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날 그리워하게 될 거야
박영유 지음 / 뜻밖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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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겪어보는 3년의 팬데믹 시기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어떤 이들은 새로운 수업방식과 직장 생활에 어리둥절 헤매느라 시간을 보냈던 이들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오히려 그 시간을 반기며 즐겼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떠나보낸 이들에 대한 상실과 아픔으로 멈춘 것 같은 시간을 고요히 흘려보내며 보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온 세상이 전염병으로 고군분투하던 시기 인생 첫 고양이를 잃으며 한동안 폐인처럼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다 상실과 슬픔을 이겨내고자 시작한 엽서 쓰기를 통해 위로와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가면서 마침내 일상을 찾게 된다.

 

이 책은 그때 마음을 다잡으려 엽서에 기록으로 남긴 '글'과 '그림을 곁들인 글씨'들을 엮어 만든 책으로, 당시 느꼈던 무기력과 공허함, 상실감을 겪는 과정은 물론 그것들에서 서서히 벗어나 자신감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마음을 다독이고, 작은 목표를 하나씩 이뤄나가며 마침내 찾게 된 일상, 이제 저자는 더 이상 내일을 걱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흔들리는 순간이 와도 늘 하던 일들을 하며 무게중심을 잡는 법을 배웠다.

 

방향이 옳다면 틀린 길은 없음을 알았고, 느리게라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언제든 도착하게 된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또 일단 발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만약 지금 상실이나 좌절, 우울감, 바닥으로 치닫는 인생 곡선을 경험하고 있다면, 저자가 그 과정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자신만의 일상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는 그녀가 사랑한 참새 '공방이'와 인생 첫 고양이 '꼬식이'의 식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팬데믹 시기 잃어버린,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점으로 어떻게 일상을 토닥이고, 회복하는지 또 그것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울지 않으면 잠을 자면서 보냈던 몇 달,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거울을 통해 마주한 형편없는 내 모습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저자가 하루 한 장, 흩어진 마음을 담기 시작하면서 모이게 된 작은 마음들에는 고양이들을 그리워하고, 그날의 기쁨을 찾고, 하루를 반성하고, 스스로 토닥이던 그 마음들이 담겨 있다.

 

그렇게 애도하는 마음으로 백일을 보내고 난 뒤, 어느새 엽서를 쓰는 일은 새로운 일상이 된다. 누구에게도 섣불리 건넬 수 없었던 이야기들은 이제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글과 그림을 담은 글씨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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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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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9일을 함께 한 참새 공방이
2022년 겨울이 올 즈음, 우리 손 위에서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긴 잠이 들었다.

 

■마당냥 꼬식이 가족(꼬식이, 쪼식이, 아가냥들)
고양이 전염병은 손쓸 틈도 주지 않고 꼬식이 부부와 고작 한 줌에 지나지 않았던 아기냥 세 마리까지 휩쓸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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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문장들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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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 그렇게 사랑했을 줄도 몰랐다. 세상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마음을 장담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호되게 아프고도 마당에 다시 등장한 치즈에게 황태식 씨라고 이름을 붙였다.

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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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항상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늘 떠나버린 뒤에서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어쩌면 큰 상실감을 겪고 난 뒤 다시는 마음을 주지 않겠다 다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장담한 것이 무색하게도 또 마당에 등장한 치즈 고양이에게 마음을 빼앗겨 어느새 이름까지 지어주는 일을 하게 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난다고 하는데, 어쩌면 마음 아파하는 저자를 위로하고자 꼬식이의 자리를 새로운 황태식씨가 채워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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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압이 낮은 남극에서 물을 끓이면 85도에서 끓는다고 한다. 그래서 라면이 설익는단다.
(...)
연기도 안 나는 매생이국은 아무 생각 없이 떠 넣었다간 입안이 홀랑 까질 만큼 뜨겁다.

보는 게 다가 아니다. 역시 인생은 너무 어렵다.

3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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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게 다가 아니라 어려운 인생, 하지만 알 수 없기에 어쩌면 살 만한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늘 불행하거나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기에.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두 번 걸은 저자. 엄마와 프랑스 길을 한 번, 저자 혼자 북쪽 길을 또 한 번.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길을 걷고 싶었고 오래 계획했다. 그러나 막상 그 길에 올라선 시기는 저자 인생 최악의 때로 그냥 세상 다 귀찮았다.

 

엄마와 저자는 그 길에서 가장 느린 순례자였다.

 

엄마는 환갑을 넘었고, 저자는 당시 150킬로그램을 넘겼다.

 

걷기에 최악의 조건을 자랑하던 이들은 남들은 보통 34일 걸린다는 그 길을 무려 60일이나 걸려서 결국 완주했다. 그리고 8백 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병치레를 했다.

 

생각보다 까미노를 걷다가 세상을 뜨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저자가 걷는 동안 5명이 죽었다.

 

한국을 떠날 때 잘 다녀오라고 말했던 저자의 지인들 대부분이 뒤에서는 완주 못할 거라고 걱정했단다. 그들은 어떻게 그걸 견뎠냐며 묻곤 하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하곤 한다.

