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외로운 선택 - 청년 자살,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김현수 외 지음 / 북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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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급격하게 벌어진 세대차의 갭! 그리고 빈번하게 들리는 고독사와 청년 자살에 대한 소식들은 어느새 익숙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미 10년 전부터 각종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던 인구감소에 더해 이제는 청년 자살을 걱정하고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몇 년 전에 떠돌던 '헬조선'이라는 말은 포기에 포기를 거듭하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청년들에게 이제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나마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었기에 언급되었던 단어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무엇이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꽃피워야 하는 청년들에게 가장 외로운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자살, 특히 청년 자살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청년들을 자살로 내몬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해서 청년들이 불행한 이유, 청년 자살 현황, 외국 사례 소개, 면담을 통해 알아본 청년의 마음 글, 청년 자살을 세대론적으로 통찰한 글, 청년 자살 및 복지 현실에 관한 통계 자료,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수집한 생생한 상담자료 분석 등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고 분석하면서 청년 자살의 이유와 원인, 그리고 대책 방안에 대해 세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거나 피부로 느끼고 있던 사례나 내용들도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도 있었는데 읽는 내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책에 실린 내용들이 청년을 대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나와 우리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실효성이나 현재 정책들과 비교해 봤을 때 여자, 약자, 소외계층에게 더 가혹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과연 언제, 얼마나 혁신적으로 변화하여 적용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자살을 택한다는 청년들의 죽음. 사람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마땅하다고들 말하지만 실제 그들이 느끼는 현실은 냉혹하고 위태로웠다. 설자리가 없어 끝내 마지막 선택을 하고야 마는 청년들에게는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추억도, 좋은 친구도, 마음을 나눌 가족도, 공감과 배려 능력도, 사회적 제도도 그 무엇도 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불행했고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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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고통의 키워드>

#헬조선 #이생망 #N포세대 #은둔형외톨이 #고독생 #고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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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로 시작되는 기성세대의 잔소리와 충고, 높은 기대, 심각한 양극화,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마음고생, 경제적 어려움과 더불어 쌓여만 가는 심한 스트레스, 반복되는 좌절과 절망, 고독감과 무력감, 고령화의 눈높이에서 자행되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비난, 어리광으로 치부되거나 나약함으로 평가되는 인식 등으로 청년들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적, 문화적 전환의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우선순위는 분명 존재한다.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붕괴되고 있는 공동체 속에서 양극화는 심해지고, 더 외롭고 더 분노하게 되는 일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 간의 관계는 더 빈약해지고 있으며 청년들을 위한 정책들은 앞선 입시 정책, 출생 장려 정책과 더불어 반복 실패하는 정책들로 가득하다.

 

자신을 책임지는 것도 벅차다고 말하는 청년들에게 국가는, 기성세대들은 과연 어떤 해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여러 통계와 분석 자료를 통해 2020년 자살률을 살펴보면 30대 이하의 증가율을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20대의 자살률이 전년대비 12.8%로 가장 많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거의 두 명 중 한 명꼴이다.

 

책에서는 20대~30대 청년 자살률이 특별히 높은 이유와 자살이 늘어나는 이유, 20대 여성들의 자살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전반적인 사회적 이슈와 문제점들에 대해 파악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이들의 자살행동이 단순한 감정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닌 복잡하고 복합적인 문제로 인하여 야기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환경적, 사회적, 국가 시스템에서 오는 불안과 기본적인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좌절, 합리적이지 않은 방식과 희생만 강요하는 사회시스템에서 그들이 느낄 우울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책에서는 이런 청년들을 살리기 위한 대책과 방안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는데 '맥고리 교수팀의 8가지 핵심 원칙'과 '개인심리학 가설적 접근'을 통해서 청년 세대의 특성에 맞는 '접근'과 '돌봄'의 중요성이 특히 중요하다는 점과 개인 치유적 차원에서는 해결이 어려우므로, 사회적 캠페인, 제도적 지원, 법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서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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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위'란 단순히 유전자 수준에서 행해지는 명령의 수행이나 생화학적 반응을 넘어서 인간의 인식과 행위 반응에는 다름 아닌 '의미 부여'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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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자살의 원인을 어느 하나의 문제로 꼬집을 수 없는 만큼 해결 방안 또한 특정 하나를 고치거나 내세워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일자리 정책, 주거 정책, 경제 정책, 양성평등 정책에 모두 녹아 전반적으로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사회의 개선과 더불어 지지 체계가 필요하며 청년의 삶에 가닿을 수 있는 정책 마련을 통해 접근해 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기존의 복지 체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전달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며, 기존의 전달 체계와 전달 방식에 대한 혁신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삶의 근간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상상력을 보태야 할 때이다.

