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 로쟈의 문학 읽기 2012-2020
이현우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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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는 책장. 이 문구만큼 독서가를 설레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반대로 독서가에게는 더 책을 둘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만큼 비극적인 것도 없다. 불행은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서재가 꽉 차서 우울해하고 있던 차에 직장에서조차 직원이 늘어나는 바람에 그동안 사용했던 세 개의 사물함 중에 두 개를 비워야 할 처지다. 


비워줄 사물함을 열자 그동안 탐욕스럽게 모아왔던 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동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폭소를 터트렸다. 묘한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꼈다. 직장인으로서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책을 직장에 둔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내의 눈을 속이고 몰래 본가의 서재에 책을 반입할 수 없는 노릇이다. 책이 앉을 자리는 직장에도 본가에도 없다.

 <이현우 선생의 문학 전집 서고>


한때는 세상의 고통을 이겨내는 동반자였던 책들이 솎아내야 할 잡초가 되었다. 처지가 달라지니 ‘구매해야 할 이유가 오만 가지’였던 책들이 ‘떠나보내도 좋은 이유가 오만가지’가 생겨나더라. 절판본이자 아끼던 <늑대 토템>, 꾸준히 구독하는 <녹색평론>, 칼 오베의 <나의 투쟁>도 보내기로 했다. 출판사에서 받은 내가 쓴 책은 더더욱 미련이 없었다.


내가 ‘버림’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하는 와중에 유독 눈길이 가고 껴안게 되는 책이 있었다. 로쟈 이현우 선생의 <책에 빠져 죽지 않기>가 그 주인공이다. 내가 쓴 책도 아니고, 귀하디 귀한 희귀본도 아닌데 이 책을 ‘생존시켜야 할 소중한 한 권’으로 지목한 것은 ‘고심’의 결과가 아니고 ‘본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현우 선생의 독서 에세이는 책으로 점철된 내 성인 시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독서 생활의 아이콘이 로쟈의 독서 에세이다. ‘우리 때는’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었다고 설명하는 책이기도 하다. 어쩌면 책으로 꽉 찬 내 서재를 한 권의 책으로 설명한다면 그 주인공은 당연히 내가 쓴 책이 아니고 로쟈 선생의 책이다. 우리 시대의 독자가 <책에 빠져 죽지 않기>와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게걸스럽게 읽는 것은 소가 싱싱한 풀을 뜯는 것만 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읽고 또 얼마나 장바구니가 가득 찰지 두려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기대와는 달리 ‘보통의 독자’라면 모두 알 법한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누구나 잘 아는 문학책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문학 작품’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번역해서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기여한 번역가 사이덴스티커가 쓴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를 소개하는 꼭지 또한 서평이 아니라 차라리 한편의 뛰어난 단편 추리 소설로 읽힌다. 번역은 세계문학의 필수조건이라는 명제를 끌어내기 위해서 이현우 선생은 치밀하고, 흥미진진한 전개를 이끌어 간다.

이현우 선생의 ‘서평 문학 작품’은 세계문학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세계 공용어로서 에스페란토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한계는 사용자가 20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보다 고유한 문학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통찰을 거쳐서 유럽의 언어와 이질적인 일본어로 쓰인 <설국>이 어떻게 좋은 번역을 거쳐서 노벨상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이현우 저자>


번역문학이 보편화 되지 않아서 노벨문학상이 지역 문학상에 머물러 있었던 시기에 톨스토이마저 그 수상자가 되지 못한 것이 비극의 ‘절정’이다. 번역이 세계문학의 필수조건의 시대가 되면서 대부분의 세계문학을 번역으로 접하는 우리나라야말로 세계문학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 낸다. 번역의 중요성을 이토록 지적이고 우아하게 강조한 글이 또 있었나 싶다.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서평집이 아니고 문학작품으로 읽어야 할 이유는 좋은 소설에서나 발견되는 매력적인 서두와 말미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가령 이런 서두.


소설은 왜 읽는가. 제인 오스틴의 유고작 가운데 하나인 <노생거사원>은 그 한 가지 답변을 제시한다. 등장인물이 아닌 작가 오스틴의 견해인데, 소설이란 “정신의 위대한 힘이 드러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과 인간 본성의 변화에 대한 가장 행복한 묘사, 위트와 유머의 생생한 발현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선별된 언어로 전달되는‘ 작품들을 가리킨다. 소설에 대한 최대치의 예찬 아닌가.


이현우 선생만이 쓸 수 있는 이런 말미는 어떤가.


그는 ‘생김새는 거무튀튀한 집시’이지만 ‘옷차림과 행동거지는 신사’가 돼 폭풍의 언덕으로 다시 돌아와 모진 복수를 시작한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오해의 산물일까? 그가 캐서린의 말을 끝까지 들었더라도 집을 떠났을까? <폭풍의 언덕>의 섬뜩한 교훈 하나는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는 하나의 좋은 문학 작품이기도 하지만 ‘독서 안내서’의 본분에도 충실하다. 오랜 강연과 무지막지한 독서로만 가능한 여러 번역서의 출간 이력과 서지 정보가 가득하다. 또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키스 장면을 둘러싼 번역의 문제는 키스보다 더 달콤한 읽을거리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문장은 이현우 선생의 저자로서의 성실함을 보여준다.


조이스는 마지막 순간에 프랭크와의 탈출을 포기하고 주저앉은 이블린의 모습을 짐승에 비유한다. “묶인 짐승”(창비), “넋을 잃은 짐승”, “수동적이 되어 어찌할 바 모르는 짐승”,(민음사), “미약한 한 마리 짐승”(열린책들) 등으로 옮겨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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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3-0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속아낼 때가 제일 마음 아프더군요.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짐이고.
책은 정말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건데 말입니다.

로쟈님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더군요.
학교뿐 아니라 여기저기 강의 나가시면 언제 책을 읽고
쓰실까 하는데 다 해 내시는 걸 보면 철인같습니다.
박균호님도 그러시겠지만.^^

박균호 2020-03-06 17:06   좋아요 1 | URL
네 글쵸. 저는 주로 방학때 글을 쓰는 편이에요. 스텔라님 부디 코르나 사태를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