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택시
이모세 지음 / 밝은세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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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난 지금도 <이젠 안녕>을 들으면 졸업식이 생각난다. 초중고 졸업식에서 불렸던 노래였다.

졸업식은 당연한 절차로서 치루어야 하는 의식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별 미련은 없었다.

어딜 가든 나란 존재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안녕>만큼은 담담하게 잊을 수 없었다.

공부와 독서로 보낸 학창시절 동안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준 노래이기 때문이다.

가족도 동급생들도 완전히 알지 못 해서 동떨어진 시간을 보냈어도 <이젠 안녕>만큼은 나에게 작별인사를 건네 주었다. 현재의 나에 대한 작별인사였다.

오래된 나 자신은 과거에 놓은 체 새로운 나를 만나는 계기가 <이젠 안녕>이었다.

언제가 새로운 내가 되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이젠 안녕>이었다.

<개인적인 택시>는 나의 추억처럼 음악에 얽힌 추억과 기억을 끄집어낸다.



특히 공감이 갔던 에피소드는 김창식씨였다. 

김창식씨는 복고풍을 좋아하는 청년이다. 남들과는 다른 패션에 주변에서 비난이 많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자신의 길을 걸었다.

나도 남들과 달랐기에 그의 고충과 고민이 이해가 되었다.

주변에서 팔랑팔랑한 원피스에 화장을 할 때 나는 선크림에 활동하기 쉬운 캐쥬얼을 입었다.

주변에서 살을 빼고 치마를 입으라고, 화장을 하라고 해도 나는 스웨터에 카디건 그리고 단정한 용모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했다. 남들이 뭐라 하던 나는 나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나는 그런 스타일을 고수하며, 입시에서도 면접을 통과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다. 

이미 다른 사람과 다름을 알고 그 길을 가고 있던 나로서는 김창식씨에게 격한 공감을 했다.



또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감정적인 트라우마에서 알아채고 나갈 구멍을 찾을 수 있었다.

<아침>이란 에피소드였다. 순간에 즐거워도 그 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된다는 생각에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는 누군가에게 다가가기를 무서워했다.

지금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에는 없을지도 모르는 감정이 두려웠다.

미래에 내 겉에 없을 그 사람이 생길까봐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 했다.

그래서 한없이 선을 긋고 밀쳐내는 나였다. 그런데 그것은 가벼운 착각이었다.

지나가도 지금 순간은 소중하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어서 행복하고 설령 지나간다고 해도 추억으로 남는다는 말에 그때가 되면 또 그리워하면 된다는 말에 치유받았다.

그래서 조금이지만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추겅을 만들 힘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음악이 삶의 모토이자 추억이자 아련한 기억이자 고난의 순간이자 희망의 시기일수도 있다. 음악에 그 뜻을 부여하는 사람은 자신 뿐이고, 자신의 삶을 만드는 사람도 자신이다.

<개인적인 택시>는 개인의 삶을 되돌아보고 조언을 주는 인생조언모음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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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 나를 벼리는 여섯 개의 C
곽병성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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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업은 엄청 혼란스러운 상황에 있다. 바로 세대 차이와 4차 산업 혁명 때문이다.

1990년대에서 2000년 초반 출생자들인 MZ세대는 기성세대인 X세대와는 다른 가치를 중요시여기고 다른 기술을 습득하며 잘랐다. 2020년 이후 MZ세대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지만 현실은 기업 내에서 MZ세대와 X세대 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세대별로 성별로 직급별로 다르게 다가오는 인간관계, 수직적인 상하관계로 인한 기업 내 불통, 사회 자체에 만연한 불신, 정체된 기업의 성장만 있는게 아니다.

4차 산업 혁명의 흐름에 따라 기존의 초거대 기업도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시장에서 도태되며, 새로운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과 전략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혼돈이다.


기업은 기존의 전략으로는 혼란스럽고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모호한 VUCA 시대에 있다.

