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 (박형준)

                      

유별나게 긴 다리를 타고난 사내는
돌아다니느라 인생을 허비했다
걷지 않고서는 사는 게 무의미했던
사내가 신었던 신발은 추상적이 되어
길 가장자리에 버려지곤 했다. 시간이 흘러
그 속에 흙이 채워지고 풀씨가 날아와
작은 무덤이 되어 가느다란 꽃잎을 피웠다
허공에 주인의 발바닥을 거꾸로 들어올려
이 곳의 행적을 기록했다,
신발들은 그렇게 잊혀지곤 했다

기억이란 끔찍한 물건이다
망각되기 위해 버려진 신발들이
사실은 나를 신고 다녔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맨발은 금방 망각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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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4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6-01-05 0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저의 근황은 막 제가 올린 뻬빠를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 허리가 쑤셔서 죽음이야요. 고생하셨네요. 그래도 걱정하신 건 다 괜찮았으니 천만다행이 아닙니까! 이제 좀 진정하셨죠? 따뜻한 이불 아래 들어가서 마음을 좀 가라앉히셔요. 서재에 가보았는데 아이고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원래 답글 안 다시는 스탈이니 확 지우심이 어떠하시겠습니까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