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없는 생명체로 하루 종일 화분에 앉아 있으면 세상에 존재하기가 더 쉬우리라. - P38
(...) 노라의 삶은 무의미한 불협화음이었다. 훌륭해질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망해버린 작품이었다. (...) 그녀는 이번 삶에 적합하지 않았다. - P38
사람은 도시와 같아서 마음에 덜 드는 부분이 몇 개 있다고 해서 전체를 거부할 순 없다. 위험해 보이는 골목길이나 교외 등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지랄도 다른 장접이 그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든다. - P74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 P194
노라는 자신의 집안이 오랫동안 대대로 후회와 꺾인 희망을 반복해왔다고 생각했다. - P197
내가 진심으로 영원히 살고 싶은 삶은 결코 없을 겁니다. 난 호기심이 너무 많고,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갈망이 너무 크니까요.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슬픈 일이 아니니까. 난 이 불확실한 상태가 행복해요. - P217
(...) 말하지 않아도 편안한 침묵이 있다. 그저 함께 있고, 함께 존재하는 침묵이었다. 자기 자신과 기꺼이 침묵할 수 있는 것처럼. - P300
하늘에 어둠이 드리우며 / 푸른 빛이 검게 물들어도 / 별은 여전히 용감하게 / 널 위해 반짝 - P387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오래가지는 않겟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야." 전쟁이라는 것은 필경 너무나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은 것이다. (...)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는 쪽은 사람들, 그것도 첫째로 휴머니스트들인 것이다. - P54
그 병의 첫 고비는, 라디오에서 사망자 수가 매주 몇백이라는 식으로 보도하지 않고 하루에 92명, 107명, 120명이라는 식으로 보도하기 시작한 시점이 계기였다고 지적한다. ‘신문과 당국은 페스트에 관해서 더할 수 없이 교묘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 그들은 130이 910에 비해서 훨씬 적은 수라는 점에서 페스트보다 몇 점 더 앞지른 것이라고 상상하는 모양이다.‘ 그는 또한 그 전염병이 보여주는 비장한, 또는 연극 비슷한 면면도 소개한다. 일례를 들면, 덧문을 닫은 채 인기척이 없는 어떤 동네에서, 갑자기 머리 위로 창문을 열어젖히고 큰소리로 두 번 고함을 지르고 나서는 짙은 그늘에 잠긴 방의 덧문을 다시 닫아걸고 말았다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 같은 것이다. - P153
재앙이 시작될 때와 그것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으레 약간의 수사(修辭)를 농하는 법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아직 습관을 털어버리지 못해서 그렇고 후자의 경우에는 습관이 이미 회복되어서 그렇다. 불행의 순간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진실에, 즉 침묵에 익숙해진다. - P157
"하느님은 위대하시다. 그에게로 오라."하고 되풀이해 외쳤으나 헛수고일 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와 반대로 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그 무엇, 아마도 신보다 더 긴요하게 여겨지는 그 무엇을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초기에 그들이 이번 질병도 딴 질병이나 다름없는 흔한 것이리라고 생각했을 때에는, 종교도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향락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 P162
"선생님은 신을 믿으시나요?"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나는 어둠 속에 있고, 거기서 뚜렷이 보려고 애쓴다는 뜻입니다. 그러는 것이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은 지가 벌써 오래됩니다.""그 점이 파늘루 신부와 다른 점이 아닌가요?""그렇지 않습니다. 파늘루는 학자입니다. 그는 사람이 죽는 것을 많이 보진 못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리 운운하는 것이죠. 그러나 아무리 보잘것엇는 시솔 신부라도 자기 교구 사람들과 접촉이 잦고 임종하는 사람의 숨소리를 들어 본 사람이면 나처럼 생각합니다. 그는 그 병고의 유익한 점을 증명하려 하기 전에 우선 치료부터 할 겁니다." - P169
그늘에서 얼굴을 내밀지도 않은 채 의사는, 그 대답은 이미 했으며, 만약 어떤 전능한 신을 믿는다면 자기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것을 그만두고 그런 수고는 신에게 맡겨 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신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파늘루까지도, 그런 식으로 신을 믿는 이는 없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하고 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며, 적어도 그점에 있어서는 리유 자신도 이밈 창조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며 투쟁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P170
