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닌 1
아사노 이니오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기분이 엿 같은 날이 뭐 하루 이틀인가. 호구지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뭔가 더 중요한 걸 발견하고 싶다는 생각은 속수무책일 뿐이고 꿈보다는 언제나 고픈 배가 먼저다. <소라닌>은 이십대 초반의 대학을 갓 졸업하고 겨우 이년 사회생활을 한 젊은이들의 막막함을 그리고 있지만 삼십대나 사십대가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종류의 책이다. 막막함은 인생의 길이만큼 지속되고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과장이며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친구는 최근 무슨 생각으론지 갑자기 파마를 해서 졸지에 검은 양배추 머리가 됐다. 기러기 아빠가 될까 걱정된다는 친구는 아직도 뭔가 인생에서 중요한 걸 찾고 있는 걸까?

맘에 들지 않는 안정된 직장을 다니던 메이코는 하늘에 떠가는 풍선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에 직장을 때려치운다. 남들이 일하는 한낮에 모처럼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즐기고 날씨가 좋은 날엔 빨래를 널고 이것저것 요리도 해보지만, 목적이 없는 자유는 지루하다. 메이코에 얹혀 프리터 노릇을 하던 남자친구 다네다는 메이코가 사표를 내자 앞으로 어떻게 살지 무서워 죽겠다며 길거리에서 울음을 터트린다.

세상은 그렇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게 무서운 곳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메이코의 말대로 '아무렴 어떠냐' 의 덩어리가 된 것일까?


배가 나와도 아무렴 어떠냐.
코털이 빠져나와도 아무렴 어떠냐
감옥만 안가면 아무렴 어떠냐.
마음 따윈 없다한들 아무렴 어떠냐.
어디선가 전쟁과 재해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도 자기만 행복하다면 아무렴 어떠냐.
이 회사는 월급이 괜찮으니까 아무렴 어떠냐.

학생 때처럼 회사도 설렁설렁 다니던 메이코는 호치키스는 서류의 오른쪽 위에 딱 두 개만 찍어야 한다는 규칙을 깜빡하는 바람에 결국 사표를 내지만, 학생 때처럼 회사를 죽어라 다닌다고 해도 회사나 학교나 평생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작 뭔가 인생의 용단을 내려야 할 사람은 메이코지만 정작 메이코는 엉뚱하게 망설이지 말고 하고 싶은 밴드를 하라고 다네다를 부추긴다. 유명 소녀가수의 백밴드로 활동하지 않겠냐는 제안에 정작 "싫습니다", 라고 멋지게 다네다 몫의 결단을 내려주는 것도 메이코. 아니나 다를까 이후로 더이상 다네다의 데모테입에 대한 관심은 없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갑자기 어른이 되라고 사회로 떠밀려진 메이코, 다네다, 친구들은 모두 우왕좌왕 어쩔줄을 모른다.
전쟁도 없고 세상은 평화롭고 여름 한낮의 태양은 그야말로 멋지게 쏟아지는데 말이다.

아빠네 약국에서 두통약 따위를 파는 인생을 막 시작한 친구 빌리의 말마따나,


개구리야
그럼 내 인생은 대체 뭐니
일년 내내
비바람을 맞아도
가게 매상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활기찬 웃는 얼굴로
이~딴 포즈를
하고 있지만
결국엔 우체통으로
오인되는 너의
역할이란!?

다네다는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제안하고, 메이코는 언제까지나 우리는 함께라는 그런 맘에도 없는 말은 그럼 왜 했느냐고 화를 터트린다. 물에 잔뜩 젖은 생쥐 꼴로 돌아오지만 마음이 가는 길을 알 수 없는 다네다에게 과연 어느 말이 마음에도 없는 말이고 어느 말이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을까. 역 앞 같은 사람들이 많은 데 가서 노래해 보려고 기타를 메고 신주쿠까지 가보지만,
그런 배짱이라고는 제로인 메이코가 정작 노래를 부르는 곳은 집 앞 개천가 뚝방.

왜 아이들은 그렇게 눈깜짝할 새 어른이 되고 어른들은 왜 그렇게 눈깜짝할 새 늙어버리는 걸까. 도통 늙어주지 않는 마음의 짐을 지고 어른들은 저녁마다 노래방에서 목청이 터져라 흘러간 옛가요를 열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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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3 1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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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4 0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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