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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책과 서점을 통해 얻는 위안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
한동안 에세이에 몰입했는데, 이제 리스트에 묵혀둔 소설을 하나씩 꺼내 읽어볼 예정이다. 도서관에 예약해둔 소설책도 속속 도착하고 있어 어쩐지 신나는 기분이다.
더군다나 최근 초이스 해서 읽는 책들 모두 너무 좋아서, 마치 부스터를 장착한 듯 더 독서에 탄력을 받고 있는듯하다. 앞서 읽은 <메리골드 마음 사진관>을 시작으로, 앞으로 어떤 소설들이 나를 찾아와 마음을 울릴지 기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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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해요. 책, 동네 서점, 책에서 읽은 좋은 문구, 생각, 성찰, 배려와 친절, 거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끼리의 우정과 느슨한 연대, 성장,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 그리고 좋은 사람들."
저자 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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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페이지를 보면 이런 문장이 눈길을 끈다. 읽으면서 '어랏 내가 좋아하는 것들인데?'하는 마음에 읽기 전부터 기대감이 샘솟는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삶을 담고 있는 소설로, 실제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그래서인지 책에 등장하는 추천도서나 언급되는 책들을 자꾸만 리스트에 추가하며 또 다른 책을 통해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든다.
등장인물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고민과 휴남동 서점을 통해 이들이 만들어 가는 건강한 관계들을 통해 '사는 맛'을 함께 느껴보기를 바란다.
동네 서점을 운영하며 겪게 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서점 사장인 영주를 중심으로 서점을 방문하는 이들과의 관계와 각자가 갖고 있는 현실적 고충이 하나씩 오픈되며 서술되는 방식을 취한다.
마치 제각각 자기만의 문제로 고민하고 애쓰는 우리의 모습처럼, 어느 날 휴남동에 생긴 동네 서점에 방문하는 이들의 모습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장인 영주를 비롯해, 바리스타 민준, 서점 오픈 당시부터 자주 드나들었던 민철 엄마 희주, 세상 사는 것에 아무런 의욕이 없는 민철, 로스팅 업체 '고트빈'의 대표 지미까지 이들이 서점을 중심으로 모이면서 어떤 휴(休)와, 연대를 꾸려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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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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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휴남동 서점의 대표
-서점은 어렸을 때부터의 '꿈'
-이전 삶을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시작한 것이 '휴남동 서점'
■민준
-휴남동 서점의 유일한 바리스타
-처음엔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어느새 정직원으로 승격
-커피의 매력을 알아가며 자신의 삶도 마주 보게 됨
■지미
-로스팅 업체 '고트빈' 대표
-휴남동 서점에 원두를 공급하게 되면서 영주와 인연을 이어가게 됨
-영주와는 자주 왕래하며 서로의 사적인 부분도 공유하는 사이
■승우 작가
-블로그에 날카로운 문장력을 자랑하던 이가 작가가 되어 책을 내게 된다.