기업을 구성하는 개인이 자신이 일을 하는 이유와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를 모른다면, 개인의 만족이라는 작은 세계에 갇혀 기업이라는 큰 세계의 성장이 나아지지 않는 비극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작가님은 6C라는 6가지 요소를 든다.

바로 인간관계, 협력, 소통, 도전, 창의와 혁신 그리고 긍정이다.

앞의 3개가 세대 간의 갈등을 풀고 서로가 도와서 성장하는 방향으로 개인을 이끌기 위한 요소라며, 후자의 3개는 3리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6C는 기업이 추구하는 6가지 핵심가치로서 개인을 변화시켜 기업을 변화시키는 전략이다.


6C는 개념-국내 상황-외국의 사례-전략 순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우리는 개념 뒤부터의 과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통계를 통해서 본 한국의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하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세대별로 직급별로 갈등이 심하다. 거기에 수직적인 상하관계와 기업의 경직도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는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 냉철한 현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작가님의 일화는 중요하다. 실제로 현장에서 6C를 실천한 만큼, 어떻게 6C를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 잘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국내 사례로 볼 수 있다.

현재 국내기업의 경쟁 위주의 방식은 본래 수년 전의 외국기업에서 흘려왔다.

즉 외국기업이 국내기업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므로, 앞으로 우리가 깨어있는 인재로서 어떻게 6C를 실천해야 할 지 생각할 수 있는 본보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직장생활 위주로 맞추어진 감이 없지않아 있다. 

따라서 대학생인 나로서는 기업에서 6C를 적용하는 이유와 방향을 알고 이에 따라서 취직을 준비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을 벼루는 6C이지만 아직 취업을 하지 않은 사람에겐, 블라인드 면접이 아직 넓게 수용되지 않은 점에서, 기본의 방식대로 스펙을 쌓고 인적성 검사아 면접을 통해 먼저 취직을 해야 한다. 취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6C는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기업을 분석하는 도구로서 6C를 활용하고, 취직 후에 적극적으로 실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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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 감수성 트러블 - 성인지 페미니즘
오세라비 외 지음 / 가을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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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당신이 만 18세 미만의 사람이라면, 비판적인 사고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이 책은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이 책은 성인지 감수성의 개념과 문제를 전하는 책으로 정보와 의견이 혼재된 상태다.

학교에서 배운 주장하는 글이다. 만약 당신이 정보와 의견을 분별하는 독해력이 부족하다면 나는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그 정도로 이 작은 책에는 많은 정보와 강력한 주장이 담겨 있다.

이 경고를 보고도 이 책을 읽고 싶다면 정리하면서 읽기 바란다.

성인지 감수성이 페미니즘의 다른 모습인 만큼 그 흐름을 이해하려면 시간순서대로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서평을 시작한다.


국내에서 정치적으로도 활발하게 장악하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은 페미니즘이다.

그것도 최근에 들어서 이름만 바꾼 오래전의 서구의 페미니즘이다.

왜 서구의 페미니즘인지 그 흐름을 보자.


우리가 아는 페미니즘은 서구에서 시작되었다.

1950년대 이전에 신마르크스 주의에서 시작되었다. 

신마르크스 주의가 시작되면서 베트남전쟁반대운동, 학생운동, 흑인인권운동, 페미니즘이 운동이 한 번에 터져 나왔다. 

1940~50년대 유럽에서 여성학은 성차별을 중심으로 성정치를 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는 페미니즘은 시작되었다고 보는 운동은 68학생혁명으로 프랑스 소르본 대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여성학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기존에 미국이 이루었던 균형을 무너뜨린다.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고 헌법으로 남겼으며, 흑인인권운동과 여성의 참정권 운동 등 다양한 방면에서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또한 2차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여러 산업으로 여성들이 진출하고, 수용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온 여성학에 의해 이러한 상태는 무너지고 말았다.

여기에는 공산주의자들이 벌였던 반문화주의와 계급 운동에 포함된 페미니즘이 있었다.

