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법정스님이 개고기 반대 소신을 펼치셨었다는 글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서 원문을 찾아보았다. 살생을 금기시하는 불가에서 굳이 '개고기'를 특정하여 언급하신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것이라는 점과 '개고기 반대'파들의 주장 전개에 법정스님의 그 말씀이 비중있게 인용되고 있다는 점이 나의 호기심을 발동한 것이다.
법정스님의 원문을 보고 나서는 어지간히 의문은 풀렸으나 감히 이의를 달고 싶은 부분이 있어 이 글을 쓴다. (공정하기 위해서는 법정스님이 그 글을 쓰시게 만든 문제의 원문(한겨레21에 실렸던 주강현의 '개고기 옹호'글)부터 확실히 이해하고 시작해야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링크해서 거슬러 올라가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생략했다.)
먼저 이야기 하자면, 다른 고기도 많은데 왜 하필 '개고기'에 대해 언급하셨는지에 대한 의문은 쉽게 풀렸다. 주강현씨의 '개고기 옹호' 글에 대한 반론차원이었기 때문이 첫번째 이유이고 불교의 교리에 따라 모든 동물에 대해 논의로 대상 범위를 확장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말씀하실 이유도, 설득력도, 현실성도 없다고 생각하셨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이며, 법정스님 본인이'개'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감이 여타 가축들과는 다르다고 인식하셨기 때문이 세번째 이유이다.
글을 쓴 계기도 그렇고 원문의 내용도 그렇고 법정스님은 자신의 신분을 의식하고 글을 쓰셨다기 보다는 철저하게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대중을 설득하고자 하는 글을 쓰시고자 했던것 같다. 굳이 불교사상에 대한 인식을 떠올릴 필요없이 '인간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점이 이 글의 장점이면서 단점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싶다. 특정종교에 갖힌 사고방식이라는 비난을 피할수 있었던 반면 그냥 일반인의 주장과 상당부분 동어반복이 되어버렸다는게 내 생각이다. 개는 인간과의 특별한 유대감을 갖는 동물로써 개를 먹는다는 것은 식인풍습과 비유될만큼 비문명적이라는 주장말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던 사람에게는 조금 심심하다는 인상이 들었다. (물론 글의 전체가 아닌 일부분에 대해서이다.)
이와 다르게 '문화다원주의에 입각한 개고기옹호론'을 비판하신 부분은 좀 충격이 있었다. 그것도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와 뭐가 다르냐고 질타를 받았으니 충격이 더 컸다. 과연 그런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박정희의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것은 일종의 사기이자 거짓말이지 문화다원주의를 적용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아직 우리나라에 적용하기는 이르다'라는 말을 거짓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나 그냥 독재 할래.'라고 읽어야 한다. 그걸 문화다원주의가 무능과 나태를 가린 한 예라고 하신 말씀을 읽으니 서운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역설적으로 법정스님은 박정희가 어쨌거나 민주주의를 실천했다고 주장하신걸로 읽힐수도 있는 주장이다. 더불어 결국 최고의 진리 하나 만이 사람들에게 선택되어질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스님을 잘몰라서 이런 생각이드는지 모르겠으나)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문화상대(다원)주의를 애초에 인정하시지 않았던게 아닌가 싶고, 만약 그렇다면 더이상의 언급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생명존중사상에 입각한 논리전개 속에서 새로이 배운 바도 적지 않다. 동물애호정신이 불교의 정신적 영향력이 컷던 우리나라의 역사적 상황에 비춰볼때 서구만의 사상, 사대주의로 발로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흘러내려오는 정서라고 봐야한다고 지적한 점이나 중국의 식인풍습이 상당히 보편적이었다는 사실등등 말이다.
사실 법정스님의 논지중 중요한 부분은 바로 생명존중 사상, 그리고 인간과 견공이 꾸준히 맺어온 상호 보완 및 타 동물들과 구분되는 유대관계에 대한 것이다. 인간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온 동물이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할 수록 마치 인류문명이 식인문화를 야만으로 취급하고 점차 퇴출시켜왔던 것처럼 개고기식문화도 퇴출되어야 한다는 말씀인 것이다.
개고기를 먹어봤던 사람으로서, 딱히 개고기만 먹지말자고 하기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 사람이지만 법정스님의 '문명의 (자연스러운) 개고기 퇴출론'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편이다. 사실 개만이 아니라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각별히 유대감을 갖는 존재를 인간처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을만큼 자연스러운 모습이기에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리고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사회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회로 이동중이라고 생각한다.
