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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신부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44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끝냈다. 그리고 다른 소설을 펼쳤다. 그리고 얼마 못가 던져버리고 싶었다. ‘이게 글이냐!!’ 하며. 그렇다. 마거릿 애트우드 같은 거장의 소설은 내게 다른 작품에 대한 경멸어린 시선을 키워버린다. 한 동안 소설나부랭이 같은 것에는 손을 못 대게끔 하는 경악스러운 능력을 가진 그녀의 글, 이 도둑 신부는 오랜만에 나에게 그런 체험을 선사하고 있다. 지독하게 독자를 사로잡는 마거릿, 그 엄청난 휘필을 단시간에 감당하기란 참으로 역부족이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1939년 11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나 온타리오와 퀘벡에서 자랐다. 토론토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스물한 살에 출간한 첫 시집 <서클 게임>므로 캐나다 총리 상을 수상했다. 이후 첫 장편소설 <떠오름>를 시작으로 <신탁 여인><시녀 이야기><고양이 눈><일명 그레이스><인간종말리포트><홍수의 해>등의 저서가 있다. 2000년에 <눈먼 암살자>로 부커 상을 받았고, <도둑 신부>로 캐나다작가협회선정 올해의 소설상, 캐나다와 카리브해 지역영연방작가상, ‘선데이 타임스’최고문학상을 받았고, 2007년에 미국CBS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방영된 바 있다.
주인공을 네 여자라고 치자. 세 명 대 한 명이다. 세 명의 여자는 그녀들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톡시크’에서 만난다. 토니는 전쟁을 연구하는 역사학자이고, 캐리스는 영혼의 예민함을 가지고 섬에 사는 딸아이의 엄마고, 로즈는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기업을 운영하는 수완 좋은 사장님이다. 그 세 여자가 친구가 된 사연은 ‘지니아’라는 여성으로 인해 그 여자들의 삶이 철저하게 짓밟히고 농락당했기 때문이다.
지니아는 매력적인 여성이다. 그리고 거짓말의 능수능란함과 재기 넘치는 에너지, 영악스러운 머리, 여자를 긴장시키는 육감적 몸매 등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라고 본다. 표적이 된 사람에게 접근해서 자기 사람이 되게 하는 법을 알고, 원하는 때까지 다룰 줄 알고, 혼을 빼놓을 줄도 안다. 무서운 여자이다. 그 여자가 세 여자의 삶을 철저하게 유린했고, 5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에 장례식까지 치렀는데 그날 다시 그녀들 앞에 나타난다. ‘톡시크’라는 술집에서 말이다.
세 여자 모두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고, 지니아는 한 번에 하나씩 그녀의 공간에 발을 들인다. ‘잠입’이 아닌 이유는 그녀들이 지니아를 사랑했고, 더 들어와 주기를 바랄정도로 그녀와의 관계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지니아는 그녀들의 남자를 갖는다. 철저하게 그녀의 소유로써 챙겨나간다. 그리고는 그녀들의 남자를 처절하게 버리는 것으로 마무리해나간다. 왜? 목표는 ‘그들’이 아닌 ‘그녀들’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펼쳐나간 구성과 그 전개의 필력은 소재를 압도한다. 마음이 아파서 제 정신으로는 읽지 못할 지경이다 싶을 정도로 한 여자의 인생이 추악하고 잔인하다. 그러나 독자를 배려한건지 아닌지, 소설의 마지막까지 어둠의 도가니는 아니기에 ‘휴~’하는 한숨과 함께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몰입될 수 있는 까닭은 나 또한 ‘여자의 삶’를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런 소설을 읽었다는 게 행복하다. 지니아가 남자 호리는 테크닉을 ‘더 자세히 가르쳐줬으면’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하지만, 작가 또한 그것까지야 알 도리가 있겠는가. 참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결코 잊히지 않을만한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한층 더 영리해진 느낌이라는 수확 또한 거두었으니, 작가에게 고맙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