1966년에 미국에서 존 머니라는 의사에 의해 젠더 역할과 젠더 아이덴티티가 생겼다.

1970년대에 존 머니의 의견을 바탕으로 <성정치학>이 생겼으며,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났다.

문화막시즘이란 이름으로 여성학이 신문학으로 받아들여지고,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라는 관점이 확립되었다. 

이후 1980년때까지 교차성 페미니즘이란 이름 하에, 여성에게 다중적인 억압이 존재한다는 마르크의 계급 투쟁 이론이 흐름을 지배했다.

1990년대엔 주디스 버틀러로 인하여 이성애 정체성 해체가 부상하여 해체주의 페미니즘이 선도했다. 이때 젠더 이데올로기가 생기고, 이는 1995년 제4차 유엔여성회의에서 젠더 이퀼러티라는 페미니즘의 법제화로 이어졌다.

성인지 감수성은 서구에서 들어온 페미니즘의 다른 말로, 성별 구별을 없애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성인지 감수성은 페미니즘의 다른 이름이자 도구이다.


시대별로 페미니즘은 다른 이름과 도구를 통해 존재해왔다.

20세기 초기에서 중반까지는 문화막시즘으로, 1960~80년대에는 교차성 페미니즘으로, 이후에는 pc주의와 최근에는 성인지 감수성으로 존재한다.

서로 다른 이름과 모습을 지녔지만 페미니즘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면 여기에서 의문이 들 것이다. 왜 성인지 감수성이 문제인가?


1. 성인지 감수성은 모호하고 주관적이다.

성인지 감수성은 일상 속의 성차별을 느끼는 개인의 민감성을 의미한다.

즉 개인에 따라서 다르게 느끼는 지표이다. 그래서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

정책을 수립하려면 통계 자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통계 자료가 보고서 작성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서 작성된다면, 과연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2. 성인지 감수성은 다른 성별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일으킨다.

성인지 감수성은 1970년대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라는 성정치학과 젠더에 구별을 없애려는 젠더 이데올로기가 포함되어 있다.

성인지 감수성이 남성이 필수적으로 알고 갖추어야 하는 요소로서 강요한다면 이는 여성이 아닌 다른 성별에 대한 억압이자 성차별이다.


3. 성인지 감수성 교육의 계획과 구성이 적절한가?

성인지 감수성 교육의 예산은 최근만 해도 31조원에 250여가지 사업에 배정되었다.

문제는 세부 사업이 성인지 감수성 문제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청소년 과학교육, 해외봉사단 파견이 성인지 감수성 교육과 무슨 상관일까?

여가부에서 계획한 정책조차 청소년과 교육 분야에 걸쳐 있다는 점에서 대상과 범위 그리고 내용이 타당한지? 적절한지? 검토해야 한다.


4. 나다움 어린이책의 적절성 문제

최근에 여가부에서 실시한 '나다움 어린이책'은 동성애와 동성혼 그리고 외설 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노골적으로 성관계와 출산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면 이는 초등학생의 발단 단계에 맞는 성교육이라고 볼 수 있는가? 

동성애와 동성혼이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미 인정되었으며 권리를 보장 받았다는 듯이 표현이 된다면 이 또한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5. 나다움에서 자연적인 성별 차이 무시

근육량과 호르몬처럼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성별 차이가 있다. 이로부터 어떻게 할 수 없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생긴다. 이를 나다움이라는 자아 정체성에 포함할 수 없다면? 과연 옳다고 볼 수 있을까? 



성인지 감수성이 페미니즘이란 사실과 사회적으로 만드는 문제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성인지 감수성 트러블>과 같은 책이 필요하고, 발달 단계에 맞추어 자유의 책임도 알려주는 성교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성인지 감수성 트러블>에 나오는 모든 의견이 동의하지 않는다.


비혼, 동성부부, 낙태 합법화와 출산률 간에 어떤 필수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모든 페미니즘이 출산률을 낮추고 성도덕을 해이하게 하며 가족을 해체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위의 표시된 문장이 정보와 섞인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에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난 일은 사실이지만, 1970년대에 세계적으로 줄어든 출산률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긴 힘들다. 

