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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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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들의 본능은 결국 중간급 정도의 질에서 생존만을 향해 있는 것일까

한국의 후진성을 맞닥뜨리며 소름돋는 것을 경험했음에도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애정과 솔직함을 담아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검열하고 반성하게 했던 박노자는

이번엔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유럽의 양심을 진단한다.


한국보다 좀 더 세련되고 성숙한 유럽의 민주주의는 과연 그 본질의 발현인가.

결국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한번쯤 민주선진국의 민주주의가 “트랜드”혹은 “관습”의 종류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해보아야한다는 것이다.

양심은 감동과 함께 마음속에 인간의 본질로써 자리잡아야 하는 것이지

학습에 의해 매일아침 이를 닦는 습관처럼 무미건조하게 행해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유럽의 선진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국가들이 행하는 민주적 행위는 어쩌면 그들의 국내정치에 한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의 본질이 인간 존중이라고는 하지만, 확실히 그건 본질일뿐,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최고의 가치는 갖지못하고 역시 정치적 수단(물론 공정하고 훌륭한 편에 속하는)의 하나에 머무르고 있다.

“본질”마저 호도되고 이용당하는 이 시대에, “수단”이란 것이 온전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러므로 삶의 방식, 정치의 방식은 다양화되어야 한다.

이 책은 자본민주주의의 어두운면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고루할지도 모르지만,

매일 밤 (외양이)멋진 사람들이 많은 클럽이 홍대 어디에 있을까만을 고민하는 대중들에게는

삶을 뒤돌아 볼 수 있게 만드는 좋은 책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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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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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였던 시절의 동화책을 빼면 내가 동물에 관한 책은 아마 거의 읽은 적이 없을것이다.

오래전부터 동물을 무척 좋아했었지만

(특히 애들취향처럼 큰 동물을 좋아한다. - 말 코끼리 고래 독수리... )

걔중에 작년 가을부터 갑자기 유독 늑대가 좋아졌다.

그리고 그 몇 개월전부터 녹색평론의 광고가 자꾸 나를 유혹하는 바람에

(이러다가 녹색평론에 광고되는 책을 다 읽게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결국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책을 잡자 거기에 푹 빠져서 다 읽게 되어 그날 밤 잠을 제대로 못자고 말았다.

표지의 늑대 사진 이쁘지, 본 내용 들어가기 전인 <작가의 말>부터 유머 때문에 웃기지, 늑대 얘기가 온통이지, 에스키모까지...  아 정말 감격이다. ㅠ.ㅜ

이야기는

늑대 프로젝트의 수행원이 된 주인공이 처음에는 적으로 규정되었던 늑대에 대해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스파이 신세가 되는 이야기이다.

늑대의 습성과 생활에 관한 백과사전적 지식이 이야기로 엮인것을 보면서(작가의 경험이 그 바탕이 되긴 했지만) 작가의 상상력과 늑대에 대한 애정이 무척 풍부하다는 것에 부러움을 느낀다.

늑대가 가족을 이루고 사냥을 하고 이웃늑대와 어울리고 새끼들을 키우고 놀고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는 있다.


“인생의 어떤 것도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다. 이해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프랑스 물리학자 마리 퀴리의 이 말을 무척 좋아한다.

두려움-공포는 인간을 원초적 본능-생존의 의지-로 몰아간다. 이때 인간은 방어를 위한 공격을 한다.

인간은 그 두려움을 낯선 것에서 주로 느낀다. 아마 동물도 그럴 것이다.

인간이 좀 더 진화한 생명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낯선 것을 두려워만 해서는 안된다.

이해하려고 해야한다. 그러므로 해서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외계인도 아니고 새로운 생명체도 아닌 지구상의 생물들과 마주치는 처음부터 적이 될 필요는 없다.

(아니 오히려 처음-오래전엔 우호적인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인간들의 두려움-공포라는 정서가 이 세상에 많은 차별과 장벽등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인종에 대한 낯설음, 다른 지역에 대한 낯설음, 다른 언어에 대한 낯설음, 다른 제도에 대한 낯설음, 다른 정체성에 대한 낯설음, 다른 이념에 대한 낯설음,.... 

다른 문화에 대한 이러한 낯설음들이 익숙하지 않다면 이해하려고 시도해봐야 한다.

우리가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큰 사람이라면 두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늑대를 사랑한다.


- 뱀발 -

메신저에서 누군가 물었다.

“한밤중에 숲속에서 그런 인상을 한 늑대를 마주친다고 생각해봐라 무섭지?“

“네. 무섭겠지요. 하지만 늑대도 내가 무서울거에요. 그리고 배가 고프다면 날 먹으려고 하겠지요. 그래서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팔자라면 어쩔수 없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나는 지리산 꼭대기에서 깜깜한 저녁에 허기진채로 깊은 눈속에 갇혔을때도 어, 죽는구나 하면서도 [죽음]에 대한 실감은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나한테 절대 일어 날것 같지 않은 운 덕분에 지금 나는 살아있다.

미리부터 죽음이란 것을 두려워할 필요 역시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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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제국 당대총서 14
하워드 진 지음, 이아정 옮김 / 당대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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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의견이 우리 시대의 사회적인 투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든가, 투쟁의 어느편에도 가담해 있지 않은 듯 행세하는 것이 객관이라면, 우리는 전혀 객관적이고 싶지 않다. 실제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남을 돕고자 하는, 아픈이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삶을 헌신하고자 하는, 시나 음악.연극 등에 몸바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열망은 얼마나 자주 어리석은 낭만주으로 폄하되어 왔는가.”