 

"응, 잔병으로 큰 병을 이기면서 걸었어!"

 

남들이 말하는 그 악조건들 덕분에 무리 자체를 할 수가 없는 몸을 가진 그들은 큰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고 단언한다.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닐 때도 있다며.

 

60일 동안 그렇게 먹고 걷고 빨래하고 자는 것을 반복하는 '단순한 삶'은 계속되었다. 시작할 때는 땀에서 소금이 나올 정도로 더웠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할 무렵에는 새벽에 서리가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고생 끝에 도착한 종착지에서 저자는 충격을 받는다. 그 이유는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어서였다. 단 하나 궁금했던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지 않을까 했는데, 흔한 감격의 눈물도 안 나왔다고 한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일상 그대로였다. 왠지 웃음이 났다. 허무한 기분도 들었지만 이상하게 유쾌해지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죽을 듯 힘들어 하고 고민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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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60일 동안 반복했던 먹고 걷고 빨래하고 자는 단순한 삶은 내 나이만큼 쌓여 있던 마음의 병을 위한 재활 훈련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서 아무리 힘들게 잠이 들어도 다음날 아침에는 상쾌하게 걸을 수 있고 걷고 싶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원리를 알고 나니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그 시간들이 지나갈 때까지 덜 불안해하며 다음 단계를 기다릴 수 있는 요령도 생겼다.

 

나는 더 이상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 질문만큼 쓸데없는 질문이 없더라.

90~9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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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호기심과 열정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그 길에 들어선 시점은 자신의 인생에서 최악의 고점을 찍던 시기였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출발한 그 여정은 꽤나 험난했다. 여러모로 악조건이었고 가는 길에 죽는 사람도 여럿 목격한다. 그래도 걷고 또 걸었다. 포기하지 않고 걸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도착한 목표점에서 저자는 허무함과 허탈감을 느끼는데 유일하게 찾고자 했던 '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커녕 일상에서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여정이 그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난 것은 아니었는데, 먹고 자고 걷는 단순한 여정을 60일간 진행하면서 삶이 단순해졌기 때문이다.

 

죽을 듯 고민하고 힘들어하던 일들이 사실은 별거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의미 없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하지 않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난 이들이 공통적으로 장점으로 꼽는 것은 삶의 단순성이다. 떠나기 전에는 무언가 거창한 것을 깨닫게 되리라 기대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이 돌아온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온 덕분에 삶이 단순해지고 간결해진다. 왜 태어났을까 와 같은 쓸데없는 질문들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고, 물집이 잡혀 걷기도 힘든 나날들을 걸으며 저자는 복잡한 생각들을 다시금 떠올릴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어려운 일이 생겨도 오뚝이처럼 다시 벌떡 일어날 수 있는 힘과 견딜 수 있는 요령을 깨우쳤다고 하니 생각을 털어내고 싶을 땐 저자처럼 먼 길을 뚜벅뚜벅 걸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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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인지 모르는 길을 걷더라도 방향이 옳다면 틀린 길은 아니다. 확인되지 않는 시간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느린 걸음이든 무거운 걸음이든 멈추지 않는다면 도착하게 된다.

9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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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향 설정만 제대로 한다면, 어떻게 걸어도 상관없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속도를 올려 무리하지 않아도 그저 멈추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도달하기 마련임을 깨닫게 해주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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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떠나야 이야기가 시작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기도 하지만 떠나기 위해서 꿈을 꾸기도 한다.

 

어떻게든 길을 나서야 선택지가 다양해진다.
지금 꾸는 꿈이 영원하지 않을까 봐 고민하느라 길을 떠나지 못하거나 나아가지 못하는 건 아둔한 일이다.

 

일단 그 집을 떠나야 이야기가 시작된다.
떠나고 나서 고민해도 된다.

9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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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만 한다. 제자리에서 꿈만 꾼다. 저자는 일단 떠나보라고, 길을 나서보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머문 그 자리를 떠나보면 어쩌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떠오르거나 보일지도 모른다.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보다 일단 실행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살다 보면 어떤 계기로 그동안 하지 못했던, 혹은 마음에만 두고 있던 일들을 저지르는 때가 있다. 어쩌면 팬데믹 시기 가장 힘든 순간 사랑하고 아끼던 꼬식이 가족을 한꺼번에 잃으면서 저자에게 그 시기가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남은 가족인 엄마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해답을 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중도 포기라는 아주 쉽고 간단한 길이 있었음에도 남들보다 약 2배의 시간을 들여 저자는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고 마침내 목표한 지점에 이른다. 그런데 생각과는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되면서 한때 허무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허무함 이상으로 아주 큰 원리도 깨닫게 되는데, 그동안 자신이 그토록 알고 싶던 질문이 아주 쓸데없는 것이며, 매일을 오롯이 즐기며 사는 즐거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된다.

 

단순하게 사는 것, 매일을 일상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일상에 중심을 잡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 덕에 황태식이라는 새로운 가족이 다시 품 안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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