 

팬데믹은 분명 우리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다. 단편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자살에 대한 국가 간의 차이를 비교 분석한 자료를 참고해 봐도 알 수 있다. 자살 사망은 단기간에 감소하고 '정신건강' 악화는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앞으로의 선제적 관리 및 예방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자살률은 상상이상으로 급증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청년 자살을 단순히 한 세대, 한 계층의 문제라도 단정 짓고 외면하기보다는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사회시스템을 보다 현실성에 근거해서 변화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라의 기둥은 청년이며 이들이 곧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한 세대의 우울과 불안은 지속성을 띠므로 단순히 그 세대에서 끝난다고 보기 어렵고 심각하면 사회 전반이 흔들릴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부디 '살고 싶은 나라', '합리적이고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나라'로 대한민국이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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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 아픈 나와 마주보며 왼손으로 쓴 일기
고영주 지음 / 보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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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은 괜찮은가요? 달콤한 디저트를 만드는 쇼콜라티에가 왼손으로 그려나가는 마음 레시피!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저자의 1년동안의 그림일기를 통해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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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 아픈 나와 마주보며 왼손으로 쓴 일기
고영주 지음 / 보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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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디저트를 만드는 쇼콜라티에가 왼손으로 그려나가는 마음 레시피"

 

슬프거나 우울할 때 달콤한 것을 먹으면 기분이 사르르 풀리는 마법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저 밑바닥 깊고 깊은 어둠 속에 파묻히고 싶은 날, 달콤한 디저트는 누군가의 위로나 위안 없이도 불안과 우울한 마음을 단번에 사라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곤 한다. 그래서 왠지 그런 달콤한 것을 만드는 쇼콜라티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을 전해주는 전도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수제 초콜릿 장인이 없던 시절, 거의 최초 혹은 1호 쇼콜라티에라고 칭하는 저자는 그런 '행복을 전하는' 쇼콜라티에다. 첫아이가 세 살 되던 해 벨기에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취미 삼아 이것저것 배우던 그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고민하던 중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고 먹는 것을 좋아하던 자신의 취향을 한껏 반영해 시작하게 된 것이 벨기에의 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기술은 이혼 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로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고 지금까지 20년간 좋아하는 일로, 직업으로써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무일푼으로 도착한 한국에서 어린아이 둘을 키우며 쇼콜라티에라는 기술자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았다. 실전 경험 없던 그녀가 호텔을 거쳐 자신의 가게 '카카오봄'을 오픈하고,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도움을 요청할 인맥도 없었고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버티고 버티면서 헤쳐나갔다. 감정을 죽였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려고 노력하며 버텨왔다. 그렇게 버텨온 세월이 20년이다.

 

힘겨웠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왔기에 괜찮다고 생각했고 괜찮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덜컥 오른손이 고장 났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오른손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그녀에게 나타난 증상 중 하나였다.

 

이 책의 시발점이자 저자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건 친구들과 함께 한 통영 여행에서였다. 예약한 숙소가 취소되면서 지인의 소개로 급하게 얻게 된 '밥장'님의 집에서 2박 3일을 머물게 되었고, 벽에 붙어있던 <몰스킨 그림일기 레슨>을 모집하는 포스터를 보게 되면서 그림일기를 알게 된다.

 

자꾸만 '그림'에 마음이 갔던 저자는 덜컥 줌으로 강의를 신청하고 망가진 오른손을 대신해 왼손으로 매일 그림일기 쓰기로 마음먹는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던 글씨와 그림을 왼손으로 쓰는 것은 처음엔 쉽지 않았다. 삐뚤빼뚤한 글씨는 마치 초등학생이 쓴 것 같았다. 하지만 설레고 재밌었다. 생각처럼 따라와 주지 않는 왼손이 답답했지만 그래서 더 깊이 생각하고 천천히 그리고 써 내려갔다. 무엇보다 카톡으로 전송한 일기에 정성스레 코멘트를 달아주는 밥장님의 응원과 격려도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왼손 길들이기는 시작되었다.

 

지난 4년은 그녀에게 일적이든, 개인적이든 매우 스펙터클한 시간들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벅참을 넘어 혼란의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었다. 겨우 현실적인 문제들을 수습하고 난 이후에는 코로나가 터져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와 상관없이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여행도, 공부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코로나로 인해 생긴 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을 더 '응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몸도 챙겼다. 그렇게 조금씩 컨디션이 회복되면서 어디 가서 쉴까라고 생각하던 중 '제주 올레 한 달 걷기' 프로그램 신청하게 되었다.

