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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새벽, 넌 무슨 생각 하니? - 잠들지 못하는 당신에게 전하는 마음
이현경 지음, 선미화 그림 / 책밥 / 2020년 9월
평점 :
새벽에, 올해 21살이 된 딸아이가 안방으로 들어왔다. 뭔가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일단 우리 곁에 재웠다. 아침을먹고 새벽 일을 물었다. 역시 사연이 있었다. 새벽까지 공부를 하는데 갑자기 현관 조명이 켜지고 거실의 조명도 깜빡깜빡 하더란다. 분명 모두 꺼져 있었는데 말이다. 그 말 까지 듣고 나서 ‘아, 그 일이 무서워서 안방에 왔니?’라고물었더니 그게 아니라고.
귀신보다 눈앞에 있는 과제가 더 무서워서 과제를 다 마치고 나서야 안방으로 부랴 부랴 달려왔단다. 경영학을 복수전공한답시고 수학 과목을 듣는 모양인데 딸아이가 새벽까지 풀던 수학문제를 보니 내가 봐도 귀신보다 더 무섭게생겼다.
딸아이가 간밤에 본 것은 아마도 잠깐 지나가는 차에서 나온 헤드 라이트 빛 이었을 것이다. 소음과 빛이 드문 새벽에는 작고 짧은 불 빛이라도 섬광처럼 빛나는 법이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인 이현경 아나운서가 쓴 <모두가 잠든 새벽, 넌 무슨 생각하니?>를 읽다가 새벽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살펴보았더니 어항에 설치해둔 산소 발생기 소리였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낮에는 아무 것도 아닌 소리가 새벽엔 마치 천둥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잠이 오지 않아서 ‘이 음악만 들으면 십분 만에 골아 떨어진다’는 음악 스트림을 켜두었다. 잠이 들었는데 한 참을 자다가 밖에 웬 폭풍우와 천둥 소리가 나서 깨어났더니 몇 시간 전에 나를 잠에 빠져들게 한 감미로운 그 음악 소리였다.
개미 발자국 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새벽에 듣는 이현경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밖에서 혼난 아이를 달래주는 따뜻하고 포근한 위로로 다가온다. 새벽 2시에서4시까지 방송되는 라디오 프로그램 청취자의 사연과 이현경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담은 책 <모두가 잠든 새벽, 넌 무슨 생각하니?>는 서로의 집으로 바래다주기를 반복하는 첫사랑의 풋풋함과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그 어떠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작가의 상상력으로도 도저히 쓸 수 없는 이런 구절.
엄마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해주신 김장김치를 먹어버리면
엄마의 흔적도 사라질까 봐
차마 냉장고에서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연도 있었어요.
중풍으로 누워서 걸음도 못 걷던 내 아버지가 장손 아들에게 제사 지방 쓰는 방법을 알려주시겠다고 종이에 쓴 삐뚤삐뚤한 글씨를 돌아가신 지 30년이 지나도소중이 간직한다.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보고 눈물을 흘린다.
혹시 이런 말 들어 보셨어요?
병이 오히려 휴식이 될 수 있다는.
이현경 아나운서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어렴풋이 라도 알 것 같은 나로서는 이 말이 단순히 ‘들은’말이 아니고 ‘본인의 말’이라는것을 알겠다.
이현경 아나운서에게는
‘중세시대의 길고 긴 암흑기가 있었던 것처럼 제 인생도 잃어버린 10년의 세월’이 있었으니까.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 중
그 어느 것도 나의 것이 아님을
그 어느 곳에도 내 자리는 없음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 속에서 홀연히 빠져나와
혼자만의 동굴에서 웅크리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이제야 알겠다. 일면식도 없는 이현경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글이 왜 이토록 위로가 되는지. 왜 이현경 아나운서의 글이 운동회 달리기에서 꼴찌에서 헤매는나를 향해서 온몸으로 박수를 쳐주던 이웃 아주머니의 얼굴처럼 마음속에 새겨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