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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김미월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띠지에는 ‘한국 문학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7인의 여성작가, 비를 말하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일곱 가지 색깔로 내린다는 것은 일곱 명의 여작가가 쓴 각양 스토리에 ‘비’가 중심소재로 쓰였다는 말이리라. 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호감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은 ‘한국 문학의 미래’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의 단편이기에 그 역량이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이 말이 그저 ‘출판사의 어쩔 수 없는 마케팅 문구’로 드러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다.
작품는 장은진, 김숨, 김미월, 윤이형, 김이설, 황정은, 한유주 작가 순으로 이어진다. 2~30대의 젊은 여성작가이고, 모두 ‘신인상’ 혹은 ‘문학상’으로 등단한지 얼마 안 되는 작가계의 신인들이다. ‘비’라는 소재 외에 특정한 연결고리 없이 자유롭게 집필이 이루어졌다. 쉽지 않은 소재선택을 보며 다들 열정 가득한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비’가 구체적인 중심소재로 쓰인 경우도 있고, 그냥 하나의 배경으로 쓰인 소설도 있으며, ‘비’라는 소재를 의식할 수 있는 작품도 있다. ‘비’라는 연결고리를 의식하면서 읽어도 이 소설에서 느끼는 ‘비’에 대한 여운은 크지 않다. 오히려 작품을 이끄는 굵직한 중심소재에 집중하게 될 뿐. 세상에는 ‘비’가 없는 소설보다 ‘비’가 들어간 소설이 더 많을 것이다. 아니, 한 번도 ‘비’를 언급하지 않은 소설이 존재할 수 있으려나. 그런 측면에서 이 책 또한 ‘비’라는 단어로 유난떨 필요는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마다 비라는 소재에 치중되지 않았다.
가장 인상 깊은 소설이 김이설 씨의 ‘키즈스타플레이타운’이다. 이마저도 단편이라기에는 너무 굵직굵직한 소재들이 널브러져 있다. 인간말종 둘이 나오는데 주인공 아버지와 남편이다. 둘 다 아동 성폭행범이다. 주인공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근근이 당해왔다. 성폭행을. 어머니는 발정난 개처럼 쏘다니는 것도 남편이라고 극진히 대했고, 트라우마로 가득한 주인공은 ‘아버지와 전혀 다른 유형의 남자’를 택해서 성급히 결혼한다.
안 보이는 동안에도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공포였다. 더 늙어 힘없어지면 가족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아비니까 책임지라 할까 봐 두려웠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 서둘러 한 일은 이사였다. 연락처도 바꿨다. 기회가 될 때마다 엄마를 단속했다. (p. 180~1)
성급했다. 결혼하고 나서 한 번의 잠자리가 없었다, 대화도 전혀 없는 부부였다. 금방 알아차린 것은 남편 또한 어린 것들에게 몹쓸 짓을 하면서 뻔뻔하게 유치원관련업종으로 벌어먹는 벼락 맞을 놈이라는 사실이었다. 남편이 고른 아이와 단둘이 성행위를 하는 사각지대를 알게 되고 여러 차례 성폭력 현장을 목격하지만, 못 본 척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안정된 삶’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이후에 벌어지는 결말부분이야 참 뭐하지만, 중반까지는 재밌게 읽었다.
신인작가들의 단편이다 보니 흐름이나 문투의 다채로운 맛은 있으나, 그 수준이 들쑥날쑥하다. 갈 길이 먼 그들의 작품세계를 보며, 우리나라 문학계에 대한 전망이 밝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실 이런 소설을 읽으려면 독자가 이미 ‘양해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감안하고 읽어야 실망이 없고, 계속 읽어나갈 수 있다. 특히나 좋은 소설을 읽고 난 뒤라면, 문장 하나도 그냥 넘어가기가 힘든 경우가 있다. 책을 덮을 때는 신인들의 소박한 글을 읽어봤다는 데에서 오는 뿌듯함이 있었다. 허나,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논하기에는 버거운 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