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에 읽었던 만화의 마지막 부분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달에 살면서 무시무시한 무기로 지구를 한방에 없애버리려는 악당을 주인공이 만나서 이야기한다.  "왜 지구를 없애려는 것이냐?"  "나도 지구인이다. 그런데 지구인은 나쁜 짓을 너무 많이하고 있다. 어쩌구저쩌구..   그래서 없애려고 한다." 

 그 대목을 읽으며 든 생각은 '자기도 지구인이면서 왜 남들탓을 하지? 결국 자신도 지구인이니 스스로를 나쁜 놈이라고 하는거잖아!' 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알라딘 불매운동은 최소한 알라딘을 벗어난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옳은 일에 장소를 따질것이 무엇이며 시간을 따질것은 무엇이냐마는 자신이 딛고 있는 기반을 부정하면서 어떻게 똑바로 서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인지 반문하고 싶고 그 진행과 결과가 심히 의심스럽기 때문에 내려진 결론이다. 

물론 앞서든 만화의 예와 현재 알라딘 서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대칭관계는 아니다. 알라디너는 알라딘이 아니며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과 동일한 책임을 질 일을 한 적도 없다. 오히려 용기를 내어 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공간 자체를 허물어 버리는 일에 일조함으로써 결국 모든 것을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만드는 시작점에 들어서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불매운동의 최종목적은 물론 고용개선일 것이나 일차적인 목적은 매출감소를 통한 재정압박이다. 불매운동의 힘을 믿는 운동가라면 결국 알라딘의 시장점유율 하락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고 현재의 책판매시장 구도로 볼때 알라딘은 더 이상 불매운동이 영향을 줄것도 별로 없는 도토리 판매상의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재는 썰렁해질 것이고 매출이 줄어든 상황에서 고용이 개선될 가능성은 더더욱 없어진다. 반대로 책판매의 특정 서점 독과점은 더욱 강화되고 결국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역학관계는 악화될 것이다. (쓰고 보니 악덕 고용주의 자기변호 논리 같다..... 아마 심정적으로 알라딘이라는 서점을 가깝게 느껴서 생각의 방향이 그렇게 나아갔을 것이다. 인지상정)

여기까지는 아주 기초적인 상식을 바탕으로 과정을 비약해가며 나름대로 상상해본 시나리오다.  현실에서 이런 극단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불매운동' 자체가 예외없이 원칙을 지키려는 선의에서 나온 것이므로 위의 기본적인 결론에 대해서도 대충 '그렇게는 안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접어 둘 것이 아니라 불매운동과 함께 고민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같은 논리로 삼성제품 불매운동은 전혀 불편하지 않다.)

일개 직장인이면서도 잘 알지도 못하는 고용주 편을 드는 것 같아서 이 또한 편치 않지만  내게는 아무리 옳은  일이라는 이성적 판단이 들어도 최소한 여기에서 불매운동을 시작한다는 것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뭐 아직 나는 매트릭스 안에서 좋은 꿈만꾸고 있는 철모르는 인간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첨언.   알라딘이 아닌곳에서의 불매운동에 대해서도 또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불편'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편하지 않은 것 뿐이다. 편하지 않아도 해야할 일은 산과 같이 많고 호흡처럼 자주 하고 사는게 인생이다.  하지만.... 이건 왠지 찜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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