나만해도 개고기를 태어나서 딱 3번 먹어보았는데 한번은 대학생때 아르바이트로 속칭 공사판 노가다 하면서 어울렸던 아저씨들과 한 번, 군대가기 전날 아버지와 단 둘이 한 번 그리고 군대 고참들 따라가서 한 번, 이렇게 3번인데 상황을 짐작해보면 알겠지만 굳이 거부하기 쉽지 않은 그런 자리에서 개고기를 경험한 것이 전부다.(가장 최근일도 10년이 훨씬 지났다) 내 또래중에 먼저 개고기를 먹자고 제안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즉 세대가 뒤로 갈수록 (우리 사회가 점점 먹고 살만해질수록) 법정스님의 예언(?)에 들어맞고 있는 중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문화는 여건상 진즉에 그렇게 되어야 했겠으나 문화지체현상으로 인해 개고기문화도 남아있는 것은 아닐런지.
개고기 찬반논란도 이러한 문화지체현상속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일시적(한 100년쯤?^^) 마찰음이 아닌가 싶다. 다만 개를 식육으로 사용하는 계층과 반려(애완)동물로 활용하는 계층과는 (개고기문제와 상관관계가 1은 아니지만) 사회적인 갈등요소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팻샵에서 벌어지는 돈잔치를 보노라면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도 마음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쩔수 없다.) 난 아직 개고기반대를 외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돈벌이가 된다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도 불구덩이에 밀어 넣어버리는 이런 야만사회에서 문명이 가져올 순수한 '동물애호정신'을 외치는 것은 순수하지 못한 동물애호가(그들 또한 적지 않은 수가 동물을 길거리에 내다버리곤 한다. 먹지는 않았으니 잘한건가?)들의 등을 두드려주고 시장통에서 싸구려 보양탕으로 내일의 힘든 노동을 견뎌보려는 서민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은 아닌지...
원문이 짧지 않은 데다가 내 글이 점점 길어지다보니 초점도 흐려지고 일관성도 유지하기가 힘들것 같아 더 늘어놓기는 어렵겠다. 법정스님 글에 대한 촌평은 이쯤하고, 기회가 되었으니 개고기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조금 더 적어본다.
나는 자질구레한 문제(도륙과정 ,유통,위생 등등)을 제외하면 개고기를 후진문명으로 재단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식인풍습조차도 문화에 따라 (죽은이의 사체를 먹음으로써 그의 영혼을 승계한다던가 하는 제의적인 모습등) 인정할 수 있을터인데 자신이 갖고 있는 개와의 유대감이라는 정성적인 기준을 복잡 다양한 문화에 일률적으로 적용할수 있다는 생각자체가 반문명적인 태도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구세대와 신세대의 이질적인 문화가 혼재하는 모습이 더 도드라지기에 더 조심스러워야한다고 본다. 어쨌거나 점점 한국의 개에 관한 문화는 똥개에서 애완견으로, 다시 반려동물로 인간관계에 가깝게 점진하고 있는만큼 자연스럽게 개고기 식문화는 사라질것이라고 예상한다.
사실 개고기 옹호론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계속 개고기가 먹고 싶다"가 아니다. 개고기가 좋아서 그러는 사람은 거의 없을것이라고 생각한다.(적어도 나는 다시 먹을 일은 없을 것이다.) 단지 "당신의 문화적 잣대로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특히 문화재 약탈자 프랑스 너희들 말이다.)
ps.1 가끔 했던 상상인데 조선시대 선비를 모셔다가 지금의 서양의 생활상을 보여주면 "천하에 잡것들! 짐승같이 사는구나. 인간이 아니로고!"하며 불호령을 내리실것 같다. 일단 짧은 머리의 나부터 된통 혼나겠지만..)
ps2. 개를 잔인하게 도살하거나 식육과정에서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행위들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며 법정스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그리고 그게 '개'였는지와 상관없이 사라져야 할 요소들이다. 설마 주강현씨가 그런것도 옹호했을라고.... 법정스님의 글중 상당부분은 개고기를 반대하든 옹호하든 무관하게 공유하고 지켜야할 내용이 상당부분이다. 그게 '개'든 '소'든 '닭'이든 '양'이든 말이다.
ps3.법정스님이 예로 드신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장면들.. 그건 우리가 먹는 달걀과 치킨, 소고기 생산과정에도 있다. 오히려 공장식 생산으로 전문가들에 의해 엄청난 양으로 자행되고 있기에 더 잘 가려져 있을뿐. 차라리 똥개들이 잠시나마 살아있는 동안 호강하는 편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