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얀 마텔 지음, 황보석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7월
구판절판


우리 눈의 맑은 액체는 바닷물이고, 따라서 우리 눈에는 물고기가 있다.-31쪽

친구? 오오, 엄마. 나는 사랑을 하도록 허락받았지만 그렇더라도ㅡ어째서 그랬는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ㅡ바다가 이제는 수족관에 갇혀버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40쪽

나는 전에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을 만큼 그렇게 침울하고 의기소침해졌다. 내가 그것을 처음으로 느낀 것은ㅡ삶과 의식을 빈 방에 남겨진 텔레비전처럼 남아도는 것으로 느낀 것은ㅡ바로 그 순간이었다. 만일 내가 눈앞으로 문질러 닦는 동작을 한 번 하면 허공에 내 손이 지나간 검은 띠 모양의 자국이 나타나고 망가져 한 데 모인 현실의 껍질, 거북 냄새를 맡고 있는 다리 잘린 개의 쪼그라든 모습이 그 자리로 들어갈 것 같았다.-51쪽

그 물고기들을 묻으면서 나는 정신이 멍해질 때까지 속으로 이 말을 거듭거듭 되뇌었다. '사랑이라고는 없어, 사랑이라고는 없어, 사랑이라고는 없어.' 그 물고기들을 차갑고 어두운 땅 속에 묻는 앙갚음으로 나는 그것들을 내 눈에 묻을 셈이었다.-67쪽

그 고통,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의 고통은 내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그렇게도 자주 찾아와서 나는 그것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것은 끔찍하고 지속적인 고통이라서 비껴갈 방법이라고는 없다, 다만 견뎌내야 할 뿐.-68쪽

소냐가 떠난 뒤에도 나는 혼자서 같은 길들을 따라 걷곤 했지만, 내가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그 산보들이 그렇게도 즐거웠던 이유는 역사적인 볼거리들이나 장래의 위대한 정치적 포부를 밝히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아이와 함께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소냐가 너무도 그리웠다.-105쪽

만일 그때 누군가가 내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라면 나는 마음이 몹시 상한, 그 한가운데는 욕정 기미가 있는, 아름다움에 굶주린 사람의 말로 대답했을 것이다. 사랑은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감정이지만 나는 그것보다 외로움과 좌절이라는 감정에 훨씬 더 익숙하다고.-111쪽

다양한 방법으로 나는 내 부모의 죽음을 부정했다. 우리가 어른일 때는 부모의 죽음이 보통은 서서히, 처음에는 어느 한 곳이 쇠약해지고 다음에는 다른 곳이 쇠약해져가는 과정이며 우리 자신의 죽음 또한 그럴 것임을 일깨워주는 고통스러운 암시가 된다. 말하자면 그 죽음은 메아리치는 죽음인 것이다.-130쪽

혼자 하는 여행은 연장된 백일몽과도 같다. 우리는 관광지들을 둘러보고 사람들을 지켜보고 경치에 감탄하는 내내 우리 자신의 시간과 우리 자신의 페이스에 맞추어 우리 자신의 친구들과 우리 자신의 각본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여행을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141쪽

나는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154쪽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있을 때는 그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란 없다. 하지만 그 고통이 우리를 괴롭힐 때는 그렇게도 현실적이고 그렇게도 압도적이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171쪽

총이 발사되는 소리는 격렬하되 억눌린 포효, 화난 사자가 저를 나타내는 단 일 초 동안의 울부짖음이다.-253쪽

단지 그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꺼운 겨울 코트를 입고 발을 쿵쿵 구르며 들어와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불그레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활기가 돋고 재충전되는 느낌이었다.-326쪽

'오늘 난 사랑할 사람을 찾아냈어. 오늘 난 사랑할 사람을 찾아냈어. 오늘 난 사랑할 사람을 찾아냈어.' 그로 인해 열린 가능성은 무한했다. 그것은 희망이나 망상이 아니라 약속이었다. 무조건적이고 분명하고 확신에 찬.-341쪽

나는 사람들이 왜 그것을 강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게 그것은 살인이었다. 나는 그날 살해되었고 그후로 언제까지고 내 안에 죽음을, 다채로운 내면에서 배회하는 회색을 끌고 돌아다녀야 했다. 어떤 때는 죽은 것이 내 위胃였고, 어떤 때는 내 머리, 또 어떤 때는 내 장臟, 그리고 자주는 내 심장이었다.-409쪽

마치 내게 더 이상은 어떤 의지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의식은 있되 생명은 없이, 그저 숨만 쉬며 누워 있곤 했다. 그런 순간의 순전한 고뇌를 전할 길은 없다. 이렇게 반복을 하는 것 말고는. 나는 열까지 셀 수가 없었다.-415~416쪽

내 온몸이 눈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422쪽

슬픔이 내 온몸을 통해, 내 모든 부분들을 지나며 걸러내어지고 있었다. 내 발들이 슬펐고, 내 손바닥들이 슬펐고, 내 눈꺼풀들이 슬펐다.-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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