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스캔들 - 소설보다 재미있는 명화 이야기 명작 스캔들 1
장 프랑수아 셰뇨 지음, 김희경 옮김 / 이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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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갤러리는 가는 곳마다 건물에서부터 풍기는 그 분위기와 이미지가 다 제각각이다. 작품 전시에 있어서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인터뷰가 담긴 안내책자까지 제공하는 곳도 있고, 그저 작가 이름밖에 모르고 봐야 하는 전시장도 있다.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기도 않지만, 알려주니까 보기도 한다. 기반지식이 많을수록 작품 하나에서도 봐야 할 것과 보이는 것이 늘어나고, 작가의 세계에 대한 흥미도 남다르게 된다. 갤러리에 머무르는 시간은 전시에 대한 정보의 양에 비례하더라.
 
저자는 장 프랑수아 세뇨. 프랑스 주요 주간지 <파리 마치>의 문화부장 겸 편집부국장. 오랜 기간 이 책을 구상해온 그는 집필하기 전 여러 차례 취재 여행을 떠나 현장을 돌아보고, 여러 명의 미술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저서로는 <마지막 열차><남극의 추격자><하나의 꿈을 위한 열 마리의 개>등이 있다. 저자가 프랑스인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책은 프랑스미술계의 거장들이 보다 많이 소개되어있다. 하기야 그 시절 예술계에 프랑스를 빼놓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마는.
 
13명의 화가의 생애와 그 작품을 소개한 책이다. 목차에 든 주인공들을 나열해 본다. 프락시텔레스, 히에로니무스 보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 카라바조, 프란시스코 고야,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한 판 메이헤른 이 그들이다. 미술에 문외한들이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만큼 유명한 이들이 많이 보이니, 미술을 좀 안다 하는 이들은 어찌 아니 가슴 설레겠는가.
 
이런 책이 전공자나 흥미가진 이들이 아닌 일반인에게 재밌을 수 있을까. 몇 장 넘기다 보면 그림이나 훑고 덮어버리는 것이 속 편한 많은 미술관련서적들. 그래서 이 책은 제대로 일반 독자를 노린 듯하다. 뻔하게 흐르지 않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화가의 이름을 주제로 정했다면, ‘그 화가가 몇 년 몇 날에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떤 가정에서 자랐고 어디서 그림을 공부했으며 대표작으로는 뭐가 있고하는 식으로 흐를 것인데, 이 책은 화가마다의 포커스를 달리하여 이야기구조로 다루고 있다. 제목이 명작 스캔들인만큼 진짜 스캔들 위주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일정한 방향성이나 전개형식을 띠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개가 훨씬 흥미롭다. 작품을 설명함에 있어서도 감상적인 면 보다는 그 그림을 그릴 당시의 화가의 상황, 상태, 마음 등을 더 정갈하게 소개한다. 화가와 작품, 두 가지의 균형이 적절하고, 작품마다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그것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충분히 훌륭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확대게재하며 작품설명과 작가의 예술세계 전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파트에서는 그의 모든 작품은 제외되고, 오직 루브르 박물관에서 사라진 모나리자에 관한 대형스캔들을 자세히 조명하고 있다. 또 폴 세잔파트에서는 작품은 없고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내밀어 소개하고 만다.
 
이렇게 알아가는 거장들의 이야기와 작품이 너무 재밌었다. 일반인들에게 큰 예술적 양식이 되리라 생각한다. 생소한 문화적 언어에 대한 주석도 아주 꼼꼼하고 훌륭하다. 무엇보다 실린 거장들의 작품들이 아주 훌륭한 감상이 된다. 그런 거장의 작품을 볼 때 무엇들을 봐야 하고, 어디에서 잡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급감각을 길러준다. 그들의 예술적인 깊이를 더 가까이에서 만난 것 같아 흥이 나게 읽었다. 이런 책이라면 더 소개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화가의 목록이 생겨버린다. 역사적인 거장들을 한꺼번에 만나니 배가 부르다. 명인의 명작, 그 풍부한 감성에 푹 잠길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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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홈
황시운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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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그런 인식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아직도 존재하는 관념이 있다. ‘뚱보는 느끼지도 못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 말이다. 살이 찌면 당연히 얼굴 면적도 넓어지고 팽팽해진다. 그리고 얼굴 살이 많으면 표정변화가 둔해 진다. 다양한 감정을 나타내는 얼굴선이 죽어버리면, 메마른 반응만 나오는 인간으로 여겨질 수 있다. 몸이 둔하면 마음도 둔할 거라고, 몸에 살이 붙으면 마음에도 살이 붙나보다고 으레 그렇게 넘겨버리는 관념이 나에게 있었음을 이 책을 보며 아프게 깨달았다.
 
