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그 풀밭에 (나희덕)
누군가 손대지 않음으로써 일구어 놓았나
스스로 무성해진 풀밭
두려움도 없이 나는 풀을 벤다
낫이 움직이면서 내 속에 자란 풀을 먹어치운다
풀을 베어낸 자리마다 흙이 상처처럼
검붉다, 부질없이 부질없이
옮겨 심을 무엇이 더 남아 있다는 것일까
드러난 흙이
뿌리를 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듯
나의 탐식은 풀밭 위를 달린다
풀은 왜 늙으면서 질겨지는가
가벼워지는가
두려움도 없이 나는 풀을 벤다
마음, 그 풀밭에 불을 놓는다
풀뿌리는 끝내 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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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동시인의 꽤 유명한 <풍장의 습관>만큼 확 눈을 끄는 구석은 없지만, 오래오래 읽어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아마 풀밭에 불놓는 것과 마음자리의 욕망을 뜯어내는 것과 그걸 탐식이라 표현하는 시인의 말 사이의 관련성도, 풀이 질겨지면서 늙으면서 동시에 가벼워진다는 말의 의미도 단번에 확 명쾌하게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자세히 읽으면 읽을수록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이 강렬한 이미지와 함께 머릿 속을 화라락 화차처럼 달려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버섯이, 이럴 때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요. 며칠 비 내린 후에 보면 그늘 구석에서 부지불식간에 무럭무럭 자라있는 버섯들. 그런 버섯들처럼 살아있는 존재들은 늘 무수한 욕망을 산출해내지요. 그런가하면 또 그런 욕망들에 지치고 시달려 제가 만들어낸 그 욕망들을 그만 단칼에 다 날려버리려는 혹은 한 입에 다 먹어치워 없애버리려는 또다른 욕망이 존재의 뒷편에 웅크리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 그 욕망의 뿌리는 그렇게도 뽑아내기가 지난한 것이라, 끝끝내 풀뿌리는 타지를 않는다고요. 없어지기란 그러니까 여러번 가벼워지는 것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닌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