이나 실재하지."

51~5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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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과거는 없다.
■도서관에 담긴 모든 책들은 노라의 인생이자 모든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만약 바꾸고 싶은 다른 인생이 있다면 그냥 고르면 된다.
■도서관은 죽은 자들의 도서관이 아니며 가능성의 도서관이다.
■만약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을 발견하면 늙어서 죽을 때까지 그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머릿속에 있는 모든 기억은 자정의 도서관을 포함해 아주 희미해지면서 그 속에 녹아들게 된다.
■배경은 늘 감정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로, 어떤 이에게는 도서관이 아닌 비디오 가게로 나타나기도 한다.
■거기에는 늘 단 한 명의 가이드가 존재하는데, 그들은 원래 삶에서 중요한 순간에 이동자를 도와줬던 사람들 중 하나다.
■도전해 볼 수 있는 무수한 삶들은 원래 삶이나 거기서 뻗어 나간 가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동자들은 모두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으며 가슴에 후회가 가득한 사람들이다.
■도서관에는 가능성이 무한하며, 당신을 제한하는 건 오로지 당신의 상상력 뿐이다.
■이건 아주 드문 기회로 어떤 실수든 되돌릴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어떤 삶이든 살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자정의 도서관의 시간이 자정에 머무는 한 무한한 삶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만일 여기서 시간이 흐른다면 그건 무언가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뜻으로 도서관이 완전히 무너지고, 우리도 사라져버릴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도서관은 오로지 노라를 위해 존재하며, 모두 노라의 삶이고 같은 시간, '자정'에 시작한다. 하지만 이 자정의 가능성이 모두 똑같지는 않으며 비슷한 삶들도 있지만 아주 다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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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의 책>

엘름 부인으로부터 받은 회색 책은 '후회의 책'으로 노라의 모든 문제의 근원과 해답이 담겨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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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우주 사이에 있는 게 무엇이든 도서관은 아닐 확률이 높지만 내게는 그것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었네요. 그게 내 가설이겠고요. 나는 진실의 단순화된 형태를 본 거예요. 사서는 그저 정신적 메타포고요. 모든 게 다 그렇겠지만."

215~2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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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에게 삶과 죽음의 단계에 머무르는 장소가 '도서관'으로 선택된 것은 노라 자신이 인지하는 데 있어 가장 납득이 쉬운 장소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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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로 남은 삶으로의 여행 1
타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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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댄과의 결혼, 그리고 펍을 운영하는 꿈
시골에서 펍을 함께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 댄. 그의 열정에 끌린 노라는 그와 연인이 되어 결혼하기로 약속하지만, 엄마의 죽음과 함께 불현듯 느낀 두려운 마음 때문에 돌연 파혼을 선언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도전 후
펍 주인이 되는 꿈을 이뤘으나, 막상 살아본 현실은 자신이 외면했거나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현실을 다시금 깨우치게 되면서 오히려 자신이 꿈꾸던 삶이 아님을 알게 된다.

 

 

2. 친구 이지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에 가서 사는 꿈
이지와 함께 모든 계획을 세워두고 바이런 베이 근처에 살면서 고래 크루즈에서 일할 예정이었으나 이유 없이 그 계획에서 발을 뺀 노라.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도전 후
현실은 냉혹했고 친구인 이지는 불의의 사고로 함께 하지 못함을 알게 된다. 꿈꾸던 이상과 완전히 달랐던 현실 속 비참함을 알게 된다.

 

 


3. 수영선수가 되는 꿈
아버지가 아낌없이 지원했던 수영선수를 그만두면서 아버지와의 유대감도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사춘기에 남들에게 노출되는 것이 싫었던 노라는 수영선수로 성공하기를 바라며 무조건 밀어붙이는 아빠도 버거웠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도전 후
아빠를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희생하고 수영선수로 성공했지만 외로웠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 수영선수는 그저 아빠의 이기적인 바램에서 비롯된 '희망'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이 삶 또한 포기하게 된다.

 

 


4. 북극에서 빙하 연구원으로 사는 꿈

집을 떠나 어디로도 가지 못하게 하는 엄마, 그리고 세상의 이목이 싫었던 노라는 주로 자신의 아지트인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때 자신과 가장 주파수가 맞는 엘름 부인과 대화를 하며 북극에 관심이 생기고, 빙하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포기하게 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도전 후
곰을 마주치게 되어 죽음의 순간에 놓이는 순간 문득 자신이 '죽음'이 아닌 '살기'를 희망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것은 노라에게 있어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되는데, 이것 외에도 실제 경험한 연구원의 꿈 역시 자신이 진짜 바라던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시 돌아온다.