지금의 30대 중반들은 다들 서태지하면 할 말이 많다. 그 시절 그 세대를 완전히 장악했던 인물 아닌가. 특히나 요즘같이 대형스캔들이 터진 때가 없었기에 이 소설은 서태지라는 이름 하나로도 특별한 마케팅이 필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시절 서태지의 음악에 취했던 지금의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추억을 씹으며 공감대를 형성해보자는 문학은 아니다.
 
저자 역시 76년생. 서태지 광풍에 두 다리 휘청했을 시기를 지낸 여성이다.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그들만의 식탁>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원고청탁이 들어오지 않아 방황의 세월을 거듭하며 펜을 놓을까도 고민하다 올해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다 포기하고 상권분석 해 가며 먹는 장사하려고 했던 저자에게, 이 작품은 간신히 작가로서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독자로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왕따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인데 130kg이 넘는다. 여자다. 초딩 때부터 아주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왕따의 길을 걸어왔다. 늘 상납액에 쩔쩔 매며, 4층에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에서 복 날 개 패듯 맞는 게 수업시간보다 익숙한 아이. 이 아이가 말하길, 아무리 맞아도 아픈 건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괜찮다고 생각할 뿐 인거다.
 
그 학교 일진 짱은 지은이다. 초등학교 때는 말더듬이로 같은 왕따를 당하며 친구가 되었지만, 그 버릇 고치면서 비공식적인친구가 된다. 학교에서 미친 듯이 밟히고, 집으로 찾아와 야무진 퉁바리나 놓는 그 애에게 불평등한 우정이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는 형국. 그런 우정은 화장실에서 똥을 찍어 먹어야 되는 상황에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주인공은 그 잘난 우정 앞에서 공포에 몸서리를 치며 변기에 누가 싸 놓은 똥을 찍어 먹었다. 이런 대목은 나 같은 독자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혹시나 실제로 이런 일을 겪은 아이가 있을까봐. 이 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어야 할 정도로 경악스러운 사건의 연속이다.
 
IMF 이후 무능력하면서 사고나 치고 다니는 아버지는 딸년에게 쥐똥만큼의 관심도 없다. 몇 날 며칠 집구석에 있어도 대화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엄마는 130kg나가는 딸내미와 실속 없는 남편에게 진저리를 느끼며 호프집을 차려 바쁘고, 간혹 부딪힐 때마다 미친 듯이 퍼붓고 때리고 뱉어낸다.
 
아이는 이 모든 치욕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고자 무조건 굶기와 먹은 걸 바로 끄집어내는 구토로 점철된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다이어트 해서 뭐해? 서태지와 함께 달나라 간단다. 인생의 희망이 서태지요, 낙이 서태지 음악 들으며 상상하기요, 그것 때문에 자살도 못하고 버거운 인생을 견디는 이 아이.
 
지은은 주인공에게 공고 양아치의 애를 뱄다는 언질만 남기고 훌쩍 떠난다. 애 낳기 위해. 그리고 이 아이는 학교에서 더 심한 폭력을 당한다. 거짓말과 집안에 숨겨놓은 비상금도 모자라 폐물도 팔아 갖다 바쳐도 어쩔 수 없는 이 폭력고리사태. 아이는 지은의 소식을 전하지 않은 대가로 그 양아치에게 강간을 당한다. 니스를 봉지째 씌워 먹여서 정신을 빼놓고, 두 놈이 한 다리씩 부여잡고 그 와중에 입막음용 사진을 찍고 해서 여성으로서의 모욕과 수치를 처절하게 당한다.
 