내가 이 직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말하자면 그냥 추상적으로 택했지요.(...) 택하고 났더니 죽는 장면을 보아야만 했지요. 죽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어떤 여자가 죽는 순간에 ‘안 돼!‘하고 외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나요? - P171
인간은 오랫동안 고통을 참거나 오랫동안 행복해질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가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 P215
그때는 이미 개인적인 운명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었고, 다만 페스트라는 집단적인 역사적 사건과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밖에는 없었다. 가장 뚜렷했던 것은 생이별과 귀양살이의 감정이었다. 거기에는 공포와 반항이 내포되어 있었다. - P221
한 시청 직원이, 전에는 해안선을 따라 운행되었으나 이제는 쓸모가 없어져 버린 전동차를 이용하도록 건의함으로써 당국의 일은 훨씬 수월해졌다. 그렇게 하기 위해 유람차와 전기 기관차의 좌석을 뜯어내어 내부를 개조하고, 또 선로를 화장터에까지 우회하도록 만들어서 화장터가 하나의 시발점이 되었다.그래서 늦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비 속에서도, 매일같이 한밤중이면 승객 없는 전동차의 괴상한 행렬이 바다 위 저 중턱으로 덜거덕거리면서 지나다니는 광영을 볼 수 있었다. 시민들도 마침내는 그 내막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순찰대가 임해 도로에 접근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흔히 몇몇 무리의 사람들이 파도치는 바다를 굽어보며 솟아 나온 바위 틈에 숨어 있다가 전동차가 지나갈 때면 유람차 안에 꽃을 던지곤 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전동차가 꽃과 시체를 싣고 여름밤 속을 더한층 심하게 흔들리며 달리는 소리를 듣곤 했다. - P234
(...) 통계 숫자가 계속해서 상승한다면 어떠한 조직도, 그것이 제아무리 우수한 것이라 해도, 거기에 견딜 수는 없을 것잉고, 도청이라는 것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첩첩이 죽어서 쌓일 것이고, 거리에서 썩을 것이고, 또 공공장소에서는 죽어 가는 사람들이 당연한 증오심과 어리석은 희망이 뒤섞인 심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붙잡고 매달리는 꼴을 보게 되리나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 P235
무시무시한 불행은 오래 끌기 때문에 오히려 단조로운 것이다. (...)페스트는 무엇보다도 용의주도하고 빈틈없으며 그 기능이 순조로운 하나의 행정사무였다. - P236
(...) 빈곤한 가정은 무척 괴로운 처지에 놓였지만, 반면에 부유한 가정들은 부족한 것이라곤 거의 없었다. 페스트가 그 역할에서 보여 준 것 같은 효과적 공평성으로 말미암아 시민들 사이에 평등이 강화될 수도 있었을 텐데, 페스트는 저마다의 이기심을 발동시킴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마으속에다 불공평의 감정만 심화한 것이었다. 물론 죽음이라는 완전무결한 평등만은 남아 있었지만 그런 평등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 P308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제 극도로 늙고 극도로 음울해진 희망, 심지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냥 가만히 죽어 가지도 못하게 하는 희망, 삶에 대한 단순한 아집에 불과한 그런 희망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 P339
알듯 말듯, 믿을듯 말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볼만한 책. 영감을 주는 책.
업무용으로 읽게 되었는데, 큰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나름 영감을 많이 주었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매우 흥미롭고 아름답고 눈물나는 이야기였다.
촘촘히 짜여진 구성, 이국적이면서 친근한,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이면서 낯선 이야기들.
도서관, 할머니와 두 자매, 할머니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음식들, 그리고 엄마와의 이별
꼭 내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많이 울었다.
다만 어린이,청소년 소설로 한정짓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다.
그 시기를 다 겪어낸 어른들에게 더 잘 이해될 것 같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