 

 


5. 밴드 멤버로 사는 꿈
오빠와 오빠의 절친 라비와 함께 라비린스라는 밴드 멤버로 사는 꿈을 포기하게 되면서 오빠와는 멀어졌고 관계는 소원해졌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도전 후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유명인으로서의 삶은 달콤함만을 주진 않았다. 숭배와 공격이 뒤섞인, 달콤 쌉쌀한 칵테일 같은, 키스해 주는 동시에 뺨을 때리는 이중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노라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했던 삶 역시 거기 없었다. 

 

 


>>>>지금까지 노라가 선택했던 삶은 사실 모두 다른 사람의 꿈이었다. 결혼해서 펍을 운영하는 것은 댄의 꿈이었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는 것은 이지의 꿈이었으며,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빠의 꿈이었다. 노라가 어릴 때 북극에 관심이 있었고 빙하학자가 되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꿈마저도 학교 도서관에서 엘름 부인과 나눈 대화에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라비린스는 늘 오빠의 꿈이었다.



타인이 원하는 꿈을 살아본 노라는 마침내 진정으로 살아볼 가치가 있는 인생을 발견하려면 더 큰 그물을 던져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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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로 남은 삶으로의 여행 2
자신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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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엘름 부인이 했던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은 노라는 이제 진짜 자신이 찾던 꿈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서가에서 많은 책을 꺼내 다양한 삶을 맛보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으면서 후회를 되돌리는 것이 소원을 이루는 진정한 방법임을 알게 된다.

 

더불어 노라 자신이 삶을 끝내려고 했던 이유가 '불행'해서가 아니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1. 동물들과 함께 하는 삶, 동물보호소에서 일하는 꿈

▶새로운 도전 후
그저 꿈꾸던 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생각만큼 편안하거나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현실의 한계를 알게 된다. 더불어 마치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은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안고 도서관으로 돌아온다.

 


2. 부부가 함께 포도밭을 운영하는 꿈을 꾸고 마침내 이루는 삶

▶새로운 도전 후
이 삶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노라는 다른 것들, 다른 삶, 다른 가능성을 갈망하게 되면서 여전히 허공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실패

 

 


>>이처럼 새로운 삶을 살 때마다 상상력이 점점 더 발달하면서 비유 속 문이 조금씩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정작 노라는 자신이 누군지 전혀 모르게 된다. 다시금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에 엘름부인은 모든 책이 잠재적 출구라며 삶을 이해할 필요 없으며 그냥 살면 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노라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형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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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네가 누군지 잊어가고 있는 거야. 모든 사람이 되다 보니 아무도 안 되는 거지. 네 원래 삶을 잊어가고 있어. 네게 효과가 있던 것과 없던 것, 후회했던 것들을 잊고 있는 거야."

3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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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근차근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 엘름부인은 '중요한 건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라고 말하며 인식을 통해 모든 해답은 노라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왜 자신을 떠올렸는지를 묻고, 이에 자신이 믿었던 사람이었으며 친절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노라에게 원래 삶에서 그런 친절을 또 언제 느꼈는지를 묻는다.

 

엘름 부인과의 대화를 통해 마침내 또 다른 큰 친절을 깨달은 노라는 자신이 다시 도전해야 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3. 애쉬와 함께하는 날을 선택하는 삶

▶새로운 도전 후
이번 삶은 꽤 좋았다. 짜증 날 정도로 좋았다. 그리고 잠시나마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비어있던 사실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자신이 원했던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삶에서 머무르며 살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 깊숙한 곳에는 '내가 만든 삶'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완벽한 삶에 그저 들어간 것 같다는 생각이 스며든다. 마치 창문 너머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마치 자신이 사기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끌려가듯 도서관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이 삶을 선택함으로써 원래 삶의 다른 단면을 보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삶 속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그것은 '사랑의 부재'였다.

 

 


>>어느새 멈춰 있던 도서관은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고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노라에게 엘름부인은 도서관은 널 죽이려고 무너지는 게 아니라 네게 돌아갈 기회를 주기 위해 무너지는 거라며 돌아가서 계속 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마지막에 또다시 포기하려는 그녀에게 감히 포기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엘름부인의 외침 덕분에 결국 노라는 중간지점에서 다시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돌아온 노라는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곳이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 바로 그곳 임을 깨닫게 되면서 꽤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은 죽을 결심을 한순간과 똑같았지만 모든 게 달라졌음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더 이상 그녀가 다른 사람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이제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목표만 생각하며 자신만 책임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살기로 한 선택 덕에 노라는 삶이 얼마나 광활한지 경험했고, 그녀가 봤던 그 광활함 속에서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일뿐 아니라 느낄 수 있는 감정도 한없이 다양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녀는 이제 희망을 얻었고 이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또 일상을 즐기며 음악을 행복하게 들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자신을 그토록 무겁고 고통스럽게 짓눌렀던 '후회의 책'이 활활 타버려 재만 남았다는 것에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실제로 끔찍했던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 그녀의 일상은 행복한 일들로 가득 찬다. 오빠와의 관계를 회복했으며, 잃어버린 친구 이지로부터 답장도 받는다. 그리고 옆집 배너지씨에게 이웃으로서의 새로운 쓰임을 발견한다.