그리고 폐물 팔았다고 호스로 때리는 엄마를 미친 듯이 까고는 집을 나와 지은이 있는 곳으로 간다. 달라진 지은을 만나고 나중에는 배부른 지은과 한 여성(이 여성 사연도 복잡하다)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결말. ‘컴백홈’.
 
너무 사실적이고도 적나라하다. 지금의 청소년들의 교정세태를 꿰고 있는 듯한 전개를 가지고 있다. 쌍욕도 거침없이 남발하는 자극적인 문투가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 모두의 입을 통해 소설 전체를 이끈다. 무엇보다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는 주인공의 심리가 가슴 저릿했다. 너무너무 불행한 아이, 몸도 가정도 학교도 친구도 무엇 하나 기댈 곳 없이 밟히고 치이는 아이. 뚱뚱하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더럽게 흉물스럽게 취급되고, 그럴수록 상처를 달래려고 더 무뎌지려 노력하는 아이.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걸핏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태연한 척해왔지만, 정말로 괜찮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상처입기를 반복해오는 동안 마음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짓물러버렸다. (p. 270)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무 많은 불행과 고통들을 곳곳에 숨겨둔 채 태연을 가장하고 있는 세상에서, 견뎌내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 (p. 271)
 
물론 분명히 재밌었다. ‘재미를 논하기에 적절한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 자신이 재미를 추구하며 글을 쓰기에 온전히 작가에 대한 인정의 표현으로써 말한다. 느끼는 게 많다. ‘내 불구적인 시선에 대한 자책이 있었고, 지금 고딩들이 갖는 고민을 비릿내 나게 여겼던 미안함도 있었다. 끔찍한 이야기지만, 누구의 인생일 수 있고 누구는 이렇게 살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답답함에 속이 끓는다. 현실이라기엔 너무 엿 같은 세상의 단면을 보았다. 그것도 앞길이 창창한 애들의 마음이 일찍부터 곪고 썩어 버리는, 어른으로서 아무 대책 없이 속아파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이야기.
 

앞으로 황시운이라는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지 기대되는 바가 크다. 이 소설은 좀 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외모로 사람을 평가절하하지 않을 수 있는 포용 깃든 시선을 키워낸다. 그리고 지금도 뚱뚱하다는 이유로 세상의 냉대와 갖은 쓴 맛을 보고 있는 이들의 아픔을 헤아리게 한다. 그 외로움의 방관자 또한 멸시함의 동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에서 주인공을 만난 나로썬 좀 더 가까이 가서 안아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고, 부디 생각에서 그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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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김미월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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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에는 한국 문학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7인의 여성작가, 비를 말하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일곱 가지 색깔로 내린다는 것은 일곱 명의 여작가가 쓴 각양 스토리에 가 중심소재로 쓰였다는 말이리라. 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호감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은 한국 문학의 미래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의 단편이기에 그 역량이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이 말이 그저 출판사의 어쩔 수 없는 마케팅 문구로 드러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다.
 
작품는 장은진, 김숨, 김미월, 윤이형, 김이설, 황정은, 한유주 작가 순으로 이어진다. 2~30대의 젊은 여성작가이고, 모두 신인상혹은 문학상으로 등단한지 얼마 안 되는 작가계의 신인들이다. ‘라는 소재 외에 특정한 연결고리 없이 자유롭게 집필이 이루어졌다. 쉽지 않은 소재선택을 보며 다들 열정 가득한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가 구체적인 중심소재로 쓰인 경우도 있고, 그냥 하나의 배경으로 쓰인 소설도 있으며, ‘라는 소재를 의식할 수 있는 작품도 있다. ‘라는 연결고리를 의식하면서 읽어도 이 소설에서 느끼는 에 대한 여운은 크지 않다. 오히려 작품을 이끄는 굵직한 중심소재에 집중하게 될 뿐. 세상에는 가 없는 소설보다 가 들어간 소설이 더 많을 것이다. 아니, 한 번도 를 언급하지 않은 소설이 존재할 수 있으려나. 그런 측면에서 이 책 또한 라는 단어로 유난떨 필요는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마다 비라는 소재에 치중되지 않았다.
 
