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억새풀 숲에서 썬크림을 바르던 여자가 저에요.
주차를 하다 숙소 주차장의 큰 항아리를 깬 것도 저구요.
새벽에 창을 열었을 때 밀려든 산국 냄새가 좋다고 하아,
하고 중얼거리던 여자가 접니다.
새벽호수에 물안개가 없다고 투덜거리던 사람도 저고, 일찍
수퍼로 달려나가 가스를 사오고,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끓인
사람도 접니다.
큰 배낭을 매고 집 현관에 들어서자 경비 아저씨에게서
소포를 건네 받던 여자가 접니다.
내가 뒤돌아서 얼굴을 찡그렸던 건 아저씨 때문이 아니라
꼭, 일상의 내용증명 같기만 한 소포꾸러미 때문이었죠.
코가 시린 게 벌써 겨울인가요.
미친 듯 발을 저어야만 앞으로 가던 오리 보트 같은
가을은 없을까요.
멈춰도 보고, 흔들리게 그냥 두어도 보고, 은 비늘 속으로도,
누가 던져 넣은 낙엽 속으로도 마음대로 방향을 돌려도 보는
그리고 가끔은 뒤로도 가보는 가을 말이죠.
딱히 되돌려 놓을 만한 거대한 운명 같은 것도 없으면서
이 계절이 참 아쉽습니다.
그래도 산국 핀 가을로 여행을 다녀왔지요.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