 

또 레슨 수강을 다시 하게 되었고, 다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지닌 자신의 미래를 꿈꾸게 된다. 여기에 더해 노인이 된 엘름 부인을 다시금 찾아가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생으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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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의 우울은 어디에서 기반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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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불행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엮어 그녀가 결국 '자살'을 결심하지만, 실상 그녀의 우울을 들여다보면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DNA에 속에 뿌리 깊이 새겨진 실패의 패턴에서 꼽을 수 있다.

 

1)외할아버지(로렌조)
런던에서의 멋진 꿈을 꾸었지만 실상 자신이 취업한 벽돌 공장이 런던이 아닌 베드퍼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꿈과 타협했고 그곳에 정착하면서 퍼트리샤 브라운이라는 영국 여자와 결혼하여 불행한 삶을 이어나간다.

 

2)외할머니(퍼트리샤 브라운)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교외에서 가정주부로 사는 재미없고 일상적인 연극을 선택한다. 그리고 결혼한 지 1년 안에 딸(노라의 엄마=도나)를 낳게 된다.

 

3)노라의 엄마(도나)
끊임없이 싸우는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결혼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제도라고 믿게 된다. 그러다 신경쇠약에 걸렸고 그 일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복직을 영영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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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패의 패턴을 노라에게 넘겨주었고 노라는 오랫동안 그걸 쥐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렇게 많은 일을 포기했는지 모른다. 그녀의 DNA에 넌 실패해야만 한다고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19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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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경험한 사람만이 성공의 맛을 안다. 하지만 노라의 가족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실패의 패턴을 답습했음을 알 수 있다. 반복되는 실패는 곧 우울과 좌절, 공황장애, 깊은 상심을 가져온다.

 

 


●두 번째는 불행한 가족관계를 꼽을 수 있다.
노라는 오빠와 달리 꽤 여러 방면에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주변 사람들의 기대나 꿈이었을 뿐 정작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오랜 시간 지속하기 어려웠다.

 

1)아빠와의 어그러진 관계
아빠가 유일하게 노라에게 지원했던 수영은 사실 자신의 대리만족을 위한 꿈이었다. 하지만 노라가 이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이후 그들의 관계는 완전히 어긋나 버린다. 그리고 어느 날 아빠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게 된다.

 

2)엄마의 죽음
부모님의 잦은 싸움, 애정이 아닌 바로잡아야 할 실수처럼 대하는 엄마의 태도, 그리고 결혼식을 석 달 앞두고 난소암으로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 엄마에게서 노라가 느낄 수 있는 건 부정적인 감정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랑의 부재로 인해 노라는 엄청난 슬픔과 우울에 빠지게 된다.

 

3)오빠(조)와의 불편한 관계
자신이 하고 싶었던 라비린스 밴드가 계약을 앞두고 갑자기 노라가 빠지게 되면서 밴드는 해체된다. 그리고 노라와는 완전히 연락을 단절해버린 오빠로 인해 노라는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떠안게 된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인해 도저히 밴드 활동을 진행할 수 없었던 사정은 모두 무시된 채 그저 함께 끝까지 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모든 비난과 화살은 오로지 노라가 받게 된다.

 

 


>>노라는 꽤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에게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지 못했고 누군가의 꿈 혹은 대용품으로 취급당한다. 그러면서 우울증, 공황장애 등을 심하게 겪게 되는데, 주변에서는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다. 여기에 더해 여러 불행들을 한꺼번에 겪으면서 어느새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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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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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다'는 건 재미있는 말이야. 그건 결핍을 의미하지. 가끔씩 그 결핍을 다른 걸로 채워주면 원래 욕구는 완전히 사라져. 어쩌면 넌 무언가를 원한다기보다 무언가가 결핍된 것일지 몰라."

9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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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싶다'라는 의미를 그저 욕구라고만 생각했는데, 다른 시각에서 봤을 때 그것이 '욕구'가 아닌 '결핍'이라는 색다른 관점의 해석을 배울 수 있는 문장이었다.

 

이 말대로 '잠을 자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 때 어쩌면 우리는 잠이 부족한 결핍 상태일지도 모른다. 이때 이것을 대신할 방법으로 식사를 해보면 어떨까? 아니면 게임을 하며 신나는 취미 시간을 가지면 어느새 수면욕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어떤 결핍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채울지도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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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후회는 전혀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단다. 가끔은 그냥... 완전 개구라야."