지역사회의 붕괴, 산업구조의 변화, 양육환경의 변화 등의 요인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증거도 없이 1960년대의 여성해방운동이 1970년대의 세계적인 출산률 감소를 불렸다고 볼 수는 없다.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이외에도 변화가 활발한 시기였던 만큼 여러 요인들을 간과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성도덕의 붕괴와 가족의 해체도 마찬가지이다.

통계나 외국의 사례 분석과 같은 증거가 없다면 이는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성인지 감수성 트러블>은 정보와 의견이 섞인 논설문이기 때문이다.


낙태 합법화는 뜨거운 감자인 만큼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하지만, 나는 무조건적인 출산이 건강한 인구 증가와 사회 발전을 부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출산과 양육을 통해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은 양육환경과 교육을 포함한 제도 그리고 부모의 안정감(심신적, 사회적, 경제적 안정감)이 필수적이다.

그런 요소들이 갖추어지지 않은체 태아의 생명만 중시하고, 태어난 이후의 삶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부모와 아이 둘에게 생지옥을 보여줄 뿐이다.

낙태가 좋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태아가 탄생한 후에 삶과 부모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체 출산과 양육을 강요한다면 이는 단순한 인구 증가에만 관심을 가질 뿐 건강한 사회 구성원 생산과 건강한 사회 발전을 저하시키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지 감수성 트러블>은 어려운 책이다.

성인지 감수성의 개념과 문제점을 전하는 한 편 정보와 의견이 섞인 주장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의견과 정보를 분별하고 스스로 증거를 찾고 비판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이 없다면 이 책의 의견에만 휩쓰리기 쉽상이다.

<성인지 감수성 트러블>은 정보와 의견을 분별하고 스스로 증거를 찾고 비판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아니, 그래야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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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의 힘 2 - 출근부터 퇴근까지 커리어에 집중하게 해 주는 루틴의 힘 2
티나 실리그 외 지음, 오일문 옮김 / 부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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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의 힘2>를 만나고 나서 학교 시간표의 힘을 깨닫게 되었다.


길게 12년 동안 교실에서 보냈던 경험은 예상보다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학교에서의 그 모든 시간표가 이리도 루틴과 잘 맞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지금부터 왜 그런지 간단한 설명을 하겠다.



우리의 의지력은 소모가 된다. 많이 사용하면 휴식을 취해서 다시 채워야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게으르게 보일까봐 쉬는 일을 피하고, 한 번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려고 한다.


학교 시간표는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우리 몸은 의식적으로 하는 일에 익숙해지면 에너지를 적게 쓰고도 동일한 일을 한다.


책에서 이 시간을 최소 1달이다. 과학적으로는 최대 66일 정도이다.


즉 간단하게 말하면 학교 시간표는 의지력을 채우고 소모하는 반복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데(요컨데 공부 같은) 에너지를 더 적게 쓰게 만들어준다.


내가 보기에 학교 시간표는 정말 그렇다.



학교 시간표는 50분 수업에 10분 휴식 그리고 약 3시간 간격으로 큰 휴식 시간(점심, 저녁) 시간이 존재한다. 

우리는 일정한 과목들(국어, 수학, 탐구)를 일정한 시간표에 맞추어서 10년을 넘게 공부해왔다.

 

의지력이 버틸 수 있는 최대 시간인 1시간 30분, 하나의 습관이 정학하는데 들어가는 책에서 표시한 30일이 학교 시간표에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활 동안 루틴 때문에 힘들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학교 시간표와는 다른 환경 그리고 한꺼번에 익숙해지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12년 동안 유지도던 루틴이 깨졌다. 


그리고 학교 수업과 달리 특정한 시간 동안 제대로 집중하지도 쉬지도 못 했다. 혼돈이었다.