가장 인상 깊은 소설이 김이설 씨의 키즈스타플레이타운이다. 이마저도 단편이라기에는 너무 굵직굵직한 소재들이 널브러져 있다. 인간말종 둘이 나오는데 주인공 아버지와 남편이다. 둘 다 아동 성폭행범이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근근이 당해왔다. 성폭행을. 어머니는 발정난 개처럼 쏘다니는 것도 남편이라고 극진히 대했고, 트라우마로 가득한 주인공은 아버지와 전혀 다른 유형의 남자를 택해서 성급히 결혼한다.
 
안 보이는 동안에도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공포였다. 더 늙어 힘없어지면 가족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아비니까 책임지라 할까 봐 두려웠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 서둘러 한 일은 이사였다. 연락처도 바꿨다. 기회가 될 때마다 엄마를 단속했다. (p. 180~1)
 
성급했다. 결혼하고 나서 한 번의 잠자리가 없었다, 대화도 전혀 없는 부부였다. 금방 알아차린 것은 남편 또한 어린 것들에게 몹쓸 짓을 하면서 뻔뻔하게 유치원관련업종으로 벌어먹는 벼락 맞을 놈이라는 사실이었다. 남편이 고른 아이와 단둘이 성행위를 하는 사각지대를 알게 되고 여러 차례 성폭력 현장을 목격하지만, 못 본 척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안정된 삶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이후에 벌어지는 결말부분이야 참 뭐하지만, 중반까지는 재밌게 읽었다.
 
신인작가들의 단편이다 보니 흐름이나 문투의 다채로운 맛은 있으나, 그 수준이 들쑥날쑥하다. 갈 길이 먼 그들의 작품세계를 보며, 우리나라 문학계에 대한 전망이 밝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실 이런 소설을 읽으려면 독자가 이미 양해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감안하고 읽어야 실망이 없고, 계속 읽어나갈 수 있다. 특히나 좋은 소설을 읽고 난 뒤라면, 문장 하나도 그냥 넘어가기가 힘든 경우가 있다. 책을 덮을 때는 신인들의 소박한 글을 읽어봤다는 데에서 오는 뿌듯함이 있었다. 허나,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논하기에는 버거운 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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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성공하기 - 달팽이처럼 조금 천천히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
김희정 지음 / 럭스미디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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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쌓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청춘, 남들 가는 만큼은 가고 있어야 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간과 돈을 쏟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불안정한 사회구조에서 질려가는 젊은이들. 기성세대들이 내놓는 조언은 꿈을 품고 긍정적으로 밀어붙여혹은 죽도록 치열하게 약아져라정도로 구분되는 것이 현실이다. 와중에 따뜻한 책을 만난다. 슬슬 하라는 책. 느리게 가도 된다는 책.
 
작가는 김희정. 서울예술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 영화 기획자와 잡지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동숭동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동화 집필이라는 새로운 꿈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 <카페놀이><교과서에서 쏙쏙 뽑은 가족 여행지 1. 2><여행하며 자란 아이가 큰사람이 된다> 등이 있다.
 
책은 크게 두 주제로 나뉜다. ‘천천히조금은 늦게가 그 주제이며, 천천히 자신의 길을 걸어 간 11명의 인물과 조금은 늦게 시작했던 인물 11명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어찌 보면 인물소개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은 각 인물에 대한 굵직한 이야기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자잘하거나 디테일한 면은 지우고 주제와 관련된 인물의 일생과 그 느림의 철학을 전해 주고 있다.
 