 

20년 근속기념 제주여행에서도 왼손으로 쓰고 그리는 그림일기는 계속되었다.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익숙지 않은 왼손을 꾹꾹 눌러가며 쓰고 그렸다. 오른손만큼 능숙하지 않았기에 생각한 것을 모두 다 쓸 수 없었고, 그릴 수 없었다. 지우거나 수정도 쉽지 않았기에 더 깊이 생각하고 하루를 돌아본 후 그림일기를 썼다. 점차 설렘과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더 스스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일기의 내용은 단조롭다. 본 것과 느낀 그대로가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이다. 심오하거나 어렵지 않아 그 당시의 저자의 상황이 쉽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림은 왼손으로 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세심하고 디테일하다. 초등학생이 쓴 것 같은 글씨체는 뒤로 갈수록 정리되고 다듬어진다. 그림은 일상 속 풍경부터 먹었던 음식, 레시피, 식재료, 상상 속 내용까지 다양하다. 펜으로, 선으로만 그렸던 그림에 색깔이 덧입혀진다. 그녀의 세상이 풍요로워지는 게 느껴진다. 

 

쉼 없이 달려온 20년. 코로나를 겪으며 그녀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1년 동안 왼손으로 그림일기를 쓰며 스스로를 마주 보았고, 아픈 자신을 다독였다. 묻어두었던 감정도 꺼내보고 때론 정신과 상담을 통해 도움도 구했다. '쉼'이 빠져있던 일과 일상에서 천천히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남에게 다정하고 나에겐 가혹했던 자신을 가만히 안아주면서 화해를 청했다.

 

익숙해서 그냥 지나쳐갔던 일들을 반성하고 제대로! 자세히! 봐주는 연습을 하면서 이제는 몸과 마음에 근육이 생기는 것 같다는 저자. 그녀가 쓴 그림일기는 그녀 내면의 성장통인 동시에 마음 레시피인지도 모르겠다.

 

1년 동안 왼손으로 쓴 그녀의 마음 레시피를 엿보며 '나는, 우리는' 괜찮은지 돌아보게 된다. 살아가는 것에 버거워 나를 방치해두고 있었던 건 아닌지 혹은 익숙함에 젖어 낯섦이 필요할 때는 아닌지. 세상을 넓고 멀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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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위한 고민과 조사는 깊게 하고, 끌리는 길에는 주저하지 말고 들어서 보자. 끌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헤매고 길을 잃어도 큰 지도 속에서 보면 사실 별것 아니다.

1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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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던, 사랑하는 사람이던 각자의 고독한 경계로 침범하지 않고도 서로 잘 봐주는 거 하고 싶다. 자세히 봐주고 싶다.

20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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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지면 집중, 정성 그런 거 자꾸 깜빡하게 되나 보다. 모든 익숙함에 대해 한 번씩 낯설게 바라봐야겠다.

왼손 일기 8개월째 모든 익숙함을 낯설게 바라보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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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전명원 지음 / 풍백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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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순간 되돌아보면 강하게 끌리는 그리운것들이 있다. 그건 사람일수도 있고, 물건이 될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문득문득 느껴지는 그리운것들을 통해 삶을 깊숙히 들여다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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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리워할 뿐이다
전명원 지음 / 풍백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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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지고, 생각나고, 따뜻해진다"

 

어여쁜 보라색 표지를 보는 순간 왠지 제비꽃이 떠올랐다. 제목에서 전해지는 진한 그리움과도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지만 화려하진 않고, 청초하지만 강인한 매력을 지닌 제비꽃. 그 꽃이 머금고 있는 보라색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감성을 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추억과 그리움이라는 단어와 너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편으론 삶과 가장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은 읽는 내내 잔잔함을 유지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격랑이 이미 수차례 지나간 이후의 느낌과도 닮아있었다. 인생이라는 항해에 숱한 풍랑은 수없이 배를 부서뜨리고 망가뜨렸지만 그때그때 매만지고 수리하면서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의 모습대로 복구할 수는 없었다. 수리할 때마다 배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졌고, 그때마다 인생의 항로도 조금씩 달라졌다. 이 책은 그렇게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맞닥뜨린 '이별'이라는 풍랑을 맞닥뜨리고 그것을 지나온 이후의 삶에 대해 그리고 있었다. 그리움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1부_그리움][2부_일상][3부_꿈][4부_인생] 각 챕터를 거치는 동안 시간은 과거를 그리는 것에서 현재의 일상을 거쳐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마음가짐으로 향한다. 이제는 어릴 적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옛집과 즐거웠던 기억들은 앵두나무와 센베 한 봉지, 그리고 피아노를 떠올리는 것에 머문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나름의 이유로 각자 따로 흩어진 가족들의 부재는 짙은 그리움을 떠올리게 한다. 

 

바쁘게 살아가던 일상에서 이제는 잠시 '멈춤'을 통해 돌아본 저자의 삶을 '추억과 그리움', '일상 속에서의 소소한 감상', '변함없이 꿈꾸며', '앞으로 살아가며 기억할 마음가짐'들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언젠가 인생에서 '멈춤의 순간'이 왔을 때 따뜻한 차 한잔하며 물감이 번지듯 점점이 인생을 돌아봐도 좋겠다. 