그래서 나는 <루틴의 힘2>에서 나온 조언들을 섞어서 나만의 루틴 조합을 만들었다.


이는 아래와 같다.


1. 1달에 하나의 습관에만 집중한다. 이때 제한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2. 그 외에 하고 싶은 일은 길어도 20분만 한다.

3. 대부분의 중요한 일은 오전에 끝낸다.


인생에서 글쓰기처럼 장기적인 일도 있지만 대외활동용 SNS 계정 키우기처럼 작은 승부수가 필요한 일도 있다. 


그래서 중심이 되는 일에 1시간 30분씩 배정하고 나머지 일은 길어야 20분으로 제한을 두었다. 


의지력이 한정되어 있어도 하고 싶은 일은 많기 때문이다.


새벽기상을 할 때 느낀 점이지만 확실히 오전에 일이 잘 풀린다. 


생활습관을 조정해서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서 일을 처리할 예정이다.


어떤 루틴이든 습관이 되었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바꾸어서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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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죽음
홍지 지음, 융 그림 / 부암게스트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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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20대, 한창 건강하고 활동적일 시기이다. 그런 내가 죽음을 떠올린다면?

100% 사람들은 자살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죽음을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나는 초고령화를 넘어서 초초고령화 지역에 산다. 그곳에서 죽음의 기준은 다르다.

겨울철 갑자기 사망하는 노인분들,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올 수 있는 요양병원

며칠 안에 돌아가실 것 같은 분도 10년 이상 살다가 정신이 온전치 못함에도 산소호흡기로 증존자가 태어나고도 사시는 노인들의 소식이 간간이 들린다.

그런가 하면 100일도 체 안 되어서 죽은 신생아, 2m도 안 되는 거리에서 목격한 4중 충돌 사고

50cm도 안 되는 거리차이로 비겨간 죽음. 죽음은 생각보다 멀고도 가까웠다.


그래서 젊어도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다. 

단순히 멀다는 이유로 준비하지 않다가는 가족들에게 고생만 시키기 때문이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이라도 죽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만약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의 죽음>과 같은 책은 소중하다. 

우리가 평소에 마주하지 않는 죽음에 부드럽지만 순간에 깊숙히 파묻게 만들기 때문이다.

질문의 범위는 나란 개인의 죽음에서부터 미래의 죽음까지 넓게 퍼져 있다.

그중 몇 가지 질문을 같이 보자.



죽은 후에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지표가 장례식에 오는 손님이라고 했다.

만약 그 사람이 좋은 행실을 보였다면 사람이 많을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이 없다.

이는 나란 개인을 포함해서 나의 친구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내가 그에게 좋은 됨됨이를 보였기 때문에 질문에서처럼 아이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 됨됨이와 다르게 친구와 추억이 그리 많지 않다면? 있어도 학창시절 뿐이면?

평소에 소중하게 내 사람을 보살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갑자기 현실에서 위와 같은 상황에 마주한다면 매우 어색할 것이다.

그래서 <질문의 죽음>이 존재한다. 정말 별의별 상황을 제시해주어서 어떠한 죽음에도 당황하지 않게 단련시켜 주는 기분이다. 동시에 삶의 가치도 전한다.



인생을 살면서 고통은 누구나 겪는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에 불평만 할 뿐 바꿀 생각은 한 적이 없다. 나는 위의 질문에 남들과 다른 고통, 다름을 성장시킬 때 겪는 고통, 완전히 이해받을 수 없는 고통을 답했다. 불평이었다. 하지만 고통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키우면, 완전한 이해를 바라지 않고 인정하면 나의 세 고통은 사라진다.

결국 현재 삶이 고통이더라도 내가 바뀌면 바뀐다.

이렇게 불쑥 생각하지도 않던 곳에서 죽음 속 삶의 가치를 전한다.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원인을 꼭 집어주면서 행동을 하도록 추가 질문을 던진다.

죽음에 부드럽게 고개를 돌리도록 이끄며 샹냥한 질문으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더 없이 매력적인 <질문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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