인물선정이 좋았다. 대중에게 친숙하고 유명한 인사들과 조금은 낯설지만 흥미로운 인물들이 결합되어 여러 면에서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적정선을 잘 맞춘 책이다. 저자가 그 인물을 선정한 목적이 뚜렷하게 전해지고 있는 점도 이 책이 주는 뚜렷한 주제의식을 분명하게 전달한다. 집필동기와 그 구성, 그리고 전개력이 있어서 확실히 독자의 편에 서 있음을 느낀다.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앙리 루소이다. 가정을 돌보기 위해 세관원으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고, 마흔 두 살에 신인전을 열었던 그, 피카소와 고갱 같은 역사적인 화가의 찬사를 받으면서 인정받은 그의 삶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다양한 인물들의 느림의 이야기를 통해 느리게 가는 성공의 길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했던 방향과 방법들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갈 나의 인생의 행로에도 좋은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불어 넣는다.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걸어가는 그 길에서 만날 성공이라는 결실의 질을 젊을 때 만난 보석함과 견주겠는가. 그러니 흰머리가 수북할 때까지 소박한 꿈 몇 조각 붙들고 계속적으로 이뤄나가는 멋진 인생의 여정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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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신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4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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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끝냈다. 그리고 다른 소설을 펼쳤다. 그리고 얼마 못가 던져버리고 싶었다. ‘이게 글이냐!!’ 하며. 그렇다. 마거릿 애트우드 같은 거장의 소설은 내게 다른 작품에 대한 경멸어린 시선을 키워버린다. 한 동안 소설나부랭이 같은 것에는 손을 못 대게끔 하는 경악스러운 능력을 가진 그녀의 글, 이 도둑 신부는 오랜만에 나에게 그런 체험을 선사하고 있다. 지독하게 독자를 사로잡는 마거릿, 그 엄청난 휘필을 단시간에 감당하기란 참으로 역부족이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193911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나 온타리오와 퀘벡에서 자랐다. 토론토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스물한 살에 출간한 첫 시집 <서클 게임>므로 캐나다 총리 상을 수상했다. 이후 첫 장편소설 <떠오름>를 시작으로 <신탁 여인><시녀 이야기><고양이 눈><일명 그레이스><인간종말리포트><홍수의 해>등의 저서가 있다. 2000년에 <눈먼 암살자>로 부커 상을 받았고, <도둑 신부>로 캐나다작가협회선정 올해의 소설상, 캐나다와 카리브해 지역영연방작가상, ‘선데이 타임스최고문학상을 받았고, 2007년에 미국CBS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방영된 바 있다.
 
주인공을 네 여자라고 치자. 세 명 대 한 명이다. 세 명의 여자는 그녀들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톡시크에서 만난다. 토니는 전쟁을 연구하는 역사학자이고, 캐리스는 영혼의 예민함을 가지고 섬에 사는 딸아이의 엄마고, 로즈는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기업을 운영하는 수완 좋은 사장님이다. 그 세 여자가 친구가 된 사연은 지니아라는 여성으로 인해 그 여자들의 삶이 철저하게 짓밟히고 농락당했기 때문이다.
 
지니아는 매력적인 여성이다. 그리고 거짓말의 능수능란함과 재기 넘치는 에너지, 영악스러운 머리, 여자를 긴장시키는 육감적 몸매 등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고 본다. 표적이 된 사람에게 접근해서 자기 사람이 되게 하는 법을 알고, 원하는 때까지 다룰 줄 알고, 혼을 빼놓을 줄도 안다. 무서운 여자이다. 그 여자가 세 여자의 삶을 철저하게 유린했고, 5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에 장례식까지 치렀는데 그날 다시 그녀들 앞에 나타난다. ‘톡시크라는 술집에서 말이다.
 
세 여자 모두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고, 지니아는 한 번에 하나씩 그녀의 공간에 발을 들인다. ‘잠입이 아닌 이유는 그녀들이 지니아를 사랑했고, 더 들어와 주기를 바랄정도로 그녀와의 관계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지니아는 그녀들의 남자를 갖는다. 철저하게 그녀의 소유로써 챙겨나간다. 그리고는 그녀들의 남자를 처절하게 버리는 것으로 마무리해나간다. ? 목표는 그들이 아닌 그녀들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펼쳐나간 구성과 그 전개의 필력은 소재를 압도한다. 마음이 아파서 제 정신으로는 읽지 못할 지경이다 싶을 정도로 한 여자의 인생이 추악하고 잔인하다. 그러나 독자를 배려한건지 아닌지, 소설의 마지막까지 어둠의 도가니는 아니기에 ~’하는 한숨과 함께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몰입될 수 있는 까닭은 나 또한 여자의 삶를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런 소설을 읽었다는 게 행복하다. 지니아가 남자 호리는 테크닉을 더 자세히 가르쳐줬으면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하지만, 작가 또한 그것까지야 알 도리가 있겠는가. 참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결코 잊히지 않을만한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한층 더 영리해진 느낌이라는 수확 또한 거두었으니, 작가에게 고맙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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