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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황시내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최근 아주 좋은 에세이집 한 권을 읽었다. 혼자 발견해낸 책은 아니었다. 신문을 잘 들여다보지 않아서 이 사람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는데, 중앙일보에도 칼럼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황시내. 소설가 황순원의 손녀이자, 시인 황동규의 딸이라고 한다. 그런 문학적 후광 때문일까. 책 뒷표지에는 마종기, 성석제, 김형경이 그녀 뒤의 아우라에 압도당한 듯한 상찬을 늘어놓고 있다. 그리고 책 뒷날개에는 '한국 문학을 빛낼 새로운 에세이스트의 탄생!'이라는 자못 흥분에 들뜬 선언이 적혀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책이 아주 좋았다. 이틀 만에, 그것도 피곤한 잠자리와 출퇴근 버스 안에서 내리 읽어낼 만큼. 나와 나이 차가 크게 나지 않는 동시대인임에도 그녀의 글을 저 옛날 뮌헨의 슈바빙 거리를 배회하는 전혜린의 그것과 닮았으며, 인생을 바라보는 따뜻하고도 긍정적인 시선은 장영희 교수의 글을 닮아 있었다. 고전적인 단단함과 낭만적인 부드러움이 섞여 있었다. 그녀 삶의 무대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이곳'을 살아가는 이의 고단함이라든가 지긋지긋함 따위는 없었다. 그런 그녀가 무척이나 부러웠고... 또, 이곳을 긍정하며 살아야겠다는 유치한 다짐 같은 걸 했다. 지난 일 주일, 내게는 그 다짐이 너무도 절실했기 때문이다.
기억이라는 것, 시간의 단면을 잘랐을 때 나타나는 마블링 무늬 같은 것. 그것을 어떤 모습으로 간직하느냐는 다분히 주관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간직하느냐를 떠나) 황시내의 기억 속 이야기는 아름답고 이국적이고, 다정했다. 그게 내게 어떤 위로를 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이 시절이 내게 어떤 무늬를 남기고 지나갈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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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를 맞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삼십대가 된 지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저녁 설거지를 하다가 나는 갑자기 내가 어쩐지 삶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삶, 이 생활, 이 저녁, 이 불빛, 이 설거지, 이 외로움, 이 반복되는 생활의 면면들이 내게 너무나도 익숙하게 느껴졌고, 그러나 그것은 삶에 대한 권태로움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지. 오히려 그 반대였어. 뭐랄까, 이 세상에 이루어놓은 것 하나 없지만, 그리고 아직 세상에 보탬이 될 만한 일 하나 한 것 없지만 웬지 이제는 드디어 온전히 세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은 느낌. 삶의 주인이 된 듯한 느낌. 그것은 마치 이 세상이라는 클럽의 준회원이었다가 어느덧 정회원 자격을 부여받은 것과 같은 기분이었어. 그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이었을지? 아마도 여태까지 쌓아온 경험들과 추억이 아니었을까. 예전에 그리도 심각하고 목숨 걸 만큼 절박하던 일들이 지나고 보면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된 데서 오는 느긋함, 웬만한 일은 이제 큰 집착 없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여유로움... (p.204-205)
기다림이 충족되는 순간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온다. 해는 서서히 기울다 눈 깜짝하는 새 숲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기나긴 사유의 틈새 사이로 잠은 소리 없이 밀려든다. 새벽이면 새들은 한순간 잠을 깨어 지저귀기 시작하고, 퇴근하여 들어선 책상 위에는 주문하고 잊은 책이 기다리고 있다. 어느 순간 우리는 갑자기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깨닫고, 또 갑자기 사랑이 끝나버렸음을 알게 된다.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오고, 은행 전광판에는 기다리던 번호가 떠오르며, 잊었던 유년의 기억은 순식간에 섬광처럼 형체를 드러낸다. (p.218)
생 앞에 홀로 놓인다는 건 참으로 두려운 일이구나, 하고 나는 그 아름다운 노래를 나름대로 이해했다. 아주 잠깐 행복한 미소를 입가에 띠운다 해도 그것은 끝없는 혼란과 숙명적인 고독 속의 찰나일 뿐.
교실 바닥에 주저앉아 공들여 왁스칠을 하며 열다섯 살의 나는 대상이 모호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어쨌든 생은 내 앞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고, 나는 그것을 성의 있게, 할 수 있는 데까지 헤쳐나가볼 용의가 있었다. (p.268-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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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학을 빛낼 새로운 에세이스트의 탄생!'이라는 문구에 왠지 빈정이 상해서 몇 마디 투털거려본다. 한국 문학이 얼마나 에세이스트를 대접해주었는지, 한국 문학계에 지금 훌륭하다 할 에세이스트가 얼마나 많은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 저 카피는 앞에 이야기한 대로 그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었으리라. 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글을 어떤 그룹 안에 가둬두지 않기를, 황시내가 계속 좋은 에세이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