1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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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담긴 문장 중 특히 인상적인 문장이었는데, 우리가 하고 있는 후회가 모두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어떤 것들은 허구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는 상상 혹은 추측에서 발생한 후회로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믿고 있는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너무 많은 후회의 무덤에 둘러싸여 진실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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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몇 가지 시도를 해봐야 해. 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어."

1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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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문장으로, 마음속으로만 머릿속으로만 고민하고 생각해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알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고 싶다면 실제로 그 삶을 살아보는 것에 주저하지 말자.

 

이와 더불어 어느 누구도 추측만으로 타인의 삶을 함부로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말자. 직접 살아보지 않은 삶을 평가할 자격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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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라. 그 말을 늘 명심해야 해"

127~12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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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의 힘은 생각보다 굉장히 강력하다. 비즈니스를 할 때도, 가족 관계에서도, 연인 사이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사소한 것을 챙기고 주고받는 행위는 강력한 신뢰감을 형성한다.

 

이것은 나의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데, 내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평소 사소한 습관은 어떠한지를 눈여겨본다면 생각지 못한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것은 물론 삶을 바꿀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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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의 책>이 얇아지고 있어. 이제 그 책은 여백이 많아졌단다.... 넌 평생 네 속마음과 다른 말을 하면서 산 것 같구나. 그게 네 장애물이었지.

(...)

그것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했어. 이젠 너의 진실을 보려고 노력해야 해. 그건 중요하니까."

224~2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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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라는 이름 아래 어쩌면 우리는 제대로 된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책과 후회에 집중하느라 지금 내 마음이 원하는 것, 향하는 방향을 못 본 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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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삶에만 갇혀 있는 동안에는 슬픔이나 비극 혹은 실패나 두려움이 그 삶을 산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 것들이 단순히 삶의 부산물일 뿐인데 우리는 그게 특정한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이해하면 사는 게 훨씬 쉬워질 거예요. 슬픔은 본질적으로 행복의 일부라는 사실도요. 슬픔 없이 행복을 얻을 수는 없어요. 영원히 순수한 행복에만 머물 수 있는 삶은 없어요. 그런 삶이 있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더 불행하게 느껴질 뿐이죠."

25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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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에 갇힌 인생을 살다 보면, 살면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그렇게 삶을 산 전부이며, 걸과 값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슬픔은 단지 행복의 일부일 뿐 수많은 감정 중 하나라는 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슬픔을 느끼기에 우리는 행복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행복'만을 원하는 삶을 원한다면 그 사람은 매일이 불행한 삶일 것이다. 그저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조금은 사는 게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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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넌 그걸 깨달아야 해. 체스판에 폰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경기는 끝난 게 아니야.
(...)
넌 그저 계속 앞으로 나아갈 방법만 찾으면 돼.
(...)
가장 평범해 보이는 게 나중에는 널 승리로 이끄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야. 넌 계속 나아가야 해."

2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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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에서 많이 언급되는 이 문장은 우리의 삶에도 대입해 볼 수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자.

 

후반전에 지고 있다고 일찍이 포기하는 삶은 이제 그만두자. 언제든 짜릿한 역전승을 이뤄낼 수 있음을 기억하자. 포기보다 앞서서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나아갈지, 그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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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행동하는 거란다."

2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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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행동'해야 한다. 마음속에, 머릿속에만 담아 두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단 시작하자.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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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덫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은 그저 마음의 속임수일 수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포도밭을 소유하거나 캘리포니아 석양을 봐야 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넓은 집과 완벽한 가정도 필요치 않다. 그저 잠재력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노라는 잠재력 덩어리였다. 왜 전에는 이걸 몰랐는지 노라는 의아했다.

