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게도, 눈이 내렸어요. 소나무에 쌓인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습 니다. 언제 보았던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겨울풍경> 속, 전나무 가지 에 내린 눈과 닮아 있습니다. 다시 봄빛처럼 밝은 빛이 들어오고 집안 은 따스합니다. 눈의 박자처럼 들리던 빌 에반스의 피아노가 좀 시끄 럽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던 일을 미루고 성탄인사를 적어보려고 앉 았는데, 아직 닦지 않은 이가 불편하고 부스스 한 머리칼이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작은 아이가 깨어서 내 허리만큼 오는 어깨를 비스듬히 하고선 한참 밖을 내다보고 있었어요. 눈이 오니까 참 좋다, 이러면서 요. 나는 늦게 잠이 들었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깨우는 게 미 안 했지만 잠을 자느라 첫눈을 보지 못하는 것보다는 좋을 것 같아서 요. 오후엔 떨어진 커피 콩이나, 저녁으로 먹을 나물이나, 미역, 작은 케익 같은걸 사러 나갈 참인데, 아무래도 그때에는 몽땅 녹아 없어졌을 것 같아요. 눈을 밟아보고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려주기로 했는데말입 니다. 난 조금, 들떠있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잘 계시리라 생각합 니다. 성탄 전, Rainier. 2001. 12 . 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