-그의 팬이었던 영주는 그의 첫 북토크를 '휴남동 서점'에서 할 것을 제안하게 되면서, 그와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창인
-영주의 전 남편
-영주와는 파트로서 서로 존중하고 잘 맞았지만 그뿐이었음
-영주와는 약 1년간 결혼생활을 했음
■태우
-창인의 친구이자 영주의 친구
-영주와 창인을 이어준 사람이자 둘의 관계에 제대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 중간 역할을 하는 사람
■영화평론가 윤성철
-바리스타 민준의 대학교 친구이자 영화평론가
-북토크로 인연을 맺게 되면서 영주와 인연을 맺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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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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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철엄마(전희주)
-휴남동 서점 오픈 이후 자주 드나들며 영주와 마음을 나누는 손님 중 한 명
-휴남동 서점을 통해 아들은 물론 자신의 삶도 활력을 되찾게 됨
■부동산 사장
-중년 남성 손님으로 오후 1시 30분만 되면 서점을 도서관처럼 이용하는 손님
-'식후 독서'를 즐기고 있는, 두 달 전 서점에서 5분 거리에 새로 문을 연 부동산 사장
■최우식
-여행사에 다니는 이 손님은 일주일에 두 세번 서점을 찾는다. 퇴근 후 방문하면 서점이 문을 닫을 때까지 책을 읽다가 갈 만큼 책을 좋아함
-점심때 허탕을 치고 간 것을 계기로 영주와는 농담도 나누는 사이
■수세미를 뜨는 여자 손님, 정서
-어느 날 서점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하루 종일 멍하니 있다가 어느 날부터 수세미를 뜨기 시작
-붙박이가 되면서 영주, 민준, 민철과는 어느새 당연한 듯 편안한 관계가 됨
■민철
-아들이 걱정되었던 엄마의 제안으로 조건부로 일주일에 한 번씩 서점에 들러 책을 보기로 한 계기로 서점에 방문하게 됨
-삶에 아무런 욕구가 없었던 그가 서점에 머물며 사람과 책, 그리고 관계를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음
■상수
-영주보다 더한 독서광이면서 독서클럽 리더
-서점이 발전함에 따라 영주를 도와주기 위해 자청해서 아르바이트 제안(주 6일, 하루 세 시간, 3개월)
-계산만 하기로 했지만 누군가 책 추천을 부탁해오면 귀찮은 척하면서도 책에 관한 지식을 대방출해 결국 손님 손에 책 두세 권은 쉽게 들려 보내는 능력자
-손님들에게 '퉁명스럽지만 아는 건 많은 아저씨 알바생'이라는 긴 별명으로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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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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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휴남동에 동네 서점 '휴남동 서점'을 열게 된 영주. 당시만 해도 피폐한 영주의 무기력한 모습에 서점은 손님 한 명 없는 그저 그런 서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에 동네 사람들도 서점을 그다지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이때 민철의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주 드나들며 영주와 말을 섞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약 6개월이 지날 때쯤 정신을 차린 영주는 자신의 어릴 적 꿈이었던 서점을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한다.
가장 먼저 커피를 내릴 아르바이트 생을 구하고, 이내 여러 가지 이벤트와 SNS를 통해 글을 올리면서 점차 서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사실 동네 서점을 오픈하기 전 영주는 인생의 큰 사건을 연이어 겪게 되는데 그 계기는 번아웃과 무기력증이었다. 이로 인해 단순히 파트너로써 좋은 관계를 갖고 있던 남편과의 관계가 깨지는 것은 물론, 엄마와의 잦은 마찰, 그리고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심한 상처를 받게 되면서 모든 것을 털어내고 홀로 낯선 휴남동에 동네 서점을 오픈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내 포근하고 다정한 이웃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이들만의 연대를 구축해 가기 시작하는데, 이 중심에는
'휴남동 서점'이 있다.
평범한 동네 서점이 이들과 만나 어떻게 어우러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어떻게 일해야 하고, 어떻게 상처를 회복해 가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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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남동 서점에 방문하는 이웃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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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남동 서점의 바리스타 민준
대학교까지는 나름대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민준은 취업을 앞두고 계속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서 문득 삶의 의욕을 잃게 된다.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위해 준비하고 도전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한 그는 도전하기를 그만두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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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은 당분간은 과외를 할 생각도, 취업을 준비할 생각도 없었다. 취준생이란 타이틀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끝없는 길을 걷는 기분, 굳건히 서 있는 벽을 두 팔로 망연히 밀고 있는 기분에 더는 휩쓸리기 싫었다.
7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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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날 바리스타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게 되면서 휴남동 서점에 합류하게 된다. 시간당 1만 2천 원, 주 5일 근무, 초과근무 시 수당까지 준다는 서점치고는 꽤 후한 근무조건에 어리둥절해 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장 영주의 말에 처음에는 초보 사장의 정의일지, 아니면 이 서점이 보기보다는 수입이 좋은 건지 의문을 가지고 근무를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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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민준이 반문한다.
"보통은 이렇게 많이 안 주세요."
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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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일하려면 충분히 쉬어야 하고, 쉬더라도 돈은 일정 금액 이상 받아야 생활이 가능하잖아요."
2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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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단순히 커피를 내리는 작업에 몰두하던 민준은 서점을 방문하는 이웃들을 하나 둘 만나면서 서서히 자신만의 삶의 가치와 방식을 찾아가게 된다.
