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이 달린 정사각형의 쇼올을 두 번 접어
무릎을 덮고 두꺼운 외투로 어깨를 감싼 채 한 나절을 보냅니다.
오늘은 유난히 추워서 히터가 있는 창가에서 꼼짝없이 책만 읽습니다.
어제 내가 살짝 눈을 쥐어 눈사람을 만들어 닿을 듯 붙여 놓았던 그 자리입니다.
음지쪽에 얼마간의 눈이 남아 있을 뿐 그제의 낭만적이고 신비스러운 기후는
이제 찾을 수 없게 됐습니다.
그 날은 고층아파트 베란다의 까치집에도 눈이 쌓였었습니다.
나는 두 잔 째 차를 마시고 있고 집에서 가져온 花樣年華를 듣고 있습니다.
안쪽 강의실에서는 서예를 하는 어르신 몇 분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계시고
회의실은 비어 있습니다.
매일의 일과가 같습니다. 그제는 평소와 다르게 아침 눈이 내려줘서 우산에
싸륵싸륵 눈 떨어지는 소릴 들을 수 있어 특별했습니다.
'하루쯤 눈을 그냥 보는 것도 좋아.'
그럼요, 정말 그렇습니다.
편지 반가웠습니다. 눈이 오고 난 다음 날이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천천히 의자의 개수를 셉니다. 한켠에 세워둔 의자까지 모두 셉니다.
열 아홉, 여덟. 종일 켜져 있는 형광등 불빛에 반짝입니다.
때론 의자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큰 소리로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은 비어 있는 채로 이고, 가끔은 의자 같은 자신이 마음에 듭니다.
나는 매일 비어있는 의자들을 닦고 히터 가까이에 앉아서 한나절을 보냅니다.
그제는 눈이 내렸고 그 한나절이 참 좋았습니다.
어쩌면 봄이 되기 전에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눈 내리던 어스름의 아침이 제 花樣年華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