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아내가 ‘또’ ‘국카스텐’ 공연을 가잔다. 북한의 김정은이 찬성표를 들 때 ‘당연히’함께 찬성표를 던지는 부하들과 같은 심정으로 동의했다. 공연장소가 먼 거리고 야심한 시간까지 이어지는 공연에 아내를 혼자 보낼 수 는 없다. 아내는 마치 3천 년 만에 꽃을 피우는 ‘우담바라’를 구경하러 가는 것처럼 ‘올해의 마지막 공연’이라고 강조했다.
혁명적으로 충성심을 보여주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여 아내에게 헌정했지만 내가 자랑하는 5d mark 4 카메라와 스포츠기자나 사용하는 망원렌즈 조합을 준비했다. 촬영 장비의 무게는 2kg을 웃돈다. 어깨가 무너지고 팔이 빠져나가도 국카스텐의 공연을 모두 담기로 했다.
국카스텐의 공연을 간다고 말했지만, 촬영기사와 운전기사 노릇을 한다고 생각한 여정을 시작했다. 가는 길은 삼장법사가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만큼이나 험난했다. 간신히 대전에 도착했는데 도로는 자동차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배도 고팠다. 날씨는 추웠다. 도심 운전에 도가 튼 운전자는 촌놈의 차임을 알아보고 끼어들기를 하며 나를 짓밟았다.
나의 충성심에 흡족한 아내는 취미생활의 하나인 ‘운전 훈수하기’ 노릇을 하지 않는 초능력을 보여주었다. 성격이 급한 나는 뜻밖에 운전 중에 욕을 여간 해서 하지 않는다. 주로 내가 아줌마 스타일의 운전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 공연장에 도착을 해야 할 시간은 촉박해지고, 길은 막히고, 도심의 야생마들은 내 차를 마음껏 짓밟았고, 배는 고팠다.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혼잣말로 상소리를 했는데 아내는 훈계는커녕 동의를 해주는 우담발라 꽃을 보는 것과 같은 희귀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드디어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내 눈에는 ‘아수라장’으로 보였다. ‘기나긴’ 줄의 향연이었다. 여자 화장실은 말할 것도 없고 소지품을 맡기는데도 긴 줄을 서야마 했다. 또 하나의 문화충격은 무대 앞에서 선 채로 두 시간이 넘은 공연을 관람하는 ‘스탠딩’ 석이 앉아서 구경하는 티켓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4시간 거리의 기차여행의 입석이 특실의 좌석보다 더 비싸다는 것이다.
아재들이 야한 의상을 입은 걸그룹이나 야구장에서 치어걸 바로 앞자리를 좋아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남자들이 남성가수의 공연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고 싶다고 더 많은 돈과 피곤을 감수하는 것이 평범한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술을 사랑하는 이의 고매한 경지는 존경스럽다.
공연이 시작되었고 바위처럼 무거운 카메라를 들었다. ‘촬영금지’라는 표지가 무서웠지만, 아내를 향한 충성심을 꺽지는 못했다. 5분 만에 카메라를 조용히 가방에 다시 넣었다. 확실히 충신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어깨가 빠질 것 같고 주위 사람의 눈치가 보여서 도저히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요샌 휴대전화 카메라가 최고다.
치과를 다녀오는 고통과 비슷한 공연이 끝났다. 또 하나의 희귀한 경험을 했다. 난생처음으로 남자 화장실 앞에서 기나긴 줄을 서야 했다. 운전기사와 촬영기사 노릇을 소화해낸 나를 아내는 극진히 예우했다. 나의 심기를 살펴서 간식을 얼른 사다 주었고 아내를 세워두고 긴 전화통화를 했는데 얌전히 기다려주었다.
그날만큼은 실로 정조의 문고리 권력으로 총애를 받은 홍국영이 되었다. 홍국영처럼 나는 아내의 신임을 등에 업고 오만한 행동을 일삼기에 이르렀다. 비스킷을 침대 위에서 먹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홍국영이 기생을 끼고 술은 마시던 술자리에서, 느닷없이 정조를 토끼로 비하하는 망언을 한 사건과 비슷한 이유로 아내의 분노를 샀다.
아내는 호통을 쳤고 나는 안방에서 서재로 귀양을 떠났다. 영광은 화려했고 몰락은 한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