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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계선에서 - 오래된 믿음에 대한 낯선 통찰
레베카 코스타 지음, 장세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저자의 거시적인 안목과 통찰은 신선하고 놀랍다. 책 소개글에 있듯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말콤 글래드웰이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대체 무슨 경계선인가?
바로 인류 문명 쇠락(멸망?)의 경계선에 우리가 서있다는 인식이다. 저자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문명들, 그러니까 로마나 마야, 크메르(앙코르와트로 유명한)문명 등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게 된 요인을 분석하면서 현재의 인류 문명도 비슷한 상황에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비슷한 상황이란 바로 아래와 같은 사회다.
믿음이 지식을 대체하는 사회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여러가지 주변 일들의 원리나 상관관계에 대한 지식을 제대로 알기 어렵게 되었다. 자동차나 컴퓨터, 휴대폰, 내비게이션, 교통신호체계 등등 일상에서 아무 생각없이도 (단지 된다는 믿음만 있으면) 복잡하고 정교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된 사회를 말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절감하겠지만 도시를 유지시키는 인프라는 상당히 복잡하고 필수적인 것이지만(전기나 수도, 교통, 치안 등등) 그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음에도 우리는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잘 돌아갈꺼라고 믿기만 하면 되니까. 과거에 사라진 문명들은 이런 식으로 믿음이 지식을 대신하면서 새로운 환경 변화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문명의 수명을 연장하다가 결국 최후를 맞았다는 분석인데 현재의 세계가 기후변화나 에너지 고갈같은 위험신호를 알면서도(지식) 무관심이나 잘 될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믿음)에 매달리며 임시대응으로 일관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는 인류를 위협하는 위험한 믿음들을 슈퍼밈이라고 칭하고 몇가지로 범주화하여 하나씩 그 사례들과 문제점을 소개하고 있다. 깨뜨려야만 인류가 지속될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저자의 통찰에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호기심을 느꼈고 즐겁게 책을 읽어나갔다. 결론은 거의 뻔해보였지만 상세한 내용으로부터 많은 지적자극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곳곳에 저자의 편견과 그 적절성이 의심스러운 사례가 등장하여 나의 기대는 점차 오그라들고 말았다. 그러한 사례를 몇가지 정리해본다,
1. 슈퍼밈을 극복한 사례의 하나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실제 주인공 이야기가 거론된다. 16세의 나이에 23개국을 돌아다니며 사기행각을 벌인 프랭크 애버그네일은 결국 감옥에 가게되었으나 그의 실력을 범죄수사에 활용하자는 FBI직원의 아이디어로 인해 조기 석방된 후 범죄 수사에 많은 공헌을 세운다. 범죄자는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는 강력하며 지배적인 상식(이른바 슈퍼밈) 을 깨트리고 더 많은 공익을 창출한 사례로 이 책에는 소개된다.
재미있는 내용이긴한데 이게 슈퍼밈을 극복한 사례로 보기에는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범죄자에게 공범을 자백하면 형량을 줄여주는 수사방식은 흔한 사례로써, 범죄자를 역이용하는 발상 자체가 특이한것이 아니다.
2. 슈퍼밈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사례로는 이라크전 반전시위가 거론된다. 저자는 TV에서 어느 기자가 시위하는 시민에게 "그렇다면 어떻게 철수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하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된 후 철수계획도 없이 반전시위를 하는 것을 '무조건 반대'라는 슈퍼밈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치는 하나의 예로써 소개한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난센스다. 왜냐하면 시민이 요구했던 것이 바로 철수계획을 마련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사문제는 정부가 공개하지 않는 내용이 많은 부문이기 때문에 시민을 향한 대책마련 주장은 좀 뜬금없다. (손가락질 할 곳은 시위대가 아니라 기자였던 것이다.)
3.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에게 책임전가하는 사례로 2008년 금융위기시 일어난 몇가지 사건을 들고 있다. 파산으로 구제금융을 받은 AIG의 임원들이 거액의 보너스를 받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은 일과 GM파산의 책임을 지고 CEO를 사임시킨 오바마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전자의 경우 구제금융의 규모와 비교할때 보너스는 하찮은 수준이고 게다가 파산 전에 계약된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해가 안가는 지적이다. 보너스는 좋은 경영에 대한 댓가이어야 하지 파산에 대한 댓가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문제없음을 따지는 것은 책의 의도와도 전혀 상관없는 관점이다. 후자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한데, 시스템상의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 옳지 않다면서도 (책의 전반부부터 일관되게) 오바마 대통령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자기 모순이다.
4. 거짓상관관계에 대한 사례로는 위키피디아가 거론된다. 저자는 위키피디아의 유지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누구나 입력하고 편집할수 있는 사전이라니! 그렇다면 진실도 합의로 결정된다는 말인가?" 이게 지적의 핵심이다. 사실은 이미 실험으로 위키피디아는 브리태니커 못지않은 정확성을 갖고 있으며 그 이상의 오류자정능력까지 갖춘것으로 드러났다. 그것만으로도 의구심에 대한 해명은 충분할듯한데, 그게 아니더라도 기존의 백과사전 자체도 결국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 절대진리인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저자가 갖고있는 인식의 치명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뉴턴은 아인슈타인에의해 대체됐고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에의해 입지가 좁아졌다. 고도의 전문가가 주장했다고 해서 절대진리는 아닌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린스펀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일갈한다. "당신들 멋대로 하지마!" 사실 2008년 금융위기의 책임자중 하나인 그린스펀의 말에 과연 어떤 권위를 줄수 있는지 의심스러운 나같는 독자는 좀 허탈한 느낌이 든다.
책의 결론부까지 본 것은 아니나 현재까지의 흐름으로도 남은 부분은 짐작할만하다. 상당히 보수적이고 부분적으로 모순된 내용이 등장한다. 저자는 우리나라로치면 공병호박사 스타일의 인물인것으로 보인다. (물론 공방사가 이정도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렇듯 미국 보수주의 경향에 경도된 내용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책임에는 분명하다. 사례제시가 맘에 안든다고 새로운 시선과 문제의식이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일독을 권한다. 그러나 비판적으로 읽기를 유난히 강조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