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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홈
황시운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평점 :
‘한 때 그런 인식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아직도 존재하는 관념이 있다. ‘뚱보는 느끼지도 못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 말이다. 살이 찌면 당연히 얼굴 면적도 넓어지고 팽팽해진다. 그리고 얼굴 살이 많으면 표정변화가 둔해 진다. 다양한 감정을 나타내는 얼굴선이 죽어버리면, 메마른 반응만 나오는 인간으로 여겨질 수 있다. 몸이 둔하면 마음도 둔할 거라고, 몸에 살이 붙으면 마음에도 살이 붙나보다고 으레 그렇게 넘겨버리는 관념이 나에게 있었음을 이 책을 보며 아프게 깨달았다.
지금의 30대 중반들은 다들 ‘서태지’하면 할 말이 많다. 그 시절 그 세대를 완전히 장악했던 인물 아닌가. 특히나 요즘같이 대형스캔들이 터진 때가 없었기에 이 소설은 ‘서태지’라는 이름 하나로도 특별한 마케팅이 필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시절 서태지의 음악에 취했던 지금의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추억을 씹으며 공감대를 형성해보자는 문학은 아니다.
저자 역시 76년생. 서태지 광풍에 두 다리 휘청했을 시기를 지낸 여성이다.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그들만의 식탁>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원고청탁이 들어오지 않아 방황의 세월을 거듭하며 펜을 놓을까도 고민하다 올해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다 포기하고 상권분석 해 가며 먹는 장사하려고 했던 저자에게, 이 작품은 간신히 작가로서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독자로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왕따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인데 130kg이 넘는다. 여자다. 초딩 때부터 아주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왕따의 길을 걸어왔다. 늘 상납액에 쩔쩔 매며, 4층에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에서 복 날 개 패듯 맞는 게 수업시간보다 익숙한 아이. 이 아이가 말하길, 아무리 맞아도 아픈 건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괜찮다고 생각할 뿐 인거다.
그 학교 일진 짱은 지은이다. 초등학교 때는 말더듬이로 같은 왕따를 당하며 친구가 되었지만, 그 버릇 고치면서 ‘비공식적인’ 친구가 된다. 학교에서 미친 듯이 밟히고, 집으로 찾아와 야무진 퉁바리나 놓는 그 애에게 불평등한 우정이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는 형국. 그런 우정은 화장실에서 똥을 찍어 먹어야 되는 상황에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주인공은 그 잘난 우정 앞에서 공포에 몸서리를 치며 변기에 누가 싸 놓은 똥을 찍어 먹었다. 이런 대목은 나 같은 독자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혹시나 실제로 이런 일을 겪은 아이가 있을까봐. 이 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어야 할 정도로 경악스러운 사건의 연속이다.
IMF 이후 무능력하면서 사고나 치고 다니는 아버지는 딸년에게 쥐똥만큼의 관심도 없다. 몇 날 며칠 집구석에 있어도 대화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엄마는 130kg나가는 딸내미와 실속 없는 남편에게 진저리를 느끼며 호프집을 차려 바쁘고, 간혹 부딪힐 때마다 미친 듯이 퍼붓고 때리고 뱉어낸다.
아이는 이 모든 치욕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고자 무조건 굶기와 먹은 걸 바로 끄집어내는 구토로 점철된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다이어트 해서 뭐해? 서태지와 함께 달나라 간단다. 인생의 희망이 서태지요, 낙이 서태지 음악 들으며 상상하기요, 그것 때문에 자살도 못하고 버거운 인생을 견디는 이 아이.
지은은 주인공에게 공고 양아치의 애를 뱄다는 언질만 남기고 훌쩍 떠난다. 애 낳기 위해. 그리고 이 아이는 학교에서 더 심한 폭력을 당한다. 거짓말과 집안에 숨겨놓은 비상금도 모자라 폐물도 팔아 갖다 바쳐도 어쩔 수 없는 이 폭력고리사태. 아이는 지은의 소식을 전하지 않은 대가로 그 양아치에게 강간을 당한다. 니스를 봉지째 씌워 먹여서 정신을 빼놓고, 두 놈이 한 다리씩 부여잡고 그 와중에 입막음용 사진을 찍고 해서 여성으로서의 모욕과 수치를 처절하게 당한다.
그리고 폐물 팔았다고 호스로 때리는 엄마를 미친 듯이 까고는 집을 나와 지은이 있는 곳으로 간다. 달라진 지은을 만나고 나중에는 배부른 지은과 한 여성(이 여성 사연도 복잡하다)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결말. ‘컴백홈’.
너무 사실적이고도 적나라하다. 지금의 청소년들의 교정세태를 꿰고 있는 듯한 전개를 가지고 있다. 쌍욕도 거침없이 남발하는 자극적인 문투가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 모두의 입을 통해 소설 전체를 이끈다. 무엇보다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는 주인공의 심리가 가슴 저릿했다. 너무너무 불행한 아이, 몸도 가정도 학교도 친구도 무엇 하나 기댈 곳 없이 밟히고 치이는 아이. 뚱뚱하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더럽게 흉물스럽게 취급되고, 그럴수록 상처를 달래려고 더 무뎌지려 노력하는 아이.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걸핏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태연한 척해왔지만, 정말로 괜찮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상처입기를 반복해오는 동안 마음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짓물러버렸다. (p. 270)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너무 많은 불행과 고통들을 곳곳에 숨겨둔 채 태연을 가장하고 있는 세상에서, 견뎌내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 (p. 271)
물론 분명히 재밌었다. ‘재미’를 논하기에 적절한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 자신이 재미를 추구하며 글을 쓰기에 온전히 ‘작가에 대한 인정’의 표현으로써 말한다. 느끼는 게 많다. ‘내 불구적인 시선’에 대한 자책이 있었고, 지금 고딩들이 갖는 고민을 비릿내 나게 여겼던 미안함도 있었다. 끔찍한 이야기지만, 누구의 인생일 수 있고 누구는 이렇게 살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답답함에 속이 끓는다. 현실이라기엔 너무 엿 같은 세상의 단면을 보았다. 그것도 앞길이 창창한 애들의 마음이 일찍부터 곪고 썩어 버리는, 어른으로서 아무 대책 없이 속아파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이야기.
앞으로 황시운이라는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지 기대되는 바가 크다. 이 소설은 좀 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외모로 사람을 평가절하하지 않을 수 있는 포용 깃든 시선을 키워낸다. 그리고 지금도 뚱뚱하다는 이유로 세상의 냉대와 갖은 쓴 맛을 보고 있는 이들의 아픔을 헤아리게 한다. 그 외로움의 방관자 또한 멸시함의 동조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에서 주인공을 만난 나로썬 좀 더 가까이 가서 안아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고, 부디 생각에서 그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