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 타인을 대상화하는 인간
존 M. 렉터 지음, 양미래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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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러한 경계를 가로지를 방법을 익히기 위해 애쓰다보면 자신에 대해 더욱 폭넓게 이해하고 자신과 세계와의 연결성을 깨닫는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이로써 인간 정신은 육체가 지닌 물리적인 제약을 뛰어넘는 가소성(plasticity)과 가변성(fluidity)을 갖추게 된다. 생각해보면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처럼) 지리적·문화적 혹은 물리적 제약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만한 고찰과 통찰을 보여주는 정신의 소유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에 반해 상당한 수준의 건강과 번영을 비롯해 근대가 제공하는 많은 이점을누리고 있음에도 그것들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내면적이고 영적인 성장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도 떠올릴 수 있다. 실제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기자이자 저자인 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는 미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읽고 말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초월적인 가치를 식별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한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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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 타인을 대상화하는 인간
존 M. 렉터 지음, 양미래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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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인간화-가장 극심한-수준의 대상화의 한 유형이며, 대상화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비인간화의 결과로 간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 P36

대부분의 아동은 타인의 내면세계를 협소하게만 인식하다보니 공감 능력도 제한적이며, 이렇듯 미숙한 감수성을 성장시키려면 수년 동안의 지속적인 조언과 모범 및 격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아동이나 청소년이 실제로 대상화의 주체나 나르시시스트처럼행동하고 있어도 그들이 대상화를 하고 있다거나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보면 타인을 대상화-타인의 내면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하는 행위는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온당히 나타나는 감정적 미성숙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자기중심성과 공감 능력의 결여가 성인기까지 이어질 경우 가장 흔하게는 자기애성 성격장애(8장에서 다룬다)로 발현되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성격이 나타나게 된다. 사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수행해야 할 주요 과업 중 하나는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마음을 (대부분의 경우 일시적인 상태에 불과하겠지만) 초월하는 역량을 함양하여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열중하고, 타인의 내적 경험이 갖는 타당성을 더욱 충실히 인식하는 것에 있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온전히 살아 있는 더욱 온전한 인간이 된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발견"(마태복음 16장 25절)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준다. 성인이 된 누군가가 다른 부분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이와 같은 역량을 합리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못했다면 그것은 도덕적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P47

비인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는 상호연관된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작용한다. (1)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인간적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부인, 즉 해당 개인이나 집단이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가정과 (2)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인간 이하의 존재라는 확신이다. 다시 말해서 비인간화가 발생하려면 비인간화를 수행하는 주체가 반드시 두 가지 정신적 행위에 관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의 인간성을 부인하고 이와 더불어 그 사람이 사실은 인간 이하의 어떤 것이라고 확신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와 같은 나치의 관점에서 볼 때 유대인들은 단순한 비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형태를 한-쥐나 잇과 곤충 같은-해충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르완다에서 집단학살을 벌인 후투족의 시각에서 투치족은 단순한 비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퀴벌레였다. - P62

이렇게 타인에 대한 비인간적인 묘사에 정서적으로 공감하게 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도덕적 잣대-영국 역사학자 조너선 글러버가 ‘도덕적 자원‘이라고 일컬은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 품위, 존중, 연민 등-는 왜곡되고 방향성을 잃게 된다. 또한 자기(self)의 심리적 경계 자체가 무너지고 그상태로 굳어지면서 협소해진 범위 안에 속하지 못하게 된 이들은 고려할 가치도,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인식이 촉진된다. 비인간화가 지니는 이처럼 음산한 측면은 비인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도덕적으로 비난 받았을 만한 행동을 정당화 하는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이라 불리고 있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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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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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겸허하게 우리 사고에 이를 합산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부조리에 부딪혀도 깨지지 않고, 이 지구를 웬만큼 살아봄직한 장소로 만들 채비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는 무엇보다 이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해요.
우리 오성(性)은 실로 빈약하기 이를 데 없어서 가까스로 세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성의 빛이 가 닿는 어두컴컴한 지대엔 온갖 패러독스가 자리 잡고 있고요. 이 패러독스라는 도깨비가 마치 인간정신 바깥에 자리 잡고 있는 듯이 그것 ‘자체‘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도록 경계합시다. 아니면, 이건 한층 고약한 경우인데, 이 도깨비를유혹받기도 하고 피할 수도 있는 무슨 오류처럼 치부하는 착각에 빠지지 맙시다. 일말의 하자도 없는 이성적 기구를 관철하겠다는 시도 아래, 완고한 도덕의 틀 안에서 세계를 처형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는 얘깁니다. 왜냐하면 그 하자 없는 완벽함이야말로 그 같은 시도가 지닌 치명적 허구이며 어이없는 맹목의 표식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 P191