“현대의 기술사회는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적인 문제들을 알고 있는 새로운 종류의 전문가들을 탄생시켰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도덕적인] 판단이 필요한 사회적 갈등사항에 대해서까지도 전문가의 자문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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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은 이 책에서 미국에서 선하다고 믿어지는 많은 정책과 규칙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중에는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은 괜찮은것 혹은 별것도 아닌 것을 파헤치려는 학자근성으로 글을 쓰고 있지는 않다.

품위있는 분노로 그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든든한 버팀목인 법과 언론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하워드 진은 그의 글이 그런 사회에 대한 미움과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사람의 마음속에 나쁜 것이 있다면 그만큼 좋은 것도 있으며 우리는 그런 좋은 것을 개발해야하고 자신과 더불어 주위도 돌아보며 그 나쁜 것들을 몰아내는데에도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조금은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흔히 하는 말중에 이런게 있다.

“그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지.”

여기에서 숨은 뜻 하나를 밝혀낼 수 있다. 선한 사람은 법같은것은 필요없다는 진실을 말이다.


그는 작은 농사일을 해서 혹은 고기를 잡아서 먹고 산다. 자연재해가 닥쳐서 그동안 모아놓은 여분의 식량도 없다.

이웃에 도움을 청하려 했으나 모두 비슷한 처지이다.

저쪽 먼 곳 피해가 미치지 않은 우리 쪽에서는 그들의 도움을 거부하거나 관심이 없다.

그는 갈수록 배가 고파진다. 한 조각의 빵과 한 모금의 물이라도 있으면 연명을 할 수 있으련만.

그가 몰래 훔쳐가는 이 한조각이 저 사람들한테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테니 하느님 저를 용서하소서.

철두철미하게 정확한 회계장부를 들춰보고 빵 한조각이 없어진 것을 알아챈 우리는,

남의 것을 함부로 가져가는 무질서가 생기지 않게 규칙을 만듭시다. 끝.

태초에 시작은 이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 정말 그럴거 같다.

태초에 하느님이 계시고 어쩌고 저쩌고의 성경엔 뭔가 의심스러운게 있지만 저건 믿음이 가는데 왜일까.

젠장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들끼리만 알고 창고에 쑤셔박아 아무도 모르게 보관하던 진실과 정보는 너무 많아서 창고가 터질 지경으로 비밀에 부칠 수 있는 시대가 지나가고 우리들을 초조하게 하고 있다.

창고를 사수하던 우리는 이런 논의를 한다.

“조금씩 이것들을 나눠줘서 복지적인척 자유사회인듯한 분위기라고 선전하면 눈가리고 아웅할 수 있지. 이건 투자야. 우린 안전해질 수 있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모습이 걔중에 가장 효율적이고 그나마 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이 모습이 최선인가 라는 질문에 0.1초내에 “네”라고 대답하게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조물주는 인류가 망할때까지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를 계속 내줄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폭력적이지 않고 사랑이 깃든 방법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면서의 내 태도 역시 중립적이고 싶지 않다.


뱀발 : 녹평 게시판에서 김규항씨의 [이상주의를 혐오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라는 칼럼을 읽었는데, 아무래도 저 위에 인용한 하워드 진의 주장을 차용한 듯한 냄새가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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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바 바베 역사 인물 찾기 12
칼린디 지음, 김문호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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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나 자서전을 읽는 것은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선전-광고같은 느낌이 나는 종류의 책들을 피하게 만든다.

잘은 몰라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같은 종류를 읽으면 닭살이 돋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평론]에 광고되는 책이여서 또 공짜로 얻은거여서 읽게된 이책은

내게 종교와 신앙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종교는 구속이요 신앙은 자유다. 종교는 제도요 신앙은 믿음이다. 종교는 약속이요 신앙은 사랑이다.

그리고 이성과 감성의 조화는 바로 이래야 하는 거다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바베는 신앙심 깊은 사람이었지만 종교를 절대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한테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무언가에 깊은 신앙심을 가졌을 뿐이었다.

또한 종교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벽을 쌓거나 적대적이 아니었다.

어렸을때부터 그는 어머니로부터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들을 공경해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종교를 공부했고 모든 종교를 존중했다.

스스로를 변덕장이라고 하면서 상대방이 논리적 이성적으로 자신을 설득시키고 그 이념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자기는 이런 저런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이렇게 저렇게 변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신앙심이 깊으면서도 그는 감정이나 동정같은 것을 값싸게 표출하지 않는 점잖은 인물이었다.

예를 들면 그는 스스로가 무딘 사람이라 누가 병이 들어도 별 느낌이 없다고 고백한다.

대신 공동체를 위한 자비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이 자신의 생명의 끝이라고 얘기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평소에 내가 결정짓지 못하던 문제에 대해 답을 얻기도 했다.)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을 공경하고 사랑하여 토지헌납운동의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는 대중과 조직을 싫어했고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아마도 대중과 조직이 하느님의 피조물과는 거리가 먼 개념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순결과 사상의 건강함과 자비등은 개념없는 정서만 깃든 무한한 사랑의 발현은 아니다.

그의 생각, 말, 행동, 글에서는 타고난것 같은 현명함이 진하게 베어있어서

그가 마주하게 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통찰력은 정확하고 뛰어났다.


나는 이 책을 전기나 자서전이라기 보다는 일기를 읽은 것 같은 편안함과 친숙함을 느낀다.

어떤 한 인간을 만난 것 같이 말이다. 어떤 좋은 사람을...

그런 좋은 느낌과 더불어 동시에 슬프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은 흘러간 역사 속에 혹은 장소적으로 먼 곳에 .... 즉 내 가까이에 있지 않은 것이다.

또 한가지 슬픈게 있다.

비노바 바베가 한국에 있었다면 인도에서와 같은 업적과 성과를 올릴수 있었을까 그만큼 존경받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한국이 더 암담한 사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하간에 책을 덮으면서 더러워진 머리와 마음을 청소하는 느낌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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