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이성복)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엉킨 머리카락을 걷어 변기에 버리면 까만 도너츠 모양이 한 순간 빙빙 돈다 그러면 나는 물을 내린다 한 때 내 것이었던 것, 정화조 속에서 얼마나 더 썩어야 검은 도너츠는 사라질까 한 때 내 것이었던 것, 한 때 나였던 것들을 느닷없는 소용돌이 속에 곤두박질시키며 나는 누구를 버리는가 내가 저를 기억하지 못하매 저가 어찌 나를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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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이성복 시인의 시입니다. 참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