노련한 대가(大家)처럼 세상을 극복하려 했지, 세상과 맞붙어 괴로워하는 걸 원치 않았어요. 세상에 맞서 우월한 위치에 머물고 싶었지요. 숙련공처럼, 당황하는 법 없이 세상을 지배하려 했던 겁니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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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권리, 동물의 권리 스켑틱 SKEPTIC 37
스켑틱 협회 편집부 지음 / 바다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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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피부색이나 성별 그리고 지능과 상관없이 기본적인 권리가 있고 그것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라면 피부색, 성별, 지능과 상관없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 이유를 동물에게도 똑같이 적용해 볼 수 있다. 동물도 인간처럼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면 그것을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 P86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고통을 피하고 싶은 욕구는 동물이라고 해서 없는 게 아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를 발로 차면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은 안다. 그러니 그것을 존중해 주면 된다. - P87

우리가 고기로 먹는 대부분의 동물은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있고, 그러니 그것을 피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이른바 ‘공장식‘ 농장의 사육 관행은 그런 욕구를 전혀 존중해 주지 않는다. 닭을 예로 들어 보면, 닭은 날개도 펼 수 없고 바닥은 철조망으로 층층이 된 이른바 배터리 케이지에서 길러진다. 산란계는 달걀을 계속 낳도록 종일 밝게 해둔다. 닭을 밀집 사육하는 방식은 인간으로 치자면 정원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서 평생을 사는 것과 같다. 머리가 나쁘다고 해서 사람들을 정원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서 평생을 살라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기본적인 욕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 P87

인간이 동물을 기르는 이유는 (현대 사회에서는 농사나 교통수단이라는 목적은 없어졌으므로) 고기나 가죽이나 털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축을 죽여야 하는데, 동물을 죽이는 것은 그들의 기본 욕구를 존중하는 것일까? 육식은 동물의 기본 욕구를 해치는 행동일까?
가축은 길들인 동물이기 때문에 ‘자유‘를 준다는 명목으로 자연에 내보내면 살아남지 못하기에, 가두어 기르는 것이 오히려 기본적인 욕구를 존중하는 행동이다(그런 점에서 야생 동물을 동물원에 가두는 것은 비난받을 만하다). 따라서 동물의 기본적인 욕구를 존중하며 사육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연 상태와 마찬가지로 넓은 공간에서 자신의 본성을 누리면서 자유롭게 사육하는 것이 그것이다. 가령 앞에서 예를 든 닭은배터리 케이지가 아니라 흙을 쪼고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면 된다. - P88

동물을 인도적으로 사육한다고 해서 고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중요한 관문이 하나 남아 있으니 동물을 도살해야 고기로 먹을 수 있다. 죽는다는 것은 확실히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에 죽음의 고통이 가중된다. 설령 쥐도 새도 모르게 그리고 마취를 하여 죽여 공포도 고통도 느낄 틈이 없다고 해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용납될까? 그렇지 않다. 인간은 미래를 향한 기대와 계획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그것을 꺾으므로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영장류를 제외한 동물은 자기가 과거와 현재에 걸쳐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식이 없으므로 공포와 고통을 주지 않고 도살을 한다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 앞을 보지 못하게 입장하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기절을 시켜 도살한다면 윤리적 도살은 얼마든지 가능하다(현대의 도살장은 기절시킨 다음에 도살하지만 컨베이어 벨트가 워낙 빨리 돌아가는 탓에 가끔 기절되지 않는 동물이 생긴다. 역시 비용이 문제다.).
어떤 생명이든 죽인다는 것은 혐오스럽다. 그래서 사람들은 애써 그 논의를 회피하고 불편해 한다. 그러나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 윤리적 추론은 그래야 하니까. 그러면 동물은 고통없이 죽여도 비윤리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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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을 때"의 심리적 기제로는 ‘도덕적 투사projection‘, ‘자기 과시self-display‘, ‘탈인격화depersonalization‘가 있다.

[도덕적 투사]의 심리적 기제를 작동시키는 요소로는 ‘사회적 제제 수단의 미비를 이용한 심리적 방종‘, ‘권위에 대한 맹목적 순종‘, ‘방관자 효과‘가 있다.

[자기과시]의 심리적 기제를 작동시키는 요소로는 극단적 개인주의와 특권의식이 있으며,

[탈인격화]의 심리적 기제를 작동시키는 요소로는 군중심리가 있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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