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를 길어오며 - 철화네 집, 벽제에서 (유하)
새벽녘 약수를 주전자에 넣고
출렁출렁 산길을 내려왔다
까치가 눈앞에서 날아오르고
여지껏 내 생의 헛된 욕망의 소식들과
솔방울처럼 말라버린 기다림들이 푸르르
깃을 치며 떠올랐다 내 발걸음은 약수를 길어
산길을 내려오는 것만도 벅찬 호흡인데
산 위의 물은 어떤 절망의 터널을 뚫고 내려와
이렇듯 온전한 약수로 샘솟았는가
주전자의 벌린 입처럼 해찰하며
냇물의 나른함으로 흘러내려온 내 삶의 버릇이
아깝게 자꾸 약수를 쏟게 했다
삶이라는 것도,
마음대로 출렁대며 내려오다보면
약수처럼 슬금슬금 쏟아져버린다는 걸 왜 몰랐을까
난 차 한 잔과 국물 한 사발이 더 필요했으므로
다시 오던 산길을 거슬러올라갔다
까치 떼가 지금까지 걸어온 내 발길의 기억처럼
날아오르고, 난 다시 거슬러올라갈 수 없는
내 삶의 산길을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