382페이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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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혹은 느끼기 위해 어떤 전제 조건을 앞세우는 경우가 있다. 돈이 있으면, 집이 있으면, 좋은 배우자가 있으면 행복해질 거야라던가, 피부가 좋으면, 쌍꺼풀이 있으면, 날씬하면 더 예뻐질 거야 같은 가정을 담보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우리 마음속의 속임수일 뿐이다. 있는 그 자체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으며 예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스스로 가진 장점과 매력을 찾아보자. 어쩌면 당신도 노라처럼 전제조건을 앞세우느라 자신의 잠재력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판타지와 현실의 최강 조합으로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노라를 완전히 해방시켜 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으며 어쩌면 꽤 많은 사람들이 '후회'라는 틀에 갇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후회와 자책으로 마음을 쓰고 있는지 알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데,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는 그런 후회와 자책에 얽매여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막상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 삶이 생각만큼 행복하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풀린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을뿐더러 훨씬 더 후회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충분히 알았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은 분명 조금 아쉬울 수 있지만, 지금 내가 선택한 삶에 조금 더 충실해 보는 것, 그리고 더 많은 나의 장점을 사랑하고 경험하면서 미래의 기회를 더 확장시켜 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내가 원하는 삶과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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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자녀와 함께 떠나는 유럽 자존감여행 - 2024~2025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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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추억은 물론 자존감까지 키울수 있는 여행방법이 담겨있는데, 기본적인 여행정보 및 아이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행방법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여러모로 도움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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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베트남 북부 & 하노이, 퐁냐케방 - 2023-2024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김경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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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천년의 도시 하노이에서는 오래된 전통과 식민지 시대의 프랑스풍 건물들을 만나볼 수 있으며, 석회암 지역인 퐁냐케방지역에서 다양한 동굴을, 또 소수민족이 사는 마을에서는 다양한 전통공연과 볼거리등을 볼 수 있어 심심할 겨를이 없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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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날 그리워하게 될 거야
박영유 지음 / 뜻밖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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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겪어보는 3년의 팬데믹 시기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어떤 이들은 새로운 수업방식과 직장 생활에 어리둥절 헤매느라 시간을 보냈던 이들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오히려 그 시간을 반기며 즐겼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떠나보낸 이들에 대한 상실과 아픔으로 멈춘 것 같은 시간을 고요히 흘려보내며 보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온 세상이 전염병으로 고군분투하던 시기 인생 첫 고양이를 잃으며 한동안 폐인처럼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다 상실과 슬픔을 이겨내고자 시작한 엽서 쓰기를 통해 위로와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가면서 마침내 일상을 찾게 된다.

 

이 책은 그때 마음을 다잡으려 엽서에 기록으로 남긴 '글'과 '그림을 곁들인 글씨'들을 엮어 만든 책으로, 당시 느꼈던 무기력과 공허함, 상실감을 겪는 과정은 물론 그것들에서 서서히 벗어나 자신감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마음을 다독이고, 작은 목표를 하나씩 이뤄나가며 마침내 찾게 된 일상, 이제 저자는 더 이상 내일을 걱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흔들리는 순간이 와도 늘 하던 일들을 하며 무게중심을 잡는 법을 배웠다.

 

방향이 옳다면 틀린 길은 없음을 알았고, 느리게라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언제든 도착하게 된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또 일단 발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만약 지금 상실이나 좌절, 우울감, 바닥으로 치닫는 인생 곡선을 경험하고 있다면, 저자가 그 과정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자신만의 일상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는 그녀가 사랑한 참새 '공방이'와 인생 첫 고양이 '꼬식이'의 식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팬데믹 시기 잃어버린,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점으로 어떻게 일상을 토닥이고, 회복하는지 또 그것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울지 않으면 잠을 자면서 보냈던 몇 달,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거울을 통해 마주한 형편없는 내 모습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저자가 하루 한 장, 흩어진 마음을 담기 시작하면서 모이게 된 작은 마음들에는 고양이들을 그리워하고, 그날의 기쁨을 찾고, 하루를 반성하고, 스스로 토닥이던 그 마음들이 담겨 있다.

 

그렇게 애도하는 마음으로 백일을 보내고 난 뒤, 어느새 엽서를 쓰는 일은 새로운 일상이 된다. 누구에게도 섣불리 건넬 수 없었던 이야기들은 이제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글과 그림을 담은 글씨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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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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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9일을 함께 한 참새 공방이
2022년 겨울이 올 즈음, 우리 손 위에서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긴 잠이 들었다.

 

■마당냥 꼬식이 가족(꼬식이, 쪼식이, 아가냥들)
고양이 전염병은 손쓸 틈도 주지 않고 꼬식이 부부와 고작 한 줌에 지나지 않았던 아기냥 세 마리까지 휩쓸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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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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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 그렇게 사랑했을 줄도 몰랐다. 세상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마음을 장담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호되게 아프고도 마당에 다시 등장한 치즈에게 황태식 씨라고 이름을 붙였다.

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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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항상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늘 떠나버린 뒤에서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어쩌면 큰 상실감을 겪고 난 뒤 다시는 마음을 주지 않겠다 다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장담한 것이 무색하게도 또 마당에 등장한 치즈 고양이에게 마음을 빼앗겨 어느새 이름까지 지어주는 일을 하게 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난다고 하는데, 어쩌면 마음 아파하는 저자를 위로하고자 꼬식이의 자리를 새로운 황태식씨가 채워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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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압이 낮은 남극에서 물을 끓이면 85도에서 끓는다고 한다. 그래서 라면이 설익는단다.
(...)
연기도 안 나는 매생이국은 아무 생각 없이 떠 넣었다간 입안이 홀랑 까질 만큼 뜨겁다.

보는 게 다가 아니다. 역시 인생은 너무 어렵다.

