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의 역사 - 천년의 제국, 동서양이 충돌하는 문명의 용광로에 세운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점 더숲히스토리 2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지음, 최하늘 옮김 / 더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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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독서가의 고민은 더 이상 장서 수가 아니라 책을 둘 곳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 생활이 길어질수록 넓고 아름다운 서재를 갈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마음껏 책을 사모아도 둘 곳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 있는 독서가는 드물다. 어쩌면 서재 공간의 부족이야말로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돕는 최고의 조언자인 셈이다. 책을 사다 둘 곳이 없으며 새 책이 들어오면 헌책이 나가야 하는 운명이라면 새 식구를 들일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나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서 ‘강제로’ 깐깐하게 살 책을 고르는 편이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책을 사더라도 부족한 공간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산 만큼’ ‘버려야 할’ 운명은 피하기 어렵다. 내 경우에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꼭 필요한 책은 절판되어서 더 이상 구할 수 없거나 집필하는데 참고해야 할 책이다. 일종의 데이터베이스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책만 내 서재에 입주할 수 있고 서재 한켠 작은 공간을 차지할 축복을 누린다. 


더숲 출판사에서 나온 <비잔티움의 역사>와 같은 책은 내 서재가 없어지지 않는 한 서재 영주권을 보장해줘야 하는 책이다. 동서양이 충돌하는 문명의 용광로에서 존재하며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점을 자랑하며 고대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천 년 동안 버틴 비잔티움 제국의 모든 것을 다룬 이 책을 버린다면 내 서재에 존재할 수 있는 책은 아마도 한 권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동로마 제국이라고 부르는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가 왜 이토록 중요할까? 우선 비잔티움 제국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오랫동안 살아남아 로마법과 신학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 전통을 형성하고 전파했다. 또 러시아, 프랑스, 오즈만 군주 등 동서양의 군주들에게 살아있는 로마제국의 모델 역할을 했다. 따라서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지만, 오늘날 유럽의 정치 문화 경제의 근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즉 오늘날 서양문명은 비잔티움 제국의 폐허 위에서 건설된 것이나 다름없다. 


<비잔티움의 역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리스도교 제국의 탄생을 기술한 부분이었다. 역사 교과서에는 단 몇줄로 요약하며 지나가지만, 그리스도교가 비잔티움 제국에 정착하는 과정과 속사정이 흥미로웠다. 한때 갖은 박해를 받던 기독교는 4세기에 이르러 제국의 종교로 정착하였다. 율리아누스를 제외한 모든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일약 특권을 누리며 로마의 문화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되자 로마 황제는 앞다투어 기독교를 지지하는 법을 제정하고 로마 고유의 고대 신앙은 탄압하였다. 고대 신앙에 대한 지원은 중단하였고 필요하다면 재산을 박탈하였고 신전에서의 그 어떠한 의식도 금지하였다. 물론 고대 신앙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아 곳곳에서 기독교와의 충돌을 벌였고 서로에게 린치를 가하기도 하였다. 


고대 신앙과 함께 올림픽을 비롯한 고대의 제도도 그 운명을 함께 하였다. 서기 390년에 이르러 올림픽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고대 신앙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만은 아니었다. 기독교 신앙은 고대 신앙의 자양분을 차용하고 그리스도교 사상과 이상을 발전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찬란했던 비잔틴 제국의 문명은 고대 신앙과 기독교 신앙이 이상적으로 융합되어 이룩된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 비잔틴 제국의 몰락과정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왕과 왕비가 돈이 없어서 보석이 아니라 색을 넣은 유리가 박혀 있는 왕관을 써야 할 정도로 나라 곳간은 비었는데 소수의 귀족 기업가 들은 더할 나위 없는 호시절을 보냈다. 빈부 차가 극심하여서 일부 부유층 들은 자신 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집을 요새화하고 탑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인구가 줄어만 갔다. 세금을 내고 전쟁터에 나가 싸울 인구가 준 것은 물론 전쟁 탓도 있겠지만 페스트를 비롯한 전염병의 창궐이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무엇보다 우리가 비잔티움의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모름지기 나라는 변화 속도에 뒤처지면 망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비잔티움 제국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지만, 더 빨리 변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다른 이탈리아 국가 들이 민주적인 투표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을 때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모든 것이 황제나 총대주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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