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상 사회적 강자를 옹호(?)하는 듯한 글을 쓰자니 약간은 망설여지기도 하고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비난의 글들이 예상되어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내 생각이 그러하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을 빈들에서 외치기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아서 내쳐쓴다.
알라딘(경영자)을 옹호하는 글 전에 일단 내 이야기를 풀어보련다. 모든 것은 내 경험과 그에 기초한 사색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나는 금융관련 전산업무를 하고 있다. 정확히는 그 하청이라고 할수 있는데 나름 정규직이지만 고객이며 원청회사인 금융회사에 매여있는 존재일뿐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예상 할 수 있겠지만 금융회사의 전산이란 점(.)하나 잘못 타이핑해도 9시 뉴스에 출연할 기회를 잡을수 있는 고위험의 업무다. 가끔 뉴스에 이중출금이 되었다느니, 대금지급이 늦어졌다느니, 메시지가 잘못 안내되었다느니 하는 뉴스가 나오면 댓글로 죽일 놈 사기꾼들 하는 글이 달리는데 실상 무슨 검은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니고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전산에서 했을뿐이다. 다만 금융회사란 통상 대기업이고 대기업은 철저해야(그것도 금융회사에서)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감시의 눈초리가 매서울 따름인데 노동자의 입장에서 금융업의 전산을 한다고 해서 유달리 실수가 없을 수는 없기 때문에 가끔 억울 할 때도 있다.
물론 금융업무란 이중 삼중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기본이고 1원이라도 오차가 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일한다. 그러나 시간은 정해져있고 업무는 수시로 변경되며 인원은 한정되 있을때 슈퍼맨이 아닌 한 오류의 발생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오늘 우연히 실수가 없었다면 내일 반드시 실수를 하게된다. 그것이 인정해야할 현실이다. (어느 업무나 불량제로는 목표일뿐 실현된 수치는 아니다)
한 1년동안 휴일없이 평일 자정퇴근하며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다. 치열한 경쟁때문에 저가 수주를 하고 무리한 원청업체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짧게 정해진 납기일을 지키기 위해 그럴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나중에 품질문제때문에 고생 깨나 해야 했다.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비난과 질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것은 과연 나의 잘못인가? 소속사의 잘못인가? 원청금융사의 잘못인가?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져야 할 것인가. 1년여의 시간동안 발생한 체력적 정신적 피폐함은 물론이고 아내와 아이가 감내해야 했던 '가장의 부재'는 누구의 책임일까?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시스템의 문제였다. 내가 우리회사 책임자라면, 내가 원청회사의 책임자라면 다르게 할 수 있을까? 욕심이 있건 없건, 선한 의지가 있건 없건 양심이 있건 없건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한 현실이 바뀌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혼자 궁시렁궁시렁해도 저 책임자가 악마처럼 보여도 '당신 때문이야!"라는 말을 선뜻 못하게 된다.
약간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해보자.
시티은행의 인터넷 사이트는 다른 국내 금융사에 비해 여러면에서 투박한 편이다.(근래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저간에는 외국계인 시티은행의 근무문화와 전산센터의 소재지(외국)가 영향을 끼친것으로 파악된다. 흔히 이야기하는 절차(법)대로, 그리고 칼퇴근이 적용되다보니 인력 싸게 고용해서 밤낮없이 일시켜 다음날 삐까번쩍한 홈페이지를 선보이는 국내기업에 비해 촌스럽게 보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반 이용자들은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한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다소 비싸더라도 도덕적인 업체의 물건(서비스)을 구매(이용)하고 싶은가? 포기하시라. 동네 구멍가게 수준을 넘어서는 기업이라면 당신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도덕은 그 회사의 아주 표피적인 것에 불과하다. 현대의 분업화된 생산 시스템에서는 관련된 협력업체가 어디까지인지 추적하는것 조차 힘겹다. 물론 불거진 문제마저 덮고 넘어가는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서재에 올라오는 글에서 발견되는 요구사항은 고객들 스스로 지탱해주지도 않을거면서 일개 기업이 할 수 있는 한계 그 이상을 요구하는게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알라딘 사장의 글을 읽어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성의가 느껴지는 글이었고 그만한 것도 일종의 파격(?)이 아닌가 싶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김종호씨일테지만 '적당히' 넘어갈수 밖에 없지않나 싶다. 이 '적당히'라는 말이 상당히 욕먹을 말이긴 한데 이명박 정권이 당장 퇴진하기를 바랄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의 뜻으로 사용한 것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정권에 반대하지만 퇴진운동을 하지 않는건 적당히 사는거다.) 어려운 건 어려운 거다. 다만 이번 기회로 다른 희생자의 발생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이 소득일 것이며 김종호씨가 다음 기회에 어드밴티지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알라딘이 스스로 불법을 인정한다면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받겠지만 벌금과 손해보상을 하더라도 (조사장의 말에 근거해 짐작해 보자면) 김씨의 요구처럼 원직복귀 자체는 어려운 것 아닌가 싶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는 사실 지금 사는 세상과는 많이 다르다. 경제성장조차 바라지 않는데, 성장한다는 것은 곧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사회이므로 빈부격차가 더 커질 뿐 아니라 우리의 환경을 더 열악하게 만들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가족조차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나 스스로도 견딜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는 하다. 더 적은 소득, 더 불편한 생활, 여름의 더 높은 온도, 겨울의 더 낮은 온도, 더 단순한 의료서비스, 더 간단한 식단으로 바꾸고 견디어갈 수 있을지 말이다.
노동자들은 정의는 물론이고 정해진 규정마저도 벗어난 근로 여건과 불안정성으로 고통 받지만 반대로 그러한 노동으로 제공된 서비스를 기꺼이 선택하며 만족을 느낀다. 유권자가 적당히 선택하면 이명박이 나오는 거고 소비자가 적당히 선택하면 피뭍은 다이아몬드가 나오는 거다.
이러한 사회에서 기업에 제대로 하라고 요구해봤자 소비자를 속이기 위해 눈가리고 아웅하는게 아니라면 결국 그 기업은 현 체제에서는 도태의 길로 접어들게 될 뿐이다. 이게 그나마 양심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이 소규모 그리고 소수일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노동자로써 경험한 현실도 그러하다.
지금 한국은 똑바로 살면 부러지는 사회다. 이명박과 노회찬이 선거에서 증명했지 않은가? 정치인은 개인적인 재기를 하면 되지만 수십 수백명의 밥줄을 쥐고 있는 기업의 경영자는 그리 간단히 언행할 수 없다. 난 그래서 그의 고민을 이해하고 싶다.
ps. 경영자의 통큰 결단을 요구하는 글을 보았다. 물론 그게 가장 간단하게 급한 불을 끌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통큰 결단을 악용하는 치사한 인간도 많이 보았고 그 때문에 나도 고통을 겪어보았다. 부도덕은 경영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문제해결조차 임의적으로 하고 원칙대로 하지 않는다면 더 큰 혼란이 빚어질게 뻔하다. 김종호씨가 겪는(을) 고통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지탱해주고 있는 사회부조리의 결과이지 어느 특정인 한 사람의 양심이나 아량문제가 아니다. 법없이 살 사람들만 있다면야 뭔들 못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