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를 위하여 파랑새 청소년문학 4
곤살로 모우레 지음, 송병선 옮김 / 파랑새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열일곱살 여자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가 처음에는 그리 쉽지 않다. 그의 말에는 반짝거리는 진실이 숨어 있지만 그저 어디서 아무 생각없이 주워담은, 겉만 멋질 뿐인 생각도 섞여 있다. 거짓을 말하는 것인지 사실을 말하는 것인지 아이 자신도 그다지 확신이 없다. 소녀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슬픈지 기쁜지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혼돈스럽다는 것, 제어할 수 없는 격정에 휩싸여 있다는 것. 한 순간 한 순간이 풍랑속의 위태로운 조각배처럼 느껴진다는 것.

하지만 차츰차츰 분간해 나가게 되었다. 소녀의 이름은 이레네. 이레네에게는 두 친구가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소년 야르칙과 야르칙을 알기 전부터 사귀었던 테사. 피아노를 치던 이레네는 천재가 아니라는 것에 좌절하여 피아노를 그만두고 바이올린을 켜게 되었다. 테사를 따라서 클래식이 아닌 음악들도 많이 듣게 되었다. 이레네의 정신 속에선 하이든을 배경으로 너바나가 노래를 부르고,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모짜르트의 음악이 뒤섞인다.

방학을 맞아 아버지를 따라 시골에서 지내게 된 이레네는 아버지의 부탁을 받아, 그리고 자신의 호기심에 이끌려 정신지체아처럼 보이지만 음악에 천재적인 소질을 지니고 있다는 토미를 만난다. 토미를 만나는 순간부터 소설 속에는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는 나의 마음에도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엘비라 마디간을 몰라도, 모짜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소나타 k360번을 몰라도 상관없었다. 음악은 '도'라는 음 하나로 시작했다. 그리고, 자작나무에 걸어놓은 손수건을 너울거리게 하는 바람처럼 부드럽고 조용히 흐르다가 높이 높이 격정적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차분히 돌아올 곳으로 돌아왔다. 마치 소나타처럼.

이레네는 처음에는 '그래 하지만 그렇지 않아 아가씨'였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음악은 우주의 언어이다. 야르칙의 말에 의하면 먼 미래의 진화한 인간들이 소통의 도구로 쓸 언어이다. 너무 흔히 써먹어서 식상해진 이 말은, 그러나 소설을 읽는 동안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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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형 2007-02-26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있다. "너무 흔히 써먹어서 식상해진 이 말은, 그러나 소설을 읽는 동안 사실이었다." 이런 멋진 문장을 생각해내다니!! 칭구! 좋아!
그럴 때가 있어. 정말. 어떤 진부한 표현이라도 말이야. 그게 사실일 때가 있어.