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랑스에 사는 아시아 여성입니다.

그래서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을 겪습니다.


인종차별이 공개적으로 이뤄지면 모두에게 욕을 먹을 뿐더러

나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서

세금을 내는 사회구성원이고 불어 의사소통에 그닥 어려움이 없는 내게는

없다고 말할 수 없지만 아주 드물게 일어납니다.

인종차별을 겪을 땐 분노를 마음껏 표출해도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습니다.

가해자가 틀린 게 너무 명백하니까요. 내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요.

내게 어떠한 원인도 없다는 걸 알기에 나 자신을 자책하진 않습니다.

특정 피부색이 우월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내가 아시아인으로 태어난 건 우연일뿐, 나를 비난하고 탓할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성차별은 은근히 자주 있는 일이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행해지지만 섣불리 분노할 수 없습니다.

성희롱의 경우, 주변 반응이 그럴 수도 있지... 그런 의도 아니었을 거다...네가 예쁘니까 / 마음에 들어 그런 거다... 순식간에 벌어져서 대응할 시간이 없거나, 있어도 별다른 대응조차 못하면... 불쾌감보다 자기비하가 더 커집니다. 시원하게 욕을 퍼붓지 못한 바보 같은 나에게 분노가 쏟아집니다.

성적 비하 발언을 듣고 불쾌하단 반응에 따져보면 표현만 다소 격했을 뿐, 문제될 게 뭐 있느냐...

노골적인 성적 농담을 듣고 정색하면 네가 그렇게 딴지 거니까 분위기 이상해졌잖아... 왜 쿨하지 못하고 예민하게 구니...

성적 조롱을 받아 불쾌한 것에 추가로 별것 아닌 일에 과민한 사람이 되어 자괴감이 듭니다.


여기에 쐐기를 박는 말이 오늘 유난히 속상합니다.

"감정 실린 반응을 하니까 2차 가해가 벌어졌지. 넌 잘못한 거 없어?"


넷상에서 일어난 일이고, 난 목격자 입장이지만

입에 담기도 싫은 여성 비하 표현들을 보고 크게 상처를 입었고

책 비평인데 문제될 게 뭐냐는 반응에 마음이 상했고

도발했으니 둘 다 잘못했다는 사람들이 있어 당황스러웠습니다.

결국 잘 가둬둔 마음의 댐이 무너졌는지 하루종일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읽었습니다. 위로가 많이 됐습니다.


앞으로 다음의 책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작년 출판계 화두가 페미니즘이었죠. 끝나지 않았습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거서 2017-01-04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별로 인한 억울함이 쌓이기 전에 위로를 얻는 책을 만났음을 알겠습니다. 차별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하실 것 같습니다.
최근에 페미니즘 또는 페미니스트 관련 서적을 찾고 있는데 블랑코 님이 추천하는 책들을 유심히 봐둬야겠습니다. ^^

Gothgirl 2017-01-04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슬펐던건 그 말이 어느 정도의 말인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점이었어요 저쪽이 감정적으로 몰아가니까 좀 세게 자기의견 피력한거잖아 라는 반응들 그것도 서평의 일부라는 해석

아니오.. 여자들에게 있어 그 말은 흑인에게 가서 니거라고 부르거나 KKK만세라고 외친 정도의 발언이었는걸요 그걸 오히려 그냥 상대방에게 사과한거다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블랑코 2017-01-04 16:2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밤새 잠못 이루고 일어나서 다시 들여다봤는데 그게 뭐가 문제냐, 감정적 반응 안 했으면 더 나가지 않았을 거 아니냐 그러니 너도 잘못했다는 반응이 의외로 많아서 충격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