 

1부에서는 주로 어릴 적의 추억과 기억들을 기반으로 즐거웠던 기억들이 알알이 담겨있다. 그 추억 속에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일찍이 죽음이라는 이별을 통해 만날 수 없는 막냇동생이 있다. 추억이 서린 물건들을 떠올려보며 그려보는 추억 속에는 세 남매가 함께했던 일상도 포함되어 있다. 전역을 앞두고 갑작스레 떠나버린 동생의 죽음은 세월 속에서 차곡차곡 그리움으로 쌓여있다.

 

2부에서는 일상을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동네를 산책하며 둘러보는 풍경, 어릴 적 좋아하지 않던 팥죽을 좋아하는 현재 자신의 모습, 자신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 빨간 고기라 칭했던 열기라는 생선을 우연히 대구시장에서 다시 발견하면서 그려가는 이야기들은 담담하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3부에서는 다양한 꿈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치열함 속에 그녀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꿈도 있었고, 삶을 다시 꿈꾸게 하는 매개체가 되는 물건들도 엿볼 수 있었다. 조금은 엉뚱하면서도 다채롭게 다가왔던 저자의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고픈 마음과 동시에 나의 꿈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저자 친필사인본을 통해 그려보는 작가로서의 삶, 막연하게 시작하게 된 낚시의 꿈, 게임 세상을 통해 꿈꿔보는 평화로운 세상, 우연히 런던의 거리에서 마주친 피아노 치는 남루한 할아버지를 보며 좋아하는 것을 오랫동안 즐기면서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꾸어본다.

 

4부에서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병실에서 만났던 순분 씨를 통해, 아직도 긴장되는 회전교차로를 통해, 마스크나 온도차로 생기는 김서림을 통해, 타자기에서 컴퓨터로 변화하면서 삶에서 지우는 것이 쉬워진 시대를 통해 삶과 인생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것을 즐겨 했는지 과거가, 추억이 떠올랐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기에 한편으론 먹먹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제는 가슴 저편에 그리움으로 남겨두려 한다. 한편으론 좋아하는 것과  나의 꿈,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를 돌아보는 것, 가까이 있는 것들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 현실에 충실해 보는 것에 집중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도 있었는데 읽으면서, 남기면서, 되새기면서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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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이러한 반환점을 만나는 순간이 분명 있다.
(...)
내 의지로 방향을 바꾸며 반환점으로 삼는 것이다. 그렇게 방향이 바뀐 길에서 우리는 역시 묵묵히 꾸준하게 걸어간다.

9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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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간 59분 59초가 되었더라도 아직 하루가 간 건 아니잖아요. 1초가 남았으니까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시작해야죠"
그의 이 마지막 한마디는 어쩌면 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1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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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 그리워지고, 입맛에 맞지 않던 것이 맛있어진다. 늘 손 닿을 곳에 있을 것만 같던 사람들은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지고 곁에 없다. 사는 일이 손아귀에 쥐고 있던 모래가 빠져나가는 일 같기도 하다.

1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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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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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피어난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꽃들이 시들고 저물어가는 것이 삶의 모습이라면, 마지막 남은 한 송이로 남을 때까지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꽃을 보는 눈길, 꽃을 대하는 마음 역시 삶의 모습이었으면 싶다. 활짝 핀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인생도, 조용히 시들어가는 인생도 누구에게나 소중한 시간일 테니 말이다.

1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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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사는 동안 내 마음이라는 공간 정리의 시간은 종종 필요할 듯하다. 정리한 마음은 그만큼 넓어지고 쾌적해질 것이다. 그리운 마음들은 함부로 버려지지 않고 언제든 꺼내어 다시 돌아보며 달랠 수 있다.
비워진 자리엔 새로운 마음들을 다시 들여놓아 넉넉해지고 풍족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남은 공간, 남은 시간, 그 무엇이든 영원하지 않으므로 늘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212~21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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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요즘, 그 마스크를 생각한다. 안경렌즈에 김이 서리는 것은 마스크의 안과 밖의 온도 차이 때문일 것이다.
가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마스크가 있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타인과 나의 어쩔 수 없이 다른 온도를 경험한다. 부딪히거나, 파열음을 낸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서로의 진짜 모습을 명확히 알아보기 힘들다.

2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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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도 그렇다. 모든 것이 빠르고 편해진 시대다. 커서로 밀어버린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수정테이프로 덮을 필요도 없고, 빠르고 편리하지만 되돌릴 사이 없이 사라진 것들은 그렇게 사라진 채로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좀 더 신중해야 하고, 한 번 더 들여야 보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것이 글이든, 다른 그 무엇이든 말이다.

2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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