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의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위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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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주말에 큰 맘 먹고 버스를 타고 꽤 가야하는 몰에 갔다. 지난 4년 동안 옷을 산 적이 없어서 오피스틱한 옷을 사러 갔던 거다. 이 곳에서는 백화점에 우리나라처럼 고급스런 이미지가 없다. 즉, 제일 옷을 싸게 사려면 가야 하는 곳이 백화점이다. 백화점에는 정말 안 유명하고 낯설기만 한 상표의 옷들이 잔뜩 차 있고 가격표에서 언제나 50퍼센트 정도가 할인된다.

이 곳에서 일대 쇼핑을 했다. 누가 돈 준다고 가서 옷 사라고 하면 입이 찢어졌을 텐데, 신용카드로 아직 벌지도 않은 돈을 미리 떼어내서 맘에 들지도 별로 않는 온통 칙칙한 색의 옷들을 다리품 팔아가며 젤 싼 걸로 사야한다니, 무슨 벌서는 것처럼 중노동이라 흥도 나지 않았다.

이것저것 샀더니---무지 많이 사긴 했다-- 옷 값이 300불 나왔다. 그렇다, 나에게는 기겁하게 큰 돈. 그러나 어쩌겠는가, 입을 옷이 하나도 없었던 것을. 계산대의 점원이 부러운 눈길로 300불어치나 옷을 산다고 주절주절했다. 나는 얼굴이 붉어지고 당황해 아무 말을 못했다. 스스로는 300불이래봤자 30만원, 왠만한 브랜드 코트 하나도 그 정도는 하지 않나 (물론 사본적은 없으니까 모르지만 친구들 거 보면 그런 거 같길래) 하고 나름대로 절약 쇼핑을 했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타인의 가난 앞에서 나는 늘 부끄러워진다. 그에 비하면 나의 삶은 엄살만 같아서. 집에 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삼돌이가, 뭐? 그럴리 없어. 네가 돈이 많은 사람이면 왜 갈 데가 없어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고 있겠지, 라고 대답한다.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나는 백 번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싼 물건만 널린 백화점이래도, 필요한 대로 원없이 양껏 뭔가를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사실 나도 그래본 적이 없으니까.

왜 신경림의 시를 붙여놓고 이런 말을 하느냐면, ...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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