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 남성작가 편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한국소설 12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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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세계문학을 주로 강의한 이현우 선생이 쓴 ‘한국 소설 자세히 읽기’다. 이현우 선생은 대학뿐만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을 오래 해온 터라 이 책 역시 ‘그들만의 리그에서 주고받는 암호문’이 아니고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한국 소설 더 재미나게 읽기 안내서’에 가깝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학자가 쓴 ‘한국 소설 이야기’는 여러모로 독자들에게는 축복이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가 한국문학계에 유권해석을 내릴 만한 위치를 점유하지는 않더라도 일반 독자들 입장에서는 매력적이다. 러시아 문학을 비롯한 세계문학을 주로 공부하고 강의한 독서광이 바라본 한국문학이야기는 색다른 즐거움, 독특한 시각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장석주 선생이 쓴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은 학맥에 구애를 받지 않은 자유로운 생각이 만들어낸 한국문학으로 떠나는 소풍으로 이끈 다면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수십 년간의 지독한 독서와 세계 문학 강의 경력이라는 새로운 시각이 누구도 가보지 않은 풍경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여러모로 기존의 문학비평과 서평과는 구별되는 지점이 많은데 그 대부분이 일반 독자들에게 반갑고 새로운 경험이 될 만하다. 


최인훈의 <<광장>>은 1960년 4.19혁명이 아니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작품이다.


이 첫 문장은 <안나 카레니나>의 그것만큼이나 독자들의 주목을 끌고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하게 한다. 최인훈의 <광장>과 이병주의 <관부 연락선>을 비교하면서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투신했기 때문에 더 큰 소설로 나아가지 못한 반면 <관부 연락선>의 주인공 유태림은 교사이라서 제자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더 위대한 장편 소설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구절은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의 독창성과 참신함을 상징한다. 


이현우 선생이 국문학계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표현의 자유로움이 주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크다. 현대에 대해서 말을 하기 위해 차선책으로 애용되는 역사소설을 이야기 하면서 황석영의 <장길산>을 평가하는 대목도 그렇다. 19세기 정도면 몰라도 조선 시대 숙종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은 현대의 이슈인 ‘자본주의’를 담을 수 없는 태생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쉽다는 평가를 내린다. 어촌이었다가 근대화로 인해서 개발되는 <삼포>를 다루었다가 갑자기 17~8세기로 돌아가 버린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문학은 개연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개연성 보다는 확실한 선을 긋는다. 그러니 독자로서는 그동안 금기시했던 문학 작품에 대한 냉정한 비교와 평가를 아낌없이 구경하는 호사를 누린다. 


아울러 황석영이 음식이야기를 비롯한 너무 많은 주제로 글을 쓰다 보니 쓸데없이 작가적 역량을 소진했고 이문열 또한 <삼국지>와 <초한지>같은 소설에 너무 많은 재능과 시간을 허비한 탓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는 지적은 이현우 선생이 국문학에 관한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가능한 비판이다. 가령 이런 비판. 


이문열의  문학은 작가 자신이 어떤 지위에 오르기까지 하나의 방편으로 활용된 측면이 강해 보인다.


독자들은 다만 이 자유로운 영혼이 주는 가감 없는 평가를 독서와 읽을 책을 선택하는데 참고하면 될 것이다. 마광수 교수가 우리에게 윤동주 시인의 세계로 인도한 것처럼 이현우 선생은 이병주라는 걸출한 문인을 재평가함으로서 그의 문학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실록 소설’이라는 이병주 소설의 정체성에서 알 수 있듯이 이병주는 소설을 통해서 역사를 기록했던 작가였으며 그의 소설은 자신의 체험과 조사를 통해서 나왔다고 평가한다. 


뛰어난 작가이지만 표절 시비에 휘말린 안타까운 작가로 치부되는 경우가 흔한 이병주에 대한 재평가는 이현우 선생의 큰 공적이 아닐 수 없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을 읽고 나서 이병주 소설을 읽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지 않을까.


소설가 김승옥이 <무진기행>을 완성하고 서울대 불문과 동기인 비평가 김현에게 먼저 보여주었는데 그는 작품이 별로라면서 발표하지 말라고 당부한 에피소드는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가 일반 독자들이 좋아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작은 사례다.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남성작가편과 여성작가편 즉 2권으로 구성된다. 이 서평은 남성 작가편만 읽고 썼다. 2권 모두를 한 서평에 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남성 작가편만 으로도 충분히 밑줄 긋고 싶고 무릎을 탁 친 순간이 허다했다. <죄와 벌>과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어떻게 한 서평으로 논할 수 있다는 말인가.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의 남성작가편만 해도 최인훈, 김승옥, 황석영, 이청준, 이문열, 김훈 같은 화제성이 높고 독자들이 좋아하는 작가로 채웠는데 왜 이랬는지 모르겠다. 


최인훈 같은 작가는 이런 작품을 쓰기 어렵다. 엘리트 작가로서 책을 통해서 세계를 경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삼포 가는 길>에 술집 작부인 백화가 자기 배 위로 남자들 사단 병력이 지나갔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런 표현은 얼추 그에 견줄 만한 경험을 갖고 있지 않으면 쓰기 힘든 대사다. 


이현우 선생이 보여준 뛰어난 가독성과 독자들을 휘어잡는 재미난 이야기라면 더 많은 작가를 다루고 10권 전집으로 내도 아껴가면서 읽게 될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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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2-09 1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러시아문학 좋아하는데 책 제목만으로도 관심 갑니다 :-)
그리고 박작가님 책 보다가 광장 샀어요 ㅎㅎㅎ 딱 펼쳤는데, 광장의 그 그림이 있어 몹시 반가웠습니다~

2021-02-09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9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1-02-09 13:44   좋아요 2 | URL
아이고 감사합니다.

stella.K 2021-02-09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장석주 작가가 5권짜리를 냈는데 못해도 그 정도 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ㅎㅎ
근데 마광수 교수 때문에 윤동주를 알게 된 건가요?
그분이 윤동주로 무슨 학위를 받은 것 같긴한데
윤동주는 보통 학창시절부터 알게 되는 거 아닌가요?
물론 요즘엔 출판계가 거의 경쟁적으로 내긴 합니다만
괜찮으시면 보충설명 부탁합니다.

박균호 2021-02-09 16:38   좋아요 2 | URL
제가 듣기로는 우리가 이토록 윤동주를 잘 알고 높게 평가하게 된 것은 마광수 교수의 연구 결과 덕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학창 시절 부터 윤동주를 모두 알게 된 것은 처음 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고 마광수 교수가 윤동주를 열심히 연구하고 그 성과를 널리 알린 결과라고 들었습니다. ㅎㅎ 마광수 교수의 최대 업적이라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