거래처인 지미의 '고트빈'을 자주 방문하여 원두에 대해 공부하는 한편, 지속적으로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방법을 연구하며 후에는 당당한 직원으로 오랫동안 휴남동 서점에서 함께 하게 된다.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던 민철의 이야기
때에 맞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민철은 엄마와의 약속을 계기로 휴남동 서점을 방문하게 된다.
처음에는 주 1회 책을 읽는다는 조건으로 방문하게 되었지만, 이내 영주는 민철에게 기다림을 주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하에 책보다는 대화를 나누자고 제안한다.
이에 민철은 간간이 영주와 대화를 나누며 구석에서 뜨개질을 하는 정서를 보며 시간을 때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점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게 되면서 이내 스스로 책을 찾아읽고, 그곳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고 싶다는 제안을 건네게 되면서 그 속에 자연스레 자리하게 된다.
▶뜨개질을 하며 힐링과 쉼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정서
계약직으로 열심히 일했으나 지속되는 정직원에 대한 희망고문과 심지어 자신의 작업물을 훔쳐 타인의 성과로 만들어 버리는 조직생활에 지쳐버린 정서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자신의 마음을 챙기기로 마음먹는다.
휴남동 서점의 음악과 분위기에 이끌린 정서는 그곳에서 하루 종일 명상과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덕분에 한 번씩 울컥 올라오던 화를 다스리는 것은 물론 뜨개질을 통해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점차 마음의 안정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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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에게 있어 '소설'이 가지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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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영주를 자신만의 정서에서 벗어나 타인의 정서에 다가가게 해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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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정서를 흠뻑 받아들이고 나서 책을 덮으면 이 세상 누구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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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좋아하는 영주 덕에, 이 책에는 수많은 소설책이 소개된다. 영주는 타인의 정서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소설이 좋다고 말하며 소설에 흠뻑 빠지고 난 후에는 세상 누구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말한다.
소설을 좋아해서인지, 더 깊이 공감이 가는 문장이었는데 현실적인 내용과 더불어 감정이 잘 맞는 소설이라 더 많이 와닿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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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에게 좋은 소설이란 기대를 넘어서는 곳까지 그녀를 데려가는 소설이다.
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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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좋은 소설이란 뭘까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문장을 읽으며 새삼 나에게 좋은 소설이란 뭘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나에게 좋은 소설이란, 나도 모르는 사이 소설 속 그 세상으로 데려가는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 번도 가본적 없는 곳,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설 속 그 세상에 빠져들어 상상 속에서 마음껏 그릴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좋은 소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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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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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몸의 모든 감각이 이곳을 편안해함을 느낀다. 그녀는 더 이상 의지나 열정 같은 말에서 의미를 찾지 않기도 했다. 그녀가 기대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기 위해 반복해서 되뇌던 이런 말들이 아니라, 몸의 감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가 어느 공간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 이곳, 이 서점이, 영주에겐 그런 공간이다.
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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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우리가 늘 기대는 것은 의지나 열정 같은 말이다. 그러다 이내 번아웃을 겪게 되면 무기력증에 빠져 허우적대다 또다시 의지나 열정에 기대 살아가곤 한다.
그러다 문득 그렇게 사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어쩌면 열정이나 의지보다 내 몸의 모든 감각을 더 활용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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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의 기준은 뭘까? 개인의 입장에선 자기가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주는 개인을 넘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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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이해한 작가가 쓴 책. 삶을 이해한 작가가 엄마와 딸에 관해 쓴 책, 엄마와 아들에 관해 쓴 책, 자기 자신에 관해 쓴 책, 세상에 관해 쓴 책, 인간에 관해 쓴 책. 작가의 깊은 이해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면, 그 건드림이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게 좋은 책 아닐까.
40~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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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좋은 책의 기준뿐만 아니라, 서점을 운영하는 사장으로써 좋은 책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영주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서점은 각자 다른 기호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기에, 영주의 이런 고민은 '휴남동 서점'이 더 나은, 더 좋은 서점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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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도 처음에는 책만 팔 생각이었다. 하지만 차츰 책 판매만으론 수지가 맞지 않는 다는 걸 깨달았다.
