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한 여름 객사 앞 버스정류장에서 나란히 서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 백화점 앞 큰 냉면집 옆방에서 물냉면을 먹고 있던 순간이 있을 수도 있었겠고, 연꽃을 보러갔거나, 서태지의 사진 앞에서 얼쩡거릴 때 네가 여동생의 손을 잡고 레코드가게 앞을 지나갔을 수도, 영화관거리 입구에서 입체안경을 받아든 채 신기해하던 우리가 너와 나였을 수도 있겠다. 우리가 어른이 된 십년사이 타일 붙은 건물들은 유리로 교체 되었고 호출하신 분, 이렇게 불러주던 시절에 찾아 듣던 노래들은 이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잊혀진 노래가 되었다. 에어로빅을 가르치던 발랄한 주인집 딸아이는 통통한 아이를 둘쯤 낳았겠지. 달라진다는 건 생각만큼 나쁜 것은 아니지 싶다. 달라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 이라면 기억이 현재처럼 소중할리 없겠지. 어제는 세상을 가득 채운 거진의  겨울눈과 문어, 공중전화와, 목소리만 들렸던 어떤 꼬마아이를 한 참 떠올리고 있었다. 네가 취해 불러주던 레인보우와, 영화를 보는 내내 네 눈도 바닷바람에 저랬겠구나 싶었던 어여쁜 백란. 느닷없는 기억에 피식 웃었던 어제였다. 그 새벽, 네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는 아침에서야 그랬니? 하고 한참, 전주의 여름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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