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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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게 다가 아니라 어려운 인생, 하지만 알 수 없기에 어쩌면 살 만한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늘 불행하거나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기에.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두 번 걸은 저자. 엄마와 프랑스 길을 한 번, 저자 혼자 북쪽 길을 또 한 번.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길을 걷고 싶었고 오래 계획했다. 그러나 막상 그 길에 올라선 시기는 저자 인생 최악의 때로 그냥 세상 다 귀찮았다.

 

엄마와 저자는 그 길에서 가장 느린 순례자였다.

 

엄마는 환갑을 넘었고, 저자는 당시 150킬로그램을 넘겼다.

 

걷기에 최악의 조건을 자랑하던 이들은 남들은 보통 34일 걸린다는 그 길을 무려 60일이나 걸려서 결국 완주했다. 그리고 8백 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병치레를 했다.

 

생각보다 까미노를 걷다가 세상을 뜨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저자가 걷는 동안 5명이 죽었다.

 

한국을 떠날 때 잘 다녀오라고 말했던 저자의 지인들 대부분이 뒤에서는 완주 못할 거라고 걱정했단다. 그들은 어떻게 그걸 견뎠냐며 묻곤 하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하곤 한다.

 

"응, 잔병으로 큰 병을 이기면서 걸었어!"

 

남들이 말하는 그 악조건들 덕분에 무리 자체를 할 수가 없는 몸을 가진 그들은 큰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고 단언한다.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닐 때도 있다며.

 

60일 동안 그렇게 먹고 걷고 빨래하고 자는 것을 반복하는 '단순한 삶'은 계속되었다. 시작할 때는 땀에서 소금이 나올 정도로 더웠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할 무렵에는 새벽에 서리가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고생 끝에 도착한 종착지에서 저자는 충격을 받는다. 그 이유는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어서였다. 단 하나 궁금했던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지 않을까 했는데, 흔한 감격의 눈물도 안 나왔다고 한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일상 그대로였다. 왠지 웃음이 났다. 허무한 기분도 들었지만 이상하게 유쾌해지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죽을 듯 힘들어 하고 고민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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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60일 동안 반복했던 먹고 걷고 빨래하고 자는 단순한 삶은 내 나이만큼 쌓여 있던 마음의 병을 위한 재활 훈련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서 아무리 힘들게 잠이 들어도 다음날 아침에는 상쾌하게 걸을 수 있고 걷고 싶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원리를 알고 나니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그 시간들이 지나갈 때까지 덜 불안해하며 다음 단계를 기다릴 수 있는 요령도 생겼다.

 

나는 더 이상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질문만큼 쓸데없는 질문이 없더라.

90~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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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호기심과 열정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그 길에 들어선 시점은 자신의 인생에서 최악의 고점을 찍던 시기였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출발한 그 여정은 꽤나 험난했다. 여러모로 악조건이었고 가는 길에 죽는 사람도 여럿 목격한다. 그래도 걷고 또 걸었다. 포기하지 않고 걸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도착한 목표점에서 저자는 허무함과 허탈감을 느끼는데 유일하게 찾고자 했던 '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커녕 일상에서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여정이 그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난 것은 아니었는데, 먹고 자고 걷는 단순한 여정을 60일간 진행하면서 삶이 단순해졌기 때문이다.

 

죽을 듯 고민하고 힘들어하던 일들이 사실은 별거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의미 없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하지 않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난 이들이 공통적으로 장점으로 꼽는 것은 삶의 단순성이다. 떠나기 전에는 무언가 거창한 것을 깨닫게 되리라 기대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이 돌아온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온 덕분에 삶이 단순해지고 간결해진다. 왜 태어났을까 와 같은 쓸데없는 질문들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고, 물집이 잡혀 걷기도 힘든 나날들을 걸으며 저자는 복잡한 생각들을 다시금 떠올릴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어려운 일이 생겨도 오뚝이처럼 다시 벌떡 일어날 수 있는 힘과 견딜 수 있는 요령을 깨우쳤다고 하니 생각을 털어내고 싶을 땐 저자처럼 먼 길을 뚜벅뚜벅 걸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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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인지 모르는 길을 걷더라도 방향이 옳다면 틀린 길은 아니다. 확인되지 않는 시간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느린 걸음이든 무거운 걸음이든 멈추지 않는다면 도착하게 된다.

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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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향 설정만 제대로 한다면, 어떻게 걸어도 상관없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속도를 올려 무리하지 않아도 그저 멈추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도달하기 마련임을 깨닫게 해주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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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떠나야 이야기가 시작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기도 하지만 떠나기 위해서 꿈을 꾸기도 한다.

 

어떻게든 길을 나서야 선택지가 다양해진다.
지금 꾸는 꿈이 영원하지 않을까 봐 고민하느라 길을 떠나지 못하거나 나아가지 못하는 건 아둔한 일이다.