(...)
그래서 우선, 매주 금요일 저녁에 신청만 하면 누구나 서점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북토크, 공연, 전시 다 가능하다. 이때 서점은 공간만 제공하는 것이니 영주나 민준은 평소처럼 일하기만 하면 된다.
(...)
매달 둘째 주 수요일엔 북토크를, 넷째 주 수요일엔 독서 모임을 진행한다.
51~5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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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감각이 돌아오면서 동네 서점을 오랫동안 잘 유지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그냥 책만 팔며 약 2년간만 운영할 예정이었던 서점이 어느새 2년을 넘어 기대가 되는, 개성을 가진 서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장면은 점차 성장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휴남동 서점'의 한 장면을 그리고 있는 부분으로, 추후 더 발전한 휴남동 서점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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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뭐랄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니면 기억 너머의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기억나진 않는 어떤 문장이, 어떤 이야기가 선택 앞에 선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하는 거의 모든 선택의 근거엔 제가 지금껏 읽은 책이 있는 거예요. 전 그 책들을 다 기억하지 못해요. 그래도 그 책들이 제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러니 기억에 너무 집착할 필요 없는 것 아닐까요?
5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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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하게 공감이 가는 문장이자,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는 책의 영향력에 대한 부분이라 더 와닿았던 문장이다.
어릴 때부터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 모든 책을 다 기억하진 못한다. 심지어 최근에 읽은 책일지라도 제목을 기억 못 하거나 내용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책들도 있다.
하지만 믿고 있는 건 기억에는 없을지라도 몸 어딘가에 스며들어 있다는 느낌은 강렬히 받는다. 삶의 순간에 문득문득 튀어나와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대화에서, 문장에서 영향을 주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온전히 나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도,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공감과 함께 위로가 되는 문장이다. 꼭 머리로 기억할 필요는 없다고, 몸에, 기억 너머에 남아있으면 그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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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시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민준도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았다. 이때 처음으로 민준은 자기가 꽤 오랫동안 혼자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사실 이상으로 받아들였다.
6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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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자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으로 오히려 자기 이야기를 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회로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고트빈'에 방문할 때마다 지미는 자신의 남편 욕을 지속적으로 한다. 좋은 얘기도 한두 번인데, 민준은 묵묵히 아무런 말 없이 지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렇듯 부정적인 이야기를 지속하는 사람은 보통 꺼리거나 피하기 마련인데, 민준은 오히려 내면의 나를 끄집어 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묵묵히 들어준 것이다. 생각의 전환이 이렇게 삶을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새삼 느낄 수 있던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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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일과 커피 내리는 일은 비슷한 점이 꽤 있는 것 같았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고, 하면 할수록 더 빠져든다는 점이 그렇고, 한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점이 그렇고, 점점 더 섬세함이 요구된다는 점이 그렇고, 결국 독서의 질과 커피의 질을 좌우하는 건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이 그렇다. 결국 독서가와 바리스타는 독서하는 그 자체, 커피 내리는 그 자체를 즐기게 되는 듯했다.
12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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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와 바리스타의 공통점을 나열한 듯 보이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속성과 장점이 유달리 돋보이는 문장이었다. 깊이 탐구하고 내면을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내용이라 민준이 얼마나 커피에 진심인지, 얼마나 커피를 즐기게 되었는지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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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일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기엔 복잡하고 총체적인 무엇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은 미묘하며 복합적이다.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행불행을 책임 지진 않는다.
27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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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일에 대해 깊이 고뇌하고 숙고한 후에 서술한 문장처럼 느껴지는 문장이다. 그냥 일이니깐 하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에서 일이란 무엇인가 또 이것이 내 삶에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는가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동안 나에게도 일이 삶에서 여러모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삶에서 일이라는 부분을 재배치하여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삶에 어떤 가치를 두고 있느냐에 따라 우선순위와 중심은 사람마다 다르게 설정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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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후련해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야. 복잡하면 복잡한 대로, 답답하면 답답한 대로 그 상태를 감당하며 계속 생각을 해봐야 할 때도 있어."
