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 외국에서 활약하던 어떤 선수가(아마도 차범근?) 골을 넣고 골 세리머니로 무릎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다. '아! 저 훌륭한 선수도 나와 같은 교인이구나. 저런 순간에도 신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구나' 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두 가지, 즉 동일한 종교를 갖고 있다는 동질감과 흥분되는 순간에서도 해야할 일을 잊지 않는 저 성실함에 존경심을 느꼈던 것이다.
 
사실 지금 더 자주보게되는 세리머니는 수상소감 세리머니(?)다. 무슨무슨 영화제나 OO선발대회나 XX대상 같은 TV로 중계되는 시상식을 보면 "우선 하나(느)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공인(公人X 共人O)이어서 더 쉬울 수도 있고 아니면 더 어려울 수도 있는데 아무튼 대중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더군다나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불리며 비판이 드높은 시대에) 구태여 드러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은 세리머니가 그저 아름답게만 비춰지지 않고 비판에 맞닥뜨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러한 세리머니가 벌어지는 시공간이 대부분 제로섬게임의 성격을 가진 행사라는데 그 본질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을 먹으면 상대는 반드시 물을 먹고 내가 골을 넣으면 반드시 상대는 골을 먹게되어 있다. 이건 신도 바꾸지 못하는 불변의 법칙이다. 즉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내가 신의 축복으로 골을 넣거나 상을 받은 것이라면 상대방은 신의 저주 또는 좋게봐줘도 신의 무관심에 빠지게 된 셈인 것이다. 그나마 상대방이 다른 종교를 가졌거나 무신론자라면 궤변이 될지언정 변명이라도 가능한데 만약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조차 불가하다.  신은 불공평하거나 편협하거나 또는 축구나 영화에는 무관심하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감사의 세리머니가 뻘짓이 되버리는 패러독스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다른 종교를 믿거나 무신론자라면 문제가 없을까? 이건 '엄마아빠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공식적으로 엄마아빠는 승부에 영향을 줄수 없으니까. 굳이 신에 대한 감사를 언급하는 것은 인간이 혼자서 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신이 도와 주었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은데 신이 운을 가장하여 승부조작이나 하는 파렴치한 존재냐는 말장난은 둘째치고라도 공공장소에서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은 본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에 대한 무례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종교가 있든 없든 같은 종교이든 다른 종교이든 무관하게 패배자로써의 쓴 맛을 보고 있는 시점에 신에 대한 감사라니 오해(?)하기 딱 좋지 않은가. 자신의 종교에 대한 대중의 오해까지 키우면서 말이다.  사실 화려하고 큰 돈이 좌우되는 일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이 관심있어 하실만큼 중요한 일은 아닌것 같은데 좀 오버 아닌가?
 
(약간 다른 이야기인데 비슷한 이유로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 같은 것은 아주아주 못마땅하다. 이건 합격후의 감사기도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의도가 불순하다. 이건 기쁨에 저절로 우러나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남의 불합격은 나의 합격, 나의 불합격은 남의 합격인게 빤히 보이는데도 자기 자식은 무조건 합격시켜 달라는 떼쓰기는 정말... 절대자로 믿던 신을 그냥 흔한 굿판의 귀신 하나로 전락(?)시키는 쓴웃음나는 자학개그다.)
 
물론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또다른 이유도 있기는 하다. 축구의 득점이나 1등 수상은 큰 기쁨이고 인간이라면 누군가와 기쁨을 나누고 자랑하고 감사하고 싶은 생각, 보답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때문에 수상한게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이런 기쁜 감동을 느끼게 해 준 것에 대해 자신이 믿는 신에게 감사할수도 있는 것이다. 다 나 잘나서 이렇게 된거라고 목 뻗뻗이 세우는 인간을 오히려 우리는 모자란 인간, 아직 덜 자란 인간으로 보지 않는가! 하지만 그건 일종의 습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순수한 기쁨에 대한 표현이라면 인간의 다른 욕구가 충족될때에도 그러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들 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식욕과 성욕과 배설의 욕구가 충족될때마다 감사 기도를 하시는지...  유독 밥이 앞에 있을 때랑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될때만 그러는 것 같다. 뭐, 상먹는 일은 드물게 발생하는 일이라서 기쁨이 더 크기는 하겠지만...) 
   


한때 열심히 살았을때 음악이나 영화나 책을 읽으며, 연애를 하며 기쁨을 느끼는 것이 혹 의의로운 삶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기도가 중요하고 신앙에 절대가치가 있다면 음악 들을 시간에 기도하고 봉사활동이라도 해야 옳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한동안 그런 고민을 하다가 나대로 살기위해 나를 위한 변명같은 결론을 찾았는데 그 결론은 이렇다.
음악이란 소리의 높낮이 변화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고 그러한 인간의 감성은 인간이 만든게 아니라 신이 허락해준 선물이다. 연애감정도 마찬가지. 그러므로 음악을 듣던 연애를 하던 그것대로 열심히 하고 순수하게 기쁨에 빠지는 것 그 차체로 하나님의 선물을 만끽하는 것이며 그로인한 기회비용에 대해 의무감이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음악들으면서 음악에 빠지면 되지 '아 이걸 제공한 존재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하며 몰입하지 못하는 건 신의 선물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거라고 말이다. 
   


내 결론은 이거다.
즐겨라. 이기면 그냥 기뻐하고 지면 그냥 짜증내고.  100년도 제대로 못사는 인간들이 잠깐 재밌자고 만든 장난인데 뭣하러 지들 놀이판에 신까지 끌어들이나.  그냥 즐겨라. 기도할 제목은 당신의 건강이지 골득점이 아니며 예술이 주는 감동이지 수상소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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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3-11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며 많이 배우고 느꼈습니다. 결론, 저도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