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진명)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
보라.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첫여자도 첫키스도 첫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안 돌아오는 여행을 간 것이다
얼마나 눈부신가
안 돌아오는 것들
다시는 안 돌아오는 한번 똑딱 한 그 날의 부엉이 눈 속의 시계점처럼
돌아오지 않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그 때는 몰랐다
안 돌아오는 첫 밤, 첫서리 뿌린 날의 새벽 새떼
그래서 슬픔과 분노의 흔들림이 뭉친 군단이 유리창을 터뜨리고
벗은 산등성을 휘돌며 눈발을 흩뿌리던 그것이
흔들리는 자의 빛줄기인 줄을

없었다. 그 이후론
책상도 의자도 걸어논 외투도
계단도 계단 구석에 세워둔 우산도
저녁 불빛을 단 차창도 여행을 가서 안 돌아오고
없었다. 없었다. 흔들림이

흔들리지 못하던 많은 날짜들을 스쳐서
그 날짜들의 어두운 경험과
홀로 여닫기던 말의 문마다 못을 치고 이제
여행을 떠나려 한다.

흔들리지 못하던 나날들의 가슴에 금을 그으면
놀라워라. 그래도 한 곳이 찢어지며
시계점처럼 탱 탱 탱 피가 흐른다

보고 싶은 만큼, 부르고 싶은 만큼
걷고 걷고 또 걷고 싶은 만큼
흔들림의 큰 소리 넓은 땅
그 곳으로 여행가려는 나는
때로 가슴이 모자라 충돌의 어지러움과
대자기 못한 시간에 시달릴지라도
멍텅구리 빈 소리의 시계추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자꾸 틀린 말을 하더라도

 경남 통영 바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검둥개 2005-07-1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범한 제목으로 멋진 시를 쓰다니 정말 훌륭하죠? 저도 이진명 시집은 사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