2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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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찝찝한 것이 있으면 우리는 하루빨리 해결하고 털어내려고만 한다. 그런데 승우 작가는 때로 그 상태 그대로를 감당하며 지속적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말한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 방황하던 민철은 승우 작가의 조언을 덕분에 그 시간을 감내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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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글을 제대로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아까 말했잖아. 솔직하게 쓰라고. 정성스럽게 쓰라고. 솔직하고 정성스럽게. 그렇게 쓴 글이 제대로 잘 쓴 글이야."
27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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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글을 제대로 잘 쓰는 걸까?'라는 물음은 글 쓰는 것이 어렵거나 글 쓰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늘 의문으로 남는 질문이 아닐까?
너무 당연한 답 같지만, 이에 승우 작가는 솔직하고 정성스럽게 쓰라고 말한다. 결국 글 쓰는 것에 정답은 없다는 말이 아닐까 하고 이해해 본다. 더불어 나의 이야기, 마음이 담긴 이야기야말로 제대로 잘 쓴 글이 아닐까 하고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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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거짓말이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게 평소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데, 어떨 땐 문제가 되기도 하니까요."
3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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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송한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긍하게 되는 문장이다. 성철과 민준의 대화를 살펴보면 보면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부분을 콕콕 짚어내는 성철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런 예리함이 그를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 영주와 민철이 대화가 잘 통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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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는 삶이니 그렇게나 고민을 했을 수밖에. 처음 사는 삶이니 그렇게나 불안했을 수밖에. 처음 사는 삶이니 그렇게나 소중했을 수밖에. 처음 사는 삶이니 우리는 이 삶의 어떻게 끝을 맺을지도 알 수 없다. 처음 사는 삶이니 5분 후에 어떤 일을 맞닥뜨리게 될지도 알 수 없다.
32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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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우리는 모든 것이 '처음'임을 잊고 산다. 그래서 실패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를 다그치곤 한다.
기억하자! 처음이기에 우리는 고민하고, 불안해하고,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처음이기에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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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은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 사회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을지라도 매일매일 성공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거든. 그 사람들 덕분에."
32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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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남동 서점을 살펴보면 딱 이 말이 떠오른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을지언정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라는 말이.
성공적인 하루란 뭘까? 결국 행복한 삶이 아닐까?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것은 결국 행복한 삶을 보냈다는 말과 동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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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을 계단 같은 것으로 생각했어요. 제일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 밟고 올라가는 계단. 하지만 실제 일은 밥 같은 거였어요. 매일 먹는 밥. 내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끼치는 밥요. 세상에는 허겁지겁 먹는 밥이 있고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먹는 밥이 있어요. 나는 이제 소박한 밥을 정성스레 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를 위해서요.
34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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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하게 다가왔던 문장이다. 서정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어쩌면 일을 계단처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야 하는 계단. 명성을 위해 성공을 위해 말이다.
하지만 실은, 일은 매일 정성스레 먹는 밥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나를 위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야 내가 건강해질 수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나를 성장하게 해주는 밥. 일은 그래야 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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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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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이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전한다. 어떤 이야기를 읽고 싶었을까 가만히 살펴보면 현실 속에서 우리가 겪는 이야기들이 속속 담겨있다.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고민하고 흔들리고 좌절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 애써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스스로 나를 포함해 나와 관계된 많은 것을 폄하하게 되는 세상에서 나의 작은 노력과 노동과 꾸준함을 옹호해 주는 이야기,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느라 일상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나의 어깨를 따뜻이 안아주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읽으면서 내심 판타지나 허구의 세상없이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이야기라 조금 놀랐었는데, 저자는 어쩌면 이 책의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이 오히려 위로받고 격려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기에 스스로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쓴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덕분에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실제 존재하는 책도 추천받고 동네 책방의 분위기도 한껏 느끼며, 세상 사는 삶의 고단함도 치유받는다.
소중한 순간들이 모인 '휴남동 서점' 덕에 힘들었던 일은 잠시 내려놓고 '그것으로 되었다'하며 쉼을 가져본다. 포근함과 다정함이 엿보였던 동네 서점 '휴남동 서점'에서 다른 이들도 쉼과 힐링을 맘껏 맛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