 

일단 그 집을 떠나야 이야기가 시작된다.
떠나고 나서 고민해도 된다.

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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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만 한다. 제자리에서 꿈만 꾼다. 저자는 일단 떠나보라고, 길을 나서보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머문 그 자리를 떠나보면 어쩌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떠오르거나 보일지도 모른다.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보다 일단 실행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살다 보면 어떤 계기로 그동안 하지 못했던, 혹은 마음에만 두고 있던 일들을 저지르는 때가 있다. 어쩌면 팬데믹 시기 가장 힘든 순간 사랑하고 아끼던 꼬식이 가족을 한꺼번에 잃으면서 저자에게 그 시기가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남은 가족인 엄마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해답을 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중도 포기라는 아주 쉽고 간단한 길이 있었음에도 남들보다 약 2배의 시간을 들여 저자는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고 마침내 목표한 지점에 이른다. 그런데 생각과는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되면서 한때 허무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허무함 이상으로 아주 큰 원리도 깨닫게 되는데, 그동안 자신이 그토록 알고 싶던 질문이 아주 쓸데없는 것이며, 매일을 오롯이 즐기며 사는 즐거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된다.

 

단순하게 사는 것, 매일을 일상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일상에 중심을 잡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 덕에 황태식이라는 새로운 가족이 다시 품 안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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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이런 게 아니겠니!
곽미혜 외 지음 / 모모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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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새것, 새 상품에 더 시선이 많이 갔는데, 요즘에는 손때 묻은 물건이나 애정이 깃든 것들에 유독 더 시선이 많이 간다. 요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과거한정 '리미티드 에디션'과 같은 느낌인데, 다시는 만나볼 수 없기에 더 귀하고 값지게 느껴지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옛 추억담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어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요즘의 세대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들도 가득 담겨 있어 이색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라떼시절'이라고 하면 꼰대라던가 부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떠올리는데, 여기 담긴 '라떼시절'의 이야기들은 정이 넘치고, 하나같이 감성 돋는 이야기들이 많아 한 번쯤 그 시절에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서술한 11인의 공동 저자들은 인천광역시 교육청 소속 사무관 이상 관리직 공무원들로 구성된 글쓰기 동아리 '글힘' 회원들의 글로, 대부분 20년 이상의 공무원 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본 연령대가 높고,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을 버티고 살아낸 분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전문 작가가 쓴 글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마음이 가는 따뜻한 글들이 많았는데, 일상을 살아가면서 소소하게 느끼는 행복과 치열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있어 더 마음 깊이 다가왔다.

 

사실 처음 쓰기를 배우고 책을 써보자는 제안에 고민하고 망설이기도 했지만, 어느새 작가 자신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채우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들을 솔직하게 담아내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경험과 당시의 이야기들은 생생하게 담기기 시작했다.

 

작가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33편의 이야기 속에서 정감 넘치는 따뜻함을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1명의 작가가 담은 33편의 이야기들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왔던 이야기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추억 돋는 이야기들이었다. 이를테면 똥 봉투 이야기, 조청에 담긴 추억 이야기, 통금시간 이야기, 이웃 덕에 사랑으로 자랄 수 있었던 딸 이야기 등이었다.

 

그중에서 유독 더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살아온, 살아낸, 그들만의 진솔함이 묻어나는 글을 통해 시린 겨울, 따뜻한 온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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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맛볼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의 맛, 조청의 추억!
권영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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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준비할 때마다 늘 집에서 빠지지 않던 조청 만들기는 끓이는 과정이 가장 중요했는데, 불이 꺼지지 않게 보고 있으라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사그라들던 아궁이 숯불 위에 장작을 밀어 넣으면서 결국 활활 타는 장작과 함께 조정도 타버리고만 추억 돋는 이야기는 지금의 세대에게는 절대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 중 하나다.

 

이후 함께 일을 저지른 사촌 여동생과 불호령이 무서워 부엌에서 제일 먼 윗방의 이불장 안으로 숨어들었다가 배고픔과 두려움에 떨다가 잠들어버린 이야기에서 옛 정취와 진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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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모든 물건을 파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그곳에서 척척 살 수 있는 조청, 그러나 그 시절 추억은 없다. 편리함과 즉각 소유로 길이 들여진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그 시절, 즐거움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명절 준비와 조청 만들기에 대한 추억은 그래서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건 아닐까.

