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가수 --뽕짝의 꿈  (허수경)

 

나 오래 전 병아리를 키웠다네

이 놈이 닭이 되면 내버리려고

다 되면 버리는 재미

그게 바로 남창 아닌가, 아무데서나 무너져내리는 거

 

반짝이는 거

반짝이면서 슬픈 거

현 없이도 우는 거

인생을 너무 일찍 누설하여 시시쿠나

 

그게 바로 창녀 아닌가, 제 갈 길 너무 빤해 우는 거

 

닭은 왜 키우나 내버리려고

꽃은 피면 왜 다리를 벌리나 꽃에겐 씨앗의

꿈이란 없다네 아름다움에

뭐, 꿈이 있을 턱이

 

돌아오고 싶니? 내 노래야

내 목젖이 꽃잎 열 듯 밸개지던 그 시절

노래야, 시간 있니? 다시 돌아올 시간,

나 어느 모퉁이에서 운다네

나 버려진 거 같아 나한테마저도 ......

 

내일의 노래란 있는 것인가

정처없이 물으며 나 운다네

 ------------------------------------------------

이 시인의 시를 읽으면 나는 '절창'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 것만 같다. 대학시절 '정든 병'이라는 시를 읽고 나는 허수경 시인에 홀딱 반했다. 어떻게 그렇게 구슬프게 노래를 하는지, 어떻게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놓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젊은 시인이 그토록 절절한 시를 읊어 올리는지 나는 지금도 모르겠다. 시인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거라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시들이다. 말들이 그냥 곧바로 노래가 되는 시들. 오래전 혼자서 여러 번 읽었던 이 시인의 시집이 오늘따라 무척 그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