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독자들은 베스트셀러를 ‘궁금하지만 사고 싶지는 않은 책’으로 생각한다. 이런 인식은 불과 몇 십 년 전의 상황과 비교할 때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무래도 요즘과 비교해서 현격하게 정보 공유가 부족하고 뭔가에 반대하고 비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이었던 ‘불과’ 수 십 년 전만 해도 신문을 비롯한 언론에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는 다수의 독자들에 있어서 비판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기 힘든 독서의 ‘가이드라인’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당시의 일반 독자에게 있어서 베스트셀러란 ‘좋은 책’ ‘시간이 없어도 꼭 읽어야 할 책’ 쯤으로 인식했다.
요즘 일반 독자들이 적어도 베스트셀러에 ‘혹’하지 않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고 매우 진보된 지식 소비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일부 출판사의 잘못된 관행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집중 조명되면서 오히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좋은 책을 펴내기 위한 대다수의 출판인들 까지 함께 묻어가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다.
아울러 베스트셀러는 무조건 영악한 상술의 소산이자 대대적인 광고 덕택이라고 생각하는 과잉반응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그토록 경외하며 진정한 독서가가 되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많은 고전이 당대에는 베스트셀러였다는 엄연한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두 말하면 잔소리이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은 출판 산업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이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어떤 책이 시장에서 성공적인 잘 팔리는지 알게 되고, 독자입장에서도 어떤 책이 돈을 쓸 만 한 지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은 어떤 책을 선택했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나쁜 베스트셀러는 잘 걸러내고 보석과도 같은 좋은 베스트셀러를 골라내는 안목을 기르는 능력이야말로 요즘 독서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라고 확신한다.
결국 베스트셀러라고 함부로 무시할 필요는 없다.
좋은 베스트셀러는 진정한 독서가가 되기 위한 어쩔 수 없이 거쳐야할 통과의례인데 어찌 보면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필연적인 ‘견습’과정이기는 하다. 진정한 독서가가 되는 과정은 테니스의 고수가 되는 과정과 일맥상통하는 면을 발견한다. 일종의 ‘배은망덕’한 경우인데 테니스에 처음 입문하는 남자가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좋은 시합 파트너는 남자 고수가 아니고 숙련된 아주머니들이다. 남자 초보 테니스 입문자가 노련한 아주머니 테니스 고수와 게임을 하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숙련된 아주머니와 게임파트너를 하면 테니스 초보자에게 가장 중요한 ‘안정된 랠리’를 오래 한다.
아주머니들은 파워 보다는 안정되고 적당한 속도의 볼을 구사하므로 시합에서의 랠리를 연습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한마디로 남자 고수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게임을 하는 재미’를 만끽한다. 남자고수와 게임을 하면 그야말로 꿔다 논 보리자루 신세가 되기 십상이며 어쩌다 실수라도 하면 고수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테니스에 대한 흥미를 일찌감치 접을 수 있는 상황이 온다.
테니스 초보자에게 너무 과하지 않은 적당한 훈련파트너가 필요하듯이 초보 독서가에게도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대중성을 가지고 있어서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과 쉽게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베스트셀러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가만히 보면 장비가 필요한 거의 모든 취미생활에는 소위 말해서 ‘입문용’ 또는 ‘초보용’ 장비가 따로 잘 구분한다. 예술분야도 그렇고 스포츠 분야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초보라도 그 분야에 쉽게 적응하고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는 목록이 어느 분야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반드시 출판사의 인위적인 손길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단순히 유명작가의 이름 값 덕택에 그 자리에 오른 것만은 아니다. 일례로 1992년에 이경훈이 쓴 <인맥 만들기>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는데 물론 다른 이유도 많았겠지만 이 책이 우리나라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은 것은 인맥과 학맥으로 출세의 향방이 결정되는 우리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그나마 책으로 나마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인맥을 형성하고자 했던 당시 우리나라 독자들의 욕망의 정확한 표출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를 제외하면 많이 팔린 책은 그 당시 사회 구성원들의 정확한 자기표현 또는 욕망 또는 염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당대 사회 구성원들의 욕망을 저급하다고 치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난쏘공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18년간 무려 40만부가 팔린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산업화의 속도전에서 소외받고 희생을 강요당한 이들의 사회를 향한 외침의 소산이듯이.
제대로 된 베스트셀러는 당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시금석이며 독서 목록으로 나쁘지 않다.
본인의 저서 <아주 특별한 독서>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