4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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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쉽게 구하고 얻어지는 현재 우리의 모습에서 추억을 상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어쩌면 저자에게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은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다르게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있어 추억은 무엇일까? 새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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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면 행운을 가져다주는 호야 꽃
김승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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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라는 식물은 아내가 근무하던 학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선물 받으면서 몇 번이고 집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베란다에서 키우다가 떨어뜨리면서 버려질뻔 하기도 하고, 이사하면서 버려질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버려질 처지에서 몇번이고 버티게 되면서 이제 호야는 저자에게 있어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그 사연을 들여다보면, 호야가 꽃을 피우면서 시작된다. 그 처음은 이사 후 처음 호야가 꽃을 피우면서 아내가 셋째를 임신하게 된 일이다. 몇 해 후 또 호야 꽃이 피면서 앞서 낙방했던 승진 시험이 합격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저자는 호야 꽃이 '행운의 상징'이라고 믿게 된다. 

 

호야 꽃은 매년 피지는 않았는데, 지금 현재 저자는 다시금 호야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내가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데, 호야 꽃이 피어야 아내에게 예전의 건강을 되찾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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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는 2년에서 3년간 자란 후, 꽃이 핀단 사실을 얼마 전에서야 알았다. 꽃을 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보상이나 보답이 즉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보상이 일찍 오지는 않는 것 같다. 무슨 일에든 항상 임계점이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호야 꽃이 피는 걸 보기 위해 2~3년 이상을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61~6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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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닐 수도 있는 식물 하나가 어느새 저자에게는 '행운'으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는 미신이라거나 어이없는 헛소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현재 저자에게 있어 호야 꽃은 간절한 소망이자 바램을 담은 꽃이다.

 

어쩌면 희망이 다시금 피어오르길 바라는 염원을 호야 꽃에 비추어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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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 가져다준 선물
유인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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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당시에는 지금처럼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의식주 생활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하고 싶은 것이나 갖고 싶은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당시 저자는 '세계 명작동화 전집'과 '바비인형'에 대한 남다른 추억을 가지고 있는데, 유달리 갖고 싶었던 물건이자 소유하지 못했던 결핍의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동네 친구 집에 놀라갔다가 발견한 계몽사에서 나온 50권짜리 세계 명작동화 전집을 보고 너무 갖고 싶었던 저자는 밥도 거른 채 울고불고 엄마에게 떼를 썼지만 끝내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며칠을 고민하다 친구 집에 매일 놀러 가서 그 책들을 읽는 것으로 대리만족했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 책 주인인 친구보다 빌려서 본 저자가 더 많이 읽었다고 하니 얼마나 열성적으로 책을 읽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덕분에 그 시절의 결핍이 계기가 되어 지금도 꾸준히 책을 읽고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은 물론,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일단 사두는 버릇도 생겼다고 한다.

 

또 다른 결핍이었던 바비인형은 어려서부터 유난히 좋아했던 인형 중 하나로 명절에 받은 세뱃돈을 몽땅 털어 인형을 사는 바람에 엄마께 심한 꾸중을 듣기도 했다. 인형을 갖고 나니 한 벌뿐인 옷이 신경 쓰여 옷이 갖고 싶은데 돈은 없고, 인형 옷까지 산다고 하면 엄마에게 혼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손뜨개로 인형 옷을 만드는 거였다. 어릴 적부터 손수 떠주신 뜨개 옷을 입혀주시던 엄마의 뜨개질 솜씨를 어깨너머로 배워 직접 인형에게 옷을 떠서 입히며 가지고 놀았다.

 

그 후로 뜨개질은 저자의 취미가 되어 도안을 보고 가방, 목도리, 모자 등을 떠서 선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 느꼈던 결핍감을 해소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독서나 뜨개질 덕에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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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평생 갖고 가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이 결핍을 느끼고, 결핍된 것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 나가는 과정 중에 해소되기도 하고, 부수적으로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나 좋은 습관이 생겨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결핍'을 그저 부정적인 단어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에 따라 그것이 선물이 될 수도, 평생 전전긍긍하는 말 그대로 '결핍'으로 남아 불행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에게 있어 결핍이란, 자신에게 준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말이다.

14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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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전시켜나간 저자의 경험담에서 비슷한 기억을 추억하는 것은 물론 또 다른 삶의 교훈을 배웠다.

 

나의 기억에는 없는, 엄마의 입으로 전해 들은 어릴 적 추억담에서 꽤나 갖고 싶어 했던 인형 하나가 있었음을, 그리고 제 또래에 맞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린 생떼가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보통 결핍이라고 하면 무언가 부족하거나 부정적인 뉘앙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의 글을 읽으며 결핍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추억을 되살리는 것은 물론, 평생의 취미이자 특기로 항상 함께 하는 결핍을 불러왔던 '독서'와 '뜨개질'이 저자에게 있어 얼마나 큰 선물이자 의미일지 알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11명의 저자가 전하는 진솔하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에서 라떼시절의 정과 그리움,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나보다 훨씬 이전 세대들이 겪은 치열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에서는 부모님이 생각나기도 했다.

 

산다는 건 어쩌면 이런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당시에는 그저 고달픈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후에 훈훈한 추억이 되는 것,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 이것이 산다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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